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에이크먼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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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미식축구 선수. 포지션은 쿼터백. 소속팀은 댈러스 카우보이스. 로저 스타우벅과 함께 댈러스 카우보이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쿼터백으로 평가받는다.
2. 상세
1989년 전체 1위로 댈러스 카우보이스에 입단해 바로 다음해인 1990년 입단한 러닝백 에밋 스미스, 와이드 리시버 마이클 어빈과 더불어 슈퍼볼 3회 우승으로 요약되는 댈러스 카우보이스 2차 전성기를 이끈 쿼터백.
그림같은 정확한 패스로 유명하다. 다만 명성에 비해 통산 스탯은 레전드급 쿼터백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다. 그리하여 에이크먼의 전성기를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가 왜이리 높게 평가받는지 의아해하는 선수이기도 하다. 이는 존 엘웨이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엘웨이는 역대 최고의 레전드 쿼터백 중 한명으로 평가받지만, 정작 스탯만 보면 평범해보이기 때문이다.[2] 왜냐하면 리그가 패스 친화적으로 바뀐건 DPI룰과 러핑 더 패서룰의 개정이 이루어진 21세기 부터이고, 20세기까지 미식축구는 러싱공격의 비중이 더욱 컸다. 그래서 댄 마리노와 같은 쿼터백들을 제외하면, 80-90년대에 활약한 쿼터백들의 패싱야드나 스탯이 상대적으로 떨어져 보인다.[3]
에이크먼이 활약하던 당시 카우보이스의 전술은 에밋 스미스와 대럴 존스톤을 이용한 러싱 공격을 주력으로 삼는 전술이었다. 전반에 러싱공격을 몰아쳐 상대 수비의 체력을 빼놓고 후반에 에이크먼의 패스를 이용하는 작전이었다. 에이크먼은 팀의 작전과 컨셉을 매우 잘 이해했고 주어진 임무를 완벽히 수행했다. 1991시즌부터 1996시즌까지 6연속 프로볼에 선정되었다.
에이크먼의 강점으로 무엇보다도 큰경기에 매우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이고,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강했다. 슈퍼볼에 3번 올라 모두 우승을 기록했고, 당시 패서레이팅은 정규시즌을 훨씬 상회하여 100이 넘었다. 특히 슈퍼볼 MVP로 선정된 1992-93시즌 플레이오프에서의 퍼포먼스는 역대 쿼터백 플레이오프 퍼포먼스 순위에서 최상위권에 랭크될 정도로 대단했다. 큰 경기에서 훌륭한 활약을 펼치는 에이크먼의 모습이 그 당시를 직접 눈으로 지켜본 댈러스 카우보이스 팬들과 풋볼 팬들 사이에 각인되었고, 이것이 그를 레전드로 회자되게 하는 이유다. 슈퍼볼 3번이나 우승한 쿼터백에 카우보이스 프랜차이즈 패스 기록을 가진 쿼터백이라 명예의 전당에 가볍게 들어갔다.
신인 시절에는 마찬가지로 프로에서는 신인 코치였던 지미 존슨과 불협화음이 많았다.[4] 존슨은 본인이 이끌었던 마이애미 대학 선수들을 선호하며 에이크먼이 떡하니 있는데도 불구하고 마이애미 출신 쿼터백인 스티브 월시를 1지명으로 뽑으면서 에이크먼에게 큰 충격을 가져다주는 등 불협화음이 많았으나, 둘은 여차저차 갈등을 봉합하고 결국 카우보이즈의 2차 전성기를 이끄는데 성공했다.[5] 현재는 지미 존슨과 둘도 없는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미 존슨은 제리 존스구단주와의 불화로 카우보이스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데, 에이크먼은 존슨의 구단 명전 입성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인물이다. 2020년 지미 존슨이 풋볼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게 되었는데, 생방송 도중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축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현역시절 하드태클을 많이 맞아서 스티브 영처럼 뇌진탕문제가 심했었는데 위험수위에서도 결국 38살까지 현역으로 뛰었던 스티브 영과 달리 에이크먼은 2000년 라이벌 워싱턴 레드스킨스 경기에서 상대 라인배커 라바 애링턴에게 강력한 태클을 얻어맞고 뇌진탕이 도져서 쿼터백으로는 더 이상 뛸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젊은 34세의 나이에 현역 생활을 접어야 했다. 에이크먼의 뇌진탕으로 인한 기량 감소와 지미 존슨의 후임감독으로 부임한 배리 스위처의 선수단 장악 실패 이슈가 겹치며 카우보이스의 90년대 왕조도 막을 내리게 되었다.
현역 은퇴이후 FOX TV의 NFL 중계방송 해설자로서 익숙하다. FOX 간판 캐스터 조 벅과 함께 해설중.[6]
제리 맥과이어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스포츠 에이전트 레이 스타인버그의 클라이언트이기도 하다. 실제로 아이크만도 제리 맥과이어 마지막에 잠깐 카메오로 출연했다.
3. 연도별 기록
[1] 여담으로 라이벌인 USC의 스포츠팀 이름이 ''''Trojans''''이다(....)[2] 그러나 누적 스탯까지 보면 정규시즌 MVP 출신에 롱런한 엘웨이가 에이크먼보다 훨씬 스탯을 잘 쌓았다. 통산 패싱야드는 거의 20,000야드 차이가 난다.[3] 실제로 단일시즌 최다 패싱야드 기록 순위를 보면 대부분이 2000년대 이후이다. 90년대에는 시즌 3000야드 이상이면 뛰어난 쿼터백으로 불리고 4000야드는 찾기 힘들었으나, 21세기 이후에는 시즌4000-5000야드가 심심찮게 나온다.[4] 에이크먼은 대학시절 UCLA에서 날린 쿼터백이었고, 존슨은 마이애미 대학을 이끌고 대학 미식축구 우승을 이끌어낸 명장 출신이지만 둘다 프로에서는 신예였던 시절에는 대립이 매우 심했다. 존슨은 소문에 따르면 "에이크먼 그새끼는 대학 시절에도 패배자(loser)였고 프로에서도 패배자로 남을 거야" 수준의 발언을 했다고 하니......[5] 에이크먼도 결국 이러한 불협화음을 통해 팀의 리더로 거듭나긴 했다. 첫 우승 시즌인 92-93 시즌 막판에 워싱턴에게 역전패를 당하자 존슨이 말그대로 대폭발하며 깽판을 쳤는데, 에이크먼은 존슨의 이러한 행위에도 흔들리지 않고 다음 경기서부터 맹활약을 펼치며 자신이 팀원들을 장악할 수 있다는 모습을 선보였다.[6] 조 벅-트로이 에이크먼 콤비는 그 주의 주요경기에만 투입된다. 슈퍼볼을 포함한 FOX에서 중계하는 모든 플레이오프 경기는 고정 투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