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도바
1. 스페인의 지역/도시
2. 멕시코의 도시
멕시코 중동부 베라크루스 주에 있는 도시. 멕시코가 멕시코 제1제국으로 독립할 당시 이를 승인하는 코르도바 조약이 체결된 곳이다.
3. 아르헨티나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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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도바 주(Córdoba)는 아르헨티나 북동부의 주로, 산타페 주와 엔트레리오스 주와 더불어 이 주는 소위 중앙 지역이라는 경제ㆍ정치적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면적은 165,321 ㎢로 남한의 1.7배에 달하지만, 인구는 겨우 3,308,876여명로 부산광역시보다도 적다. 이베코 트래커를 생산하는 공장이 존재하고 있다.
3.1. 아르헨티나 코르도바 주의 주도
코르도바 시는 아르헨티나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 다음가는 두번째로 큰 도시다. 동시에 코르도바 주의 주도이며 인구는 약 130만 명이다. 1573년 스페인 정착민에 의해 세워진 도시로서 스페인 남부의 코르도바에서 이름을 따왔다.
코르도바에는 천주교 성당을 위주로 한 스페인 식민 시절의 많은 건축물이 남아있다. 특히 예수회 수사 유적(Manzana Jesuítica)은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산 마르틴 광장 근처의 중심부의 예수회 성당이 유적 중에서 특히 유명한데, 이 성당 내부의 모든 장식물은 금으로 만들어졌다. 성당 옆에는 식민 총독부 건물이 있는데 이 역시 역사적인 유적이다. 고대 로마부터 천년고도인 스페인의 오리지널과 비할바는 아니지만 여기도 신대륙 기준으론 만만찮게 유서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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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구역. 출처 : 위키피디어
코르도바 국립대학은 1622년에 예수회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아르헨티나에서 최초로 설립된 대학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아르헨티나가 다 그렇듯 원주민보다는 백인계가 많다. 인구 중 이탈리아계와 스페인계가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한다. 코르도바는 유럽으로부터 이민을 무지하게 받아들였던 도시로서, 이민이 가장 많았던 1910년대에는 주민의 43%가 새로 이민 온 사람이었을 정도였다.
온난 습윤 기후를 보이며 쾨펜의 기후 구분으로는 Cfa에 해당한다. 겨울이 별로 춥지 않아서 6,7월의 최저 기온 평균이 6°C 이고, 그에 비해 여름도 아주 덥지는 않아서 한여름인 1월의 최고 기온 평균이 31 °C. 참고로 남반구다 보니 우리나라와 계절이 반대다.
1955년의 해방 혁명으로 이어진 항명운동의 근원지였는데, 그 혁명으로 인해 당시 집권 중이던 후안 페론이 축출되었다. 그리고 1969년의 격렬한 노동자 및 학생 시위의 무대이기도 하다.
4. 콜롬비아의 주
Córdoba.
콜롬비아의 주. 주도는 몬테리아 시이다. 인구는 약 166만명.
5. 스페인의 장군 곤살로 데 코르도바
두 명 있다.
- 곤살로 페르난데스 데 코르도바 이 엔리케스 데 아길라르(1453~1515)
- 곤살로 안드레스 도밍고 페르난데스 데 코르도바(Gonzalo Andrés Domingo Fernández de Córdoba, 1585~1635)
6. 니카라과의 화폐
7. 은하영웅전설의 군함
자유행성동맹군 양 웬리 함대의 순양함.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 당시 전함 히스파니올라와 함께 16척으로 구성된 정찰대의 일원으로서 이제르론 회랑 내부를 순찰하던 도중 나타난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를 먼저 발견하였다. 당시 순양함 코르도바의 오퍼레이터는 커피마시는 것밖에 할 일이 없어 속이 거북해질 때까지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나타난 가이에스부르크의 충격으로 모조리 잊어버렸다.
순찰대는 일시에 이제르론 요새로 후퇴하였으며, 이 사건 이후 코르도바도 히스파니올라도 등장하지 않는다.
8. 아파치 코르도바
아파치 코르도바(Apache Cordova)는 아파치 사에서 만든 Node.js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폰 어플 개발용 프레임워크다. 어도비사의 폰갭(PhoneGap)과 더불어 스마트폰용 하이브리드 어플 개발용 프레임워크 중에서는 상당히 자주 사용되며, 폰갭 또한 아파치 코르도바를 베이스로 만들어졌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