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암

 

1. 泥岩
1.1. 정의
1.2. 발달 과정 및 분포
1.3. 일반적 형태 및 특징
1.4. 관련 항목
2. 李嵒
3. 李巖


1. 泥岩


[image]

1.1. 정의


퇴적암의 일종으로, 점토암(粘土岩) · 실트암 · 혈암(頁岩) · 규질 점토암(argillite) 등의 세립쇄설암(細粒碎屑岩)의 총칭이다.

1.2. 발달 과정 및 분포


주로 고요한 바다나 삼각주 지대에서 퇴적되어 만들어진다.

1.3.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세립의 실트와 점토가 퇴적되어 고결된 것으로 미세한 점토처럼 생긴 작은 알갱이로 이루어져 있다. 알갱이는 각지거나 판 모양의 것들이 있으며 색은 다양하다. 이암은 대부분 미세한 입자들이 바닥에 가라앉을 수 있을 만큼 고요한 바다에서 퇴적되어 만들어지며 흔히 호수 바닥에서도 만들어진다. 강물의 흐름이 고요하게 변하는 삼각주 지대에서도 두껍게 퇴적된 이암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셰일과 비슷하지만 층이 뚜렷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암에는 화산재를 포함한 응회암질, 사질, 석회질의 것이 있다.
이암은 구성 물질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이 있는데, 실트가 점토보다 많은 경우는 실트암, 점토가 실트보다 많은 경우는 점토암이라 한다. 또한 혈암이나 한층 경화된 규질 점토암과 같이 층리면에 평행으로 엷게 벗겨지기 쉬운 성질이 없고, 균질하고 괴상의 세립 쇄설암에 대해서도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는 엽층이 없고, 엷게 벗겨지지 않는 성질을 중시하며, 별로 단단하지 않은 암석인 경우가 많다. 색이나 성분의 특징에 따라 흑색이라든지 규질등을 붙여 더욱 세분화하기도 한다. 이암과 석회암의 중간적인 성질을 가진 것을 이회암이라 한다. 이암은 벽돌이나 도자기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셰일은 이암 중 하나에 속하는데, 일반적인 이암에 비해 돌을 구성하는 입자가 작다.

1.4. 관련 항목



2. 李嵒


'''고려의 문하시중'''
염제신

'''이암'''

홍언박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고성, 초명은 군해라고 하였다.
1313년(충선왕 5년) 문과 급제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는데 충선왕의 신임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지며 충혜왕 재위시에도 "밀직대언 겸 감찰집의"가 되는 등 순탄한 관직 생활을 이어나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332년 충숙왕이 복위한 이후 전왕인 충혜왕의 총애를 받았다는 이유로 섬으로 유배되었다가 1340년 충혜왕이 복위하면서 조정으로 돌아왔다.
충목왕이 즉위하자 그를 찬성사로 삼고 정방의 제조가 되었지만, 환관 고용보의 인사권 전횡에 대해 간언하다가 밀양으로 유배되었다. 충목왕이 사후 아들인 저(후의 충정왕)를 왕으로 세우기 위해 원나라에 다녀온 뒤 다시 정방의 제조에 임명되었고, 그 뒤 찬성사를 거쳐 좌정승에 올랐다.
공민왕 초 철원군에 봉해졌으나 사직하고 청평산에 들어갔으나 다시 수문하시중에 제수되었다.
행정 관료로서의 능력은 있었으나 군인으로서의 능력은 부족했는지 1359년(공민왕 8년) 홍건적이 침입했을 때 문하시중으로서 서북면도원수가 되었으나 얼마 뒤 겁이 많아 도원수로서 군사를 잘 다스리지 못했다는 이유로 평장사 이승경과 교체되었다.
1361년 홍건적의 고려 침입 시에는 공민왕의 남천을 수행하였고 이듬해 3월 좌정승에서 퇴직하였다. 1363년 왕을 호종한 공을 인정받아 철성부원군에 봉해지고 사후 우왕 때 충정왕의 묘정에 배향되고 문정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글씨, 특히 예서와 초서에 능했다고 전해진다.
세간에 환빠들이 신봉하는 단군세기의 저자로 알려저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환단고기/서지적 비판 참고

3. 李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