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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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2.1. 첼리스트로서
2.2. 지휘자로서
3. 기타


1. 개요


한국의 클래식 음악인. 사라 장(한국명 장영주)과 더불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2세대 주자의 대표적인 인물이다.[1]
본래 첼리스트로서 명성을 얻었지만, 30대에 들어선 2010년대부터는 지휘자로서의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약 11살 때부터 미국에서 자랐으며 미국 영주권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

2. 상세



2.1. 첼리스트로서


1982년 12월, 경기도 수원시에서 태어났다.[2] 3세 때인 1985년 피아노를 배우면서 음악을 시작했지만, 3년 후 첼로로 바꾸었다. 이를 두고 장한나는 "피아노는 너무 커서 가지고 다닐 수도 없으며 페달을 밟고 싶을 때 밟을 수도 없었다. 이건 내 악기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고 회고했다.
첼로 공부를 시작한 지 4년만인 만 10세때 1992년 <월간음악>이 주최한 전국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며 처음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듬해 11살 때부터 미국 뉴욕의 명문 연주학교 줄리어드 음대에 특별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무릎팍도사에서 장한나의 재능을 위해 부모님이 미국으로 이민가셨다고 언급했다. 이례적으로 비디오 오디션으로 합격했다고 한다. 1년만인 1994년 제5회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첼로 콩쿠르에서도 최우수상을 차지하여 국제적으로도 알려지기 시작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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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로포비치와 함께)
1995년에는 영국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통해 데뷔 앨범을 제작했고, 같은 시기에 역시 세계적인 첼로 거장 미샤 마이스키를 사사했다. 1997년부터는 미국, 유럽, 일본 등 세계 유수의 관현악단과 차례로 협연하며 일약 세계적인 연주자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장한나의 데뷔 초기 영상. 곡명은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 C장조>

비교적 근래의 연주 영상. 곡명은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중 '백조'

2.2. 지휘자로서


2001년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하고, 꾸준히 성공적인 첼로 연주자로서 명성을 이어갔는데, 2007년 지휘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지휘자로서의 스승은 뉴욕 필하모닉의 지휘자로 유명한 로린 마젤. 지휘자로 입문한 계기에 대해서는 "첼로로 연주할 수 있는 곡의 수는 제한되어 있다. 나는 더 많은 음악들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해보고 싶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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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린 제1회 성남 국제 청소년 관현악 축제의 마지막 날 연주를 통해, 지휘자로서 첫 공식 데뷔했다. 2년 후인 2009년부터는 매년 여름, 성남아트센터에서 청소년들로 구성된 관현악단이 연주하는 <앱솔루트 클래식> 페스티벌을 지휘했다.[4]

2014년 9월 BBC 프롬즈에서 카타르 필을 지휘하는 모습. 곡명은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제5번 E단조>
2013년 카타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취임하고, 이듬해에는 영국 BBC 프롬즈에도 초청받는 등 지휘자로서도 순풍을 타는 듯 했지만... 프롬즈 기간 중인 2014년 9월에 돌연 사임했다.[5] 이후의 행적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유럽의 몇몇 관현악단에서 객원 지휘자로 활동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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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노르웨이의 트론헤임 관현악단의 2017-18 시즌 상임 지휘자 겸 음악감독이 되었다.[6] 이로써 카타르 필 사임 이후, 한동안 불안한 모습을 보였던 지휘자로서의 경력에 다시 활력을 얻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리고 2018년 말 2022-23 시즌까지 계약을 연장하기로 했다#.
2019년 11월 13일 예술의 전당에서 트론헤임 관현악단을 이끌고 연주회를 가졌다. 노르웨이의 관현악단임을 반영한 듯, 노르웨이가 자랑하는 대작곡가 그리그의 곡을 중심으로 공연이 이루어졌고, 차이코프스키의 6번 교향곡 비창도 연주되었다. 이날 피아니스트 임동혁도 협연자로 나섰다. 14일과 16일에는 부산, 대구에서도 연주를 가졌다.

앙코르 곡인 그리그 페르귄트 모음곡 중 '산 속 마왕의 궁전' 연주 모습.
장한나가 지휘한 트론헤임 관현악단의 연주는 그녀를 스타 연주자로만 기억해 온 여러 음악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7] 또한 아직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 출신의 여성 지휘자가 성시연, 김은선[8] 등 소수에 불과한 상황에서, 장한나의 지휘자 활동이 음악계뿐만 아니라 타 분야에서도 여성의 진출 확대를 촉진하는 모범적 사례가 될 것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http://www.mediapia.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593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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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MBC무릎팍도사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때 특유의 웃음 소리가 등장하였다. 이를 두고 영화 <아마데우스>에 나오는 모차르트의 웃음소리를 연상시킨다는 평도 있었다.
여기서 장한나는 지휘에 입문한 계기부터 시작해서 강호동과 유세윤 올밴 셋을 전부 앉혀놓고 비트박스(...)로[9] 지휘에 쓰는 악보 보는 법을 알려줘가며 연주자로 음악을 보는 시각과 지휘자로서 음악을 보는 시각의 차이를 일반인들도 알기 쉽도록 쉽고 재미있게 설명했다.

[1] 여기서 1세대는 정경화, 정명훈, 백건우 등 20세기 중후반을 중심으로 활동한 이들을 뜻함. 조성진(피아니스트), 손열음, 클라라 주미 강 등은 3세대로 분류 가능할 듯.[2] 외할아버지는 지리학자 서무송 선생이고 어머니는 수원 동원고 음악교사였다.[3] 본 대회의 주최자이기도 한 첼로계의 거장 로스트로포비치는 당시 장한나의 연주를 두고 "첼로가 혼자서 걸어나오는 줄 알았다."고 감탄했다. 두 사람은 로스트로포비치가 2007년 타계할 때까지 돈독한 사제 관계를 지속했다.[4] 다만 카타르 필에서 사임한 직후인 2015년부터 중단되었다.[5] 공식적인 사임 이유는 "음악과 운영상의 견해 차이"를 내세웠지만, 지휘자로서의 은사 로린 마젤이 타계한 지 2개월 후의 일이라서 구설수에 올랐다. 다시 말해 '로린 마젤의 후광이 사라지고 나니, 지휘자로서의 입지가 약화된 것 아니냐'는 이야기.[6] 1909년에 창단된 오랜 전통의 관현악단이며, 장한나는 2013-14 시즌에 객원 지휘자로 처음 인연을 맺었다.[7] 앞서 2010년대 초반의 앱솔루트 클래식 활동이 있었지만, 경기도 성남이라는 특정 지역에서 매년 여름에만 한시적으로 활동했다는 한계가 있었다. 또한 장한나가 기성 관현악단의 수장으로서 지휘봉을 잡고 국내 청중들 앞에 선 것은 분명 이번 연주가 처음이었다. 때문에 국내 음악팬들에게는 이번이 지휘자로서 장한나를 접한 사실상의 첫 기회였다.[8] 1980년생으로 유럽 유수의 오페라단에서 지휘해 명성을 쌓았다. 2019년 12월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페라단 최초의 여성 음악감독으로 계약해 화제를 모았다.[9] 힙합 래퍼들이 하는 본격적인 비트박스가 아니라 그냥 악기가 없으니까 쿵치기 박치기로 지휘에 쓰는 총보를 설명한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