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규

 

'''전정규의 수상 및 영예 '''
[ 펼치기 · 접기 ]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반지'''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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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전정규
'''생년월일'''
1983년 10월 14일 (40세)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경기도 오산시
'''출신학교'''
광주고등학교 - 연세대학교
'''종교'''
원불교#
'''포지션'''
슈팅 가드, 스몰 포워드
'''신체 사이즈'''
187cm, 86kg[1]
'''프로입단'''
'''2006년 드래프트 1 라운드 1 순위'''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
'''소속팀'''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 (2006~2008.1)
'''대구/고양 오리온스/오리온 오리온스 (2008~2009, 2010~2018)'''
'''등번호'''
8, 7
1. 개요
2. 선수 생활
3. 3대3 프리미어리그로 현역 복귀
4. 기타
5. 관련 문서


1. 개요


한국의 前 프로농구 선수이며 가드와 포워드를 맡았다. KBL이 출범한 이래 김동우, 박성진등과 함께 1픽임에도 아마추어에서의 기대에 비해 프로에서 특별히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선수였다.

2. 선수 생활



2.1. 아마추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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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고등학교 시절에는 그렇게까지 기대를 받는 선수는 아니었다. 오산 출신임에도 광주시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이후 연세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슛 기복이 덜한 안정감있는 정교한 슈터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2004년 무렵에는 농구대잔치에서 MVP를 수상하기도 했고, 게다가 연세대의 캡틴으로서 양희종이나 김태술등의 선수들을 이끌면서 연세대가 연전 연승을 해나가는데 공헌을 했고, 그 덕에 리더십까지 인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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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졸업반에 다다를 무렵 인재의 풀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던 06드래프트에서 자연히 안정감 있는 슈터였던 전정규는 단연 드래프트의 최대어로 주목받았다. 결국 당시 리빌딩을 통해 슈터를 보강하고자 했던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에서 그를 1순위로 지명했고 그의 프로생활이 시작되었다.

2.2.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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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에서도 그의 활약을 기대한 팬들은 그가 안정감 있는 슈터로 성장하기를 바랬다. 그러나 그런 기대와 달리 전정규는 당시 2%가 부족한 활약을 보였는데, 조우현이나 정선규 포지션에 비슷한 롤을 가진 선수들이 많았고 자신도 프로의 부담 속에서 공수에서 큰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그래도 초년병 시절에는 신인왕 후보로 경합을 했으나, 결국 당시 2위를 했던 창원 LG 세이커스의 신인 가드 이현민이 신인왕을 수상하였다. 그러나 다음 시즌에도 성장세에서 더딘모습을 보이고, 약점으로 지적되던 수비 마저 성장하지 않은데다, 신인으로 정영삼을 지명했고, 조우현김성철마저 FA로 팀에 합류하면서, 전정규의 팀내에서의 입지는 자연히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전정규는 2008년 1월백주익, 카멜로 리와 묶여서 3:3 트레이드로 대구 오리온스로 팀을 옮겼다. 이 때 트레이드를 통해 전자랜드로 옮긴 선수는 주태수리온 트리밍햄, 정재호였는데 이 때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에서 수문장 역할을 해주는 주태수를 영입했기 때문에 전정규를 크게 아쉬워 하지는 않았다.

2.3. 대구/고양 오리온스 시절


당시 높이가 낮았던 오리온스였지만, 공격에 속도를 높이고 김병철을 보조해줄 슈터를 필요로 하는 오리온스였기에 전정규가 활약할 수 있었고, 트레이드 후에는 좋은 활약을 보였다. 이런 나쁘지 않은 활약으로 방성윤이규섭의 부재를 틈타서, 베이징 올림픽에 슈터로 합류했다. 회의적인 시선을 보였지만 캐나다 전에서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이면서 가능성을 선보였다. 그러나 2008-2009 시즌에도 그렇게 인상적인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발전에서 더딘 모습을 보였고, 결국 그 시즌이 끝난 후 상무에 입대했다.
상무에서 전역한 2010-2011시즌 이후 연고지와 팀의 이름이 바뀐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에서 새로운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좋은 활약을 기대한 오리온스 팬들이었지만, 결국 수비에서도 구멍이 되어버리고, 공격에서도 느린 스피드로 인해 팀의 공격전개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고, 오픈찬스에서도 기복있는 슈팅을 보인데다, 이타적인 플레이가 부족하고 파이팅이 부족한 전정규였기 때문에 부진한 오리온스의 성적과 맞물려서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2012-2013 시즌에도 이렇게 기복있는 슈팅을 보여주었던 전정규이지만, 플레이오프 싸움이 치열한 2~3월달에 좋은 슈팅능력을 선보이면서 오리온스가 6시즌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데 나름대로 공헌했다. 이로 인해서 얻은 별명은 '''전대만'''. 그리고 2013-2014시즌 현재에도 추일승감독의 신임 아래에서 많은 시간 동안 출장중이지만 여전히 기복있는 슈팅 능력과 수비에서 OME수준의 구멍을 선보이며 오리온스 팬들에게 바가지로 욕을 먹고있고, 덤으로 KBL 팬들의 삐뚤어진 애정(?)을 여전히 받고 있다.. 그러다 허일영의 가세로 출장 기회가 줄어들다 못해 비중이 별로 없어졌다. 결국 2018년 5월 15일에 협상이 결렬되어 FA 시장에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5월 28일, 11년간의 현역 생활을 마무리지었다.

3. 3대3 프리미어리그로 현역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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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15일, 선수생활을 마감한 지 1개월 만에 3X3선수로 현역 복귀해 PEC팀에 입단하게 되었다.

4. 기타


  • 전체년도 1픽에 지명된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미흡한 활약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김동우박성진등과 최악의 1픽을 고르라고 하면 언급되는 선수 중 하나이다. 주요 별명은 전대만인데, 잘할때는 3점슛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고, 못할 때는 3점 슛밖에 없다고 까인다(...). 또한 다른 별명은 정규이다. 추일승 감독이 양아들처럼 기용한다며 불리는 별명이다.
  • 또 하나의 별명으로는 플레이스타일에서 유래된 시즈모드가 있는데, 캐치 앤 샷의 비중이 매우 높고 그 슛이 매우 정확하기 때문이다.
  •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는데 원불교 신자이기도 하다.

5.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