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우에 요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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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우에 요스이. 井上 陽水. 1948.08.30 ~
본명은 이노우에 아키미(井上 陽水)[1] . 공식홈페이지
요시다 타쿠로와 함께 70년대 일본 포크송(혹은 뉴뮤직)계를 이끌며 현재까지도 활발하게 활동중인 거물 뮤지션. 총 판매량 1,500만장 이상.
아내는 마찬가지로 가수인 이시카와 세리. 자녀로 아들 한명과 딸 둘을 두고 있는데 장녀 이후 사라사(본명은 이노우에 니사)는 작사가, 가수로 활약중이다.
1948년, 큐슈 후쿠오카 현 이즈카시 에서 출생. 아버지는 치과의사. 형제관계는 누나 1명, 여동생 1명. 라디오를 통해 비틀즈를 접하고 음악의 뜻을 두기 시작. 큐슈치대를 목표로 3수까지 했으나 실패,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가수가 되기로 하고 도쿄로 상경한다.
1969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시청자가 만든 노래를 틀어주는 코너에 'カンドレ・マンドレ'를 만들어 보냈다. 본인은 '만드레'라는 예명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라디오 디렉터가 '안드레.칸드레'란 예명으로 결정. 'カンドレ・マンドレ'는 많은 인기를 얻어[2] , 소니에서 데뷔. 싱글 3장을 냈으나, 인기가 없었다[3] .
1972년, 폴리도르 레코드로 이적하고 싱글 '人生が二度あれば'를 발표하면서 '이노우에 요스이'란 이름으로 재데뷔. 첫 앨범 '断絶'에서 '傘がない'가 인기를 얻어 싱글로도 발표한다.
1973년, 싱글 '夢の中へ'가[4] 히트하면서 많은 인기를 얻기 시작하고, 세번째 오리지널 앨범인 '氷の世界'는 일본 최초 밀리언셀러가 된다.
1974년, 쿠마모토 현 출신의 여성과 결혼.
1975년, 이노우에 요스이, 요시다 타쿠로, 이즈미야 시게루, 코무로 히토시 등 4명의 포크싱어가 주축이 되어 '포라이프' 라는 레코드 회사를 설립한다.[5]
1976년, 이혼.
1977년, 대마초 소지 혐의로 체포. 혐의를 인정하고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는다. 이 사건으로 인기에 발목을 잡혀 판매량이 줄어들기도 했다.
1978년, 자신의 생일인 8월 30일에 이시카와 세리와 재혼. 같은해 장남이 태어났다.
이 시기까지는 방송 출연이 일절 없었다.
1981년, 처음으로 방송출연을 하게 되고 이 후 밤의 히트 스튜디오, 더 베스트 텐 등 음악방송에도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노우에 요스이의 눈에 띄어 안전지대가 이노우에 요스이의 백밴드로 활동하기 시작.
1982년, 안전지대가 데뷔.
1984년, 9.5カラット 발매. '氷の世界'에 이어 두번째 밀리언셀러가 되었다. 이 앨범으로 제27회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작곡상, 앨범상을 수상.
1986년, 메이지신궁야구장에서 안전지대와 같이 콘서트를 열었다.
1988년, 6년전 발매한 'リバーサイドホテル'가 드라마 주제곡으로 쓰이며 인기를 얻는다.
1990년, 영화 소년시대[6] 주제곡으로 만든 '少年時代'가 히트. 스테디셀러가 되어 1997년에 밀리언 셀러가 되었다.
1993년, 드라마 주제가로 쓰인 'Make-up Shadow'가 히트, 제35회 레코드 대상 금상을 수상.
1997년, 이전부터 교류가 있던 오쿠다 타미오와 '井上陽水奥田民生'라는 듀엣을 결성. 싱글과 앨범을 발표했다.
1999년, 데뷔 30주년을 기념해 베스트 앨범 'GOLDEN BEST' 발매.
2001년,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커버한 'UNITED COVER'가 히트, 커버 붐에 일조한다.
2003년, 베스트 앨범'GOLDEN BEST'가 매출 200만장을 넘자 기념한정반 'GOLDEN BEST SUPER'를 발매한다.
2006년, 오쿠다 타미오와의 유닛 '井上陽水奥田民生'으로 다시 활동. 10년전엔 하지 않았던 투어도 돌았다.
2009년, 데뷔 40주년.
2010년, 앨범 '魔力' 발표하며 활동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이노우에 요스이. 井上 陽水. 1948.08.30 ~
본명은 이노우에 아키미(井上 陽水)[1] . 공식홈페이지
1. 개요
요시다 타쿠로와 함께 70년대 일본 포크송(혹은 뉴뮤직)계를 이끌며 현재까지도 활발하게 활동중인 거물 뮤지션. 총 판매량 1,500만장 이상.
아내는 마찬가지로 가수인 이시카와 세리. 자녀로 아들 한명과 딸 둘을 두고 있는데 장녀 이후 사라사(본명은 이노우에 니사)는 작사가, 가수로 활약중이다.
2. 활동
2.1. 데뷔전
1948년, 큐슈 후쿠오카 현 이즈카시 에서 출생. 아버지는 치과의사. 형제관계는 누나 1명, 여동생 1명. 라디오를 통해 비틀즈를 접하고 음악의 뜻을 두기 시작. 큐슈치대를 목표로 3수까지 했으나 실패,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가수가 되기로 하고 도쿄로 상경한다.
2.2. 70년대
1969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시청자가 만든 노래를 틀어주는 코너에 'カンドレ・マンドレ'를 만들어 보냈다. 본인은 '만드레'라는 예명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라디오 디렉터가 '안드레.칸드레'란 예명으로 결정. 'カンドレ・マンドレ'는 많은 인기를 얻어[2] , 소니에서 데뷔. 싱글 3장을 냈으나, 인기가 없었다[3] .
1972년, 폴리도르 레코드로 이적하고 싱글 '人生が二度あれば'를 발표하면서 '이노우에 요스이'란 이름으로 재데뷔. 첫 앨범 '断絶'에서 '傘がない'가 인기를 얻어 싱글로도 발표한다.
1973년, 싱글 '夢の中へ'가[4] 히트하면서 많은 인기를 얻기 시작하고, 세번째 오리지널 앨범인 '氷の世界'는 일본 최초 밀리언셀러가 된다.
1974년, 쿠마모토 현 출신의 여성과 결혼.
1975년, 이노우에 요스이, 요시다 타쿠로, 이즈미야 시게루, 코무로 히토시 등 4명의 포크싱어가 주축이 되어 '포라이프' 라는 레코드 회사를 설립한다.[5]
1976년, 이혼.
1977년, 대마초 소지 혐의로 체포. 혐의를 인정하고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는다. 이 사건으로 인기에 발목을 잡혀 판매량이 줄어들기도 했다.
1978년, 자신의 생일인 8월 30일에 이시카와 세리와 재혼. 같은해 장남이 태어났다.
이 시기까지는 방송 출연이 일절 없었다.
2.3. 80년대
1981년, 처음으로 방송출연을 하게 되고 이 후 밤의 히트 스튜디오, 더 베스트 텐 등 음악방송에도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노우에 요스이의 눈에 띄어 안전지대가 이노우에 요스이의 백밴드로 활동하기 시작.
1982년, 안전지대가 데뷔.
1984년, 9.5カラット 발매. '氷の世界'에 이어 두번째 밀리언셀러가 되었다. 이 앨범으로 제27회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작곡상, 앨범상을 수상.
1986년, 메이지신궁야구장에서 안전지대와 같이 콘서트를 열었다.
1988년, 6년전 발매한 'リバーサイドホテル'가 드라마 주제곡으로 쓰이며 인기를 얻는다.
2.4. 90년대
1990년, 영화 소년시대[6] 주제곡으로 만든 '少年時代'가 히트. 스테디셀러가 되어 1997년에 밀리언 셀러가 되었다.
1993년, 드라마 주제가로 쓰인 'Make-up Shadow'가 히트, 제35회 레코드 대상 금상을 수상.
1997년, 이전부터 교류가 있던 오쿠다 타미오와 '井上陽水奥田民生'라는 듀엣을 결성. 싱글과 앨범을 발표했다.
1999년, 데뷔 30주년을 기념해 베스트 앨범 'GOLDEN BEST' 발매.
2.5. 2000년대 이후
2001년,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커버한 'UNITED COVER'가 히트, 커버 붐에 일조한다.
2003년, 베스트 앨범'GOLDEN BEST'가 매출 200만장을 넘자 기념한정반 'GOLDEN BEST SUPER'를 발매한다.
2006년, 오쿠다 타미오와의 유닛 '井上陽水奥田民生'으로 다시 활동. 10년전엔 하지 않았던 투어도 돌았다.
2009년, 데뷔 40주년.
2010년, 앨범 '魔力' 발표하며 활동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3. 인물
- 독특한 외견과 말투로 성대모사 단골메뉴로 등장하곤 한다.[7]
- 현재 아내인 이시카와 세리와 사귀던 시절 그녀의 관심을 끌기 위해 30분만에 작곡한 곡이 바로 히트곡 '춤은 잘 출 수 없어(ダンスはうまく踊れない)'.
- 오랜기간동안 많은 사랑을 받은 가수지만 특이하게 아직까지도 홍백가합전에 출연한 적은 없다. 70년대 잘나갈 때 불러 주지 않아서, 이후에는 아예 출연제의 자체를 씹는다.
4. 음반
4.1. 싱글
4.2. 앨범
4.3. 베스트 앨범
4.4. 기타
[1] 이노우에 요스이라 쓰고 이노우에 아키미라 읽는다[2] 친구들에게 많은 엽서를 나눠주면서 보내달라고 하기도 했다고[3] 포크 가수가 아마추어 활동 없이 바로 데뷔한 경우는 희귀한 경우[4] 사이토 유키가 16년 뒤 커버해서 또 한 번 히트, 이때는 이노우에 요스이가 다시 편곡을 하는데 상당히 세련되게 편곡했다.[5] 이즈미야 시게루는 의견차이로 1977년 퇴사. 현재는 도산으로 없다.[6] 원작은 후지코 후지오 Ⓐ가 카시와바라 효조의 소설 '먼 길'을 만화화한 작품. 주제가는 후지코 후지오 Ⓐ가 이노우에 요스이에게 직접 의뢰를 했다고 한다.[7] 대표적으로, AKB48의 멤버 나카니시 치요리가 HKT48 시절부터 자주 써먹던 개인기가 이노우에 요스이의 모노마네였다. 그리고, 게닌 못지않은 수많은 모노마네 개인기를 소유하고 있는 탤런트인 고롯케가 이 분의 성대모사로 더 유명하다.[8] 사이토 유키(배우)가 커버해 13번째 싱글로 발매, 애니메이션 그 남자! 그 여자!의 엔딩곡으로 사용되어 주연성우 에노모토 아츠코,와 스즈키 치히로가 불렀다.[9] 나카모리 아키나의 飾りじゃないのよ涙は, 안전지대의 사랑의 예감, 와인 레드의 마음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