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황

 

'''조선군 훈련대 간부'''[1]
제1대대장
이두황
제2대대장
우범선
제3대대장
이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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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斗璜
1858년 1월 11일 ~ 1916년 3월 9일
을미사변의 주동자 중 하나이자 '''친일파'''.
조선, 대한제국의 무신으로 일제강점기의 관료이다.
1894년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장위영(將衛營) 대관으로서 진압에 참여하였으며 김홍집 친일 내각에도 참여했다. 1895년에는 조선군 훈련대 제1대대장으로서 을미사변에 가담하였다. 이후 일본으로 망명했는데 동료였던 우범선고영근에게 살해당했으나, 이두황은 끝까지 살아남아 1907년 순종 즉위 때 귀국하였고, 명성황후 시해에 대해 사면받았다.
이토 히로부미의 총애를 받았으며, 전라북도 관찰사로 있으면서 정미의병을 제압하는 남한 대토벌 작전을 주도하는 등 죽을 때까지 친일 행적을 굉장히 많이 저질렀다. 경술국치 이후에도 계속하여 전북도장관을 지내다가 1916년 58세의 나이로 죽었다. 독립운동가 출신의 경찰공무원이었던 차일혁이 1951년에 이두황을 부관참시하고자 그의 묘를 파헤쳤으나, 일본식으로 화장해 뼛가루가 든 항아리만 있었기에 뼛가루를 내던져버리고 항아리는 깨부쉈다고 한다.

[1] 대한제국으로 개칭되기 전에 없어졌기에 정확히는 대한제국군이 아니다. 후에 대한제국군 친위대로 개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