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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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
梨花女子大學校
EWHA WOMANS UNIVERSITY
[image]
교훈
眞, 善, 美
상징
슬로건
세상은 이화에게 물었고 이화는 그대를 답했다
Where change begins
교색
Ewha Green[1]
국가

분류
[image] 사립 종합대학
개교
1886년 5월 31일 이화학당
1946년 8월 15일 이화여자대학교
설립자
메리 스크랜튼
총장
김혜숙[2]
재단
학교법인 이화학당
주소
대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이화여대길 52 (대현동)
마곡
서울특별시 강서구 마곡동로2길25 (마곡동)[3]
재학생
학부
15,789명(2019년 4월 1일)
대학원
6,824명(2015년 4월 1일)
전임교원
983명(2015년 4월 1일)
대학혁신지원사업
A등급(2020)
홈페이지
(공식)
(노조)
(총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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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현캠퍼스

마곡캠퍼스

1. 개요
2. 설립 배경
3. 연혁
9. 등록금
10. 학교생활 및 문화
10.1. 축제
10.2. 시험 기간
10.3. 벗어롱
10.4. 이화카롱
10.5. 공동구매
10.6. 이화그린 입시카페
11. 특징
12. 대학평가
13. 부속학교
14. 남학생
16. 주변 교통편
16.1. 버스
16.2. 지하철역
17. 기타
17.1. 재정 상황
17.2. 군가산점 폐지 헌소제기
17.3. ROTC 유치
20. 관련 문서
21. 둘러 보기

[clearfix]

1. 개요


[image]
이화여자대학교 본관
[image]
이화여자대학교 ECC
[image]
이화여자대학교 전경

이화여자대학교 가는방법

이화여자대학교 홍보영상(2019)[4]
이화여자대학교 - EWHA WOMANS UNIVERSITY[5]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대현동에 있는 사립 종합 여자대학교이며 국내 유일한 하버드 대학교 (근데 일반적으로 알려진 하버드대학교가 아닌 대학부속 평생교육기관이다)의 Summer School 의 문화 및 언어체험 프로그램을 가진 대학이다 [6] [학교공식답변] 개신교 계열 미션스쿨이다. FM은 해방이화[7]
역사가 깊은 대학이다. 국내 대학 중에서 가장 먼저 도입한 학과나 타이틀을 많이 가지고 있다. 사회복지학과, 간호대학, 국제하계대학, 국제학부, 자유전공, 약학대학, 언론홍보영상학부, 여자대학교공과대학(세계 최초), 캠퍼스 투어, 학부 내 뇌·인지과학 전공 등 전부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2. 설립 배경


1886년 미국인 선교사 메리 스크랜튼 여사가 서울 정동에 세운 한국 최초의 여학교인 이화학당이 모체이다.
1885년 52세의 나이로 한국 땅을 밟은 스크랜튼 부인은, 구한말 한국 여성의 지위가 너무나도 낮은 것을 보고, 여성들을 위한 학교를 세운다. 단 1명의 학생으로 시작해 어렵게 학생들을 모아 학교를 키워 나갔고, 고종황제명성황후 내외는 이화(梨花, 배꽃)라는 교명(校名)을 지어주며 격려했다[8].# 1887년, 스크랜튼 부인은 의료선교를 위해 병원도 설립했다. 남녀칠세부동석과 내외법이 엄격하던 당대 조선 사회의 분위기를 고려해, 여성전용병원을 짓고 미국에서 여성의사들을 초청해 왔다. 고종 황제는 이 병원에도 '보구녀관(普救女館)'[9]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보구녀관은 한국 최초의 여성병원이며, 오늘날 이화여자대학교 의료원의 전신이다.
스크랜튼 부인 이후로 교장을 맡은 미국인 여성 선교사들에 의해 이화학당은 유치원, 보통과, 중등과, 고등과 등으로 체계가 갖추어졌고, 1912년에는 이화학당에 대학과가 생겨 덕분에 당시 중학교 수준의 교육밖에 없었던 한국에서 여성의 고등교육이 가능해졌다. 이화학당 대학과는 1925년 이화여자전문학교로 개편되었고, 1935년에는 정동에서 신촌으로 이전되었다. 1943년에는 정동에 남아 있던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의 재단(학교법인 이화학원)[10]과 신촌 이화여자전문학교의 재단(학교법인 이화학당)[11]이 분리되었다.
1945년 해방 이후 대한민국 최초로 종합대학 인가를 받아, 이화여자전문학교에서 이화여자대학교가 승격되었다. 초대 총장은 메리 스크랜튼 여사이다. 참고.

3. 연혁


이화여자대학교 역사
<color=#00462a> 1886.05.31.
미국감리회에서 파견된 선교사 메리 스크랜튼(Mary F. Scranton) 부인에 의해, 한국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으로 설립.
단 1명의 학생으로 시작하였다.
<color=#00462a> 1887
고종이화학당(梨花學堂)이라는 이름을 하사.
한국 최초의 여성병원인 보구녀관을 설립.
<color=#00462a> 1890
제2대 당장 루이자 로드와일러(Lousia C. Rothweiler) 취임.
<color=#00462a> 1893
제3대 당장 조세핀 페인(Josephine O. Paine) 취임.
<color=#00462a> 1904
중학과 설치.
<color=#00462a> 1907
제4대 당장 룰루 프라이(Lulu E. Frey) 취임.
<color=#00462a> 1910
대학과 신설.[12]
<color=#00462a> 1912
보통과, 고등과, 중학과, 대학과 설치.
<color=#00462a> 1914
대학과 1회 졸업식(신마실라, 이화숙, 김애식)
이화유치원[13] 신설.
<color=#00462a> 1915
유치원 사범과[14] 설치.
<color=#00462a> 1917
중학과를 대학예과로 개칭.
<color=#00462a> 1918
보통과, 고등과를 이화학당에서 분리하여 이화여자보통학교,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로 11월 1일 개교.
<color=#00462a> 1921
제5대 당장 자네트 월터(Jeanette A. Walter) 취임.
<color=#00462a> 1922
제6대 당장 앨리스 아펜젤러(Alice R. Appenzeller) 취임.
<color=#00462a> 1925.04.
대학과 및 대학예과를 전문학교인 이화여자전문학교로 승격 및 문과, 음악과 신설.
<color=#00462a> 1927.03.
이화여자전문학교 제1회 졸업식.
<color=#00462a> 1928
유치원 사범과를 이화보육학교로 개칭.
<color=#00462a> 1929
가사과 신설.
<color=#00462a> 1935.03.
이화여자보통학교 폐교.
이화여자전문학교 및 보육학교를 정동에서 신촌으로 이전.
<color=#00462a> 1936.05.
창립 50주년 기념식 거행.
<color=#00462a> 1939.04.
제7대 교장 김활란 취임.(최초의 한국인 교장)
<color=#00462a> 1940.04.
3년제 보육과 및 1년제 가사전수과 신설.
학생 정원을 음악과 50명, 가사과100명, 전수과 100명으로 증원.
<color=#00462a> 1941.04.
이화보육학과 폐교.
<color=#00462a> 1943.08.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와 이화보육학교ㆍ이화여자전문학교의 재단을 분리.
재단법인 [이화학당] 설립.
<color=#00462a> 1943.12.
전시교육임시조치령에 의하여 전문학교 교육 정지.
<color=#00462a> 1944.01.
전시교육임시조치령에 의하여 이화여자전문학교 여자청년연성소 지도자 양성과로 개편.
<color=#00462a> 1945.04.
경성여자전문학교로 개칭하고 3년제 후생과, 육아과, 1년제 보육전수과, 교육전수과를 설치.
<color=#00462a> 1945.08.15.
박탈당했던 교명 '이화'를 되찾음.
<color=#00462a> 1945.10.
한림원·예림원 및 행림원의 3원을 두고, 한림원에 문과·가사과·교육과·체육과를, 예림원에 음악과·미술과를, 행림원에 의학과·약학과를 설치.
<color=#00462a> 1945.12.
의학과 실습병원으로 동대문부속병원 신설.
<color=#00462a> 1946.08.15.
이화여자전문학교를 4년제 대학 이화여자대학교로 승격.(한국 최초로 종합대학 인가)[15]
<color=#00462a> 1946.10.31.
초대 총장에 김활란 박사 취임.
<color=#00462a> 1947.09.
한림원의 문과를 인문학부로,가사과를 가정학부로, 교육과를 교육학부로, 체육과를 체육학부로 승격인문학부에 국어국문학과·영어영문학과·기독교사회사업과, 가정학부에 가정학과·영양학과·의류학과, 교육학부에 교육학과·아동학과, 체육부에 체육학과 개설예림원의 음악과를 음악학부로, 미술과를 미술학부로 승격음악학부에 피아노과·성악과·현악과·작곡과, 미술학부에 동양화과·서양화과·자수과·도안과의 전공학과 개설행림원의 의학과를 의학부로, 약학과를 약학부로 승격하고, 의학부에 본과.예과, 약학부에 약학과의 전공학과 개설.
<color=#00462a> 1949.07.
이화여자대학교 제 1회 졸업식.
<color=#00462a> 1950.05.
한림원 법정학부 및 행림원 간호교육학부를 신설.
<color=#00462a> 1950.06.
대학원 신설.
한국전쟁으로 휴교.
<color=#00462a> 1951.09.
부산에 임시 교사(校舍) 마련하고 개강.
<color=#00462a> 1951.10.27.
한림원의 교육학부를 사범대학으로 승격.
<color=#00462a> 1953.08.
서울로 복귀.
<color=#00462a> 1954
대학원 제1회 졸업식.
<color=#00462a> 1955
사범대학 부속초등학교ㆍ부속중학교 개교.
<color=#00462a> 1956
대강당 건축.
<color=#00462a> 1958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개교.
<color=#00462a> 1960
이화여자대학교병설금란여자중학교ㆍ이화여자대학교병설금란여자고등학교 개교.
<color=#00462a> 1961.09.30.
제8대 총장 김옥길 취임.
<color=#00462a> 1969.03.03.
이화여자대학교병설영란여자중학교ㆍ영란여자상업고등학교 개교.
<color=#00462a> 1969.11.20.
자연사박물관 신설.
<color=#00462a> 1971
국제하계대학[16] 신설.
<color=#00462a> 1977
한국 최초의 여성학 강좌 개설.
<color=#00462a> 1979.09.01.
제9대 총장 정의숙 취임.
<color=#00462a> 1982
자연과학대학 설립.
<color=#00462a> 1983
평생교육원 개원.
<color=#00462a> 1984
100주년 기념 도서관 건립.
<color=#00462a> 1985
총학생회 발대식.
<color=#00462a> 1986
이화 창립 100주년 기념식 거행.
<color=#00462a> 1990.09.01.
제10대 총장 윤후정 취임.
<color=#00462a> 1992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개교.
<color=#00462a> 1993.10.06.
이대목동병원 개원.
<color=#00462a> 1995
여성최고지도자과정인 알프스(ALPS)[17] 신설.
<color=#00462a> 1996
제11대 총장 장상 취임.
세계 최초 여자공과대학 설립
영란여상을 이화여자대학교병설영란여자정보산업고등학교로 개칭.
<color=#00462a> 1999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방문.
금란여중ㆍ고를 남녀공학으로 전환.
<color=#00462a> 2001
국내 대학 최초로 국제학부 신설.
부속중ㆍ고등학교와 금란중ㆍ고를 통합.[18]
<color=#00462a> 2002.08.14.
제12대 총장 신인령 취임.
<color=#00462a> 2003
금혼 학칙 폐지.
<color=#00462a> 2004
영란여자정보산업고를 이화여자대학교병설미디어고등학교로 개칭.
<color=#00462a> 2005
지하캠퍼스 ECC(Ewha Campus Complex) 기공식.
아시아 최초 세계여성학대회 유치.
<color=#00462a> 2006
개발도상국 여성 인재 양성을 위한 전액 장학 프로그램인 EGPP[19] 시작.
이화학당 한옥 교사(校舍) 복원
제13대 총장 이배용 취임.
<color=#00462a> 2007
국내 대학 최초 자유전공학부 신설.
의학전문대학원 신설.[20]
<color=#00462a> 2008
ECC 완공.(국내 최대 규모의 지하 캠퍼스)
법학전문대학원 신설, 법과대학 폐지.[21]
이대동대문병원 폐원.
<color=#00462a> 2010.08.01.
제14대 총장 김선욱 취임.
<color=#00462a> 2011
솔베이 그룹과 산학협력 체결.
<color=#00462a> 2012
아시아ㆍ아프리카 여성 비정부기구 활동가 양성을 위한 단기 교육 프로그램인 EGEP[22] 시작.
<color=#00462a> 2014
산학협력관 완공.
신축 기숙사(e-house) 기공.
<color=#00462a> 2014.07.26.
의과대학 체제로 전환, 2015학년도부터 의예과 신입생 선발.
<color=#00462a> 2014.08.01.
제15대 총장 최경희 취임.
<color=#00462a> 2016.10.19.
제15대 총장 최경희 사임.
<color=#00462a> 2017.05.31.
제16대 총장 김혜숙 취임.
<color=#00462a> 2019.05.23.
이대서울병원 개원.

4. 상징


이화여자대학교의 교표, FM, 마스코트, 슬로건, 상징색, 과잠, 학위복 등에 대한 서술은 아래를 참조.


5. 역대 총장




6. 전공(학부)




7. 전공(대학원)




8. 캠퍼스


[image]
굉장히 예쁘다. 서울시내의 학교들 중 경희대, 고려대와 함께 가장 예쁜 캠퍼스로 꼽힌다.


9. 등록금


우리나라에서 등록금이 가장 비싼 대학교로 널리 인식되고 있지만, 2009년, 2010년 2년 간 등록금을 전면 동결하여 2010년에 4위로 내려갔다. # 그리고 예체능이라든가 약대, 의대 등은 이대보다 비싼 대학교가 많다. 게다가, 서울 명문 사립대들의 등록금 수준은 비등비등한 편이다. 하지만 위에서 설명한 된장녀 및 페미니즘적 이미지와 맞물려 이러한 사실과는 상관 없이, 등록금이 제일 비싼 대학이라고 악의적으로 왜곡되어 까이고 있다.
등록금 적립액이 국내 1위라고 한다. 참고기사 그러나 2016년 홍익대학교에 이어 2위로 밀려났다.
이화여대에서는 소득 분위별 장학금을 지급하는데, 한국 장학재단 기준으로 5분위 이내에 들면 전액 장학금을 지급한다. 그리고 등록금 외에도 추가적으로 생활비를 지원 받을 수 있는 장학금도 다수 존재한다. 따라서 등록금이 비싸다는 편견과 달리 오히려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걱정 없이 학교를 다닐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2019년 기준 등록금은 인문사회 751만 1000원, 자연과학 917만 2000원, 예체능 992만 2000원, 공학 943만원, 의학 1,289만 6000원이다.
2년 간의 등록금 동결은 이전의 총장이 대교협 회장직을 맡았기 때문이라는 속설이 있으며, 새로운 총장이 부임한 뒤로 등록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비친 적이 있다카더라.
강사에 대한 대접은 좋은 편이라고 한다.[23] 하지만 교수 임금이나 정교수 진급 등은 꽤나 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등록금으로 토목공사를 벌인다는 소문도 들린다. 허나 등록금으로 교내 토목공사를 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니, 그럴 리 만무하다.

10. 학교생활 및 문화



10.1. 축제


이화여대 축제 명칭은 대동제이다. 타 학교들처럼 화려하게 가수들을 초대한다든지 시끌벅적한 주점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외부 학교에서는 '재미가 없다' 는 평이 조금 있다. 그러나 이화여대 학생들 사이에서는 초인기의 축제라고. 이전 타교 남학생[24]에 의해 유혈사태가 나고 성희롱 등의 논란이 있자, 축제 동안 술을 금지하고 밤이 되기 전에 축제를 끝내는 듯.
정확히는 먹방 축제나 돼동제라고도 한다. 그만큼 먹거리나 소소한 재미가 큰 축제라는 평.
직접 만든 핸드메이드 물건이나 학교 에코백, 동양화과 부채 등 아침 일찍 가서 줄을 서야만 살 수 있는 유명한 물건들도 있다.
근처 학교들처럼 화려한 라인업은 아니지만, 매 해마다 가수 및 밴드가 와서 공연을 한다. 유명한 가수로는 2011년에는 10cm, 2013년에는 로이킴, 2015년에는 악동뮤지션, 2016년에는 에릭남, 2017년에는 혁오, 2018년에는 정세운, 슬릭, 주니엘이 축제에 방문해 공연했다. 2019년에는 성우 이용신, 가수 핫펠트, 가수 안예은이 방문해 큰 호응을 받았다. 관련 영상은 이곳 참조.

10.2. 시험 기간


시험기간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ECC의 열람실을 이용하거나 중앙 도서관의 자유 열람실 및 라운지를 이용한다. 어느 학교나 그렇듯 시험기간이면 자리가 없다. 참고로 ECC와 중앙도서관 모두 발권 기계에서 학생증을 태그한 후 자리를 선택해 발권하는 방식이다.
학교 열람실 뿐만 아니라 이대 주변의 어느 카페를 가도 보통 자리가 없다. 신촌까지 가더라도, 신촌은 특히 연세대학교나 서강대학교 학생들도 이용하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자리가 없다. 미리미리 자리를 선점하자.
전교생이 들어야 하는 교양 과목[25]은 교양 시험 기간이 3일 정도로 날짜가 정해져있다. 아무래도 전교생이 들어야 하는 필수교양인만큼 각 전공의 시험날짜와 겹치지 않도록 기간을 못박아 둔다.
각자의 소속 단대나 학과에서 시험 때마다 간식을 나눠준다. 그 외에, 학생지원처에서 1,000명 단위로 시험기간에 학문관에서 나눠주는 간식이 있다.
교양 시험 기간에 학교 열람실을 이용하고 있다면, 운이 좋을시 총장간식을 받을 수 있다. 교양 시험 기간 중 하루, 일정 시간동안만 배부되는데 ECC와 중앙 도서관에 있는 모든 학생들에게 간식을 나눠준다.
내용물은 쿠키, 떡, 빵 등과 응원 메시지가 담긴 카드. 간식 나눠주는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학교 홈페이지에 알바 공지사항이 뜬다. 학생들끼리 교양시험 기간이면 언제쯤 총장간식이 나올지 추측하고는 한다.

10.3. 벗어롱



이대생들이 서로를 부르는 호칭인 싱어롱의 합성어이다. 이대생들끼리 영화관을 대관하여 싱어롱을 진행한다. 2018년 보헤미안 랩소디를 시작으로 2019년에는 알라딘겨울왕국2의 벗어롱을 진행했다. 상영관 입장 전 야광봉, 야광스티커 등을 나눠 받을 수 있다. 겨울왕국 2 벗어롱 때는 FROZEN EWHA가 적힌 슬로건을 배부했다. 이외에도 개인이 각자 응원도구를 준비해올 수도 있다. 알라딘 벗어롱 때는 알라딘, 양탄자, 아부, 지니 코스프레를 하고 벗어롱을 즐긴 이대생들도 있었다. 여담으로 단체 대관임에도 뒤처리가 상당히 깔끔해서 영화관 직원들이 좋아했다카더라.
겨울왕국2 벗어롱 때 문명특급재재가 방문했다.[26]

10.4. 이화카롱


[image]
하얀색 바탕에 이화여대 교표가 새겨진 마카롱이다. 2020학년도 논술고사를 보러온 수험생들을 위해 재학생 및 졸업생이 준비했다. 대학교 논술고사에서 시험을 보러 온 수험생들을 위해 초콜릿이나 젤리 등을 준비하는 경우는 흔하지만, 마카롱을 준비한 것은 이화여대가 처음이다. 수험생들의 반응이 상당히 좋았다.
이후 학교 측에서도 외부 기업인을 초대한 공식 행사에 준비했다. 이화여대 공식 인스타그램

10.5. 공동구매


이화공구대학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학생들 간의 공동구매가 활발하다. 보통 학교의 설립년도인 1886이나 학교 슬로건인 Where Change Begins(WCB)등을 활용한 야구잠바, 후드티, 맨투맨티, 바람막이, 코치자켓, 돕바 등의 의류와, 보틀, 뱃지, 떡메모지, 스티커 등의 생활용품을 공구하는데, 귀여운 디자인과 실용성으로 인기가 많다.
[image]
가장 기본적인 공구물품으로는 야구잠바가 있다. 단대/과별로 공동구매를 하기도 하고, 학생들 주도로 제작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핑크색, 베이지색의 화사한 색상의 야구잠바가 유명했지만, 최근에는 학교의 색깔인 이화그린 색 야구잠바가 인기가 좋다. 보통 호칭은 학잠(학교 잠바), 단잠(단대 잠바), 과잠(과 잠바) 등으로 불린다. 뒤에는 주로 영문으로 EWHA가 들어가며, 학잠의 경우 아래 Where Change Begins, Since 1886, 단잠이나 과잠의 경우 단대나 과명이 들어간다. 새내기라면 이화그린 과잠을 하나 장만하는 것을 추천한다. 봄가을에 유용한 아우터이다.
[image]
학교 설립년도인 1886을 넣은 후드티이다. 보통 1886 숫자를 크게 넣고, 아래에 Where Change Begins를 넣거나 소매에 WCB를 넣는 등 다양한 디자인이 있다. 시보리에 세 줄 디테일을 넣거나, [OIOI]와 콜라보한 후드티와 같은 귀여운 디자인은 큰 인기를 끌었다. 비슷한 맥락으로 각 과별로 과 설립 년도가 들어간 후드티를 제작하기도 한다. WCB 역시 Where 학과 Begins 등으로 변형해 넣기도 한다.
[image]
Where Change Begins가 들어간 후드티도 인기가 좋다. 스탠다드하게 즐겨 공구하는 디자인이며, 맨투맨티와 후드티에 고루 사용되는 디자인이다. 참고로 후드티 그림이 들어간 뱃지도 큰 인기를 끌었다.
[image]
바람막이 역시 유명한 공구템이다. 넉넉한 기장의 두꺼운 재질의 바람막이인데, 밤샘 공부와 새벽 등교에 아주 적합하다. 보통 학교 로고가 들어가 있으며, 단대/과/동아리별로 제작하기도 한다. 학교 로고와 이름이 눈에 띄게 들어가는 바막은 일코해제라고 많이 부르며, 반대로 학교 로고가 검게 들어가서 잘 보이지 않는 경우 일코용이라고 불린다. 조형예술대 학생들이 밀리터리 패턴이 들어간 바람막이를 처음으로 공구했는데, 밀리바막으로 유명해져 조예대 학생들이 아닌 학생들도 많이 입게 되었다.
[image]
뒷면에도 글자가 들어간 디자인이 많은데, 무난하게 Where Change Begins나 Ewha Womans. University, since 1886이 들어간 경우도 있고, 과나 동아리 이름을 넣기도 한다. 일부 디자인의 경우 과나 동아리의 특색있는 그림이 뒤판에 들어가기도 한다.
이러한 굿즈/공구용품을 잘 제작하는 것으로 유명한 곳도 있는데, 이화여자대학교 생활협동조합의 경우 굿즈를 잘 뽑아 명성이 높다. 유명한 제품으로는 배꽃 워터볼 볼펜, 대강당 뱃지, 이화곰돌이 인형 등이 있다. 학교 야구잠바, 학교 후드티와 맨투맨티도 잘 뽑는다(공동구매에 비해서는 가격대가 조금 높은 편이다) 공동구매를 아쉽게 놓쳤다면 생협에서 공구템을 구매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10.6. 이화그린 입시카페


https://cafe.naver.com/ewhainfo
전국 단위의 대학 입시를 다루는 다른 주요 대입 카페들과 달리, 이화여대만의 입시를 대비하기 위한 네이버 카페가 따로 존재한다. 이름은 이화여대의 상징색인 이화그린에서 이름을 딴 <세상을 그린 이화, 이화가 그린 그대-이화여대 입시카페>, 통칭 이화그린 입시카페.
운영자 및 스탭들은 전원 이화여대 학부 재학생이며, 카페에서 활동하는 멘토들 역시 전원 재학생 인증을 받은 이대생들이다. 주로 이화여대를 지망하는 여학생들의 질문을 받고 답변해주는 방식으로 이대 입시를 도와주고 있다. 이화여대의 수시, 정시 전형뿐만 아니라 편입 전형에 대한 멘토링도 진행하고 있으며, 주요 대입 카페에서는 정보를 얻기 어려운 재외국민, 특기자 및 예체능 계열 입시도 다루고 있다. 또한 이화여대 입시에 국한된 내용뿐만 아니라 수능 과목 공부법, 내신 관리법 및 공부 패턴 등등 수험 생활 전반에 관한 조언도 주고받을 수 있다.
해당 카페에서는 푸짐한 상품을 내세워 이화여대 수시 전형 면접 후기 이벤트 및 수능 후기 이벤트, 합격 후기 글 작성 이벤트 등등 여러 이벤트들도 진행하고 있으니 이대 입시에 관심이 있는 수험생들은 카페를 적극 활용하는 것을 권장한다. 현재 논술/수시합격/편입 후기 이벤트가 진행 중이다.https://cafe.naver.com/ewhainfo/2174

11. 특징



11.1. 개신교 미션스쿨


기본적으로 이화는 선교사가 세운 개신교(감리회)계 미션스쿨이다. 이 때문인지 1955년 통일교에 가입한 학생과 교직원들이 면직/퇴학되는 사건이 있기도 했다.
채플을 30분씩 8학기(4년 내내)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다.[27] 쉽게 얘기해서 졸업할 때까지 의무적으로 들어야 한다는 얘기. 1970년대 초반에는 채플이 1주일에 3회였다고 한다.#
채플에 대해 잘 모르고 입학한 학생들은 당황하지만, 신자가 아닌 학생들도 훈련학점으로 채플을 이수해야한다. 물론 채플 시간이라고 해서 꼭 예배만 드리는 것은 아니고, 유명인사가 와서 강의를 하거나 공연을 할 때도 있다. 옛날에는 간혹 개신교 신자인 연예인들이 오기도 했다. 한 학기 채플에서 기본적으로 교양합창 수업 학생들의 합창, 무용과 학생들의 무용채플, 이화 페스티벌 학생/동아리 공연 채플이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학교가 2학기(1년) 내지는 4학기(2년)인 것에 비해 파격적으로 긴 기간이다. 그나마 채플 내용이 교양에 가까운 편이고 채플 시간이 30분이라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다. 하지만 갈수록 종교적 색채가 짙어져 학생들의 원성이 커지고 있다. 채플 시작 직전 대강당의 모든 문을 잠가버린다. 쪽문은 1분 정도 더 열어주지만, 대강당 계단을 뛰어 올라와서 들어갈 확률은 희박하다. 2020년에는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 수업을 하게 되면서 채플도 온라인으로 전환되었다.
이 시간에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 것은 가능하지만, 채플 조교마다 달라서 못하게 하는 조교들도 있다. 음료와 먹을 것은 반입할 수 없으며, 대강당 로비의 탁자에 올려 놓고 들어가야 한다. 빠진 학생들을 위한 보충 채플이 있으며[28], 그 외에 특별 채플[29]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학년이 될수록 채플 이수를 다 못해 한 학기에 2개, 3개, 4개 이상 듣는 학생이 제법 있다.
못 들은 채플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채플을 대체할 수 있는 제도도 있다. 채플 하나당 10점을 채워야 하는데,[30] 성경 필사 1점, 리포트 2장에 2점 하는 식이다. 한 학기 채플을 개근하는 경우 선물을 준다. 담요, 에코백 등등. 마이보틀이 유행하자 2014년 2학기 채플에서는 학교 이름을 새긴 이화보틀을 채플 개근선물로 증정했다.

11.2. 페미니즘


페미니즘은 이화의 창립 이념과도 같다. 위의 설립 부분에도 써 있듯이, 오랜 남존여비의 인습 아래서 억압받고 있던 조선 여성들을 위해 스크랜튼 부인이 세운 한국 최초의 여학교가 이화이기 때문이다. 이화의 FM은 '해방 이화'인데, 독재정권에 맞서 만들어진 FM이기는 하나 근대화 시기에 구여성으로부터 해방하여 신여성이 되자는 의미와 일제로부터 조선의 해방이라는 의미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자세한 것은 FM(자기소개) 참조
이화는 서양에 소위 '페미니즘의 첫 번째 물결'이 일어나던 시기 이후 한국에 세워졌으며, 그리스도교 교리에 입각한 여성의 교육, 전인격적 발달, 자립, 주체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과 함께 여성학 과정이 개설된 국내에 둘뿐인 대학 중 하나다.[31] 이 점에서도 볼 수 있듯 이대는 국내에서 여성학 강의가 가장 많은, 또 여성학이 연계 전공으로 세워져 있는 드문 학교 중 하나이다. 하버드와 국내에서 유일하게 학점교류하는 대학인 이유도 여성학 분야에서 가장 발전된 대학교라는 평을 듣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덕분에 여성학 관련 강좌의 질이 좋다는 평이 많으며, 또 학교의 특성으로도 취급하는 분위기. 그래서인지 재학생들 중 여성학에 관련된 수업을 하나쯤은 들은 학생이 많은 편이다. '여성학', '성문화연구', '글로컬시대의 아시아 여성', '세계여성문학', '한국의 구비문학' 등과 같은 다양한 강좌가 존재하며, 그 외 인문학, 사회과학 등의 전공 수업에서도 여성으로서의 시각을 추가하여 강의하기도 한다.
학내에 페미니즘 활동을 하는 단체들도 여러 단위가 존재한다.
국민의 정부 이후 이화여대 출신들의 페미니즘 활동이 두드러지고 이는 여성가족부 설립의 주춧돌이 되었다.[32] 이화여대는 과거 된장녀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을 때 이유 없이 엮여 폭풍처럼 까인 적도 있다. 인터넷 상에서는 된장녀의 본거지라는 인식이 강한데, 이는 대학이 신촌-이대역 근처에 있어서 그 근방에 보이는 여자들의 화려한 옷차림을 이대생과 동일시하면서 생겨난 편견과 일반화의 오류일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이 근처는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번화가인 만큼 연령·성별에 상관없이 화려한 사람들이 많다. 인터넷이 있기 전인 1990년대 초반에 뉴스위크에서 '돈의 노예들: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이라는 기사를 이화여대생 5명의 사진과 함께 보도한 사건이 있었다. 길 가던 아무 여대생의 사진을 찍어 모자이크도 없이 저런 기사에 무단으로 포함시킨 것이었다. 얼굴을 알아본 주변 사람들로부터 연락을 받은 피해자들은 당연히 명예훼손과 초상권으로 소송을 제기하였고, 뉴스위크는 결국 9천만 원을 배상하였다. 해당 사건은 우리나라에서 보도 사진에 의한 초상권 침해를 인정한 최초의 판례가 되었다.
이화여대의 전신인 이화여자전문학교를 졸업한 이희호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재야인사였던 김대중과 결혼한 이유를 '사랑 때문이라기보다, 나의 소망이었고 인생의 목표였던 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기도 하다고 생각했다'라 표현하기도 하였다.

11.3. 과거


  • 1970년 이전, 메이퀸(5월의 여왕)을 뽑았지만 1977년 들어 '여성의 성 상품화다', '이런 시국에 여왕이 가당한가'라는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학생들의 반발로 인해 폐지되었다. 학교 측에서는 메이퀸이 학교의 전통이라고 반발하였으나, 메이퀸의 후보가 되는 각 단과대학 메이퀸을 뽑는 과정에서, 3개를 제외한 단대가 메이퀸 선출에 반발하여 단대 메이퀸을 뽑지 않음으로써 결국 폐지되었다.
  • 1946년부터 학칙에서 입학 자격을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고교를 졸업한 자와 동등 이상의 학력이 있다고 인정된 미혼 여성자(제14조 1항)로 명시하고 결혼한 자는 총장이 제적한다'(제28조 7항)라고 규정하고 있었다. 이른바 금혼규정. 하지만 이 규정은 2003년도에 폐지되었다.
애초에 이 금혼 학칙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 당시 조혼이라는 악습으로부터 소녀들의 학습권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었다.[33] 부모와 어른들의 손에 이끌려 신체적ㆍ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소녀들이 억지로 시집가는 것을 막기 위해, 외국인 교사들은 설득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방학을 없애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과거보다는 여성들의 고등 교육환경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고, 금혼을 이유로 입학을 불허하는 것은 '차별'이라는 헌법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만큼 개정하였다. 때문에 금혼에 관련된 학칙 개정 이후, 학교로 돌아온 학부생도 볼 수 있다.[34] 단, 결혼으로 인해 퇴학당한 것을 증명할 수 있을 시에 해당된다. 또한 금혼 학칙이 없어지면서, 기혼 여성들이 학부 신입생으로 입학하기도 했다.[35]
이화여대 총장직에 금혼 규정은 없지만, 결혼 경력이 없는 여성에게만 총장직을 맡길 수 있다는 암묵적 규율이 있었다. 설립자인 메리 스크랜튼 부인은 장성한 아들[36]을 둔 과부였고, 이후부터는 독신 여성들만 총장(교장)을 맡았다. 그러다가 제11대 장상 총장이 이 불문율을 깨뜨리고 기혼 여성 총장으로 취임했다. 교내 운동권들이 농담 삼아 '철의 여인'이라 부르던 총장이다. 제13대 총장 이배용은 3번째 기혼 여성 총장이다.
  • 90년대까지 캠퍼스 내 남성출입금지였다. 점차 자유로워지는 사회 분위기와 학교 주변에 사는 주민들의 편리한 통행을 고려해 캠퍼스 내 남성의 출입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도 안전상의 이유로 밤 10시 이후 남성은 출입이 불가하다. 캠퍼스는 자유로이 돌아다닐 수 있지만 출입 가능한 건물은 ECC 지하 4층 정도로 제한적이다.

11.4. 기타


인터넷상에서 서로를 부르는 호칭은 '벗'이다. 타 학교에서 주로 쓰는 '학우'와 비슷한 호칭이다.
신입생을 새내기, 그 윗학년부터는 헌내기가 아닌 정든내기라고 부르는 것이 특징이다.
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대학원의 문화 쪽과 같이 김신[37], 최이 등 2자 성 쓰기에 앞장서는 여성이 많은 학교이기도 하다.
타짜의 정 마담이 이 학교 출신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확인은 안 된다. 정 마담을 연기한 배우 김혜수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으로, "나 이대 나온 여자야" 라는 대사는, 본인의 애드립이 아닌 대본에 있는 것을 그대로 읽은 것이라고 한다. 이는 감독이 후일 인터뷰에서 남성들이 이대에 대해 가지는 판타지를 이용해서 화제를 몰고싶어 사용했다고 밝혔다.
2006년부터 현재까지 하버드대학교Summer School국내 유일의 언어교환 프로그램을 맺은 학교[38] 따라서 일반적인 교환학생이 아닌 한국문화 체험 및 어학당을 겸하는 프로그램이다.[학교공식답변]
법학전문대학원이 있다. 로스쿨 선정 자격을 두고 법적 시비가 붙어 고등법원까지 갔는데, 서울대, 이화여대, 경북대, 전남대에 내준 로스쿨 인가는 위법하긴 하나 취소 시 공익을 현저히 저해해 취소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39] 참고
그 뿐만 아니라 이대에서 로스쿨을 운영하는 것이 성차별이라는 헌법소원도 제기되었다. 전체 로스쿨생 2,000명 중 이대에서 100명을 뽑기 때문에 남성이 여성에 비해 로스쿨의 문이 좁아서 직업 선택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러나 합헌판결을 받았다. # 합헌판결은 이화여대의 로스쿨 인가는 여성 할당제의 취지가 아니라 지금까지 이대 사시합격생 배출 실적이 우수한 것, 법조계에서 이화여대의 기여를 인정한 것, 그리고 사학재단의 자율권을 인정한 것이었다.[40] 또한 헌재는 “청구인은 이화여대 이외에 24개 로스쿨에 지원할 수 있고, 입학 후 변호사시험을 통해 법조인이 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 사건 인가처분으로 청구인이 받는 불이익이 과도하게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 청구인의 로스쿨 합격가능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법학적성시험(LEET) 성적, 학부 성적, 면접 점수 등 다양하기 때문에 남성이 입학 가능한 법학전문대학원 총 정원이 여성의 경우보다 적다는 점은 로스쿨 합격 여부의 결정적 요소라 할 수 없다.”고 밝혔다.[41]
국내 대학 중에서 가장 먼저 도입한 학과나 타이틀을 많이 가지고 있다. 간호대학, 국제하계대학, 국제학부, 자유전공, 언론홍보영상학부, 여자대학교공과대학(세계 최초), 캠퍼스 투어, 학부 내 뇌·인지과학 전공 등 전부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시작되었다.

12. 대학평가



13. 부속학교


학교법인 이화학당은 이화여자대학교 외에도 다음과 같은 부속학교들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당연히 이 학교들도 모두, 이화여대와 마찬가지로 개신교 미션스쿨이다.
이대병설미디어고의 1969년 개교 당시 교명은 이화여자대학교병설영란여자상업고등학교였다. 1996년에 이화여자대학교병설영란여자정보산업고등학교로 바뀌었고, 2004년에 오늘날의 교명으로 바뀌었다. 단 교명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여고이다.
이대병설영란여중과 이대병설미디어고는 서울시 중랑구 망우동에 있고, 나머지 부속학교들은 이화여자대학교와 함께 서대문구 대현동에 있다. (당연하겠지만) 이화여대 부속학교에는 이화여대 사범대생들이 교생실습을 온다고 한다.[42]
이화여자고등학교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는 이화여자대학교의 부속학교가 아니다. 세 학교 모두 이화학당이 근원이지만, 나중에 재단이 분리되었다. 1943년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의 재단(이화학원)과 이화여자전문학교의 재단(이화학당)이 분리되어, 오늘날 이화여고ㆍ이화외고는 학교법인 이화학원에서, 이화여대는 학교법인 이화학당에서 운영하고 있다.

14. 남학생


여자대학교임에도 불구하고, 남학생이 입학한 적이 있다는 루머가 끊이질 않는다. 대표적인 예로, 규정에 성별에 대한 제한이 없어서 장난삼아 원서를 넣은 남학생이 합격했다는 이야기. 이 루머에 따르면 그 남학생은 결국 자퇴했고, 그 후로 입학 규정에 성별제한이 생기게 됐다고 한다. 다른 버전으로는 무용과에서 여학생들을 받쳐주기 위해서 남학생을 받아 연습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사실무근.
결론부터 말하자면 분명히 없다. 이화여대에 남학생이 입학한 적은 개교와 개벽 이래 한번도 없었다. 역대 총장들은 "국회의원의 절반이 여성으로 채워져야만 여대를 철폐하고 이화는 문을 닫을 것"이라 발언했다.
학내 신문에서 소문의 진위여부를 밝히기 위한 인터뷰를 했는데, 원칙적으로 주민등록번호에서 성별이 남자 코드이면 원서를 받지 않는다. 무용과 남학생 떡밥의 경우, 수업 특성상 알바로 남자 무용수를 외부에서 데려오는 것이라고 밝혀졌다. 그 외에 음대의 오페라 공연 때도, 남자 배역은 타 대학 음대 남학생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해서 뽑는다. 특히 다른 여대의 경우 학부만 여성으로 제한하고, 대학원[43]에서는 성별 제한을 따로 두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실제 극소수의 대학원 재학생, 졸업생이 있는 것과 달리, 이대는 학부뿐 아니라 본 대학원뿐 아니라 경영대학원이나 교육대학원 같은 전문, 특수대학원과 같이 학위를 수여하는 모든 형태의 정규교육에서 모두 남학생을 따로 받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화여대에서 남학생이 수업을 들을 수 있느냐라고 물어보면, 그건 경우에 따라 가능하다. 타 대학 학점교류나 외국 대학 교환학생의 경우이다.[44]
연세대학교, 서강대학교, 홍익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는 신촌 대학 교류라고 하여 학점교류가 매우 자유로운 편이다. 학부생들도 4개 학교를 오가지만, 대학원생들은 본 학교에서 개설되어 있지 않은 과목이 다른 학교에서 개설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요즘처럼 학점교류가 많아지기 훨씬 전부터 이 제도가 시행 중이라 학점교류를 하는 비율이 잦다. 이 때문에 나머지 세 학교 남자 대학원생들이 이대에 오는 빈도가 꽤 높다. 대학원 세미나실에 앉아 있는 남학생들은 거의 세 학교 학생들이라고 봐도 무방.
외국 대학에서 온 교환학생들 중 1/4~1/5 가량이 남학생이다. 물론 함께 수업도 듣는다.
남학생 입학을 받지 않는다는 원칙은 법학전문대학원도 예외가 아니라서, 이화여대 로스쿨은 100명을 모집하는데 모두 여학생만 모집한다. 로스쿨 총 정원 2,000명 중에서 100명을 따로 여성만 우선 선발한다고 볼 수 있으며,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에까지 갔으나 헌법재판소에서는 이화여대 로스쿨 측의 손을 들어줬다. 여성 우선 선발 인원의 숫자가 그리 크지 않으니 남성의 침해 정도가 크지 않아서 영향력이 크지 않고, 이때까지의 여자대학교의 관행을 들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화여대는 법전원 인가를 받을 때 여성에게만 입학 자격을 주기로 한 것을 "분명히" 입학전형계획에 밝혔으며, 교육부는 그를 확인하고 설립인가를 내주었다.
헌재 2009헌마514 판례의 사건의 개요의 (3)항에 '…교육부장관이 2008.9.1.학교법인 이화학당에 한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인가 중 여성만을 입학자격요건으로 하는 입학전형계획을 인정한 부분 및 피청구인 학교법인 이화학당의 2010학년도 법학전문대학원 모집요강 중 여성만을 입학자격요건으로 한 부분…'이라는 부분의 존재로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헌법재판소 2013.5.30. 2009헌마514판결 참조
참고로 서울권 사립대학법학전문대학원 입학 정원은, 해당 대학의 사법고시 역대 합격생 배출 실적과 비례한다. 로스쿨 인가신청 평가 총괄표에 따르면#, 이화여대는 전체 인가 대학 중 5위의 점수를 획득해 총 100명의 인원을 할당받았다.
또한, FTM 트랜스젠더로서, 이대 졸업 후 성전환 수술을 해 이대 출신 남성이 된 경우가 있는 모양이다.
아울러, 위 사항은 학부 및 대학원에 적용되는 내용으로, 부속기관인 언어교육원, 기록관리교육원 등은 성별 제한이 없는 경우가 많으니 모집요강을 체크해 봐야 한다.

15. 이화여자대학교 의료원


이화여자대학교 의료원 문서 참조.

16. 주변 교통편



16.1. 버스



16.2. 지하철역


  • 신촌역(경의선)
  • 이대역 [45]

17. 기타



17.1. 재정 상황


재단규모는 2018년 기준 1,261,572,866 (1조 2618억)원이며 2019 초 이대서울병원의 개원으로 재정 상황이 더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

17.2. 군가산점 폐지 헌소제기


과거 1994년, 이화여대의 행정학과 조택 교수가 청와대 총무처 등에 당시 7급, 9급 공무원 채용시험에 있던 군복무 가산점 제도 폐지 청원을 내며 군가산점 폐지 운동을 처음으로 시작하였다. 숨겨진 일화로는 조택 교수가 될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완전폐지로 넣었는데 법원에서 조정없이 완전폐지로 결정 낸 것. 이 과정에서 당사자 명의가 필요해 이화여대 졸업생 몇의 이름이 들어갔으며 연세대 출신 장애인 분도 동참했다. 그리고 약 4년후 1998년 10월 7급 공무원 시험에 응시했다가 떨어진[46] '이화여대생 졸업생 5명' 및 연세대 남성 장애학생 1명 #이 위헌 신청을 냈고 같은 해 12월에 위헌 판결을 얻어냈다.

17.3. ROTC 유치


여군학생군사교육단(ROTC)를 창설하게 되자 대부분의 여자대학교에서 ROTC 인가 신청을 했다. 숙명여자대학교성신여자대학교는 인가를 받아 ROTC를 창설했고, 남녀공학 대학에서도 여학생을 후보생으로 받았으나, 이화여대는 ROTC 인가 유치전에 실패했다.
타 대학들에 비해 학번 간ㆍ사제 간 서열문화가 유연한 편인 교내 정서가 군대 문화에 물들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ROTC에 대하여 교수진 및 높으신 분들이 처음부터 그다지 탐탁지 않아했다는 소문도 있다. 2010년 4년제 여대들이 모두 ROTC 유치 신청을 할 때 함께 신청했으나, 선정되기 위한 조건[47]을 충족시키지 않아 탈락, 2011년에는 신청하지 않았다. 애초에 학교가 ROTC를 유치할 생각이 없었던 듯. 그러나 2016년 2월 24일 ROTC 유치대학으로 최종 선정 되었다.
다만 일부 학생들의 반발이 있었다. 학교 측에서 총학, 학생들과의 의논 없이 멋대로 날치기 유치를 추진해, 재학생들의 대다수는 뉴스로 유치소식을 알게되었다. 최경희 총장 개인의 의지로 밀어붙였다는 얘기도 많다. 더구나 반전운동의 면모를 보였던 그동안의 행보에 정반대되는 터라, 학내에 군대문화가 진입한다는 사실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총학생회 반대 선언이 진행되었지만 ROTC 유치를 찬성하는 학생들의 반발로 철회되는 일도 있었다.관련 뉴스 부족한 기숙사 인원을 확충하기 위해 전임 김선욱 총장이 추진한 신축 기숙사를, 그대로 학군단에 갖다 바쳤다. 당장 2017년부터 후보생을 받게 될 경우, 이화여대 학군단은 학군 57기부터 임관시키게 된다.
그러나 이전에는 학생들 대다수가 반대했다는 근거없는 주장이 있었지만 사실이 아니다. 반대하는 학생도 많았지만 찬성하는 학생도 많았다.뉴스뉴스 총학생회가 반대 입장서를 철회한 것도 ROTC 유치에 찬성했던 학생들의 반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미래라이프대학 신설과 비교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우선적으로 학교측은 학군단을 유치해 30명이 입단했다. 탈북 새터민 출신도 있다고 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어쨌든 결국 학군단을 유치한 이후에는 학교에서 학군단을 강력히 지원하고 있다. 학군단 후보생에게 전액 장학금을 주고 신축 기숙사도 준다.

18. 출신 인물



역대 영부인을 가장 많이 배출한 학교이다. 이순자(의학, 중퇴), 손명순(약학), 이희호(이화여전 문과), 김윤옥(보건교육) 총 4명의 영부인이 이화여대 출신이다.

19. 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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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462A, R0 G70 B42, C100 M0 Y80 K50, Pantone 336C[2] 정유라 특혜에 반대하였으며, 국회 청문회에서 경찰이 학생과 충돌하는 영상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 인물. 2017년 5월 25일에 있었던 총장 선거(결선투표)에서 당선되었다. 교수, 직원, 학생, 동문이 참여한 '전(全) 구성원 직선제' 선거에서 김혜숙 교수를 지지한 학생 표는 9,835표 중 9,384표(!)였다.[3] 이대서울병원과 의과대학이 있는 곳[4] 졸업생 수현 배우(국제학 08)가 내레이션을 맡았다.[5] 梨花는 배꽃이란 뜻이다. women's가 아닌 womans를 쓰는데, 이는 설립자 Mary F. Scranton 여사와 단 1명의 여학생으로 시작하였기 때문이며, 또한 여성 한 사람 한 사람을 전인적 인격체로 존중한다는 뜻에서 그와 같은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문법적으로 맞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당시 영어에서는 Women's 뿐만 아니라 Woman's 역시 혼용되었다. (비슷한 예로 1957년 개교한 미국의 Texas Woman's University가 있다. 현재는 이름이 바뀜)[6] 일반적으로 하버드 대학교라 불리우는 Harvard College와의 교류가 아닌 Harvard Summer School이라는 일반인들과 고등학생들이 참여하는 여름학교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교환학생이 아닌 한국문화 체험 및 어학당을 겸하는 프로그램이다. https://www.summer.harvard.edu/study-abroad/seoul-south-korea[학교공식답변] A B : Q :Do academic accommodations transfer from Harvard College? A : Harvard College is separate from the Harvard Summer School; therefore, you will need to register with our Accessibility Services Office (ASO) to receive academic accommodations [7]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 당시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총학생회가 모여 처음으로 총학생회의 이름 앞에 자주, 민주, 민족, 해방 즉 자주-민주 민족해방 별명을 붙이게 된 것이였고, 각각 자주관악, 민주연세, 민족고대, 해방이화이였다. 민주화 이후에는 연세대학교가 '민주'를 '통일'로 바꾸어 '통일연세'가 되었고, 이 별명들을 합쳐 불러'자주통일 민족해방'이라는 오늘날에도 쓰이는 운동권의 표어가 완성되었다.[8] 이화라는 명칭은 당시 학당 근처에 흐드러지게 피곤 했던 배꽃의 이름을 땄다거나 이화정이라는 정자이름을 딴 것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9] '여성을 널리 구하는 집'이라는 의미. 보구-여관이 아니라 보구녀-관이다.[10] 이화여자고등학교,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팔렬중학교, 팔렬고등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예술학교인 예원학교서울예술고등학교도 본래 이화학원 소속이었으나, 두 학교는 1988년 이화학원에서 분리되어 따로 재단을 세웠다.[11] 이화여자대학교와 그 부속학교들인 이대부속유치원, 이대부속초등학교, 이대부중, 이대부고, 이대병설영란여중, 이대병설미디어고를 운영하고 있다.[12] 이화의 대학과의 목표는 선진국과 같은 수준의 대학교육을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화학당 대학과를 각 교파가 공동후원하는 기독교연합여자대학으로 성장시키려는 논의도 진행되었다. 그러나 한국인의 대학교육 기회를 제한하려는 일제 식민지교육정책으로 인해 대학이 아닌 전문학교 인가를 받게 되었다. [13] 現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유치원[14] 유치원 교사를 양성하기 위한 과정. 당시에는 유치원 교사를 양성하던 기관이 없었으며 현재의 초중고 교사에 해당하는 사범교육은 당시 보통학교(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들어가는 보통고등학교(현재의 중학교) 기관이었다.[15] 1946년도는 조선의 유일한 대학교였던 경성제국대학을 흡수한 서울대학교를 제외한 모든 전문학교들이 대거 대학으로 승격된 해였다. 당시 종합대학 1호 인가를 받기 위해 전문학교 간 상당한 눈치게임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인가 신청 몇년전부터 준비한 이화여자전문학교가 종합대학 1호로 승격되었다. [16] 여름방학 중에 외국인 학생과 해외동포 학생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단기 교육과정[17] Advanced Leadership Program Society[18] 교명을 이화여자대학교사범대학부속이화금란중학교ㆍ이화여자대학교사범대학부속이화금란고등학교로 개칭[19] Ewha Global Partnership Program[20] 2004년까지만 의예과 신입생 선발, 2005년부터 의예과 신입생 모집 중단.[21] 2008년까지만 법과대학 신입생 선발. 2009년부터 법과대학 신입생 모집 중단, 법학전문대학원 신입생 선발.[22] Ewha Global Empowerment Program[23] 실제로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는 강사님이 수업 중에 ㅎ대, ㄱ대, ㅇ대, ㄷ대 등의 강사비를 말씀해 주셨는데, 이대가 가장 많이 준다고 하셨다.[24] 고려대학교 남학생들이 몰려와 축제를 방해하고 학생회장을 폭행하는 사건이 있었다.##[25] 대학영어, 우리말과 글쓰기, 기독교와 세계, 나눔리더쉽, 제2외국어 등[26] 첨부한 영상 참고[27] 0학점이다 [28] 한 학기에 2번 가능.[29] 기본 1시간을 넘어간다.[30] 2개면 20점, 3개면 30점.[31]서울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모두 학부 과정은 아니고 대학원 과정. 물론 여성학과에서 개설하는 수업들을 학부생들이 자유롭게 들을 수는 있다.[32] 2010년대 초 정청래 의원이, 정계 내에서 이화여대 출신 정치인들끼리 서로 밀고 끌어주고 있다며 이대 학맥 카르텔을 폭로#할 당시 기준으로 여성가족부의 장관으로 임명되었던 6명의 전직 장관 중 4명이 이화여대 출신이기도 했던 점에서 엿볼 수 있는 대목. 물론 지금은 이를 의식한 모양인지 김금래 장관 이후의 장관부터는 이화여대 출신 대신 서울대나 성균관대, 경북대 등 비이대 출신들로 임명된다.[33] 하란사는 기혼이었지만, 교장 룰루 프라이에게 간곡히 매달린 끝에 예외적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34] 가정학과 입학 58년 만에 졸업한 할머니[35] 58년 만의 아줌마 신입생들, 첫 기혼 신입생 졸업.[36] 윌리엄 스크랜튼. 의사이며, 어머니 메리 스크랜튼과 함께 선교하러 한국에 왔다.[37] ex: 김신명숙이 유명한데, 그녀는 연세대학교 국문과 출신이다.[38] 일반적으로 하버드 대학교라 불리우는 Harvard College와의 교류가 아닌 Harvard Summer School이라는 일반인들과 고등학생들이 참여하는 여름학교이다.https://www.summer.harvard.edu/study-abroad/seoul-south-korea[39] 이를 사정 판결이라 하며, 행정소송의 특유한 판결 형태다.[40] "이화여대의 정체성의 핵심은 ‘여성 고등교육기관’이라는 점이고, 교육목표의 핵심은 여성지도자 양성에 있기 때문에 이화여대가 여대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것인지 여부는 대학의 자율성에 해당한다. 교육부가 이화여대의 모집요강을 인가한 것은 직업선택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 # [41] 사실 로스쿨은 가군 1개, 나군 1개, 총 2개의 로스쿨에 지원하는 것이므로 여학생들이 이대 로스쿨을 써주면 남학생 입장에서는 자기 경쟁자가 줄어들기 때문에 오히려 이득이다.[42] 이화여대 사범대에는 국어ㆍ영어ㆍ수학ㆍ사회ㆍ과학교육과 등 중등교사를 양성하는 학과 외에도 유아교육과, 초등교육과, 특수교육과 등도 두루 갖추어져 있다.[43] 단, 숙명여대의 경우 일반대학원에서 여성의 입학을 제한하고, 일부 특수대학원만 허용.[44] 당장 공대라서 남학생 숫자가 훨씬 많은 포항공과대학교조차, 이화여대와 학점교류를 하는 과목이 몇 개 있다.[45] 줄여서 지은 역이다.[46] 대체로는 장애인인 정강용 씨처럼 높은 성적을 받았는데도 군가산점제로 인하여 성적이 밀린 경우[47] 기숙사 설립, 운동장 리모델링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