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존스
1. 개요
'''미국의 팀(America's Team)''' 댈러스 카우보이스의 구단주. 동시에 단장 겸 사장도 맡고 있어 사실상 카우보이스의 총 책임자이다.
2. 본문
2.1. 초년기
제리 존스는 LA에서 태어났으나 태어난지 얼마 안 되어 가족이 아칸소 주 노스리틀락이라는 동네로 이주하였다. 제리의 아버지 팻 존스는 '팻의 슈퍼마켓'의 2개 지점의 소유주였다. 제리는 고등학교 때, 노스리틀락 고등학교에서 러닝백으로 뛰었다. 그가 고교를 졸업할 때 쯤, 그간 그의 집 사업은 빠르게 번창하여 그의 아버지 팻은 미주리 주 스프링필드로 이사했다. 팻은 이미 여기 있는 모던 시큐리티 라이프 인슈런스 회사의 회장이었다. 제리가 아칸소 대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어서는, 아버지의 회사는 밀리언 달러급의 회사가 되었고 제리는 이 회사의 부회장이 된다.[1]
2.2. 댈러스 카우보이스의 구단주가 되다
대학을 졸업한 존스는 1966년 NFL 팀 샌디에고 차저스를 인수하려 했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1970년 오클라호마 주에서 석유 탐사 사업에 나섰던 제리는 여기서 대박을 치게된다. 이후 1989년 제리는 당시 댈러스 카우보이스 소유주 B.R.범 브라이트로부터 140mil$에 팀을 인수하는데 성공한다.
카우보이스를 인수한 제리 존스는 먼저 장기 집권 중이던 톰 랜드리 (Tom Landry)[2] 를 해고했다. 그리고 자신의 오랜 친구인 지미 존슨 (Jimmy Johnson)을 감독으로 앉혔다. 얼마 뒤에는 카우보이스 단장으로 오랜 기간 부임해왔던 텍스 쉬람 (Tex Schramm)까지도 해고해버렸다. 그렇게 팀을 완전히 장악한 제리 존스체제는 야심차게 1990 시즌을 시작했으나 정작 결과는 1승15패로 매우 처참했다. 전미의 언론들이 당시 감독으로서 통산 270승을 올려 역대 최다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던 유능한 감독 톰 랜드리를 이유 없이 자른 데에 대해서 맹렬한 비난을 퍼부었다. 이에 절치부심한 제리 존스와 지미 존슨은 팀을 다시 조각하는데 힘 썼고, 그 일환으로 팀의 간판 러닝백인 허셸 워커[3][4] 와 신인 지명권 여러 장을 묶어서 미네소타 바이킹스에 팔아넘기고, 그 대가로 선수 5명과 지명권 8장을 받아오는 초대형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5] . 그렇게 받아온 지명권 8장으로 1989년 드래프트에서 가드 스티브 비시노프스키, 센터 마크 스텝노스키, 풀백 대릴 존스턴 등 팀의 중추가 된 선수들을 모두 뽑아냈고[6] , 1990년 1라운드 지명권으로 팀의 레전드 에밋 스미스를 얻었으며 세이프티 대런 우드슨도 2라운드 지명권으로 얻었다.
이렇게 대형 트레이드로 팀을 갈아엎은 지미 존슨은 전설적인 3인방 쿼터백 트로이 에이크먼[7] , 러닝백 에밋 스미스, 와이드 리시버 마이클 어빈[8] 를 모두 뽑아내어 이들을 중심으로 팀을 재편해 제리 존스가 구단주에 취임한 지 4년 만에 제27회(1993년) 슈퍼볼을 차지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28회 슈퍼볼에서도 버펄로 빌스를 누름으로써 2년 연속 슈퍼볼을 차지, 짐 켈리를 미국 스포츠 역사에서 비교를 불허하는 콩라인의 지존 자리에 등극시켰다.
하지만 그러면서 지미 존슨의 인기가 너무 높아지자 제리 존스는 그를 쳐내고 만다. 그래서 1994년 3번째 감독으로 대학에서 감독을 하던 배리 스위처 (Barry Switzer)를 카우보이스 감독으로 임명했다. 스위처가 감독으로 있는 동안에도 카우보이스는 승승장구했는데, 1995년에는 NFC 챔피언십 게임에서 스티브 영이 이끄는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에게 패하면서 슈퍼볼 진출권을 내줬지만, 1996년 슈퍼볼에서 피츠버그 스틸러스를 물리치고 슈퍼볼을 차지함으로써 명가의 부활과 더불어 다시 한 번 "미국의 팀"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이것을 마지막으로 카우보이스는 슈퍼볼 진출을 다시 맛보지 못하고 있다.
우승 갈증이 길어지고 있지만, 뛰어난 비즈니스 수완으로 카우보이스를 세계 최고의 스포츠 구단으로 이끌고 있으며, 2017년 그간 미식축구에 공헌한 것을 인정받아 프로 풋볼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3. 여담
자녀로는 스테픈 존스, 샬롯 존스, 제리 존스 주니어가 있으며 장남 스테픈 존스는 최고 운영 책임자 직을, 딸 샬롯 존스는 구단 부사장 직을 맡고 있으며 막내 아들 제리 존스 주니어는 세일즈 마케팅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1] 참고로 제리는 1971년 이 보험회사를 팔고 그 돈으로 미주리에 큰 땅을 사서 이국적인 동물 체험장 '부에나 비스타 동물 천국'을 열었다. 이는 현재까지도 사파리로 운영되고 있다.[2] 카우보이스를 슈퍼볼 VI와 슈퍼볼 XII에서 정상에 올려놓고 1960년부터 28년간 카우보이스의 감독으로 장기 집권했었다. 2000년 작고.[3] 47세에 스트라이크포스에 참전한 그 태권도 배운 사람 맞다.[4] 조지아 대학교출신으로 현재까지 모교 유일의 하이스먼 수상자였다.[5] 당시 카우보이스 팬들의 반응은 "너네들 돌았냐?"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허셸 워커는 카우보이스의 간판 러닝백으로 활약하던 중이었기 때문에 팀의 중추가 되는 선수를 트레이드 시켜버린 카우보이스에게 비난을 쏟아냈다.[6] 사실 제리 존스의 진가는 바로 여기서 발현됐다. 바로 오라인 강화. 아무리 유능한 쿼터백을 뽑아도 오라인이 뒷받침되어주지 못 하면 쿼터백은 제 기량을 펼치기 어렵다.[7] 1989년 꼴찌를 한 대가로 얻은 드래프트 전체 1위로 지명[8] 1988년 드래프트 1라운드 12순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