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영

 

'''스티브 영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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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III'''
'''XXIV'''
'''XXIX'''



[image] '''슈퍼볼 XXIX MVP'''
에밋 스미스
(RB / 댈러스 카우보이스)

'''스티브 영
(QB /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래리 브라운
(CB / 댈러스 카우보이스)

'''1992년 NFL 정규시즌 MVP'''
서먼 토마스
(RB / 버팔로 빌스)

'''스티브 영
(QB /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에밋 스미스
(RB / 댈러스 카우보이스)
'''1994년 NFL 정규시즌 MVP'''
에밋 스미스
(RB / 댈러스 카우보이스)

'''스티브 영
(QB /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브렛 파브
(QB / 그린베이 패커스)

'''1992년 NFL 버트 벨 상'''
배리 샌더스
(RB / 디트로이트 라이언스)

'''스티브 영
(QB /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에밋 스미스
(RB / 댈러스 카우보이스)
'''1994년 NFL 버트 벨 상'''
에밋 스미스
(RB / 댈러스 카우보이스)

'''스티브 영
(QB /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브렛 파브
(QB / 그린베이 패커스)

'''1992년 NFL 올해의 공격수 상'''
서먼 토마스
(RB / 버팔로 빌스)

'''스티브 영
(QB /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제리 라이스
(WR /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No.8 '''
<colbgcolor=#b3995d> '''이름'''
'''존 스티븐 "스티브" 영
(Jon Steven "Steve" Young)'''
'''생년월일'''
1961년 10월 11일
'''국적'''
[image] 미국
'''출신지'''
유타 주 솔트레이크 시티
'''종교'''
몰몬교
'''포지션'''
쿼터백
'''신체조건'''
188cm / 98kg
'''출신대학'''
브리검 영 대학교
'''프로 입단'''
1985년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
탬파베이 버커니어스 지명
'''소속 구단'''
탬파베이 버커니어스 (1985~1986)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1987~1999)'''
'''수상 경력'''
'''3× Super Bowl champion (XXIII, XXIV, XXIX)
Super Bowl MVP (XXIX)
7× Pro Bowl (1992~1998)
3× First-team All-Pro (1992~1994)
3× Second-team All-Pro (1995, 1997, 1998)
2× NFL Most Valuable Player (1992, 1994)
2× Bert Bell Award (1992, 1994)
NFL Offensive Player of the Year (1992)'''
4× NFL passing touchdowns leader (1992~1994, 1998)
6× NFL passer rating leader (1991~1994, 1996, 1997)
5× NFL completion percentage leader (1992, 1994~1997)
1. 개요


1. 개요


유타 솔트레이크 시티 출신. 유타 주에서 몰몬교를 정착시킨 제2대 지도자 브리검 영현손자라고 한다. 그래서 학교도 유타에 있는 브리검 영 대학교를 나왔다. 이렇게만 써놓고 보면 뭔가 있어 보이지만 '''브리검 영이 자손을 워낙 많이 남겼어야지'''. 그냥 유비한나라 황실의 후손이라는 것과 흡사한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존 엘웨이 비슷하게 드래프트 지명 받자 막장 팀 가기 싫다고 징징거려서 당시 신생 리그인 USFL 팀으로 입단했다. 그러나 NFL 뛰어넘겠다고 의욕적으로 출발한 새 리그의 전형적 테크로 1년만에 시망,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버커니어스로 들어갔으나 천방지축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수준 이하의 퍼포먼스를 보여줬다.[1] 결국 2년만에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트레이드 되었다. 심지어 해당팀에는 조 몬태나라는 당대 최고의 쿼터백이 버티고 있어 최소 3,4년은 백업쿼터백으로 뛰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팀을 옮겼다. 그리고...
'''전설의 뒤를 이은 전설'''이 된다.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었던 영은 빌 월시의 조련 하에 조 몬태나의 대를 이어받아서 49ers의 황금기를 이룩한 왼손잡이 쿼터백이자 웨스트 코스트 오펜스의 상징으로 발돋움, 제리 라이스콤비로 94년 슈퍼볼 우승을 이룩한다. 선배인 조 몬태나와는 스타일이 달랐는데 백인이면서도 빠른 과 수비의 빈틈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스크램블 능력의 소유자로, 통산 33,124야드 232터치다운의 패싱 기록 못지 않게 자기 발로 4,239야드 43터치다운을 만들어내는 듀얼 스렛 쿼터백의 원조격 인물이었다. 더욱 대단한 것은 이 기록의 대부분이 주전 쿼터백으로 뛰기 시작한 '''30살 이후''' 7년간 작성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러닝 쿼터백임에도 대단히 높은 효율성을 자랑했는데, 그가 주전으로 나서기 시작한 1991시즌 이후의 기록만 본다면 66퍼센트의 패스컴플리션과 101.4의 쿼터백레이팅을 기록하고 있다. 선수 시절 끝물에 당한 뇌진탕 때문에 의사로부터 '''당신 한번만 더 머리에 충격받으면 죽습니다''' 진단서를 받으면서 경기에 나선 쿼터백이기도 하다. 결국 해당 부상 때문에 1999시즌을 끝으로 은퇴한다.
주전 쿼터백의 가장 이상적인 계승 사례였던 스티브 영의 은퇴 이후로, 그의 쿼터백 후계자였던 제프 가르시아는 도합 슈퍼볼 5번 우승에 2명 연속으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전설적 선배들때문에 주전으로 기용되고 나서 팀을 플레이오프로 진출시키는 등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지역 언론 및 팀으로부터 팀의 화려한 전통에 먹칠을 하는 못난 쿼터백 취급을 받으면서 팀에서 방출, 결국 저니맨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나서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는 플레이오프 진출도 힘겨운 막장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어떻게 보면 존 엘웨이와 비슷한 케이스.
현재 미국의 스포츠 전문 케이블 채널 ESPN의 풋볼 관련 프로그램에서 해설을 맡고 있다.
더 놀라운건 전설적인 활약을 보이던 때, 단순히 쿼터백만 한게 아니라는 것. 모교인 브리검영 대학교의 로스쿨에 진학해서 오프시즌때마다 로스쿨에 다녔고, 결국 법무 박사 학위(JD, Juris Doctor)를 취득하고 변호사 자격증까지 땄다[2]. BYU 로스쿨을 졸업한게 1994년. 슈퍼볼 우승한 해다.

[1] 버커니어스는 당시 별명이 'Yucks'(의역하자면 우웩과 같은 의성어로 Buccaneers의 줄임인 Bucks와 라임하는 놀림말이었다)일 정도로 리그 최악의 팀이었다. 현재 클리블랜드 브라운스같은 포지션이라 생각하면 된다.[2] 이걸로 토요타 광고를 찍은 적도 있다. Blind Date(소개팅)에 나갔는데 상대방이 스포츠에 관심이 없고 본인을 알아보지 못 하니 자신의 직업이 변호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