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녕
1. 개요
이장녕은 일제강점기의 독립군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2. 생애
이장녕은 같은 독립운동가 이동녕과 같은 연안 이씨로 대단한 집안 출신으로, 육군무관학교를 졸업하고 장교로 복무하다 일제가 군대를 해산하자 1907년 11월 가족들을 이끌고 중국으로 망명한다.
3개월간의 이동 끝에 중국에 도착한 이장녕은 독립운동을 위해 기반을 다지기 시작했고, 이회영 등 동포들이 망명해오자 그들의 정착을 도와주었다. 또한 이회영과 함께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해 교관과 교장을 역임하면서 독립군 양성에 힘을 썼다.
1919년에는 서일, 김좌진, 조성환 등과 함께 북로군정서를 조직하고 참모장으로 활동, 단기속성 사관학교를 부속으로 세우고 이범석과 함께 교관을 맡기도 한다. 한편으로 서로군정서와 북로군정서와 긴밀한 관계를 맺을 때 주요한 역할을 했다.
청산리 전투 이후 전력을 보존한 독립군들은 밀산으로 이동하여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하고, 이동녕은 참모장, 총재에 서일, 부총재에 홍범도, 이장녕은 참모총장을 맡았다. 그러나 자유시 참변으로 독립군 세력이 큰 피해를 입자 중국으로 피신한다.
이장녕은 포기하지 않고 홍진, 신숙, 홍범도, 지청천 등과 함께 한국독립당을 조직하고 감찰을 맡고, 만주사변이 일어나 중일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한중 연합군을 조직하는 등 항일투쟁을 지속한다. 그러나 1932년 1월 24일 돌연 마적에게 자신과 일가족이 모두 살해당했다.
사후 공적이 인정되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된다.
3. 참고 자료
- 정상규 저. <잊혀진 영웅들, 독립운동가>. 휴먼큐브. 2017년. 53~5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