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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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라바이 마드라사 유적의 정문
아랍어 واسط
영어 Wasit
이라크 동부에 위치한 중세 도시. 비록 현재는 한적한 마을이지만 8세기 이라크의 핵심 도시 중 하나였다. 702년에 당시 우마이야 왕조의 이라크 총독이었던 알 하자즈 이븐 유수프[1] (الحجاج بن يوسف)에 의해 이라크 남부를 제어하기 위한 군영 도시로 지어졌다. 와시트는 고대 수메르 인의 도시였던 카쉬카르의 강 건너편인 티그리스 강 서안에 위치하였다.
페르시아 어로 와시트는 '중간' 이라는 뜻인데, 셀레우키아외 크테시폰, 그리고 바그다드가 위치한 메소포타미아의 중심부와 항구 역할을 하던 강 하류의 바스라의 중간에 위치하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9세기까지도 큰 규모를 유지하던 와시트는 886년경에 흑인 노예 반란인 잔즈 반란 시에 그들에게 함락당하기도 하였다.
이후로도 중소 도시로서 기능하던 와시트는 중세 후반기에 티그리스 강의 진로가 바뀌며 쇠퇴하였고, 16세기 이후 버려져 현재에 이른다. 비록 도시는 유적이 되어 사라졌지만 지역 이름으로 남아 유적 일대를 포함한 와시트 주가 있으며, 도시 유적은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유산에 올라가있는 상태이다.
샤라바이 마드라사 유적의 정문
1. 개요
아랍어 واسط
영어 Wasit
이라크 동부에 위치한 중세 도시. 비록 현재는 한적한 마을이지만 8세기 이라크의 핵심 도시 중 하나였다. 702년에 당시 우마이야 왕조의 이라크 총독이었던 알 하자즈 이븐 유수프[1] (الحجاج بن يوسف)에 의해 이라크 남부를 제어하기 위한 군영 도시로 지어졌다. 와시트는 고대 수메르 인의 도시였던 카쉬카르의 강 건너편인 티그리스 강 서안에 위치하였다.
페르시아 어로 와시트는 '중간' 이라는 뜻인데, 셀레우키아외 크테시폰, 그리고 바그다드가 위치한 메소포타미아의 중심부와 항구 역할을 하던 강 하류의 바스라의 중간에 위치하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9세기까지도 큰 규모를 유지하던 와시트는 886년경에 흑인 노예 반란인 잔즈 반란 시에 그들에게 함락당하기도 하였다.
이후로도 중소 도시로서 기능하던 와시트는 중세 후반기에 티그리스 강의 진로가 바뀌며 쇠퇴하였고, 16세기 이후 버려져 현재에 이른다. 비록 도시는 유적이 되어 사라졌지만 지역 이름으로 남아 유적 일대를 포함한 와시트 주가 있으며, 도시 유적은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유산에 올라가있는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