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엄(조선)
趙曮
(1719년 ~1777년)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자는 명서(明瑞), 호는 영호(永湖)이다. 정조의 외조부인 홍봉한의 매제이다.
1738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1752년 식년문과에 합격하여 벼슬을 시작하였다. 1763년 조선 통신사로 일본 대마도에 다녀왔는데, 이 때 고구마를 국내 최초로 들여 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1] 이렇듯 조선의 구황(救荒) 작물 도입에 큰 역할을 했으나 목화를 들여온 분에 비해 인지도가 낮다. 원주시 지정면에 그의 묘소와 기념관이 있으며 그의 이름을 딴 조엄 밤고구마라는 브랜드가 있고 '''조엄로'''[2] 라는 도로명이 있다.
천일야사에서 묘사한 조엄의 고구마 재배기.
사후 조엄의 증손녀가 효명세자의 세자빈이 되면서, 조만영, 조인영 형제를 중심으로 한 풍양 조씨 세도정치가 열리게 된다.
(1719년 ~1777년)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자는 명서(明瑞), 호는 영호(永湖)이다. 정조의 외조부인 홍봉한의 매제이다.
1738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1752년 식년문과에 합격하여 벼슬을 시작하였다. 1763년 조선 통신사로 일본 대마도에 다녀왔는데, 이 때 고구마를 국내 최초로 들여 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1] 이렇듯 조선의 구황(救荒) 작물 도입에 큰 역할을 했으나 목화를 들여온 분에 비해 인지도가 낮다. 원주시 지정면에 그의 묘소와 기념관이 있으며 그의 이름을 딴 조엄 밤고구마라는 브랜드가 있고 '''조엄로'''[2] 라는 도로명이 있다.
천일야사에서 묘사한 조엄의 고구마 재배기.
사후 조엄의 증손녀가 효명세자의 세자빈이 되면서, 조만영, 조인영 형제를 중심으로 한 풍양 조씨 세도정치가 열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