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민
1. 臧旻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인물. 장홍의 아버지.
서주의 종사로 벼슬을 시작하고 사도부에 벽소되었으며, 노노령에 임명되었다가 양주자사에 임명되었다. 172년에 허창, 허소#s-2 등이 회계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174년 11월에 단양태수 진인과 함께 이들을 토벌했으며, 이 때 손견이 군사마로 참전해서 장민이 구체적인 공적을 열거해 올리면서 손견이 염독승에 오르게 되었다.
또 육강을 무재로 천거하기도 했고 단양태수, 흉노중랑장 등을 역임했으며, 177년 8월에는 흉노중랑장을 지내면서 전안, 하육 등과 길을 나누면서 장민은 도특약시축취와 함께 안문으로 나아갔다. 전안, 하육 등과 함께 선비족을 공격했다가 단석괴가 부중을 이끌고 공격하자 패했으며, 패한 것으로 인해 감옥에 갇혔다가 돈을 내고 풀려나 평민이 되었다.
적을 토벌하는 것에 공을 세워 의랑에 임명되었다가 원봉이 서역의 사정에 대해 묻자 서역의 국가에 대해 이야기해 원봉이 반고의 서역전보다 더 잘 알겠다고 감탄했으며, 이후 장수교위, 중산태수, 태원태수를 지냈다.
1.1. 창작물에서
소설 삼국지 풍운을 삼키다에서는 도특약시축취가 선비족 원정을 하는 것에 대해 물러날 것을 권유하고 이에 동감해 전안, 하육에게 물러나라는 서신을 보냈으며, 전안, 하육이 거부하고 패배할 경우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려는 것을 간파해 어쩔 수 없이 선비족을 공격하러 간다. 선비족과 조우하기 전에 흙먼지 떼를 보고 정찰병을 시켜 조사해 가축 떼인 것을 알고 병사들에게 수상하다면서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남흉노의 병사들이 몰래 이탈해 가축떼를 끌고 왔으며, 이로 인해 전열이 어지러워지자 장민은 대열을 이탈하는 병사를 죽이라는 군령을 내리고가축 떼는 화살로 쏴 죽이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가축 떼에 숨어있던 선비족 3천 기병의 공격을 받고 패했으며, 전안이 패한 소식을 듣고 퇴각하기로 결정해 퇴각하면서도 선비족의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는다.
2. 張旻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인물.
사섭 휘하에서 관리를 지내고 조정에서 교지태수와 함께 수남중랑장에 임명하자 장민은 사섭의 명으로 조정으로 가서 공납품을 바치고 천자를 알현했으며, 이 당시 천하가 매우 혼란스워 길이 끊어졌음에도 사섭이 공납품을 바치는 일을 멈추지 않아서 조정에서는 조서를 내려 사섭을 안원장군을 제수하고 용도정후로 봉했다.
2.1. 창작물에서
소설 삼국지 - 초패왕 항우의 토벌기에서 항우의 아들인 왕호가 이끄는 초군이 사섭군을 공격하자 상병 부대를 이끌고 선봉이 되어 맞서 싸웠으며, 사섭군이 노식, 주태 등을 물리친 상황에서 기세가 등등했고 보급대가 왕호의 매복에 걸리자 병사들이 혼란한 상황에서 독려했다.
그러나 화공으로 코끼리가 고통스러워하면서 옆으로 쓰러져 뒹굴자 이것이 어찌된 일이냐면서 혼란에 빠졌으며, 이어서 투척용 창으로 상병들이 모두 살해당하자 도망가다가 초국의 장수인 번국의 창에 죽었다.
토탈 워: 삼국에서는 사섭 휘하의 초기 장수로 186년부터 임관한 것으로 되어있고, 190년 시점의 나이는 43세.
유형은 모사, 칭호는 책사, 특성은 불충함, 엄격함, 교묘함, 능력치는 최대 200을 기준으로 전문성 47, 결의 45, 책략 79, 본능 48, 권위 47.
소설 난세의 별에서는 단양군 고장현 사람으로 주인공 사인의 학문 스승이고 사섭의 주부로 있으면서 높은 학문과 많은 재주로 사섭이 중용했다고 하며, 사흠이 사인의 무예 스승을 구하기 위해 상의하자 주치를 소개했다.
사인이 학문을 빠르게 익히자 스승의 자리에서 물러났고 사인이 서주에서 장소를 만나 제자로 청하길 요청하자 함께 장소에게 사인을 가르쳐주길 요청했다가 사인, 장소와 사우의 관계를 맺는다.
3. 홍콩의 영화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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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敏 (Zhang Min표준어, Cheung Man광동어)
Sharla Cheung
출생: 1968년 2월 7일 중국 상해시
1988년 미스 홍콩 출신의 배우. <여걸풍운>으로 데뷔를 달성했다. 홍콩 10대 여우주연상 수상. 1988년 ~ 1995년 사이 7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주로 주성치 영화의 히로인으로 등장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 연예계 활동은 그만두고 상해에서 미용실 경영, 가라오케, 옷집 등의 여러 사업을 벌였으나 크게 성공하진 못했다고 한다.
4. 스페인의 모델
스페인과 대한민국 혼혈 모델.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 참고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