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호(농구)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농구선수. 한국의 스테판 마버리를 꿈꿔왔으나 프로에서 재능에 꽃을 피우지 못한 케이스이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비운의 유망주 선수였다.
2. 아마추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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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초등학교 시절 모든 운동이 취미였던 그는 우연히 농구를 선택했다. 군산고등학교 시절 저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출전해 매 대회에서 팀을 이끈 에이스 중 한명이었으며 2000 회장기배 전국 고교농구 대회에서 우승으로 이끌고 MVP에 발탁되어 농구계의 주목을 받았다. 또 2000년 말레이시아에서 개최된 제16회 FIBA U-18 대회에 방성윤, , 김일두, 김학섭 등과 함께 청소년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4강에 올리기도 했다.
다른 학교의 스카우트 제의도 있었지만 최부영 감독이 지휘하고 있는 경희대학교에 진학해 군산초등학교 때부터 같이 지냈던 1년차 후배 이현민과 함께 주전으로 뛰었다. 특히 2003년 7월에 개최된 전국종별농구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조성민이 이끈 한양대학교를 꺾고 모교를 33년만에 정상 탈환했다.
3.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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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KBL 드래프트에서 전체 5순위로 전자랜드의 유니폼을 입은 정재호는 최명도와 김태진을 제치고 주전 선발로 뛰었으며 이후에도 꾸준히 출전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시즌 도중에 의사 소통 부족과 성적 부진으로 사임한 제이 험프리스 감독, 선수들과의 갈등으로 인해 포인트가드의 이미지만 내려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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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리 벤슨과 안드레 브라운을 바꾸는 과정에서 상무에서 제대한 박지현을 내주고 2006-2007 시즌을 앞두고 1차 지명권 양도 합의에 따라 오리온스로 트레이드되었으며 허리 부상으로 출전이 불가피해진 김승현의 빈자리를 메웠고, 모든 가드 포지션을 오가며 평균 8.6득점에 3점슛 성공률 45.7%를 기록하는 등 공격형 가드로서의 면모를 충실히 보여주었다.[1][2]
2007-2008 시즌에는 부상 결장으로 다소 부진이 있었으나 평균 23분을 출전하고도 8.3득점에 3.7어시스트를 마크하며 무난한 맹활약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시즌 도중에 트레이드 마감시일을 앞두고 3:3 트레이드로 친정팀 전자랜드에 복귀했다.[3]
그러나 상무 입대에 실패한 뒤 2년동안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를 마치고 2010~2011시즌 오리온스로 돌아왔지만 체중이 급격히 불어나 몸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고 입대하기 전의 몸놀림은 이미 사라져 버린데다 잦은 부상까지 겹치면서 고작 10경기만 출전한 것이 전부였다. 결국 팀에서 방출된 정재호는 선수생활에 조용히 마침표를 찍었다.
현재는 어린이들을 위한 농구교실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