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1. 개요
'''신학'''(神學, theology)은 신에 대한 설명과 신과 인간과의 관계를 해명하는 학문으로 정의할 수 있다[1] .
좁게는 한 종교의 교의를 체계화시키며 신 그리고 신과 인간에 대한 본질을 탐구하고, 신앙을 체계적, 이론적으로 연구하여 교리에 대한 지적, 실천적, 규범적인 기반을 닦는 것을 이르며, 넓게는 종교학과 마찬가지로 종교에 대한 모든 부문을 아우른다. 현대 학계에선 '신성에 대한 비판적 연구 전반'으로 신학을 정의내리고 있기에 신학의 기능이 반드시 특정 종교를 위한 것만은 아니게 되었다. 기독교의 매머드급 영향력으로 인해 흔히 신학이라고 하면 기독교에서만의 신학을 떠올리지만, 엄밀한 의미에서의 신학은 특정 종교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각종 신화의 신들에 관련된 부분 역시 넓은 의미에서의 신학으로 볼 수 있다.
2. 상세
신학은 그 특성상 기본적으로 '''신''', 그리고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신앙'''에 대한 전제를 깔고 진행될 수밖에 없는데, 신과 신앙에 대한 정의가 각 종교마다 다른 만큼 신학이라는 학문 분야는 어떠한 종교든지 각자의 종교의 교의, 영성, 의식 등을 연구하면 성립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앞서 정의한 신학의 광의의 의미이다. 협의로서의 신학은 특정한 각각의 경전을 분석하고 이해하고 해석하는 학문이라고 볼 수 있겠다.
신앙인들이 다루는 (흔히들 알고 있는) 신학은 신에 대한 사유 또한 전제로 하고 있다. 현대 신학은 신앙인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다루는 신학과 달리 신앙을 반드시 전제하진 않지만 생각하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신학은 철학과 동떨어져 생각할 수 없고, 실제로 신학의 가장 큰 분야인 기독교 신학의 상당 부분은 고대 철학의 사조를 이어받거나 철학에서 사용하는 각종 개념 및 용어를 차용해가며 체계화되었다. 토마스 아퀴나스를 대표로 하는 스콜라 철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받은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때문에 철학 없는 신학은 생각할 수 없으며, 이에 관련된 유명한 말이 바로 '철학은 신학의 시녀다'라는 말이다.
3. 종교학과의 차이
연구 대상이 같기 때문에 신학은 종교학과 많이 혼동되곤 한다. 하지만 종교학과 신학은 학문의 정의가 다르다. 종교학은 특정 종교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종교 현상과 그 총체로서 원시종교에서부터 세계 종교, 현대 신흥 종교까지 '종교' 그 자체를 연구한다. 즉, 특정 종교의 교의와 영성, 역사를 다루거나 특정 종교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성직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신학과는 달리 전반적인 종교를 연구한다. 그러나 신학도 신성에 대한 연구부터 시작해서 (해당)종교 전체를 다루는 것으로 커졌기에 영역이 자주 겹치고 해당 종교의 관점으로 다른 종교를 다루기도 한다. 그렇기에 차이를 간결하게 논하기 어렵다.
4. 신학을 학문으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논란
신학의 문제는 입증할 수도 반증할 수도 없는 것을 당위의 차원에서 다루려고 한다는 데서 시작된다. 점성술이 과거에는 학문으로서 다루어졌지만 엄연히 증명의 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부분을 제대로 보강하지 못함으로써 학문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방대한 관측 결과만이 천문학의 자료로서 인정받았듯이, 입증이나 반증을 요하는 신의 존재여부를, 반드시 그렇다고 가정해야 하는 당위의 개념으로서 설명한다는 사실은 신학의 학문적 가치를 의심케 한다.
또한 반론 문단의 플라톤의 예시는 신학의 존재가치를 정당화하기에 적당하지 않은 면이 있다. 물론 플라톤의 철학이 서양철학의 근본을 닦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대의 서양철학은 중세 ~ 현대에 걸친 수백년의 기간 동안 수많은 주장과 반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복잡한 반론 및 새로운 논의들을 통하여 끊임없이 발전해왔으며, 수학 및 과학을 세계를 보는 관점으로서 깔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고도화/세분화된 현대 철학에서 고대 그리스의 철학이 가지는 위상은 '철학 입문자를 위한 개론 지식' 또는 분석철학 또는 비판으로서의 철학이 아닌 분야에서는 사료(史料) 정도의 취급일 것이다. 다시 말해, 그것이 모든 논의의 바탕이 됐던 건 사실이나 더 이상 철학을 대표할 위치에 있지는 못하다. 무엇보다도 서양 철학의 논의들은 신학과 달리 현대 자연과학의 이론과 전혀 배치되지 않는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신학은 특수형이상학에 해당하는데 특수형이상학문단만 봐도 특수형이상학은 학문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칸트가 인식론을 정립하며 인간의 인식밖의 영역을 탐구하는건 종교적 삶을 위해서 필요할지는 모르나 학문으로서의 역할은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특수형이상학에 대한 사형선고를 내렸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한편, '철학이 학문이므로 신학 또한 학문이다.'는 식으로 가면 톨킨학, 창조설, 혈액형성격설이 학문이라는 주장도 반박할 수 없게 된다. 특히 성서비평학에서는 성경을 문학작품으로서 바라본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그럼 그것은 신학이 아니라 문예학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게다가 철학 및 다른 여러 학문들과의 연관성이 짙다는 사실이 신학의 학문적 지위를 공고히 하지는 않는다. J. R. R. 톨킨의 문학작품에 대해 언어학+사회학+문화학적 접근을 하는 톨키니스트들도 톨킨이라는 틀 안에서 여러 학문을 연관시키고 이를 톨킨에 접목시킨다.
또한 비종교인 신학자나 종교인이면서 타종교의 신학을 연구하는 신학자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톨킨 덕후가 아닌 타 덕후나 일반인이라도 반지의제왕과 실마릴리온, 호빗#s-2등의 문헌이나 신다린어, 퀘냐어, 크후즈둘어 등의 언어에 흥미를 느껴서 연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덕후던 아니던''' 톨킨 연구자들은 톨킨의 세계관이 창작물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지한다. 반면 비종교인 신학자나 종교인이면서 타종교의 신학을 연구하는 신학자들은 외부인의 입장에서 반쪽짜리 신학을 접할 수밖에 없다.
신학이 사회와 학계에서 높은 위상을 갖고 있는 것과 신학이 학문인지 아닌지는 별개다. 신학의 위상은 단지 종교집단이 가지는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나타낼 뿐이다. 신학은 전근대 군주들에게 정통성을 부여하는 이데올로기로 발전되어 왔으며, 현대에도 종교나 종파라는 이익집단의 내부 결속을 다지는 수단으로만 기능할 뿐이다.
이러한 도그마가 과연 학문의 영역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신학과 과학의 관계를 보면 극명해지는데, 빅뱅이론을 비롯한 우주 탄생에 대해 연구하는 물리학과 진화론을 비롯한 인간을 비롯한 여러 종의 생물종의 기원과 진화를 다루는 생물학에 대해서, 신학은 그러한 이론들을 배척하다가 결국 받아들여 자기네 나름대로 끼워맞추는 모습을 보여준다. "우주는 빅뱅으로 시작되었지만 빅뱅은 신에 의한 것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에서 진화하였지만 어느 순간에 신이 영혼을 불어넣어 현재의 인간을 있게 했을 것이다."와 같은 억지 주장들은 다른 학문을 어떻게 기존 신학체계에 맞게 해석하여 신앙을 유지하고 그것에 대한 변명을 할 수 있을가 고민하는 모습에 불과하지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적인 자세와는 거리가 멀다.
'신학과 관계있는 학문들을 접목시켜 신학적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도 결국 그 각각의 분과 학문에서 여러 종교 및 신앙체계를 주제로 연구를 맡고 있기 때문에 점차 영역을 빼앗기는 중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학문의 체계가 고도로 분화된 오늘날과 같은 사회상에서 신이라는 증명되지 않은 존재의 실존을 전제로 하는 일개 종교의 교리연구를 학문으로 간주해야 하냐는 것이 비판 문단의 주된 논점이다. 이에 대한 옹호 측의 주된 반론은 「신의 존재유무 같은 형이상학적 부분은 일부에 불과하고 오히려 비율로 따지면 종교라는 문화현상에 대한 연구가 더 많다」는 것인데, 비판 문단 전반에 걸쳐 강조해왔듯 그쯤 되면 이미 신학이 아니라 종교학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종교학은 이름에 종교가 들어갔다고 해서 신 같은 영적인 존재를 찾는 분야가 아니라, '''신이 있다고 믿는 인간 및 그 집단들의 행태를 연구하는 사회과학'''이다. 과학은 자연과학이라는 협의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학문 그 자체와 동일시되기도 한다. 인문학은 인문과학이라 지칭될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서구권에도 Human Science라는 개념이 있다. 오히려 문사철로 대표되는 인문학의 확고한 구분이 있는 한국과 달리, 서구권은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구분이 희미한 편이다. 사실 철학은 논리학 그 자체라고 볼 수 있으며, 역사학은 시작부터 끝까지 사료와 유물놀음인데다가, 탄소연대측정까지 동원하는 등 사회과학이라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2] 문예학 또한 문예창작학과 혼동되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그 실상은 인문학보다 사회과학 쪽에 가깝다.
자꾸 학문의 분류를 늘어놓는 이유는 동문서답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학문이란 것이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인정하는''' 행위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3] 그런 점에서 철학은 학문이라기보다는 수학이나 통계학과 더불어서 메타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법철학, 과학철학등 많은 분야에서 철학을 받아들이는 것은 이것 때문이다. 또한 현대의 철학자들이 고대 그리스 시대의 성과를 버리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설명 할 수 있다. 현대의 철학자들은 고대의 성과를 논리적 도구로서만 바라볼 뿐 그 시대의 우주론이나 원소론까지 긍정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자연과학의 영역이지 철학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4.1. 반론
The study of the nature of God and religious belief.
하느님의 본성과 종교적 믿음에 관한 '''학문'''[4]
옥스포드 영어사전, Theology
위에서 볼 수 있듯이 신학을 제대로 된 학문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후술하겠지만 이들은 학문을 하는데 있어서 대부분 도그마(어떤 명제를 진리로 여기고 비판하지 않는 것 ex) 교리)적 태도를 배격하는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원자로 이루어진 것만 학문적 논의가 가능하다는 실존주의에서 이런 태도를 쉽게 볼 수 있는데, 이들의 오류는 학문적 영역에서 도그마적 태도가 필요한 신학적, 종교적 영역이 학문이 아니라는 전제를 깔고 신학에게 자신들이 생각하는 원자론과 실존주의를 요구하는 데에 있다. 나무위키에선 과학주의 문서에서 이들의 과학 제왕적 태도를 비판한다.그리스도교의 진리에 의거한 교리나 신앙윤리를 조직적으로 연구하는 '''학문'''.
두산백과, 그리스도교 신학
일단 신학은 그 이름 때문에 '신'에 대한 것을 다루는 학문, 즉 신의 존재유무나 기타 형이상학적인 내용만을 다루는 내용이라 오해되기 쉬우나 이름만 그럴뿐 전반적으로 연구하는 분야는 종교학과 비슷하다. 단지 종교학이 '비교종교학'에 가까우며 여러 종교를 다룬다면, 신학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신'이라는 존재를 전제로 한 유신론 관련 종교들(우리에게 가장 익숙한건 기독교)을 주로 다루는 것이다. 기독교를 예로 들어보면 신학 안에는 신의 존재유무 같은 형이상학적 부분은 일부에 불과하고 오히려 비율로 따지면 적은 편이다. 유신론 항목등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이미 수천년간 온갖 인물들이 지겹게 해온 얘기들을 반복해봤자 결론이 날리가 없으며, 이런 형이상학적인 것들은 지적유희 정도라면 모를까 '연구'로 삼기에는 부적절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5]
신학을 주로 구성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성서학, 인문학 같은 분야이다. 해당 종교의 경전 및 관련 문구를 학술적으로 연구하며 해당 종교의 인문과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 분야 또한 대중들의 많은 오해를 받고 있는데 '''신학자들은 성경의 내용을 검증도 안하고 무조건 맞다고 생각할거다''' 등의 편견이 대표적이다. 성서학은 이미 근현대의 역사학적 방법론을 비롯한 각종 검증된 방법론들이 사용되고 있는지 오래이며, 대중들이 흔히 생각하는 '성경에 써있으니까 그게 곧 사실이다. 연구 끝' 같은 허접한 주장은 제대로 된 신학계에서는 발도 붙일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성서학 외에도 '기독교의 역사'를 공부하는 등, 기독교 쪽의 신학은 신학/기독교 항목에도 나와있듯이 이름만 신학일뿐 이미 '기독교학'으로 봐도 무방하다. '''신의 존재유무를 당위의 차원에서 다루는게 신학의 전부가 아닌 것이다.'''' 즉, '''신학은 단순히 신론만 다루는 학문이 절대 아니다'''. 위의 내용에선 이에 대해 종교학의 하위분야라고 고백하는 자승자박이라 주장하지만 상술했듯 이는 학문으로서의 종교학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거나 신학(Theology)을 신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좁은 (중세적인) 의미로만 이해하고 쓴 반론이다. 즉 현대 학계에서 신학(Theology)이라는 용어는 해당 종교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적 노력 전반을 의미하고, 그 방법론과 접근면에서 종교학과 구분하기 위해 쓰는 경향이 강하다. (흔히 신학을 지칭하는)기독교학, 불교학, 이슬람학 등은 신학(Theology)의 하위 분과라 할 수 있는 것. 딱히 신학이 아니라 종교학이라 지칭해도 되지만 그러면 탈종교적인 종교학과 학명이 겹치게 되니까 편의상 구분하는 것. 게다가 설령 하위분과가 맞다고 해도, 그게 문제일까? 물리학이 과학의 하위분과라 해서 물리학에 무슨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닌 것과 같다. 교육 행정에서도 이런 특징이 두드러지는데, 나무위키 등 세간에서는 종교학과와 신학과(신학과/가톨릭, 신학과/개신교, 불교학과, 기타 종교 계열 학과)를 구분하지만 대한민국 교육부, 대학알리미에서는 '''구분하지 않는다.''' 사실 아래 내용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종교학과 신학은 다루는 영역이나 학문성에서 그리 큰 차이가 없다.
또한 대중들의 또 한가지 큰 착각 중에 하나는 '신학자 = 골수 종교인' 정도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물론 신학자 중에 특정 종교인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업계의 접근성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 신학의 경우 과학자나 수학자가 뜬금없이 기독교를 연구할 확률보다는, 평소에 기독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오던 종교인이 흥미를 가지고 연구에 매진한 끝에 신학자가 될 확률이 훨씬 높으니까 말이다. 허나 이런 케이스가 많다고는 하나 신학자가 모두 골수 종교인은 아니며, 설령 종교인이라 할지라도 위의 성서학 부분에서 말한대로 개인적인 신앙을 연구 결과에 억지로 접목시키지는 않는다. 좋은 예로 국내에도 여러권의 서적이 번역되어 소개된 Bart D. Ehrman은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종교학과 교수로서 매우 유명한 성서학자이자 신학자이지만, '''스스로를 불가지론자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구약의 경우 특성상 고고학이나 유대교와 연관될수밖에 없는데, 이쪽에도 기독교인이나 특정 종교인이 아니면서 성서나 기독교 관련에 관심을 가지고 신학자가 된 학자들도 많다. 윗 문단의 반론에선 신학을 신에 대한 신앙이 전제된 학문이라며 줄곧 반박하고 있는데, 엇나간 반론이다. 이와 비슷한 이유로 위 항목에 최근 추가된 '신학은 이데올로기이며, 종교나 종파라는 이익집단의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한 이론적 토대로서만 기능할 뿐이다.' 같은 주장과 여성학과 비교하는 주장 역시 엇나간 반론이다. 이미 이 항목에서 신학이 성서 연구, 고고학 같은 신앙을 전제하지 않는 학문을 포함하고 이것이 주류라는 것. 신학자 중에 기독교인이 아닌 자들도 많다는 것을 언급했음에도 반론측에선 끝까지 신앙이 전제된 학문이란 지극히 좁은 의미의 신학 정의를 고집한다. 신학이 무조건 왕권 다지기를 위해 썼다,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해서이다 등의 발언 역시 마찬가지.
또한 신학이 학문이면 톨킨학이나 혈액형성격설도 학문이냐는 황당한 질문도 있는데, 이 역시 학문의 특성을 제대로 모르고 단순비교를 한 것으로 보인다. '톨킨학'이라는 이름의 학문은 없지만 톨키니스트들이 존 로널드 루엘 톨킨이 남긴 문서에 대한 문학+언어학+사회학+문화학적 접근을 하는 행위 자체는 '''학계의 연구 대상이다.''' 사회학계에서 연구를 할 수도 있고, 문학계에서 연구를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런 부류의 학문적 범위를 통컬어서 인문학이라 부르곤 한다. 인문학 또한 여러 하위학문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보니 막상 이게 뭐냐고 물으면 딱 잘라 설명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문학을 학문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은 없다. 인문학은 인간이 보고 겪은 실제의 바탕에서 생겨난 사상을 글로 체계화시킨 학문인 것처럼, 신학 또한 인간이 '종교'라는 틀안에서 보고 겪은 실제의 바탕에서 생겨난 사건과 사상을 글로 체계화시킨 학문인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신의 존재유무만 논하고 믿어라! 하고 끝나는게 신학이 아니다.'''
그리고 신학과 과학의 관계에 대해서도 신학이 과학의 이론을 무조건 배척하다가 결국 받아들여서 자기네 나름대로 끼워맞췄다는 내용도 있었는데 이 역시 일방적인 편견에 불과하다. 과학과 종교의 관계 항목에도 나와있듯이, 종교와 과학 그리고 신학과 과학의 관계는 그렇게 단순화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근대의 과학혁명은 중세의 신학자들이 연구하고 정리한 자료로 인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었으며, 종교와 신학은 과학을 억압하고 배척해온 것이 아니라 서로 분리된 관계에 있거나 혹은 더 나아가 협력해왔다는 것이 현대의 많은 과학자들과 과학사학자들이 주장하는 바이다.
그리고 현역 신부나 목사들이 신의 존재를 전제하고 말하는 학문, 곧 좁은 의미의 신학을 거론한다고 하더라도, 신이라는 증명되지 않은 존재를 가지고 계속 딴지를 걸거라면 이전 내용에서 철썩같이 믿고 있던 그 과학에도 비슷한 분야는 존재한다. 바로 다중우주에 대한 것이다. 세계적인 물리학자들을 비롯한 많은 과학자들이 오늘날도 연구를 하고 있고 수많은 갑론을박이 오가는 분야지만, 정말로 이 우주가 여러개로 구성되어 있는지 어떤지는 '''관측이나 실험을 통한 입증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기존의 자료들을 토대로 가설을 세워놓고 추측을 하는 것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다중우주를 연구하는 것을 '학문이 아니다'라고 격하하는 것은 올바른 시각이 아닐 것이다. 또한 현대 신학들은, 역시 현대 철학들과 같은 원리로 '''과학적 영역에 대한 월권은 금하고 있다.''' 종파에 따라서 스펙트럼이 넓기는 하지만 가톨릭, 성공회 등 굵직굵직한 종파들이 적지 않게 이를 분명시하고 있다. 만약 과학적 사실에 모순되는 것들은 학문이 아니라는 레토릭을 용인한다고 한들, 과학과 유사과학을 나누는 것과 같은 원리로, 이러한 레토릭을 피해갈 수 있는 종파들의 신학은 엄연히 학문이라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들 종파의 신학자들도 과학에 대한 월권을 한 역사가 있기는 하지만, 근대에만 하더라도 철학 등에서도 과학에 월권 행위는 있었으므로 신학 비학문설의 정당한 근거는 되지 못한다. 그리고 신학이 과학적 성과에 끼워맞추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는데, 어느 학문이든간에 과학의 성과에 월권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은 21세기의 기본 상식이다. '''성선설/성악설 논쟁하던 철학자들이 진화심리학의 연구 성과를 인정하여 거기에 맞춰 새로운 논의를 쏟아내는게 철학의 바람직한 현상이듯이, 신학 역시도 그러할 뿐이다.'''
또한 학문이라는 것이 과학적 방법론으로 전개되어야만 하는 것도 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기 때문에, 과학적 합리성을 요구하는 것은 매우 해괴한 주장이다. 예를 들면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이 있는데, 철학계 내부에서도 플라톤에 동의하는 자들, 아리스토텔레스식의 이데아론에 동의하는 자들, 이데아 개념을 부정하는 자들 등 많은 이견이 있다. '''하지만 플라톤 철학을 학문이 아니라고 하는 학자는 거의 없으며, 역사적으로 수많은 반론과 비판을 겪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서양 철학의 가장 큰 줄기 중 하나로 대우받는다.'''
또한 한의학 역시 같은 논지에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한의학은 플라톤 철학과 같은 선상에서 이야기하기가 미안할 정도로, 근대 이후 수많은 학자들에게 극딜을 당했으며, 현재도 진행 중이다. "기"/"혈"/"맥" 같은 한의학 분야의 기본이 되는 용어들조차도 정의하기가 애매하며, 한의사들 사이에서도 정확한 개념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모호한 개념에 기초한 이론들은 당연히 입증이나 반증을 시도하기 어렵다. 그런데 한의학은 학문이되 신학은 학문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는 이중잣대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대의 사상가들은 철학과 신학을 개념적으로 구분하지 않았다.''' 다시말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사상처럼[6] 오늘날 너무나 당연하게 학문으로 취급되는 고대의 가르침들도 기본적으로 신의 존재를 상정하고 있다. 대화편의 소크라테스는 다이몬이라는 신적 존재를 우선 상정하고 이야기를 진행하며, 윤회가 있다고 말한다. 더군다나 이러한 주장들은 대화편의 '부가적인 덧붙임' 수준이 결코 아니며, 소크라테스-플라톤 사상의 나머지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 또한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신들을 모독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해명하려고 한다. 또한 로마의 학자들은 자신들의 법이 신으로부터 온 자연법에 의거했다고 믿었으며, 이는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의 「법률론」이나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시절의 「로마법 대전」에서도 명명백백하다.[7]
법학은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인지이며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의 인식이다.
「로마법 대전」, 법학제요 中
마르쿠스: 나는 극히 지혜로운 이들의 생각이 이랬다고 생각하네. 법률이란 인간들의 재능으로 생각해낸 것이 아니며 백성들의 어떤 의결도 아니라는 것이네. 명하고 금하는 예지를 갖고 전 세계를 통치하는 영원한 무엇이라는 것이네. 그래서 현자들은 최초 최후의 법률은 이치에 따라서 만사를 강제하거나 금지하는 신의 지성이라고 말해왔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신들이 인류에게 준 법률은 의당히 칭송을 받아야 하는 것일세. 신들이 인류에게 준 법률이란 명하고 금하기에 적절한, 현자의 이성이자 지성일세.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의 「법률론」, 2.4.8
그런데 '증명도 안되는 신의 존재를 상정하고 있으니 학문이 아니다'라는 논의를 그대로 진행하자면, 다이몬 드립을 쳤는 소크라테스는 학문을 한 것이 아니며, 로마인들의 법학도 학문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결론에 도대체 누가 동의하겠는가? 신학은 학문이 아니라고 말하는 위의 서술에서는, 플라톤은 철학의 대표자가 아니라고 말하는데 이는 논점을 이탈한 주장이다. 플라톤이 오늘날 철학을 대표할 수 있는지 어떤지야 논의의 여지가 차고 넘치지만, 플라톤이 학문을 했다고 말하는 것에 반대 할 사람이 도대체 몇이나 되겠는가? 플라톤이 학문을 하였다는건 명백하다. 물론 소크라테스는 신과 관련된 것들 역시도 "검토 없이 사는 삶은 인간에게 살 가치가 없다(「소크라테스의 변명」, 38a)"라는 그의 신념에 따라서 '검토'를 하려고 한다. 이 점에서 보자면 근대적 합리주의 냄새가 스물스물 풍기는 소크라테스가 과연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신학자들과 비슷하게 논의될 수 있을지 고민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검토'하는 것은 신의 존재가 아니라, 신의 계시에 대한 인간의 태도들이다.마르쿠스: 대자연에서 유래하는 이치가 엄연히 존재했고 그 이치는 바르게 행동하도록 촉구하고 범죄에서 돌이키도록 불러세우지. 그 이치가 문자로 쓰이게 된 이후에야 법률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치가 발생했을 때부터 이미 법률이었다네. 그리고 그것은 신적 지성과 동시에 발생했지. 따라서 참되고 으뜸과는 법률이야말로 무엇을 명하고 금할 만한 격식을 갖추었는데, 이 법률은 다름 아닌 유피테르의 바른 이성이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의 「법률론」, 2.4.10
즉 소크라테스는 신의 신호가 정치 활동 참여를 제지한 데 대해 '내가 정치를 했으면 죽었을 것이고, 이는 나에게도 시민들에게도 도움이 안된다'라는 해석을 가한다. 다시말해 신앙에 있어서 소크라테스의 '검토'란 신의 계시에 대한 이성적 해석 등을 말하는 것인데, 이는 '''중세 스콜라 신학의 방법론과 매우 유사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소크라테스의 변명」의 정암학당쪽 역자인 강철웅씨는 작품 안내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그런데 내가 개인적으로 이런 조언을 하면서 돌아다니고 여기저기 참견도 하면서, 공적으로는 여러분의 무리 앞에 올라와 국가를 위해 조언하는 일에 엄두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 어쩌면 이상스러운 일이라 여겨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는 까닭은, 내가 여러 번 여러 곳에서 그 말을 하는 걸 여러분이 직접 들은 적이 있는 것처럼, 나에게 어떤 신적인 혹은 신령스러운 것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멜레토스가 고발장에 써서 희화화한 것도 바로 이런 것이고요. 내겐 이것이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었어요. 어떤 목소리가 생겨나는데, 생길 때마다 늘 내가 하려는 일을 못하게 말리긴 해도 하라고 부추기는 적은 한 번도 없지요. 내가 정치적인 활동들을 하는 것에 반대한 게 바로 이것인데, 내가 보기에 그 반대는 정말 훌륭한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아테네인 여러분, 이 점을 여러분이 잘 알아 두었으면 하는데, 내가 오래전에 정치적인 활동들을 하려고 시도했더라면 오래 전에 이미 죽었을 것이고, 여러분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아무런 이득울 주지 못했을 테니까 말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소크라테스의 발언, 31c-e
'''결국 신학을 학문에서 배제시켜버린다면, 고대의 철학과 법학, 정치학 등의 태반은 똑같은 원리로 학문에서 배제시켜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키케로가 학문을 하였다고 말하고, 오늘날 플라톤 사상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학문을 한다고 말한다. 윗 문단에는 상기한 철학이 대표성을 띠지는 못한다고 반론하고 있는데, 엉뚱한 이야기다. 철학만 해도 수십가지 하위 분야가 있고, 현대에 나온 새로운 철학 뿐만이 아니라 고대 철학부터 스콜라 철학, 근대 철학까지 현대 학계에서 다양하게 연구되고 논의되고 있는데 이 많은 하위 분야 중 대체 무슨 학문이 대표성을 가진단 말인가?어쩌면 소크라테스는 아주 '중세적'인 인물이었을지 모른다.
심지어 철학 중에는 종교철학도 있고, 유머 철학 같은 장난 같은 학문도 있다. 그리고 학문의 내용이 과학계와 충돌하기도 한다. 서구에선 과학자가 종종 철학자를 비판하기도 하는데, 대체로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이다. 물론 이와 관련해서 과학내부에서도 환원주의적 통섭을 주장하는 등. 의외로 현대 학문들은 무척 다양한 입장과 방법론이 교차하고 있다. 위 반론에선 현대 철학이 자연과학과 전혀 배치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철학의 다양함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하는 주장. 자연과학계에서 직접적으로 과학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하는 현대 철학이 아주 많이 있다. 최근에 순수 철학에서 과학적 방법론의 비중을 늘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사변적 영역을 버린 건 절대 아니다. 그리고 이는 철학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신학 역시 마찬가지다. 성서 고고학이나 비평학 등의 분야는 철학보다도 역사학과 밀접하므로 특히나 과학적 방법론이 중요해진다.
고대 철학이 철학계에서 사료 정도로 취급 된다는 주장 역시 전혀 철학을 모르고 하는 말. 고대, 중세 철학은 엄연히 재해석, 연구되고 있는 현역 철학이다. 신학이 학문이 아니라는 위 목차의 주장은 과학적 방법론 같은 일부 방법론을 현대 학문의 유일한 기본적 자세로 전제하고는 신학이 이를 만족시키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전제가 잘못되어 있는 것.
마찬가지로 과학은 넓은 의미로 학문과 동일시 되기도 하며 국어사전에도 나오며 종교학은 사회과학에 속하고 신학은 아니다 같은 반론 역시 엉뚱하다. 한국말인 과학과 달리 서구권에서 Science는 넓은 의미로 학문이라 정의되지 않는다. 국어사전은 인정하지만 영어사전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또한 그런 논리라면 역으로 신학은 (사실 넓은 의미로 따지면 신학 뿐만 아니라 어떤 것이라도 체계만 갖추면) 충분히 '학문'이라 부를 수 있게 된다. '학문'이란 단어로 국어 사전을 찾아보자. 또한 사회과학에 속하지 않은 철학, 인문학 등은 학문이 아니다라는 뜻도 된다. 애초에 국어사전에 나온 과학의 넓은 의미는 '학문'을 '과학'이라 부르기도 한다는 거지, '과학'만이 '학문'이란 뜻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신학은 이미 현대사회와 학계에서 정식 학문으로 인정받고 있다.''' 신학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신학교도 존재하고, 국제적인 학회도 존재하며, 논문도 계속 나오고 있다. 신학을 학문으로 보고 연구하며 토론하는 움직임은 현대에도 지속되고 있으므로, 신학이 학문이 아니다라는 시각은 현재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를 종교 권력 때문이다라고 윗 문단에서 반론하지만, 이는 전세계 학계를 너무 무시한 의견이다. 학문적이라고 인정받지 못하는 방법론을 사용하는 분과가 있다면 당연히 학계 차원에서 비판을 받는다. 그리고 신학이 반드시 신앙을 전재로 하지 않는다는 건, 위에서 이미 여러번 설명한 바 있다. 종교 등의 이익집단을 뒷받침 하는 것이 신학이란 편견 역시 마찬가지. 앞서 말했듯 신앙인이 아닌 신학자도 있으며, 성서 고고학자나 성서비평학이 발견한 사실은 역으로 제도적 종교의 도그마를 공격하기도 한다. 게다가 고전과 현대를 망라하고 신학계에서는 신앙보다 권력과 기득권을 지키는 종교현장의 폐단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있다. 신앙을 지키는 것과 기득권을 지키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신학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고전적인 신학의 정의가 '특정 종교의 신에 대한 숭배와 신앙을 위한 학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각 종교의 고전신학에서는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라며 다원화된 신학의 정의를 거부하고, 신앙을 위한 인도 혹은 지도로서 신학을 정의 내리기도 한다. [8] 물론 이런 발언은 신학을 자신들의 종교를 수호하기 위한 학문으로 바라보는 고전신학적 관점이거나 신학을 학문적으로 접근하기보다 성직자가 종교를 이끄는 방법으로 받아들이고 소모적인 논쟁을 지양하자는 의미가 강한 평화주의적인 관점이다. 그러나 현대신학 학계에선 일반적으로 신학을 '신성에 대한 비판적 연구 전반'(불교처럼 신을 가정하지 않는 종교 역시 존재한다.) 으로 정의하며 특정 종교 신도의 신학에 대한 정의는 폐기한지 오래다. 신학이 학문이 아니다는 입장은 전자의 정의를, 신학은 학문이다는 입장은 대체로 후자의 정의를 택하고 있는 것. 문단이 생긴지 오래되었고 수정도 많았지만 양 입장이 같은 말만 계속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 #
물론 고전신학을 학문으로 바라볼 수 없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어디까지나 실존적인 것만 학문적인 의논이 가능하다는 관점을 가진 사람이 신학을 학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비판 문단에서 칸트가 특수형이상학적 방법론에 대해서 사형선고를 내렸다는 것 등)을 반박할때 고전신학은 인문학적인 의미의 학문성보다 신앙을 중시하기 때문에 현대신학에 비해 고전신학이 실존주의적 관점에 있어 학문성이 떨어져 보인다는 것이고 만약 실존적이지 않은 것(신앙)도 학문으로 논의가 가능하다는 관점을 가진 경우에는 고전신학도 학문으로써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원화된 현대신학은 특정 종교 신도의 신학에 대한 정의는 폐기하였지만 엄연히 서구에서도 고전신학은 여전히 존재하며 오히려 고전신학계의 규모가 더 크다. 신학계 전반에서도 특정 종교에 대한 신학에 대한 학문적 논의가 완전히 폐기되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만약 그렇다면 신앙적인 종교계가 사멸하고 다원적인 학문적 논의만 존재해야한다. 당연하겠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실존주의에서는 거부감을 일으키는 신학의 형이상학적 요소들도 엄연히 학문적으로 바라보는 신앙적인 관점이 여전히 존재한다. 오히려 종교계를 전반적으로 따져봤을 때 이런 고전적인 관점이 현대적 관점보다 우세하다. 당연하겠지만 신학에 입문하는 사람들도, 그리고 신학계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이런 신앙적인 사람들이 매우 많다. 물론 머리 숫자가 진리를 결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반론 문단을 자칫 오해하여 현대신학이 학문적인 신학에 가깝고 고전신학은 학문적인 가치가 떨어진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데, 오히려 현재 신학계는 고전적인 관점을 가진 신학자들이 다수인 상황에서 고전신학에 대해 학문적 활동과 연구가 여전히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서 고전신학의 학문화가 굉장히 활발하다. 고전신학 또한 앞서말한 신학의 학문적 특징을 갖고 있으며 고전신학을 여전히 중세적인 신학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즉, 고전적인 관점으로도 신학의 영역을 넓히려는 시도가 얼마든지 넘쳐난다. 오히려 종교계는 현대신학에 대해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다. 왜냐하면 각 종교계에게 있어서 고전신학은 각 종교의 사유지 같은 개념이고 현대신학은 모든 종교의 공유지라서 상대적으로 연구와 적극성이 떨어진다.[9] 그렇기에 관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뿐이지 일반적으로 고전신학도 학문으로 분류한다. 실존주의 성향이 강한 학자들은 신학을 강하게 비판하나 그렇지 않은 학자들도 얼마든지 많아서 고전신학도 여전히 학계에서 학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래서 대중들이 신학에 대해서 주로 고전신학을 연상하는 것도 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다. 신앙을 학문적으로 다루는 것이 필수적인 고전신학의 특성상 형이상학이 일부 포함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편견과 다르게 고전신학이라고해서 특수형이상학만 취급하는건 절대로 아니다.
신학이 근본적으로 특수형이상학에 해당한다는 의견 역시 마찬가지. 정말로 그런 의견이 학계에서 우세한지에 대한 문제는 제껴두고라도 어디까지나 신학의 정의를 종교적 신앙을 보호하기 위한 고전신학에 한해서 성립되는 의견이며 상술했듯이 특수형이상학은 고전신학에서도 일부에만 해당된다. 신학은 특수형이상학에 국한되지 않는다. 현대 신학은 고전 신학에 비해 범주가 많이 확장되었고 현대신학이던 고전신학이던 학문적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기에 많은 나라의 학계에서 학문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신학은 새로운 시도를 위해 인문학 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으로 발전하려는 경향이 있다. 각 종교마다 각자의 사회를 이루고 있기에 어찌보면 필연적이다.
신앙을 학문으로 볼 수 없다는 의견에서 형이상학의 범주 외라면 그건 신학이 아니라 종교학이다라는 의견이 많이 보이는데 그것은 앞서 언급했듯이 신학을 신론만 다루는 학문이라는 편견에서 비롯된 오해이고 신학과 종교학은 다루는 영역이 거의 겹친다. 분파와 집중하는 부분, 논조가 다를 뿐이다. 게다가 어차피 신학과 종교학은 구별이 점차 희미해져가고 있다. 예를 들어 신학자가 종교사를 연구한다던지 비신자 입장에서 성경을 해석한다던지 하는 일들이 많다.[10] 위에서 언급했듯 종교학은 비교종교학처럼 여러 종교를 포괄 연구하고 신학은 기독교학, 불교학으로 특정종교학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보면 편하다. 물론 교계, 학계에서는 그렇게 간단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어쩌면 미래에는 신학의 형이하학적 부분들이 종교학과 통합되고 남은 신학은 종교 내부에서만 살아남게 될지도 모른다는 비관적인 관점도 있지만 일단 현재는 신학은 분명히 종교학과 구분되어 있으며 앞서 언급했듯이 고전신학도 형이하학적 비중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오히려 신학에 있어 형이하학적 부분의 중요성이 커지면 커졌지 신앙 때문에 그런 부분들을 내팽개칠거라는 편견도 잘못되었다. 교계에서도 신과 종교의 관계를 닭과 달걀의 관계처럼 받아들이는 부류도 있을 정도로 스펙트럼이 매우 넓으며 학문의 이름보다 학문의 범위가 훨씬 큰 경우도 얼마든지 있기에 신학과 종교학을 칼같이 구분하는 것은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신학이 다루는 범위가 늘어날수록 신학의 수요도 높아져서 종교계도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수학도 이름은 수를 다루는 학문이지만 산수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증명, 논리, 공간, 위상을 다루는 학문으로 발전한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 알아야 할 것은 논란의 인용처럼 환단고기는 진리적 명제로 삼고 학문적으로 탐구해도 마땅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환단고기의 경우는 역사적으로 사실이 아닌 것이기에, 학문적 탐구로서는 가치가 없는 사례다.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그 누구도 신이 존재한다는 증명과, 존재하지 않다는 증명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신학이란 학문이 단순히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학문도 아니다. 위에도 언급되었 듯이 신학 전공이지만 불가지론자 교수가 있듯이, 단순히 신을 존재한다는 개인적인 믿음과 무관하게 그저 순수히 '신'에 대한 연구도 가능하다. 이예 반박하여 '창조론과 진화론은 충돌하니 창조론을 주장하는 특정종교들의 신학은 학문적 가치가 없다' 라는 의견역시, '개인적 신앙'을 가진 개개인이 어떻게 받아드릴지와 '신학'이라는 틀안에서 창조론을 어떻게 받아드릴지에는 차이가 있다. 그리스 신화를 예를 들면 '나르키소스 가 자신의 얼굴에 반하여 결국 물에 빠졌다' 라는 구절에 '개개인'이 어떻게 받아드릴지와, 사회학/문학의 관점에서 왜 '나르키소스'라는 캐릭터가 나오고 이 일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공부하는것에는 차이가 있듯이. 그러니 제발, 논란 부분에 쓸 것을 구태여 반박 문단에 써서 엉뚱한 결론을 유도하지 말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