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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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 국무부 소속 통역사.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했지만, 실상은 중간에 잠깐 쉬며 국내에서 교수생활을 한 것을 제외하고 2000년대 초부터 미 국무부 한국어 통역관으로 일하고 있는 베테랑이다. 현재는 미 국무부 통역국장을 역임하고 있다.
2. 일생
대학 졸업 후 원래 꿈이었던 방송국 PD가 되기 위해 tbc(동양방송)에 입사원서를 내지만 좌절한다. 그 후 결혼을 하고 육아에 힘쓰던 이연향은 친구의 권유로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을 입학한다. 이때 그의 나이가 33살로 동기들 중 최고령이었고 아이도 2명 있었다. 결혼 후 유학을 떠나는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이연향은 2년 뒤 돌아온다. 1996년 몬트레이 통번역대학원에 교수로 부임하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본격적으로 통역사일을 한다. 1998년 그는 타지 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절차를 밟던 중 또 다시 좌절한다. 당시 특례입학법상 아빠를 따라간 자식들은 법의 적용을 받지만, 엄마를 따라간 자식들은 특례입학의 자격이 없다는 법의 판단 때문이었다. 그는 "여성 차별이 이렇게 심한 나라에서 딸을 키울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다며 결국 자녀들과 미국에 남기로 한다.
그 후 2000년대 초반부터 미 국무부 한국어 통역관으로 활동한다. 2004년 귀국해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강의하다가 2009년 국무부로 돌아가 2019년 현재까지 통역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국무부에서 근무하던 도중엔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였다.
3. 어록
"외교 언어에는 Yes나 No가 없고 그 사이 어딘가가 있을뿐. 그 의미를 정확히 알리려면 단어와 뉘앙스가 중요하다"
4. 여담
- 2010년 12월 조선일보 인터뷰 #.
- 2011년 10월 미주 중앙일보 워싱턴 DC 인터뷰 #
- 미국에서 닥터 리라는 별명이 있다고 한다.
- 명확하게 국적에 대해 밝혀진 적이 없는 걸로 보이지만, 고위 공무원을 외국인으로 두는 경우는 별로 없다는 점에서 미국국적자임을 추측할 수 있다. 다만, 오빠의 가족와 부모[2] 가 한국 국적이고 여전히 한국에 살고 있다는 점으로 보아, 미국 본토 출신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만일 미국 본토 출신이 아니라면, 고위 공무원 그것도 외무직에서 고위직에 진출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것이다.
- 통역을 하는 도중 안경을 자주 내려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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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디오머그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