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순

 


조용순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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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친일반민족행위자
대한민국 제2대 대법원장
조용순[1]
趙容淳 | Jo Yong-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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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 모자를 든 인물
<colbgcolor=#005496><colcolor=#fff> 출생
1898년 2월 19일
충청남도 진잠군
(現 대전광역시 유성구 진잠동)
사망
1975년 8월 27일 (향년 78세)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 #
본관
임천 조씨

춘산(椿山)
재임기간
제7대 법무부 장관
1954년 6월 30일 ~ 1955년 9월 15일
제2대 대법원장
1958년 6월 20일 ~ 1960년 5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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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5496><colcolor=#fff> 배우자
권영일
자녀
아들 조완규 포함 슬하 4남 2녀
학력
경성고등보통학교 (졸업)
경성법학전문학교 (졸업)
경력
경성지방법원 개성지청 서기 겸 통역생
해주지방법원 재령지청 판사
평양지방법원 판사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 판사
황해도 해주부 부회의원
미군정청 대법원장
중앙선거위원회 위원장
제7대 법무부 장관
제2대 대법원장

1. 개요
2. 상세
3. 가족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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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 법조인, 친일반민족행위자.

2. 상세


1898년 충청남도 진잠군(현 대전광역시 유성구 진잠동)에서 태어났다.# 회덕공립보통학교(현 대전삼성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918년 경성고등보통학교, 1922년 경성전수학교를 졸업하였다.
경성전수학교 졸업 후 1923년부터 1926년까지 경성지방법원 개성지청 서기과 서기 겸 통역생으로 발령된 것을 시작으로 1927년부터 1928년까지, 1930년부터 1932년까지 해주지방법원 재령지청 서기과 서기로 근무하였으며 그 사이 1925년 판검사 특별 임용시험에 합격하였고 1929년에는 해주지방법원 곡산출장소 서기로 근무하기도 했다.#
이후 1933년부터 1936년까지 평양지방법원 판사, 1937년부터 1940년까지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 판사로 근무하다가 퇴임하고 1941년 황해도 해주군에서 변호사로 개업했다.
광복 후, 1945년 대전지방법원장에 임명되어, 대구고등법원장, 대법원 대법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고 1954년 6월부터 1955년 9월까지 법무부장관을 지냈다. 법무부장관 시절 사사오입 개헌을 옹호하였다. 1958년 6월부터 1960년 5월까지 대법원장을 지냈다.
1975년 8월 27일에 사망하였다.

3. 가족


아들 조완규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교수, 서울대학교 총장, 교육부장관을 지냈고, 손자 조진원연세대학교 생명시스템대학 시스템생물학과 교수이자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4. 기타


민족문제연구소친일인명사전 사법 부문에 등재되었다.

[1] 일제강점기 당시 사용했던 일본식 이름은 林川淳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