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기(학원인)
1. 개요
전 국어교사, 교육 전문가(現 유웨이중앙교육 상무이사).
1961년 생으로 씨름선수 이만기보다는 2살 연상이다.
1986년 문일여자고등학교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하였다. 1996년부터 교사를 그만둔 2002년까지 EBS에서 국어 강의를 맡아 왔으며 수능 초창기 시절을 대표하는 강사로 활동했다. # 2002학년도가 끝나고 교직을 그만두고 손주은의 추천으로 메가스터디로 이적[1] 하여 국어/논술 강의를 하였으며, 2005년에 유웨이에듀[2] 로 이적했다. 2010년을 전후로 강사로는 완전히 은퇴한 것으로 보이며 지금은 입시 전문가로 지상파 뉴스 인터뷰에 자주 등장하며 활동하고 있다.
이석록과 비슷한 이력이 많다.[3]
2. 생애
2.1. 문일여고 교사 재직 시절
1994년 기존 대입과는 완전히 경향이 다른 수능이 처음 도입되면서 학교 교사와 학원 강사들이 적응하지 못하고 대혼란을 겪고 있었다. 국어 과목에서는 학력고사 시절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던 서한샘이 정치에 입문하느라 교육 현장을 떠났고, 서한샘을 잇던 2타 유두선이 EBS에서 국어 강의를 맡으며 혼란스럽던 초창기 수능 국어 영역에서 제대로 중심을 잡아주는 강의를 하고 있었다. 때마침 당시 정부는 사교육을 억제하고 공교육을 정상화시킨다는 명목으로 EBS를 대폭 지원하기 시작했는데, 사교육을 억제한다는 명목으로 기존의 학원 강사 출신의 명강사들을 전부 자르고 젊은 학교 선생들로 강사진을 완전히 물갈이했다. 그리하여 1996년 3월 개학과 동시에 유두선 등 학원계에서 날리던 명강사들이 EBS에서 완전히 퇴출되었고 현직 학교 교사 출신으로 강사들이 전면 교체되었다. 그리하여 1996년 3월 EBS의 전면 개편 때 등장한 학교 교사 출신 EBS 강사진으로 등장한 인물이 이만기였다. 이근철, 박승동도 이때 EBS에 데뷔했다. 이만기는 당시 별생각 없이 지원했으나 덜컥 합격했다고 한다.
인강이 없던 당시에 유일한 방송 강의 매체인 EBS의 대표 국어 선생님으로 이만기는 전국적으로 어머어마한 인지도를 쌓아갔다. 당시 학원계의 1타 강사들이었던 유두선, 추경문 등이 외모에서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었지만 당시 훤칠한 키의 중저음의 매력적인 보이스를 가지고 있었던 이만기는 신세대 학생들에게 비주얼적인 측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4]
인강이 없던 당시에 유일한 방송 강의 매체인 EBS의 대표 국어 선생님으로 이만기는 전국적으로 어머어마한 인지도를 쌓아갔다. 당시 학원계의 1타 강사들이었던 유두선, 추경문 등이 외모에서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었지만 당시 훤칠한 키의 중저음의 매력적인 보이스를 가지고 있었던 이만기는 신세대 학생들에게 비주얼적인 측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4]
2.2. 학원가 진출, 국어강사 생활
EBS 국어 영역 1세대 수능 강사가 되면서 쌓게 된 전국적 인지도를 바탕으로 2002년 수능이 끝나고 메가스터디로 영입되었다. 2004학년도 수능 때는 수능 언어영역 문제 유출 사건으로 경찰에 조사를 받기는 했지만 조사 결과 유출이 아닌 본인의 적중인 것으로 밝혀졌다.[5] 지문 여러 개를 적중시켰다고 한다. 이만기는 이런 식으로 적중을 많이 시키긴 했다.[6] 하여튼 이 사건은 그의 유명세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강의는 평이 갈렸지만 그의 컨텐츠는 유명하기도 하였다.
메가스터디 입성 3년 만에 2006년 유웨이에듀로 이적하였다. 유웨이 중앙학력평가연구소의 모의고사 문제를 교재에 활용하기 좋을거라고. 당시 메가스터디에서 이만기가 이적하려 하자 대성학원의 이성권, 윤석준, 서울과학고 교사이자 EBS 강사인 오찬세를 영입하였을 정도.
그러나 위에서 언급했듯 적중의 성격도 그렇고, 강의가 못하는 사람을 잘 하게 만드는 강의는 아니라는 평은 있었다. 스타일이 전형적인 학교 스타일이라... 그래서인지 이후에는 위축되기도 하였다. 그 사이 유웨이에듀는 엑스터디로 바뀌고 나중에는 이근갑에게 팔려 위너스터디가 되는 등 부침을 겪기도 했다.
잠시 유웨이에듀 시절 EBS국어듣기 강의와 강남구청 인터넷 수능방송에도 나오기도 했다.
2.3. 현재
2013년부터는 국어강의는 하지 않고 입시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각 학교를 다니며 설명회도 자주 하며, 유웨이 학력평가연구소 소장 및 상무를 지내고 있다.
3. 기타
[1] 이 과정에서 '''공교육의 표상이 돈 때문에 학원 강사가 되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2] 원서접수 대행기관 유웨이 자회사 중앙학력평가연구소라는 사설모의고사 출제 기관에서 만든 인강사이트인데, 이후 엑스터디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가 이근갑에게 인수되어 위너스터디로 바뀌었다. 중앙학력평가연구소는 사설모의고사 출제를 중단함에 따라 지금은 없어졌다[3] EBS에서 같이 나오기도 했고 메가스터디에서도 한솥밥을 먹기도 했다[4] 그러나 이때 새로 투입된 교사 출신 강사들이 전반적으로 저조한 실력과 강의력을 보이기는 했다는 평도 있다. 당시 EBS는 지금에 비해 강사나 강좌가 매우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학생 입장에서는 거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당시에는 인터넷 방송이란게 없었고, 오로지 EBS TV 단 한개의 채널에서 초중고 전과목을 방송했었다고 한다. 당시 EBS 대표 강사진 중 공부를 좀 했던 학생들 입장에서 특히 이만기에 대한 평가는 당시에 별로 좋지 않은 편이었는데, 서한샘이나 유두선 같은 당시 명강사들을 차치하고도 일반적인 학원 강사나 학교 선생님들에 비해서도 미숙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당시 박승동은 그래도 인정받았으나 본인과 이근철은... 그는 EBS에서 2년 정도 경력이 쌓이고 나서는 그래도 실력이 많이 늘고 눈에 띄는 실수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강의는 그렇게 와닿지는 않는 편이었고, 오늘날 관점에서 볼때 우당탕, 우격다짐식의 설명도 여전히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강이 없던 당시에 유일한 방송 강의 매체인 EBS의 버프를 받아 이만기는 전국적으로 어머어마한 인지도를 쌓아갔다는 평이 있다.[5] 다만 이 사건 이후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인강 저격이 시작되었다고 한다[6] 다만 현재의 관점에서는 언어영역에서 이런 식의 적중이 도움되는지는 의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