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민(농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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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때 부산 kt 소닉붐의 프랜차이즈 스타였고, 현재는 창원 LG 세이커스에서 뛰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급 가드. 본래 유명한 선수는 아니었지만, 노력으로 오늘날 한국 남자 농구를 대표하는 가드로 성장했다. 물론, 과거 허재같은 특급 슈팅 가드로 성장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실력이 급상승하며, KBL을 대표하는 선수가 된 것임에는 분명. 별명은 '''조선의 슈터''', [2]
2. 커리어
2.1. 아마추어 시절
전주고등학교 출신으로 동기인 김학섭과 함께 한양대학교에 들어갔다. 한양대 야구부는 몰라도 한양대 농구부는 조성민이 들어갔을 당시에도 구타가 횡행했는데, 아예 감독이 대놓고 구타하던 시절이니 말 다했다(…).[3] 김학섭이 이를 못 버티고 자주 소풍[4] 을 나간 것과 달리 조성민은 끝까지 버티면서 고교 시절 자기보다 평가가 더 높았던 김학섭을 제치고 대학 무대에서 주목받는 선수로 성장한다.[5] 비록 드래프트에서는 김학섭이 재능을 인정받아 4순위로 모비스에 들어가고, 자신은 8순위로 KTF(現 kt)에 들어가지만, 오늘날의 위상을 생각하면...[6]
2.2. 부산 KTF 매직윙스/부산 KT 소닉붐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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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시절 전지훈련에서 활약하며 추일승 감독의 눈에 들었는데, 그만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비극을 당하면서 신인 시절에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 하면서 그리 좋은 성적은 내지 못했다. 결국 신인 시즌을 마치자마자 바로 군에 입대했는데, 상무에서 뛰면서 실력을 향상시켜 제대하자마자 kt의 주전 가드로 도약하기에 이른다.
사실 이때까지는 kt가 비인기팀인데다가 스텟이 특출나지 않았기 때문에 조성민은 그냥 나쁘지 않은 선수로 인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게 된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은메달을 수상한 일이다. 애초에 처음 명단에 뽑히지도 못했다가 추가로 선발되었다가 경쟁 후 최종선발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는 문경은 이후 국가대표 슈터부재가 꾸준히 지적되는 상황. 그리고 조성민에게 그것을 바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실제 아시안 게임에서도 슈터로 선발된 다른 인원(이규섭, 김성철)들이 몰텐공에 적응을 못하며 전원 부진에 빠졌었다. 하지만 반대로 조성민은 50%이상의 3점 성공률을 보여주며 가드진에서 양동근과 함께 유이하게 제 몫을 해주었다. 조성민의 임팩트는 매우 컸고 조성민의 위상이 상승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로는 국가대표에 주전은 아닐지언정 항상 선발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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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 게임을 바탕으로 상승세를 탄 조성민은 kt 전창진 감독의 모션오펜스의 주축이 되면서 주전 슈팅 가드로 맹활약했다. 특히 kt가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한 2010-11 시즌에는 평균 13.8득점을 기록하며 팀 공격의 주축이 되기도. 비록 MVP는 팀 동료 박상오에게 돌아갔지만, 실질적인 MVP는 조성민이라는 의견이 많았을 정도.(이도 사실 2위를 차지한 전자랜드의 문태종이 MVP여야 한다는 여론이 가장 많았었다.) 역시 국가대표에도 선발되었다. 하지만 이때는 체격조건과 운동능력이 뛰어나며 수비력이 좋은 강병현이 주전으로 뛰며 중용받지 못했으나 2012 런던 올림픽 최종 예선 티켓이 걸린 필리핀과의 3,4위전에서 미친 득점력을 보여주며 역전승의 주역이 되어 최종 예선 티켓을 가져오는데 이바지했다.
2011-12 시즌에도 평균 13.62점을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이어갔다.
2012-13 시즌에도 꾸준한 국가대표급 슈팅가드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보수총액 4억7천만원에 5년 계약을 맺었다.
2013-14 시즌 개막 전까지 kt의 로스터가 상당히 약하다는 평이 주류를 이루었고 조성민 하나만 막으면 끝이라는 평가와 함께 대부분의 매체에서 6강 탈락을 예측했다. 주전 포인트 가드인 김현중이 부진했던데다가 이후에 주전이 된 김우람이 득점력은 좋으나 리딩이 약한 가드였기 때문에 조성민이 리딩에 치중할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전시간(32분), 득점(15점)에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며 kt를 이끌었다. 한 때 정규시즌 MVP로도 거론되었지만, 페이스가 떨어지면서 멀어졌다는 느낌이 강해졌다. 팀은 6강 PO 진출을 했고 4강까지 진출했지만 LG에게 스윕을 당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MVP는 문태종에게 돌아갔지만 MVP투표 2위였고 이성구 페어플레이상을 받으면서 자존심을 챙겼다.
2013-14 시즌 2013년 12월 1일 사직실내체육관에서 열린 SK와의 홈경기에서 3점슛 10개를 넣었다. 발만 맞으면 여지 없이 들어간다.
자유투 성공률이 매우 높은 선수로 늘 리그에서 자유투 성공률 최상위권에 랭크되고 있다. 2014년 1월 29일에는 KBL 자유투 연속성공 신기록 56개를 달성했다. 기존 기록은 문경은이 현역 시절에 기록한 52개.
2014 농구 월드컵 한국 대표로 뽑혀서 슈팅가드로 뛰었다. 하지만 세계의 벽은 높았고 조성민 역시 부진했다. 그 후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로도 뛰었고 꾸준히 제몫을 해주면서 한국 남자농구 금메달 획득에 일조 하였다. 조성민은 국가대표일원 중에 가장 많은 시간을 뛰었고 평균 득점도 문태종에 이어 2위였다. 조성민은 아시안 게임에서는 확실히 제몫을 했다. 아시안 게임에 2회 출전하여 금메달 1회, 은메달 1회를 수상하며 대한민국 국가대표 농구선수로서 최고는 아닐지언정 충분히 인정 받을만한 커리어를 쌓았다. 그런데 국가대표를 뛰면서 무릎이 망가졌고 시즌이 시작되기 전 무릎 수술을 해야 된다는 진단을 받아 8-10주정도 재활이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와 kt팬들과 전창진 감독에게 충격을 주었다. kt의 중심은 조성민인데 8-10주동안 재활이 필요하면 사실상 시즌 중후반이나 제대로 뛸 수 있다는 것이다.
2014-15 시즌 kt는 조성민 없이 시즌을 시작하였고 8연패를 기록하며 바닥을 쳤다. 그래도 조성민은 생각보다 빠른 회복력을 보이며 수술후 재활과정을 포함해 거의 2달만인 12월 3일 삼성전에서 복귀를 하였다. 부상 후유증이 염려되었지만, 17분 동안 19득점을 폭발시키며 왜 자신이 현 KBL 최고의 슈팅가드인지를 증명함과 동시에 몸상태에 대한 우려를 날려버렸다. 체력적인 부분의 준비가 더 필요하지만 클래스는 여전하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 그 뒤로 기복이 있는 플레이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그래도 실력있는 슛터라는걸 입증하였다. 하지만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체력이 부치는지 잘할때는 잘하지만 기복이 심해졌고 플랍횟수가 늘어나며 이미지까지 안좋아지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kt는 6강 PO진출에 실패하며 조성민이 몸을 더 만들고 천천히 복귀했어야 했다는 팬들의 이야기에 힘이 실리는 상황이되고 있다.
12월 24일 동부와의 경기에서 윤호영과 신경전을 벌였는데 그와중에 윤호영이 조성민에게 머리로 들이 받는 하극상을 벌였고 조성민은 경기가 끝나고 동부 벤치를 찾아가 사과했으나 윤호영은 조성민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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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2016 시즌 조동현 감독의 부임과 함께 2016-2017 시즌에는 팀의 주장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어깨부상을 당하면서 팀에 공헌하지 못했으며 KT는 최하위까지 추락했다.
2.3. 창원 LG 세이커스로 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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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31일 창원 LG 세이커스로 전격 이적했다. 관련기사 트레이드 상대는 김영환+내년 드래프트 1차 지명권.[7]
조성민 선수 본인은 큰 충격에 빠졌고 kt 팬들도 충격을 받으면서 구단에 원망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KTF-kt의 11년 프랜차이즈 스타가 결국 꿈꾸었던 KT의 KBL 챔피언과 영구결번을 보지 못한 채 트레이드 되고 말았다.
팬들 사이에서 조동현 감독과 상극이라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돌았지만, 수년간 팀의 주포로 자리를 지켜온 KTF-kt의 10년을 함께했던 프랜차이즈 스타를 트레이드한 처사에 반발도 적지 않다. 기사에는 샐러리캡 비우기용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지만, 조성민의 연봉이 4억 7천인데 김영환의 연봉이 5억이라서 이도 맞지 않는 상황. 허훈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흉작이 예상되는 내년 지명권을 받아온 것도 문제라면 문제.
조성민 선수 본인도 kt 구단 관계자 및 선수단의 위로와 LG 김진 감독의 조언과 함께 빠르게 추스리기 시작했다.
부상직전 까지 상무에서 전역한 김시래와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대표팀 시절 후배였던 김종규와의 호흡을 통해 LG 팬들의 기대를 가지게 했다.
하지만, 부상을 다시 당하면서 순탄치 않은 길을 또 가게 된다.
KT 시절부터 이어진 어깨부상을 LG 이적 이후 또 다치면서 16-17 시즌 막판을 함께하지 못했다.
정작 트레이드 이후 평가는 LG에서 4년반 동안 주장을 맡으면서 김진의 분신과 같았던 김영환이 kt로 가서 젊은 선수단 위주인 팀에서 상당히 준수한 모습을 보이며 팀에 완벽하게 융화되기도 했다.
결국, LG는 프런트 주도와 김진 감독의 계약만료 시즌 팀 주축들의 부상문제로 인해 결국 봄 농구 진줄에 실패하면서 평가가 많이 미묘해졌다. 여기에 차기 시즌 1차 드래프트 지명권까지 퍼주었으니, LG 프런트는 그것도 KBL에서 비교적 거래를 잘 못하는 비판이 있는 kt 프런트에 남 좋은 일만 시켜준 꼴이 되어버렸다.[8] 물론 조성민은 잘못이 없는 게, 불의의 부상으로 잠깐 빠진 걸 제외하면 팀의 바람대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스탯을 보면 전성기에서 떨어진 듯 하지만 확률에서는 존재감이 여전한 편이다.
문제는 다년간의 계속된 혹사로 조성민의 내구성이 많이 하락한 상태여서 플레이 타임을 많이 소화하지 못한다는데 있다. 반면 김영환은 뛰어난 내구성을 바탕으로 많은 경기에 출전하며, 조성민보다 더 뛰어난 스탯을 찍어주고 있다. 거기에 LG가 kt에 준 1라운드 픽이 2번픽이 되면서 kt는 로또 맞은 격이 되었다.
지금은 누가 봐도 kt가 승리한 트레이드라고 평가받고 있다. 거기다 1 라운드에는 스탯마저 까이면서 먹튀가 아니냐는 소문도 생기고 있다.[9] 그리고 얼마 뒤 프랜차이즈로 성장할 수 있었던 그의 후배마저도 1순위 출신 농구대통령 차남이 지명하면서 포지션 문제로 인해 거래호구인 kt 프런트의 판단속에 안양 KGC인삼공사로 트레이드되고 만다. 추가로 박지훈도 포함되었다.
매우 중요한 건 감독이 조성민을 포함해서 김시래든 김종규든 강병현이든 그 정도의 스타들의 가드-슈터-빅맨 간을 살릴 수 있는 전술과 전략이 없고 정작 출전해도 센터인 박인태와 함께 금방 뺴기 일쑤였다. 결국 감독으로서 개념이 없는 꼴이다. 쓰라는 조성민은 안 쓰고 자꾸 답 없는 얘만 쓰고 있는 지라 조성민 주장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러나, 2018년 5월 15일 LG는 3년간 5억에 원 구단 창원 LG 세이커스와 재계약을 하는 남에게 떡을 주지는 않았다.
18-19 시즌 들어서 극심한 부진에 빠지면서 먹튀 소리를 들으며 나락으로 떨어지는 중이나 이는 현주엽 감독과 외국인 선수 제임스 메이스와 조쉬 그레이의 탓이 크다.[10] 메이스와 그레이가 개인플레이로 득점을 독식하다시피 해 조성민에게 슛 기회가 거의 오지 않기 때문이 1순위 문제고, 현주엽 감독은 이 문제를 전혀 통제하고 있지 못하다. 물론 30대 중반인 조성민도 예전만 한 기량을 못 보여주는 것은 사실이다.
2018년 12월 15일 14득점 3점슛 4개로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경기 후 수훈선수 기자회견에서 "슛을 더 던지고 싶다."라는 말을 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짠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메이스와 그레이 탐요을 보인 두 명이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었던 경기였다.[11]
2019년 1월 12일 22득점 3점슛 7개로 전성기 시절 못지 않은 슛감을 뽐냈다. 4점 플레이까지 나오는 등 절정의 슛감을 최근 들어 이어나가고 있고 3점슛 성공률도 40%를 어느새 넘겼다.
2019년 1월 13일 17득점 4리바운드 4어시스트 기록, 전반기 마감 직전 슬슬 제 컨디션을 찾아가고 있다.
올스타전 3점슛 콘테스트에서 우승한 이후 본인도 제 모습을 되찾고 있고 다른 파트너들도 역시 기량이 올라가면서 LG 세이커스의 첫 3위의 주역이자 플레이오프 4강을 이끈 주인공으로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회복했다.
하지만, 2019-2020 시즌 팀의 에이스인 김시래와 함께 계속되는 부상과 현주엽 체제의 문제점 속에 개인 커리어 최저시즌의 아픔을 또 겪게 된다.
2019-2020 시즌 16승 26패로 9위에 머물면서 현주엽 감독이 구단과의 재계약을 검토했으나 본인이 사임을 하면서 2020년 4월 23일 조성원 KBS N 여자농구 해설위원 및 前 명지대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영입하게 되었다.
이름도 비슷하며 12살 돼지띠 동갑 현역 시절 포지션 역시 비슷한데 여러모로 닮은 감독과 선수가 만나게 되면서 그 동안 부진을 딛고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는 동기부여를 얻게 된다.[12]
실제로 조성원 감독의 취임식 때 가장 밝게 웃은 게 '''전주 KCC 이지스 출신인 강병현이 아니라 조성민이라는 설이 있다.'''[13]
특히 LG에는 2012~2013 시즌 전체 1순위 명지대 출신의 에이스인 리딩 가드 김시래가 있어 잘 맞춘다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설 수 있다는 LG 팬들의 기대가 있었고 본인도 자신의 농구를 되찾기 위해 노력을 다짐했다.
이미 조성원 감독은 자신을 만들었던 전창진 감독이 있는 자신의 친정인 전주 KCC 이지스에서 트레이드 제안을 받았지만 본인은 단호하게 거부하면서 몰락한 조선의 슈터라는 그의 부활을 굳게 약속하고 있다. 사실 학력과 프로에서 인연조차 없는 조성민 선수는 자신과 같은 조씨라는 점에서 하마 시절에 잊었던 자신과 팀의 부활을 신뢰로 약속하면서 캥거루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헌신을 다짐했다.
하지만 20-21 시즌 들어서 여전히 부진에서 면치 못하고 있다.
2.4. 국가대표
2007년 대학 대표팀부터 국가대표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2007년 제24회 방콕 하계유니버시아드 남자 농구 국가대표부터 태극마크를 오래 달았다.
유재학 감독이 이끌었던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국가대표를 시작으로 허재 감독이 이끌었던 2011 FIBA 아시아 남자농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와 다시 돌아온 유재학 감독이 이끌었던 2013 FIBA 아시아 남자농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에 승선했다.
부산 kt 소닉붐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슈터로 대표팀의 외곽포를 책임지면서도 수비에서 큰 공헌을 했다.
이후 대망의 2014년을 맞이하게 된다.
안방에서 열렸던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당당히 승선한 이후 주역으로서 2002 부산 아시안게임 이후 12년만에 금메달을 이끌면서 조선의 슈터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대표팀에서도 수비를 안하는 후배는 혼낸 일화가 유명하다.
3. 플레이 스타일
3.1. 공격
높은 3점슛 성공률을 자랑하는 슈터이자 2대2 플레이에도 능하고 패스도 능한 만능형 슈팅 가드이다. 머리 위로 힘껏 던지는 특유의 슛 자세를 선보인다. 부족한 운동능력을 농구지능으로 완벽하게 극복한 선수. 슛도 슛이지만, 슛까지 가는 과정을 만드는 볼 없을 때의 움직임이 일품이다. 오프더볼 무브 이후에 패스를 받아 슛을 던지는 과정에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발만 맞으면 여지없이 슈팅을 올린다. 성공률이 일단 좋고, 오프더볼 무브가 막히더라도, 다른 선수들을 스크린하면서 또다른 찬스를 만들거나, 자신을 수비가 따라나와 생겨나는 공간으로 돌파나 패스를 한다. 슛찬스를 스스로 만들어 던지는 데도 능하다. 원드리블 점퍼나 미드레인지 점퍼도 좋다. 전성기 때는 당연 팀의 1옵션이었으며 이 당시 모습만 놓고 본다면 이충희-문경은으로 이어지는 슈터의 계보를 이었다 할만했을 정도로 대단했다.
드리블과 패스도 수준급이기 때문에 두번째 가드 역할도 능히 잘 수행한다. 데뷔 이후 드리블도 점점 좋아져 크로스오버 같은 상대를 속이는 드리블 능력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 드리블 돌파 후 풀업점퍼가 좋다. 전창진 감독 체제 이후 kt의 눈물나는 포인트 가드진 때문에 볼 소유시간을 늘려가며 용병과의 2대2 플레이를 익혔으며 실제 kt가 조성민과 외국인 선수 혹은 빅맨의 2대2 플레이로 재미를 많이 봤다. 드리블, 패스, 슛이 다 되는 선수가 하는 2대2이기 때문에 더욱 위력적일 수밖에. 2015-16 시즌에는 평균 4개에 가까운 어시스트를 기록할 정도로 패스능력도 좋은데, 1옵션인 자신에게 몰리는 수비(더블팀)를 잘 이용하여 어시스트를 한다. 이재도, 최창진이 입단하기 전에는 1번으로도 경기 시간내 짧게 기용되기도 했다. 심지어 국가 대표에서 양동근을 밀어내고 주전 포인트 가드로 출전한 적도 있다.[14]
거기에 자유투 성공률은 거의 백발백중 수준이다. KBL 연속 자유투 성공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슈팅 가드 치고는 신장이 큰편(맨발로 공식189, 착화신장 192)이기 때문에 포스트업도 공격옵션으로 가지고 있다. 또한 미드레인지 점프슛도 정확하기 때문에 수비하기가 쉽지 않다. 커리어 초창기에는 슈팅가드가 아니라 스몰포워드로 분류되기도 하였으며 박상오와 김영환 이적 후 약해진 포워드 진이 약해진 팀 사정상 스몰 포워도 출장도 잦았다.
국가대표팀에서는 볼 소유시간을 줄이고 주로 전문 슈터 역할을 한다. 공격 시 볼 없는 상태에서의 움직임이 좋기 때문에 조성민을 위한 패턴이 여러가지가 있다. 세계 레벨에서는 얄짤없지만 아시아 레벨에서는 꽤 좋은 활약을 보여준다. 하지만 신체능력이 좀 떨어지는 편이라 수비 때문에 감독 성향을 탄다. 허재 감독은 거의 조성민을 배제하고 신체능력이 뛰어난 강병현 위주로 운용했으며 유재학 감독은 조성민 위주로 운용을 했다. 그렇다고 수비가 나쁜 편은 아니다. 강병현 수준이 아닐뿐...
클러치 능력도 꽤나 좋은 편이다. 소속팀과 국가대표에서 모두 첫번째 슈터로 활용되고 있어, 그를 위한 패턴 플레이가 많이 이뤄진다. 클러치슛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성공률도 좋다.
클래식(1차 스탯)에 비해서 2차 스탯이 뛰어난 선수이다. 거의 매시즌 국내 선수 최상위권 PER[15] , WS, TS를 기록한다. 1차 스탯도 뛰어나지만 2차 스탯을 보면 조성민이 이 정도로 뛰어난 선수였나 놀랄 정도...
다만 세월이 흐르면서 조성민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30대 중반 시즌인 17-18, 18-19시즌의 기록은 매우 처참하다. 그러나 KBL 역사에 기록될 슈터임에는 틀림없다. 특히나 달려나와서 부드럽게 올라가는 무빙 3점슛은 조성민만이 할 수 있는, 조성민의 시그니처로 자리잡혔다.조성민: 삼점 쏴도 돼요?
전창진: 삼점 오케이야 오케이
그리고, 역전 3점 ㄷㄷ
3.2. 수비
운동능력이 좋은 편은 아니라 양동근, 양희종 같은 락다운 디펜더는 아니다. 하지만 수비에서 자기 맨투맨은 확실하게 해내는 선수이다. 자기 보다 작은 선수는 확실히 막는다. 양동근을 수비에서 탈탈 털어버린 적이 있다. 또한 팀 수비 전술 이해도가 높기 때문에, 영리한 수비에 능하다는 평가가 많다. 도움수비를 가는 타이밍이 좋고 많은 활동량을 보여주며, 상대 패스길을 읽고 가로채기에 의한 속공찬스의 선봉장의 역할을 맡기도 한다. kt의 농구를 자세히 보면 조성민이 결장할 경우 공격보다 수비 조직력이 훨씬 떨어지는 모습이 자주 보이기 때문에 2015-16 시즌 들어서 조성민의 수비에 대한 재평가도 농구팬들 사이에서 많이 언급되는 편이다. 팀 사정상 골밑이 약해서 골밑에서 고군분투 하는 경우도 많다. 유명한 윤호영 박치기 사건도 조성민이 포워드로 출장해서 골밑에서 리바운드 다툼을 벌이던 중 일어난 일이다.
2017년 시점에선 누적된 부상으로 컨디션이 저하되어 더 이상 수준급 수비수로 거론되지는 않으나, 그래도 스틸감각은 살아 있어 전반적인 수비력의 하락이 드러나는 편은 아니다.
4. 동부와 악연
이상하게 원주 동부와 경기에서 악의로 반칙이나 억울한 플레이를 많이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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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 시즌 동부와 경기에서 볼을 몰고 상대팀 코트로 넘어가는 순간 김주성에게 명치를 가격되었다. 이날 3점슛을 쏘다가 뒷통수를 맞기도 했으며 각종 반칙을 많이 겪었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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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5 시즌 2년 후배 윤호영에게 박쳤기도 했고, 심지어 박쳤던 조성민이 동부 덕아웃을 찾아 사과해야 했으며 가해자 윤호영은 사과하지 않았다.[17] 이 때 김주성은 kt 측 벤치를 찾아가 항의하는 적반하장을 보이기도 하였다.
5. 여담
부모님을 잃은 뒤 입대한 후 심한 스트레스로 안면신경마비를 앓았다. 지금 그의 얼굴이 조금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은 병으로 인한 후유증이다.
한양대 농구부 재학시절부터 사귀던 플루티스트와 2012년 결혼했고, 2015년 딸을 얻었다.
과거 부산교통공사 홍보대사로도 활동했으며 부산 도시철도 3호선을 타고 종합운동장역에 도착하게 되면 농구시즌 한정으로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도착시 안내방송에서 kt 소닉붐의 홈구장인 사직실내체육관의 위치를 알려준다. '''이제 그가 kt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들을 수 없는 목소리가 된 것이 아쉬울 뿐.'''[18][19]
사실 조성민은 내심 KT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남고 싶었던 듯하다. 여러 차례 인터뷰를 통해 그럴 의향을 비치기도 했지만 어른들의 사정상...
KT에 있던 시절 비슷한 스타일의 스윙맨인 문태종과의 쇼다운이 주목을 끌었던 적이 있었다. 경기 후반부 클러치타임엔 불꽃이 튀었는데 얼마 안 남은 시간에 조성민이 3점을 성공시켜 쐐기포를 박은듯 싶었으나 곧이어 더 얼마 남지도 않은 시간에 문태종이 장거리 3점을 성공시키는 바람에 결국 문태종이 웃게 되었다... 다만 이때 뭐 서로 열을 낼만큼 신경전을 벌이거나 감정적으로 폭발할만한 구석도 없었어서 경기가 끝나자마자 둘은 웃으면서 서로를 독려했다. 참고로 이 때 전창진 감독은 조성민이 그 어려운 슛을 성공시켰을때 주먹을 불끈 쥐며 입을 꽉 다물고 승리를 확신했으나 곧이어 문태종이 그보다 말도 안되는 슛을 또 성공시키니 못이기겠다는 듯 허탈한 웃음을 짓기도.
LG 트윈스의 이형종 선수와 안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이형종 선수가 부상으로 이천으로 가있는 동안 친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형종 선수 말에 의하면 밥도 같이 먹는다고.
6. 관련 문서
[1] 가끔 1번을 볼 수 있을 정도의 리딩능력을 가지고 있다.[2] 2014 인천 아시안게임 필리핀전에서 포스트업을 이용해 상대 에이스 짐 알라팍을 제압하여 붙여졌던 별명[3] 참고로 야구부 구타는 정민태가 없앴고, 농구부 구타는 감독인 김춘수(2014년 별세)가 구타하다가 비디오 카메라에 찍혀서 짤리면서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4] 농구계 은어로 팀을 이탈하는 것을 뜻한다.[5] 다만 김학섭이 참지 못했던건 단순한 구타나 가혹행위가 아니라 김춘수와의 관계가 최악이었던 게 문제였다는 이야기들이 제법 있다. 모종의 이유로 김춘수가 김학섭을 애시당초부터 무척 미워했다는 건데, 반대로 조성민은 김춘수가 꽤 아끼던 애제자기는 했다. 단순히 시련을 참아내며 묵묵히 노력해온 성실한 범재와 게으르고 불성실한 천재의 스토리로 봐서는 안된다는 것. 김춘수가 김학섭을 미워한 저 모종의 이유에 대해서도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인 듯은 하다. [6] 김학섭은 이후 SK-오리온스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 2011-12 시즌 오리온스를 마지막으로 짧은 프로생활을 마감한다. 은퇴 후 곧바로 모교인 전주남중에서 코치를 시작하여 현재는 전국 최정상급으로 팀을 올려놓으며 지도자로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초-중-고 동기인 조성민은 쓰던 농구용품을 보내주고 비시즌 가끔 모교를 찾아오는데 어린 학생 선수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여담으로 연고대를 갈 수 있었던 김학섭이 조성민을 데리고 가느라 한양대로 진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성민이 국대 슈터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데는 김학섭의 희생도 한 몫 한 셈. 관련기사(Rookie 매거진)[7] 올스타 브레이크 전에 kt가 먼저 제의했는데 놀랍게도 원래는 '''1:1 트레이드''' 제의였다고 한다. LG 김진 감독도 당황했다는 후문이다. 문제는 그때 kt에 넘겨준 1라운드 지명권으로 kt는 허훈을 뽑는다... 엘지는 최근 5시즌간 1라운더중 주전은 커녕 제대로 뛰는 선수 하나 없다.[8] 결국 2017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kt가 1, 2번픽을 먹는 불상사가 터졌다. 이 분 주장에서는 기분이 묘할 수밖에 없는 상황. 구슬은 양홍석이었지만 실제 원했던 건 허훈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kt는 허훈의 지명으로 인해 KGC에 주축 가드들로 조성민의 직속 대학 후배로 kt의 미래였던 이재도와 이미 기본기가 좋은 평이 있는 박지훈을 내주는데 받아온 선수들이 비교 대비 더 부족한 포워드 또는 센터를 받는 거래호구다.[9] 물론 조성민은 아직 수비수 2명을 끌어들일 정도로 팀 오펜스 전개에서도 매우 유효한 옵션이 맞다. 그러나 김종규와 김시래 이외에는 공격 성공률이 높은 선수가 없다시피하며 그 김시래마저도 1라운드의 과도한 출장시간으로 부진한 상태에다 김종규는 부상으로 결장하고 있는 상태이다.[10] 조성민을 잘 활용한 감독은 전창진인데, kt 시절 스크린으로 조성민에게 슛찬스를 많이 만들어줘서 슛 자신감을 잘 찾게 해 줬었다.[11] 조성민은 야투 7개 시도 4개 성공 14득점, 메이스와 그레이는 둘이 합쳐 35개가 넘어가는 야투를 시도했으나 30%에도 못 미치는 야투율로 메이스는 11득점, 그레이는 19득점에 그쳤다. 공격의 효율성 부분에서 조성민이 기회만 준다면 훨씬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다.*[12] 실제로 조성원 감독의 LG 시절 3점슛과 속공 포함 공격농구 영상에는 본인이 SNS에 좋아요를 누르면서 기대를 하고 있다. 심지어는 놀랍게도 자신의 고향팀과 같은 조성원 감독님의 전성기 영상도 포함되었다.[13] 전임 감독의 강훈련과 불규칙한 운영 속에 상처를 받은 게 티가 났다.[14] 잠깐 이벤트성으로 출전이 아니라 양동근이 주전 포가로 출전하는데도 볼이 돌지 않으니 궁여 지책으로 슈팅 가드치고 리딩을 잘하던 조성민에게 리딩을 맡긴 것인데 기대 이상으로 잘해서 양동근이 벤치로 가고 조성민이 주전 포인트 가드가 되었다. 심지어 이당시 국대 감독은 양동근의 소속팀 감독인 유재학이었다.[15] 조성민 이후 리그 최고의 슈팅 가드로 인정받고 있는 이정현의 커리어 하이가 조성민의 커리어 로우와 비슷하다.[16] 이날 동부가 크게 패했고 김주성은 송영진에게 막혀서 큰 활약을 못하였는데 대학 1년 선배이자 동고동락하면서 가까운 사이던 송영진의 굿 디펜스를 김주성은 파울이 아니냐고 항의하였으나 심판은 받아 주지 않았는데 상대가 대학 선배라서 직접적으론 화를 못내고 만만한 후배 조성민에게 화풀이를 했다는 보는 여론이 많았다.[17] 윤호영은 조성민에게 사과하진 않았으나 전창진 감독에게 전화는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화를 받은 전창진조차 조성민에게 사과하지 않은 것을 문제로 삼을 정도... 언론에 윤호영이 조성민에게 사과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린 사람이 바로 전창진이다.[18] 아직 그 뒤로는 종합운동장역의 선수 목소리가 녹음되어있지는 않다. 부산 아이파크도 2017시즌에는 구덕운동장에서 경기를 치르기 때문. 그 뒤 다음 녹음자로는 현임 kt 주장님께서 방송을 하고 있다.[19] 사직 야구장 역의 선수 목소리를 담당하던 강민호 역시 삼성으로 이적하였다. 현 소속팀 창원 LG에는 이미 김종규가 안내방송을 하고 있었지만 FA로 인해 DB로 이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