을종간부후보생
- 한자: 乙種幹部候補生
1. 개요
대한민국 육군에 존재했던 부사관 양성 과정이었다. 을종하사관(乙種下士官)이라 부르기도 했다.
2. 역사
1950년 1월에 육군보병학교에 고졸자를 교육시켜 장교로 임관시키는 갑종간부후보생이 생기자 따라서 생겼다. 장교 못지 않게 부족했던 하사관 인력을 보충하기 위해 당시에는 나름 학력자였던 중졸자를 하사관으로 임용시켜 활용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둘다 교육과정이 똑같았다.''' 즉 같이 교육시키고 같이 수료시키는데, 고졸 이상은 소위로 중졸 이하는 이등중사 (현재의 하사 )로 임용시켰다는 얘기다.
현재 학사장교나 민간부사관이나 16-17주 정도 교육을 받는다고하지만 교육내용은 서로 다르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상한 부분이다.[1] 이는 당시 정부와 군대가 간부교육과정을 면밀하게 검토할 능력이 부족했던데다가, 간부에 대한 수요는 빠르게 커져갔던터라 일단 훈련시키고 임관부터 시키자는 의도에서 마련된 제도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동년 6월에 큰 전쟁이 발발하는 바람에 이를 수정, 보완할 시간조차 없게 되어버렸다. '''최대한 빨리 뽑아서 전장에 투입시켜야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되었기 때문이다.
단, 대한민국 해군과 대한민국 공군은 창군기부터 장교/하사관 임관기준을 각각 대졸과 고졸 이상로 규정했다. 첨단기술과 연관이 많은 특성상 고학력자가 필요한 이유에서였다. 특히 공군은 공군사관학교와 별개로, 1969년에 공군기술고등학교를 설립하여 안정적인 전문기술부사관 자원을 확보해나갔다.
1961년, 육해공군 각 군의 하사관들은 직업군인으로 병은 의무복무자로 구분 짓도록 계급에 대한 개정이 이루어졌다.[2] 당시에는 '직업군인 = 하사관'이라는 새로운 공식을 바탕으로 '직업군인하면 곧바로 하사관으로 진급/임관할 수 있음'하고 혜택 비스무리하게 어필했던 것을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하사관의 공급은 수요에 비해 한참 모자랐고 국민 전체적으로 학력수준도 높지 않았기 때문에 중졸 민간인을 하사관으로 선발하는 을종간부후보생이 계속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
1968년에 육군3사관학교이 등장하게되자 갑종간부후보생은 폐지의 수순을 밟게 된다. 전반적으로 국민들의 학력이 크게 신장되어가던 시기였던지라 같이 교육을 받던 을종간부후보생제도도 같이 폐지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장교와 달리 부사관은 여전히 부족한게 현실이었다. 결국 부족한 부사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민간인에서 부사관을 선발한다는 발상은 계속해서 이어져 현재의 민간부사관제도에 이르게 된다.
[1] 학사장교는 배울 건 다 배우는데 부사관후보생은 학사장교가 배우는 것들 중에서 몇가지가 빠져있다. 그 과목들이 전쟁사, 북한군전술, 지휘통솔기법, 분소대전술 등이다. 부사관후보생은 이것들을 안배우는 대신 개인화기, 수류탄, 편제화기, 화생방 등을 학사장교보다 더 많은 시간동안 훈련한다.[2] 그 이전에는 징병제를 시행하는 타국의 군대가 그러하듯이 징병제 국가에서 직업군인이란 의무복무를 넘겨 복무하며 이를 업으로 삼는 군인을 뜻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