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두케
콜롬비아의 정치인이자 현직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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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타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 이반 두케 에스코바르는 한때 자유당 소속으로 안티오키아 주지사 및 자원에너지부 장관 등을 지낸 유력 정치인이었다. 출생 배경만으로도 두케 대통령은 상류층 출신에 속했으며, 후에 미국에서 유학하기까지 했으니[1] , 이 정도면 콜롬비아에서는 단순히 인정받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왕대접을 받는다고 해도 무방한 수준이다.
1999년 중남미개발은행에서 컨설턴트로 일하였으며 2001년부터 2013년까지 미주개발은행에서 일했다. 이 시절 후반기 쯤에는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의 조언자로 일했는데, 부친이 자유당 출신이다보니 두케 본인 또한 나름 진보적인 성향이 있었지만,[2] 강경우파 성향의 우리베 곁에서 일하면서 본인 또한 급격하게 우경화되었다.[3] 다만 은행에서 일한 경력만으로도 충분히 우경화될 만도 했다.
이후 우리베 대통령이 퇴임하고 민주중도당을 창당하자 두케 대통령은 여기에 합류했으며, 2014년 민주중도당 소속으로 상원의원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이 시절 각종 족적을 남겼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산후휴가법 개정. 기존 최대 14주만 가능했던 것을 최대 18주로 연장했으며, 이러한 두케 대통령의 활약은 한마디로 갑툭튀한 두케 대통령을 단숨에 대권 주자로 끌어올리는데 크게 일조했다.
2017년 대선을 약 1년 앞두고 출마를 선언했으며, 이에 따라 민주중도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한때 콜롬비아의 보수우파를 대표하던 보수당의 마르타 루시아 라미레스 후보[4] 등과 함께 범보수진영 경선에 진입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라미레스를 큰 표차로 누르고 범보수진영의 실질적인 단일후보로 선출되었다. 이 당시 라미레스 후보와 앙금이 붙기도 했고, 라미레스 또한 이번에는 정권을 차출해야 하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었는지 경선이 끝나고 후유증이 가시지 않는 듯 싶었지만, 두케 대통령은 이렇게 낙심한 라미레스를 본인의 러닝메이트로 지명해 곧바로 경선 갈등을 해결했다.
하지만 후안 마누엘 산토스 정권의 지지율이 좋지 않았음에도, 여당인 국민통합사회당에서 밀어준 무소속[5] 헤르만 바르가스 예라스 후보가 급진좌파 성향의 무소속[6] 후보인 구스타보 페트로와 양자구도를 형성하면서, 처음에는 가망이 없는 듯 싶었다. 그러나 산토스 정권에 대한 심판을 내세웠고, 동시에 산토스 대통령의 업적으로 남은 FARC와의 평화 협정을 파기하겠다고 선언함에 따라, 이를 바탕으로 보수층을 빠르게 결집시켰으며, 동시에 바르가스의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페트로와 새로운 양자구도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페트로와 함께 결선에 진출하게 되었다.
그러나 두케의 강경우파적 성향은 범진보(내지 범중도) 진영의 비토를 크게 샀으며, 안그래도 콜롬비아를 나름 안정시킨 평화협정을 파기하겠다고 선언한 것만으로도 전국을 충공깽에 빠뜨렸다. 한때 두케의 아버지가 일했다던 자유당의 움베르토 델 라 카예 후보라던가, 녹색동맹 출신으로 대표적인 중도좌파 후보인 세르히오 파하르도 후보 또한 평화협정을 지지했기에, 두케가 결선에 진출하더라도 각계의 비토를 사면서 결국에는 낙선할 것이라는 전망도 많았다. 하지만 상대편의 페트로가 두케와 정반대 위치에 있는 강경좌파였던지라 중도파들로서는 "그 놈이 그 놈"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두드러졌으며, 더더욱이나 이러한 성향으로 반군 활동까지 한 경력이 재조명되면서, "페트로=FARC"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그리고 콜롬비아는 인접한 베네수엘라와 에콰도르와는 달리 보수우파 성향이 강한 나라다. 특히 FARC 덕에 더욱 더 우경화한 것은 덤. 거기다가 바로 옆나라인 베네수엘라가 강경좌파 정권 하에서 나라가 망했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는 게[7] 바로 콜롬비아고, 실제로 두케 또한 페트로를 베네수엘라 정권과 연관 짓는 전략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렇게 되자 정작 평화협정을 지지하며 두케를 비토했던 자유당이 두케 지지를 선언했으며, 3위로 캐스팅보트를 쥐게 된 파하르도가 유권자들에게 "알아서 투표하라"며 말을 얼버무리는 등, 선거 구도가 두케 위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를 노린 두케는 살짝 좌클릭하면서, 평화협정을 파기를 취소하는 대신 수정으로 변경해, 일단 유지하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53.98%로 41.81%를 기록한 페트로를 생각보다 큰 표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8]
2018년 8월 7일 정식으로 취임했다. 하지만 취임 후로는 평가가 썩 좋지 않다. 취임 극초기에만 지지율이 50%대를 찍었을뿐 이후로는 지지율이 추락해버렸고, 취임 100일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이 27~33%대를 기록하고, 비지지율이 지지율의 약 2배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레임덕 상태라는 평이 나와도 무방할 정도의 수준이 되어버렸다. 가장 결정적인 요인으로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겠다면서 부가가치세를 18%에서 21%대로 올릴 계획을 내놓은것인데 정작 고소득자에 대한 세금은 올리지 않으면서 괜히 서민물가가 오르는거 아니냐는 우려가 퍼지면서 서민층들과 중산층들의 반감을 사서 지지율을 왕창 깍아먹었으며 그 와중에 교육예산도 동결해버려서 대학생들이 예산을 올려달라면서 시위에 참여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이전 후안 산토스 정권때와 마찬가지로 FARC가 철수한 지역에서 친정부 민병대와 상당수 반군들이 마약을 놓고 싸움질을 벌이는 일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데다가 사회 인권 운동가들이 살해당하는 상황에서도 별로 손을 쓰지 못하는것은 마찬가지이기도 하고, FARC와의 협정을 별 대안없이 뒤엎을려는 점도[9] 마이너스 평을 듣고 있다. 일단 대학예산은 정부가 반쯤 굴복하는 식으로 겨우 마무리 되었지만, 학생운동을 강경진압하는 모습을 보여왔기에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베의 이미지도 같이 추락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쓴맛이 될듯.
다만 이후로는 베네수엘라 정부와의 대립 및 게릴라의 테러 등 정치적인 호재가 잇따르면서 지지율이 다시금 회복세를 보여서 40%대 초까지 회복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통령 재임 초기임을 감안하면 지지율이 썩 높은 편은 아니다. 그리고 베네수엘라의 정치위기가 잠시 주춤한 국면에 들어가면서 원주민들과의 갈등으로 고속도로가 봉쇄되는 등의 일이 장기화되면서 다시금 지지율이 떨어졌다. 한달씩이나 고속도로가 막히는 상황인데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다가 지지율 하락압력에 겨우 합의를 봤지만 삐그덕거리고 있는 형국이고 평화특별재판소의 권한을 축소하는 법안을 제출했다가 하원에서 110:44로 압도적으로 부결나면서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다시 입었다.
외교적으로는 당장 베네수엘라 난민로부터 난제가 있으며, 마두로 대통령와 대립하기도 했다. 베네수엘라 정치 위기 틈타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였고, 정식 의전까지 가지는 등 어느 정도 영항력을 가지는 모양이다. 마두로에 대해 전범과 같다는 발언을 하였다.#
게다가 콜롬비아에서 태어난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의 자녀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한다고 발표했다.# 이것때문에 인권단체로부터 반이민 물결 속에서 높은 평가를 얻었다.
그러나 이후로 경기침체와 은사인 우리베에 대한 유죄판결로 다시금 지지율이 하락하였고, 2019년 지방선거에서 민주중도당이 대도시 지역에서 참패하는 결과를 보였다. 또한 미투항 반군들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사살하는 병크까지 발생했다. 결국 이러한 것에 더해 노동개혁과 연금개혁을 하여 연금지급시기를 늘리고 최저임금 지급시점을 늘리겠다는 방안까지 나오면서 반정부 시위가 일게 되었다. 일단 두케는 해당 사안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추진할 계획은 없다고는 하지만 이미 사망자가 발생한 상태가 되었다. 2019년 11월에 불거진 반정부시위에 대해 국민과 대화하겠다고 한다.#
2020년 2월에 콜롬비아의 인권 상황과 관련한 유엔의 보고서 내용을 두고 '주권 간섭'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민주중도당 소속으로 콜롬비아인들 사이에서 "콜롬비아의 마크롱"이라고 불리지만, 두케 본인과 민주중도당 둘 다 이와는 달리 중도주의가 전혀 아니며, 실제로는 강경우파로 분류된다.
프랑스의 정치인으로 일어나라 프랑스여의 대표인 니콜라 뒤퐁애냥과 묘하게 닮았다. 둘 다 강경우파로 성향도 나름 비슷하고.
2019년 중남미 순방 중이었던 박원순 서울시장과 만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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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
보고타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 이반 두케 에스코바르는 한때 자유당 소속으로 안티오키아 주지사 및 자원에너지부 장관 등을 지낸 유력 정치인이었다. 출생 배경만으로도 두케 대통령은 상류층 출신에 속했으며, 후에 미국에서 유학하기까지 했으니[1] , 이 정도면 콜롬비아에서는 단순히 인정받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왕대접을 받는다고 해도 무방한 수준이다.
2. 정치 활동
1999년 중남미개발은행에서 컨설턴트로 일하였으며 2001년부터 2013년까지 미주개발은행에서 일했다. 이 시절 후반기 쯤에는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의 조언자로 일했는데, 부친이 자유당 출신이다보니 두케 본인 또한 나름 진보적인 성향이 있었지만,[2] 강경우파 성향의 우리베 곁에서 일하면서 본인 또한 급격하게 우경화되었다.[3] 다만 은행에서 일한 경력만으로도 충분히 우경화될 만도 했다.
이후 우리베 대통령이 퇴임하고 민주중도당을 창당하자 두케 대통령은 여기에 합류했으며, 2014년 민주중도당 소속으로 상원의원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이 시절 각종 족적을 남겼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산후휴가법 개정. 기존 최대 14주만 가능했던 것을 최대 18주로 연장했으며, 이러한 두케 대통령의 활약은 한마디로 갑툭튀한 두케 대통령을 단숨에 대권 주자로 끌어올리는데 크게 일조했다.
3. 2018년 대선
2017년 대선을 약 1년 앞두고 출마를 선언했으며, 이에 따라 민주중도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한때 콜롬비아의 보수우파를 대표하던 보수당의 마르타 루시아 라미레스 후보[4] 등과 함께 범보수진영 경선에 진입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라미레스를 큰 표차로 누르고 범보수진영의 실질적인 단일후보로 선출되었다. 이 당시 라미레스 후보와 앙금이 붙기도 했고, 라미레스 또한 이번에는 정권을 차출해야 하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었는지 경선이 끝나고 후유증이 가시지 않는 듯 싶었지만, 두케 대통령은 이렇게 낙심한 라미레스를 본인의 러닝메이트로 지명해 곧바로 경선 갈등을 해결했다.
하지만 후안 마누엘 산토스 정권의 지지율이 좋지 않았음에도, 여당인 국민통합사회당에서 밀어준 무소속[5] 헤르만 바르가스 예라스 후보가 급진좌파 성향의 무소속[6] 후보인 구스타보 페트로와 양자구도를 형성하면서, 처음에는 가망이 없는 듯 싶었다. 그러나 산토스 정권에 대한 심판을 내세웠고, 동시에 산토스 대통령의 업적으로 남은 FARC와의 평화 협정을 파기하겠다고 선언함에 따라, 이를 바탕으로 보수층을 빠르게 결집시켰으며, 동시에 바르가스의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페트로와 새로운 양자구도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페트로와 함께 결선에 진출하게 되었다.
그러나 두케의 강경우파적 성향은 범진보(내지 범중도) 진영의 비토를 크게 샀으며, 안그래도 콜롬비아를 나름 안정시킨 평화협정을 파기하겠다고 선언한 것만으로도 전국을 충공깽에 빠뜨렸다. 한때 두케의 아버지가 일했다던 자유당의 움베르토 델 라 카예 후보라던가, 녹색동맹 출신으로 대표적인 중도좌파 후보인 세르히오 파하르도 후보 또한 평화협정을 지지했기에, 두케가 결선에 진출하더라도 각계의 비토를 사면서 결국에는 낙선할 것이라는 전망도 많았다. 하지만 상대편의 페트로가 두케와 정반대 위치에 있는 강경좌파였던지라 중도파들로서는 "그 놈이 그 놈"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두드러졌으며, 더더욱이나 이러한 성향으로 반군 활동까지 한 경력이 재조명되면서, "페트로=FARC"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그리고 콜롬비아는 인접한 베네수엘라와 에콰도르와는 달리 보수우파 성향이 강한 나라다. 특히 FARC 덕에 더욱 더 우경화한 것은 덤. 거기다가 바로 옆나라인 베네수엘라가 강경좌파 정권 하에서 나라가 망했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는 게[7] 바로 콜롬비아고, 실제로 두케 또한 페트로를 베네수엘라 정권과 연관 짓는 전략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렇게 되자 정작 평화협정을 지지하며 두케를 비토했던 자유당이 두케 지지를 선언했으며, 3위로 캐스팅보트를 쥐게 된 파하르도가 유권자들에게 "알아서 투표하라"며 말을 얼버무리는 등, 선거 구도가 두케 위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를 노린 두케는 살짝 좌클릭하면서, 평화협정을 파기를 취소하는 대신 수정으로 변경해, 일단 유지하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53.98%로 41.81%를 기록한 페트로를 생각보다 큰 표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8]
4. 대통령
2018년 8월 7일 정식으로 취임했다. 하지만 취임 후로는 평가가 썩 좋지 않다. 취임 극초기에만 지지율이 50%대를 찍었을뿐 이후로는 지지율이 추락해버렸고, 취임 100일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이 27~33%대를 기록하고, 비지지율이 지지율의 약 2배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레임덕 상태라는 평이 나와도 무방할 정도의 수준이 되어버렸다. 가장 결정적인 요인으로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겠다면서 부가가치세를 18%에서 21%대로 올릴 계획을 내놓은것인데 정작 고소득자에 대한 세금은 올리지 않으면서 괜히 서민물가가 오르는거 아니냐는 우려가 퍼지면서 서민층들과 중산층들의 반감을 사서 지지율을 왕창 깍아먹었으며 그 와중에 교육예산도 동결해버려서 대학생들이 예산을 올려달라면서 시위에 참여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이전 후안 산토스 정권때와 마찬가지로 FARC가 철수한 지역에서 친정부 민병대와 상당수 반군들이 마약을 놓고 싸움질을 벌이는 일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데다가 사회 인권 운동가들이 살해당하는 상황에서도 별로 손을 쓰지 못하는것은 마찬가지이기도 하고, FARC와의 협정을 별 대안없이 뒤엎을려는 점도[9] 마이너스 평을 듣고 있다. 일단 대학예산은 정부가 반쯤 굴복하는 식으로 겨우 마무리 되었지만, 학생운동을 강경진압하는 모습을 보여왔기에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베의 이미지도 같이 추락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쓴맛이 될듯.
다만 이후로는 베네수엘라 정부와의 대립 및 게릴라의 테러 등 정치적인 호재가 잇따르면서 지지율이 다시금 회복세를 보여서 40%대 초까지 회복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통령 재임 초기임을 감안하면 지지율이 썩 높은 편은 아니다. 그리고 베네수엘라의 정치위기가 잠시 주춤한 국면에 들어가면서 원주민들과의 갈등으로 고속도로가 봉쇄되는 등의 일이 장기화되면서 다시금 지지율이 떨어졌다. 한달씩이나 고속도로가 막히는 상황인데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다가 지지율 하락압력에 겨우 합의를 봤지만 삐그덕거리고 있는 형국이고 평화특별재판소의 권한을 축소하는 법안을 제출했다가 하원에서 110:44로 압도적으로 부결나면서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다시 입었다.
외교적으로는 당장 베네수엘라 난민로부터 난제가 있으며, 마두로 대통령와 대립하기도 했다. 베네수엘라 정치 위기 틈타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였고, 정식 의전까지 가지는 등 어느 정도 영항력을 가지는 모양이다. 마두로에 대해 전범과 같다는 발언을 하였다.#
게다가 콜롬비아에서 태어난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의 자녀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한다고 발표했다.# 이것때문에 인권단체로부터 반이민 물결 속에서 높은 평가를 얻었다.
그러나 이후로 경기침체와 은사인 우리베에 대한 유죄판결로 다시금 지지율이 하락하였고, 2019년 지방선거에서 민주중도당이 대도시 지역에서 참패하는 결과를 보였다. 또한 미투항 반군들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사살하는 병크까지 발생했다. 결국 이러한 것에 더해 노동개혁과 연금개혁을 하여 연금지급시기를 늘리고 최저임금 지급시점을 늘리겠다는 방안까지 나오면서 반정부 시위가 일게 되었다. 일단 두케는 해당 사안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추진할 계획은 없다고는 하지만 이미 사망자가 발생한 상태가 되었다. 2019년 11월에 불거진 반정부시위에 대해 국민과 대화하겠다고 한다.#
2020년 2월에 콜롬비아의 인권 상황과 관련한 유엔의 보고서 내용을 두고 '주권 간섭'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5. 여담
민주중도당 소속으로 콜롬비아인들 사이에서 "콜롬비아의 마크롱"이라고 불리지만, 두케 본인과 민주중도당 둘 다 이와는 달리 중도주의가 전혀 아니며, 실제로는 강경우파로 분류된다.
프랑스의 정치인으로 일어나라 프랑스여의 대표인 니콜라 뒤퐁애냥과 묘하게 닮았다. 둘 다 강경우파로 성향도 나름 비슷하고.
2019년 중남미 순방 중이었던 박원순 서울시장과 만나기도 했다.#
[1] 이때문에 영어를 프리토킹할 정도로 잘한다. 그래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도 통역을 쓰지않고 했다.#[2] 대한민국에서는 어감 때문에 보수 정당이라고 알기 쉽지만, 콜롬비아의 자유당은 캐나다의 자유당처럼 진보 성향을 띈다.[3] 다만 우리베 또한 자유당 출신이었다.[4] 일전에 보수당 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했지만 1차에서 탈락했다.[5] 산토스 정권 2기 때 급진변혁당 소속으로 부통령을 지냈지만, 차기 대선에 출마하고자 부통령직을 사임함과 동시에 급진변혁당을 탈당했다. 이후 Mejor Vargas Lleras(바르가스 예라스가 최고)라는 정치운동을 조직했지만, 정당은 아니므로 무소속이라 봐야 한다.[6] 진보운동이라는 정치단체를 조직했고 대선 때는 인간적 콜롬비아라는 이름을 내세웠지만, 정당은 아니므로 엄연한 무소속이다.[7] 다만 이건 베네수엘라가 유난히 특이한것이기는 하다. 반대로 볼리비아는 외환보유고를 잘 쌓아놓은 덕택에 남미에서도 아직 1인당 국민소득이 낮기는 하지만 어쨌든 성장률 1위는 유지하고 있고, 에콰도르는 유가폭락하에서도 일단 현상유지는 했고, 말 그대로 외환보유고 관리를 소흘히하다가 벌어진 참사다. [8] 그런데 둘을 더하면 100%에 못 미친다. 이는 콜롬비아가 기권표도 따로 인정하기 때문인데, 기권표가 4.21%가 나왔다. 이 기권표를 제외하고 재환산할 경우, 두케는 56.35%, 페트로는 43.65%가 나오면서 오히려 격차가 더 벌어진다.[9] 까놓고 얘기하자면 FARC가 마약과 내전에서 손을 떼는 것은 좋았지만 사후처리가 엉망으로 진행되어서 불법벌목이 성행하고 갱단들이나 상대 게릴라들이 침투해서 마약업을 확대해나가고 있으며 해당지역에 주거하고 있던 주민들을 살해하는 등의 난장판이 되고있다. 이런상황에서 FARC와의 협상을 뒤엎어봐야 FARC 대원들 상당수가 다시 마약에 손을 댈게 뻔하기 때문에 상황이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질 일은 없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