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구(태권도)
1. 개요
미국에 태권도를 처음으로 알린 한국인이다. 빌 클린턴의 태권도 교사를 맡기도 했다.
2. 생애
정작 한국인인데도 한국에서는 지명도가 높지 않지만, 인맥도 그렇고 태권도 8단의 무술 실력도 그렇고 여러 모로 대단한 인물임은 틀림 없다. 미국 내에서의 지명도는 한국보다 높았었다. 특히 이소룡이나 무하마드 알리,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같은 인물과도 친해서 이소룡이 가난했던 시절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또한 1976년 무하마드 알리의 방한을 성사시키기도 했는데, 사실 국내에 이 사람의 이름이 알려지게된 계기도 이 이벤트 때문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1] 그리고 2000년대 중반 들어서는 케이블에 가끔 나오던 선삼정 광고로 알게 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1968년 로스앤젤레스 해변에서 이준구 사범(오른쪽)이 이소룡에게 태권도 발차기를 시연했다.
1973년에는 골든 하베스트에서 제작한 무술영화 흑권(跆拳震九州)에서 주연으로 출연했는데, 아무래도 이소룡에게 태권도[2] 를 가르쳤다라는 네임 밸류가 있는지라 서울 개봉관 관객수 10만 동원을 하며 흥행몰이를 했다[3] 1980년에는 돌아온 용쟁호투라는 용쟁호투의 짝퉁인 무술영화에 출연했다.
3. 기타
- 월간 신동아 인터뷰에 의하면 미국에 이민을 가서 태권도 도장을 차릴 당시, 듣보잡이던 태권도를 비웃으며 이미 자리를 잡은 근처 가라테 도장 사범인 일본인이 도전해오기에 발차기 몇 방에 넉다운시켰다고 한다. 그 사범은 패배를 인정하곤 도장 문을 닫고 이사를 갔다고 한다. 그때는 확실히 가라테가 더 잘나갔고 오히려 태권도와 가라테가 서로 간의 교류를 통해서 홍보를 했지 적대적으로 대하지도 않았다. 또한 당시 가라테 도장들은 이전부터 일본에서 가라데문화를 전 세계에 보급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세계에 홍보하고 있는 시대여서 그냥 뜨내기 가라테 사범을 보낼리 만무했다.(특히 유도는 19세기때부터 미주에서 홍보하고 다녔다.)
- 이소룡이 한국식 김밥을 무척 좋아했다고 증언한 사람이 바로 이준구다. 이소룡과 그럭저럭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미국으로 이민와서 여러 잡일하면서 가난에 시달리던 이소룡이 배고픈데 밥값이 없으면 종종 찾아가서 이준구에게 밥을 얻어먹곤 했다고 한다.
- 무함마드 알리의 한국 방한을 주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 이전까지는 거의 미국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했기 때문에 알려지지 못했다.[2] 옆차기를 비롯한 (앞, 뒤)돌려차기만 배워갔다.[3] 물론 이준구의 네임밸류에만 의존한 게 아니다. 이 작품엔 모영이나 임정영, 홍금보, 황가달, 황인식 등 당시 골든 하베스트의 간판급들이 줄줄이 출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