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윤

 


<colbgcolor=#292929><colcolor=#FFF> '''조선귀족 남작'''
'''조동윤
趙東潤 | Cho Tong-yun
'''
'''이름'''
조동윤 (趙東潤)
'''본관'''
풍양 조씨 (豐壤)
'''자'''
우생(雨生)
'''호'''
혜석 (惠石)
'''출생'''
1871년 (고종 8년)
'''사망'''
1923년 (향년 52세)
'''직업'''
군인, 관료, 정치가
'''종교'''
유교(성리학)
'''작위'''
조선귀족 남작
'''비고'''
친일인명사전 등재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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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대한제국, 일제강점기군인이자 정치인, 친일반민족행위자였다. 군인으로 최종계급은 대한제국군 부장(중장), 일본군 중장.[1]

2. 생애


1871년 태어났다. 집안은 풍양 조씨였고 아버지 조영하갑신정변 때 수구파에게 살해되었다. 1889년 과거에 급제했고 무관으로 근무하였다. 조선군이 대한제국군으로 근대화되자 1897년 참령(소령)으로 진급했다. 육군법원장과 육군무관학교 교장, 시종무관장[2] 등을 지냈다. 1899년에는 부장(중장)으로 진급했다.
친일파로 한일병합에 적극 협조했고 일진회에서도 활동했다. 1910년 경술국치 후에 남작 작위를 받아 조선귀족이 되었다. 고종의 장례 때 치뤄진 일식 장례에서 부제관(제관 다음의 장례책임자)을 지냈다. 아들인 조중구가 작위를 습작했으며 자녀들이 사치를 일삼다 집안이 패가망신했다. 당시 부채가 무려 '''1만 4천엔'''에 달했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돈이다.
[1] 일본군으로 계급은 실질적인 지휘관이나 참모로써 계급은 아니었고 일괄적으로 받은 명예계급에 가까웠다.[2] 군주의 군사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