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행

 


1. 개요
2. 생애
3. 가족관계

李謹行
(? ~ 682년)

1. 개요


초기의 장수. 말갈족 출신이며, 고구려-당 전쟁, 고구려 부흥운동 진압, 나당전쟁에서 당군의 지휘관으로 참전했다.

2. 생애


아버지는 말갈족 추장 돌지계(突地稽)인데 수나라 때 남하해 중국으로 귀순했고 공을 세워 태종(당)에게 국성 이씨를 사성받았다.
고구려에서 내분이 발생해 연남생이 당나라에 투항하고 고구려를 쳐 달라고 요청, 제3차 고구려-당 전쟁이 발발했고 이 때 이근행은 좌감문장군으로 참전했다.
이후 당나라의 야욕과 의견대립 끝에 신라와의 나당전쟁이 발발하자, 신라를 공격하기 위해 황해 바다를 건너는 수군을 설인귀가 지휘하고 이근행과 고간#s-3은 요동 평양성을 통해 육상으로 신라를 침공한다. 670년부터 673년까지 지금의 황해도 일대에서 웅거하며 신라를 지원하던 고구려 부흥군을 호로하 전투 등에서 승승장구하고, 675년에는 대대적으로 임진강선 건너 신라를 공격했지만 매소성 전투에서 패배해 큰 피해를 입고[1] 나당전쟁을 종결짓게 된다.
매소성 전투 패배 후 이근행은 당나라 서부 토번 전선에 투입되었는데 여기서는 상당한 공을 세워진군대장군(鎭軍大將軍)과 행우위대장군(行右衛大將軍) 연국공(燕國公)에 봉해졌다. 죽은 뒤에는 공을 인정받아 당고종의 곁에 묻혔다.

3. 가족관계


이근행의 아내 유씨(劉氏)가 있었는데, 삼국지의 왕이와 같은 역사에 몇 안 되는 실존한 여장부였던 듯 하다. 자치통감에 의하면 이근행이 나당전쟁 도중 고구려 부흥군과 싸우러 나가있을 때 유씨는 벌노성(伐奴城)에 있었는데, 고구려부흥군과 고구려를 따르는 말갈족 부대가 벌노성을 공격했다. 유씨는 직접 갑옷을 두르고 무리를 지휘해 오랫동안 수성전을 펼쳤고 결국 부흥군이 물러났다고 한다.

[1] 당의 기록에는 이근행이 매소성에서 오히려 신라군을 격파한 것으로 나온다. 철군한 이유도 전투에서 패한게 아니라 문무왕이 사죄한 것을 받아들인것으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