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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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명의 황제라고 전하는 인물. 만약 실존 인물이었고 실제로 명나라 황제를 자칭했다면 남명의 마지막 황제가 되겠지만, 죄유록(罪惟錄) 등에 전하는 야사에 가까운 기록밖에 없어서 실재 여부를 의심하는 학자가 많다. 일각에서는 한왕(韓王) 주송(朱松)의 후손인 주단척(朱亶塉)이나 주경률(朱璟溧)과 동일인물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기록에 따르면 묘호는 평종(平宗), 시호는 규천현도지인정신덕문분무정숙돈강원황제(揆天顯道知仁貞信德文奮武靖肅敦康元皇帝)이다. 휘는 본현(本鉉). 연호가 정무(定武)라 정무제(定武帝)라고 부른다. 홍무제의 20남 한왕(韓王) 주송(朱松)의 자손으로 한단왕(韓端王) 주낭기(朱朗錡)의 증손자라고 한다.
야사 속 인물이라 자세한 계보는커녕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누구인지조차 전하지 않는다.
2. 생애
1646년, 남명의 융무제가 명나라 황제라고 주장하며 재위하던 시기에 학영충(郝永忠)이 주본현을 명나라 황제로 옹립했고, 주본현은 그해를 정무(定武) 원년으로 정했다고 한다. 즉, 이 기록이 사실이라면 남명은 융무제나 영력제의 남명, 주이해의 남명과 정무제의 남명이 따로 있었던 셈이다.
1662년, 영력제 주유랑이 청나라 장수 오삼계의 손으로 미얀마에서 피살된 뒤에도, 여전히 정무제의 남명은 중국 본토에서 남명 조정을 이끌었다고 한다. 이 부분도 주본현이 실존 인물인지 불명확한 점과 맞물려 더욱 역사적 사실성을 의심케 하는 점이다. 이미 청나라 군대가 중국 본토를 거의 점령하여 영력제마저 미얀마로 피신했다가 죽은 판에, 중국 본토에서 버텼다면서도 기록이 이리 없을 수 있을까? 만약 사실이라면 청나라 인물들이 쓴 기록에도 자주 언급되어야 자연스러운데 그렇지 않다.
1663년에 정무제가 사천 무산에서 오삼계에게 대패했고 1664년, 후계자를 남기지 못하고 사망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무제는 실존 인물이기는 한지 의심받는 야사에 가까운 인물이고, 남명 역시 영력제를 마지막 황제로 치는 것이 일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