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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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춘추시대 정나라의 제21대 군주. 정간공의 아들. 정헌공의 아버지. 이 때 만해도 아버지인 정 간공 때 상국인 자산(子産)이 살아 있어 중흥기를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2. 생애
정 정공 원년(기원전 529년), 초(楚)나라에서 공자 기질(公子 棄疾)이 초영왕(楚靈王)과 자오를 살해하고 왕이 되니 그가 바로 초평왕(楚平王)이다. 초 평왕은 형 초 영왕이 정나라에게서 빼앗은 땅을 돌려주었다.[1] 이때 진소공(晉昭公)의 명으로 진(晉)나라에 입조했다.
정 정공 6년(기원전 524년), 정나라에 화재가 발생해 그것을 끄게 했다. 그러자 자산이 말했다.
"불을 끄는 것보다 덕을 베푸는 것이 낫습니다."[2]
정 정공 8년(기원전 522년), 초나라의 태자 건(太子 建)이 정나라로 망명했다.
정 정공 10년(기원전 520년), 태자 건은 진(晉)나라와 짜고 정 정공을 살해하고 정나라를 차지하려 했다.[3] 그러나 이 일이 누설되는 바람에 정 정공은 크게 노해 태자 건을 죽이니[4] 그 아들 왕손 승(勝)[5] 이 오나라로 달아났다.
정 정공 11년(기원전 519년), 정 정공은 진(晉)나라에 가니 진(晉)나라가 정나라와 함께 주나라의 반란을 모의했던 신하를 죽이고 희조를 몰아낸 뒤 주경왕(周敬王)을 세웠다.
정 정공 16년(기원전 514년), 그 아들 희채가 즉위하니 그가 바로 정 헌공이다.
[1] 탈법적으로 즉위했으니 이런 식으로 제후들을 달랜 것이다.[2] 일견 추상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상은 불 끄는 것도 중요하지만, 화재의 원인을 제거하라는 의미를 가진 발언이다.[3] 그 이유는 비무기를 죽이고 태자로서의 지위를 회복할 거점으로 정나라가 필요했기 때문이다.[4] 망명객이라고 받아줬더니 자신을 죽이고 국가를 전복하려 했으니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니 화를 안 내는게 이상하다.[5] 백공 승(白公 勝)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