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오입 개헌

 




1. 개요
2. 배경
3. 부결, 그리고 사사오입
4. 반응 및 영향
5. 기타
7. 둘러보기


1. 개요


1954년 11월에 실행된 대한민국 헌법의 2차 개헌. 20세기 대한민국의 개헌 대부분이 그러했듯이, 이 경우도 대통령의 연임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여기서 사사오입(四捨五入)이란 말은 0부터 4까지는 버리고 5부터 9까지는 올리는 방식의 어림이다. 곧, 일반적인 의미의 반올림을 말한다.

2. 배경


6.25 전쟁 도중에 치러진 발췌개헌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로 법을 개정한 이승만은 이로도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대한민국 헌법상 대통령과 대한민국 부통령의 임기를 4년으로 정하고 원래 2회까지만 가능했던 대통령 연임 제한[1]을 '''초대 대통령에 한해 폐지'''하려고 했다. 방법은 헌법의 정규 조항이 아닌 '''부칙'''에 "이 헌법 개정 시행 당시의 대통령은 연임 제한 조항의 적용을 안 받는다"라고 끼워 넣는 것이었다. 일종의 수정헌법인 셈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일반적으로 연임 제한의 대표적 사례로 알려져 온 미국 헌법은 처음에는 이런 제한이 없었다. 즉, 워싱턴 때부터 원래는 헌법상 무제한 연임이 가능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높은 당선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정작 워싱턴 본인이 스스로 3선을 거부했고,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어울리는 이런 워싱턴의 전례를 본받아 이후 미국 대통령들은 1선 내지는 2선까지만 하고 물러나는 것이 일종의 관례가 된 것이다.[2] 그러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2차대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4선까지 하다 사망한 이후에야 현재의 미국 헌법상 연임 제한이 명문화된 것이다. 결국 워싱턴 한 명의 결단이 200년 가까이 미국의 3선 이상 연임을, 나아가서는 미국의 독재자 출현 가능성을 예방한 것이다. 이승만 정권 이후 한국에 나타난 독재정권들을 생각해 보면... 첫 단추부터 이렇게나 대조적이었던 것. '''결국 이 사건은 단순한 정치사건 이상의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이승만자유당 정권은 이 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1954년 5월 20일 시행되는 민의원의원 선거에서 개헌에 대해 찬동 혹은 추진한다는 서명을 받고 후보자를 공천하여 많은 지지자들을 확보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 자유당은 개헌 정족수 136석에 크게 못미치는 114석 밖에 가지고 있지 못했다. 이에 자유당은 매수, 협박, 회유 등 이 수단 저 수단 갖은 수단을 동원하여 어찌어찌 잠정적으로 137석의 찬성자를 확보하고 예의 초대 대통령 연임제한 폐지 개헌안을 상정했다. 그런데...

3. 부결, 그리고 사사오입


헌법개정의 의결은 양원[3]

에서 각각 그 재적의원 '''3분지 2이상의 찬성'''으로써 한다

1952년 대한민국헌법 98조

그리고 1954년 11월 27일 개헌 의결 투표 결과는 재적의원 203명 중 '''찬성 135명, 반대 60명, 기권 7명, 무효 1명.''' 원래 확보한 찬성의원 가운데 최소 2표 이상의 반란표 혹은 무효표가 나왔다는 것이다.
정족수 기준인 재적의원 203명의 2/3 이상인 135'''.333···명'''에서 '''불과 0.333···명이 모자라 부결이 선포된 것이다.'''
이렇게 개헌은 불발되고 개헌을 저지하고자 했던 민주당은 만세를 부르고 자유당은 좌절했다. 개헌 저지측을 지지하는 언론은 민주주의 승리라는 기사를 내며 자축했다. 그러나 자유당은 개헌안이 부결된 다음날인 11월 28일 긴급의원총회를 소집해서 개헌안 부결에 따른 대책을 논의한 끝에 다음과 같은 억지 논리를 내세워 표결을 번복하고 나섰다.

203의 수학적 2/3는 135.333···인데 0.333···은 0.5 미만으로서 수학의 사사오입(四捨五入)의 원칙에 따라 버릴 수 있는 수이므로 '''203명의 2/3는 135.333···명이 아니라 135명이다.'''

이에 화답하듯 개헌안 투표 다음날 조용순 법무부 장관은 0.333···이라는 숫자는 독립된 주체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사사오입의 논리로 버림하고, 135표만으로도 개헌선인 정족수 2/3에 도달했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이를 위해 '''한국인 최초의 이학박사였던 인하공과대학장, 서울대학교 현직 수학 교수'''까지 대동하며 최순주 부의장의 사회로 개헌 정족수가 '''135.333···'''이 아닌 '''135'''이라 주장하며 개헌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당시 동원된 교수로는 초대 인하공과대학장과 초대 관상대장을 겸임하고 있던 천문학자 이원철(1896~1963) 박사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수학과 최윤식(1899~1959) 교수의 이름이 언급되었다[4] 최윤식은 '''초대 대한수학회장'''을 맡기도 하였다. 또한 이 사건 이후, 미국으로 가서 수학을 연구한 뒤 '''서울대학교 대학원장, 문교부 고시위원'''을 지내기도 하였다.
서울대 수학과 박세희 명예교수는 최윤식 교수에게는 제자들이 찾아와서 사사오입이 정당한 지를 물은것이 아니라 203의 2/3을 반올림 한 값을 묻고 그 해답을 말했을 뿐이라며 사사오입 개헌 당시 스승인 수학자는 기만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의 헌법조항을 근거로 살펴봐도 이 논리는 성립될 수 없는 것인데, 헌법조항에는 '''3분지 2이상의 찬성'''이라고 명백하게 규정되어 있다.[5] 따라서 수학적으로는 '개헌정족수>=135.333···' 즉 '개헌정족수>135.3' 이라는 명백한 결론이 나오고, 법학적으로 반올림을 할 거면 국회의원 같은 자연인을 분리할 수 없으니 의결 정족수 136명이 논할 거리라도 있지[6] '''135는 엄연히 135.333···보다 작은 수'''이므로 명백히 의결 정족수 미달이었다.
어쨌든 이러한 논리를 11월 29일 본의회에서 억지로 가결되면서 결국 개헌이 선포되었다. 당연하지만 가결 직후 야당측인 무소속 곽상훈 부의장이 부결 선언을 하고, 이철승 의원이 의장석으로 뛰어들어 최순주의 멱살을 잡는 등 국회 공성전이 발생했다.

4. 반응 및 영향


이런 국민학생에게도 안 먹힐 억지 논리를 법무부 장관과 몇몇 관변 학자들이 들이미니 언론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이 이러한 자유당의 행위를 깠다. 때문에 이 사건 이후 도시민, 특히 서울시민들은 이 유치한 행동을 보고 사람들끼리 모이면 "야, 그거 사사오입해버려!"하며 이승만과 자유당을 비꼬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15살도 사사오입 하면 20살이니 어른으로 인정해야 한다"라는 드립도 가능하다. 영화 효자동 이발사에도 "임신 다섯달이면 사사오입이므로 한 명으로 쳐야 하니 낳아야 한다"라며 송강호가 그 말을 믿고 자기 아내에게 임신 5개월째니 어서 아이를 낳으라고 다그치는 장면을 넣어 당시 정치 상황을 비꼬는 대목이 있다.[7]
고바우 영감으로 유명한 만화가 김성환 화백은 고바우 영감을 통하여 이걸 통렬하게 깠다. 절룩거리면서 가는 야당 의원을 보고 '''"아니? 어쩌다가 그리 다쳤습니까?"'''라고 말하는 고바우 영감에게 의원은 '''"푸른 제복을 입은 개에게 물렸다오."'''라고 대답했다. 이건 당시 이 억지스러운 결정에 따졌다가 동원된 경찰에게 강제 해산당한 것을 풍자한 것이였다. 그리고 김성환 화백은 이것을 그린 후 불구속 입건과 벌금형을 당했다.
김영삼, 민관식 등 당시 자유당 소장파 국회의원 일부는 사사오입 개헌을 비판하며 자유당을 탈당했다.

5. 기타


학교 수업 시간 중 국사 전공이 아닌 일부 교사들은 사사오입 사건을 '''득표수'''를 반올림하여 조작한 사건이라고 가르치는 경우[8]도 있다고 한다. 다시 한 번 더 짧게 정리하자면, 사사오입 사건은 득표수를 바꾼 것이 아니라, 가결에 필요한 '''가결 수를 바꾼 것'''이다. 개표를 하고 보니 가결에 필요한 득표 수가 딱 한 명 모자라기에 가결 커트라인을 소수점부터 반올림해서 한 명 더 없어도 가결이라고 우긴 것이다. 물론 이거나 저거나 당시 여당의 황당무계한 궤변이라는 큰 줄기는 비슷하긴 하다만.
사사오입 개헌 당시 무효표가 나오게 된 이 있는데, 당시 여당 국회의원 중 한 명이 문맹이라서[9] 한자를 전혀 못 읽었던 탓에 어느 쪽이 가(可)고 어느 쪽이 부(不)인지 헷갈렸는데, 자유당 원내부총무단에서 문제의 의원에게 '네모꼴이 있는 글자 밑에 찍으라'고 했는데 문제는 그 네모꼴이 가(可)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부(否)에도 있었던 탓에 양쪽에다 모두 찍어 무효표가 되었다고 한다. 개헌 관련 투표는 기명으로 하도록 법이 바뀌었는데 그게 이 사건 때문이라는 카더라가 있다.
상기되어있듯 당시에는 자유당 소속 젊은 소장파 민의원이던 김영삼 대통령이 이승만 당시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게 된 결정적인 사건 중 하나였다. 사실 김영삼은 3선 개헌 보도가 나올 당시 이승만을 직접 만나 박사님을 위해서라도 개헌하면 안된다고 진정어린 조언을 했으나, 이승만은 화가 난 듯 손을 떨더니 말없이 나가버렸다고 2009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또 김영삼은 이승만이 종신집권제 추구 등 비판받을 점이 많긴 하나, 어찌되었든 정부 수립이라는 국부 비스무리한 역할을 했으니 일단 그것은 인정한다고 말했지만, 이런 모습으로 인해 이승만과 자유당은 민주주의에 어긋나고 독재로 치달았다는 걸 비판하며 자유당을 탈당하게 되었다.
한편 당시의 개헌 내용 가운데는 1948년 제헌 당시 주요 기업과 광물의 국영화, 무역에 대한 정부 통제 등 경제 부문 사항들을 '시장경제'로 대체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10] 이를 들어서 이승만 찬양론자들은 사사오입 개헌을 "진정한 자본주의 경제로의 전환을 이룬 성과"라고 애써 예찬하기도 한다.[11] 그러나 주지하듯이 사사오입 개헌의 진짜 목적은 이승만의 종신 집권에 있었고 이게 야당 등이 반대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으므로, 이승만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이들이 아닌 이상 별로 공감을 얻지 못한다. 설령 해당 내용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한다고 해도, 결국 겉치레일 뿐 본질은 아니라는 평.

6. 야인시대



영상

최순주:여러분, 이틀 전 저 최순주는, 국회부의장으로서 이 자리의 사회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참으로 송구스럽고 죄송한 말씀을 아니드릴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김두한:아니, 도대체 뭐가 송구스럽고 죄송하다는 거야?

유진산:그러게 말입니다. 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고 저러는 거죠?

조병옥:한번 들어보세.

(이기붕이 클로즈업된다.)

최순주:오늘 무엇이 죄송한고 하니... 이틀 전에 우리 의원들이 투표를 했던 그 개헌안 표결 말입니다. 이것이 제가 사회를 잘못 봐서 결과를 제대로 알려드리질 못했습니다.

조병옥:저 사람이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이보시오, 최 부의장! 빙빙 돌리지 말고 말을 제대로 해보쇼!

최순주:지난번 저는 개헌안 표결을 부결로 선포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부결이 아니었습니다!

조병옥:뭐... 뭐야?

신익희:무슨 얘기 하는 거야! 지금 부결이 아니라는 게 뭐야?

유진산:거 무슨 얘기야? 부결이 아니면, 가결이란 말이야?

김두한:아, 빨리 얘기를 해봐요!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최순주:어... 그게... 그러니까...

이기붕:부의장! 발표를 하세요!

최순주:아, 예. 의장님. 에 또... 그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전일 개헌안 부결을 선포한 것은 정족수 계산상의 착오로서, 잘못 부결 선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를 바로잡아, 부결 선포를 취소하고, 그 본 개헌건의 표결이 가결되어, 통과되었음을 선포하는 바입니다. 선포합니다!

(난리가 나는 국회)

조병옥:부결된걸 가결이라고 번복하다니! 이런 만행이 있나! 이건 엉터리야! 이건 자유당의 음모야!

유진산:잘못된 거야! 뭐가 정족수 계산 착오라는 거야?

김두한:계산 착오라니, 지금 무슨 말 하고 있는 거야?!

이철승:'''야, 최순주! 이 나쁜 놈아!!''' (의장석에 뛰어올라 최순주의 멱살을 잡으며) '''야, 최순주! 넌 민주주의의 반역자야! 어떻게 부결이 가결되나! 어! 이런 날치기가 어디있어! 당신이 도대체 국회부의장이 맞아? 여러분!''' (국회의원들을 향해) '''이건 엉터립니다! 엉터리예요! 이건 민주주의에 대한 반역입니다 여러분!''' 이건 엉터립니다! 엉터리예요!

(이철승이 다시 최순주의 멱살을 잡고 명패들이 날아오고 야당의원들이 일제히 단상을 향해 달려나온다.)

김두한:부의장! 엉터리같은 소리하지 말고, (명패를 집어던지며)[12]

내려와! 빨리 내려오란 말이야!

(이기붕, 장경근, 김영삼이 지나가듯 나온 뒤 이철승이 경찰들에게 끌려간다.)

장경근:의장님! 잘 됐습니다.

이기붕:(고개를 끄덕인다.)

(방청객석에 있는 최동열, 정대발, 채원기와 건너편 방청객석에 있는 이정재, 임화수, 조열승, 이억일, 이석재 등의 동대문패들이 클로즈업된다.)

조병옥:어설픈 음모는 집어쳐! 여긴 신성한 국회야!

신익희: 날치기다! 날치기![13]

이건 용납할 수가 없다!

유진산:민주주의를 모욕하지 마라! 자유당! 자유당은 민주주의를 수용하라!

김두한:이런 세상에! 아니, 이렇게 눈을 뻔히 뜨고 있는데, 거짓말사기를 친단 말이야, 어? 아 그래 안 그래?! (옆 의원의 멱살을 잡으며)[14]

어? 사기지! 사기야, 사기!

조병옥:(이기붕을 붙잡으며)이보시오 이 의장! 하늘이 두렵지 않소? 백주대낮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소? 대답해 봐!

(이기붕이 조병옥을 뿌리친다.)

유진산:(다시 이기붕을 붙잡으며)이보세요! 진실을 말하세요! 이건 음모예요 음모!

장경근:이거 왜 이러세요, 정말로!

조병옥:대답해!

신익희:이건 인정할 수가 없어!

유진산:진실을 말하세요!

(이기붕이 이정재를 쳐다본다.)

조병옥:대답하란 말이야!

유진산:이봐 의장! 어딜 도망가!

(이석재가 신호를 보낸다.)

깡패1:야, 조병옥! 지금 무슨 소리하고 있는 거야! 니가 언제부터 야당이야!

깡패들:옳소!!

깡패2:야! 개헌을 반대하는 야당 의원들이 바로 매국노야! 알아, 조병옥!

유진산:아니, 저, 저! 저 불온한 방청객들은 뭐야, 저거! 아니, 국회 경위대는 어디갔어?

이석재:야, 유진산! 너 주둥아리 닥치지 않으면 죽어! 당장 한 번 죽어볼래? 설치는 놈은 누구야? 다 나와! 거기 조병옥, 유진산, 신익희! 조용히들 못해? 어!

조병옥:(놀라는 표정으로)이런 국회가 어디있나? 저런 불한당 놈들이 국회에 들어와서 겁을 줘? 아니 이런 법이 어디 있어? 어, 저기 저놈! 내가 잘 알아. 자유당 감찰부장이지? '''저놈 끌어내! 당장 끌어내!!'''

조열승:아따, 거 아가리 닥쳐부러라잉! 시끄럽게 하면 콱 죽여불랑께!

김두한:웬 놈들이야, 너희들?! 나 김두한이야! 너희들 누구야! 뭐하는 놈들이..!

(김두한과 이정재의 눈이 마주친다.)

나레이션: 이정재의 방청석 난동. 당시 자유당 중앙당 감찰부 '''차'''장이었던 이정재를, 이때 조병옥은 잘못 불러 감찰부 '''부'''장이라고 지목한다. 그리고 그 기록은 지금도 국회 속기록에 생생한 협박의 증거로 남아있다. 주먹들의원들의 이름을 일일히 거명하며 국회를 위협하는 이 있을 수 없는 현실. 그러나 그 때그런 시절이었다. 유진산이 훗날 그의 회고록에서 썼던 것처럼, 초기 헌정어두운 종말그 모습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야인시대에서는 103화~104화에 걸쳐 나온다. 103화에서는 부결되는 장면, 104화 초반에서는 사사오입 선포로 야당 의원들이 반발하고 이정재가 개입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철승 의원이 국회부의장 최순주의 멱살을 잡는 그 유명한 장면이 여기서 나온다. 단상으로 달려들기 직전 최순주를 향해 "야! 최순주! 이 나쁜놈아!" 라고 소리치는건 덤이다.
그 후 야인시대 합성물이 유튜브를 통해 계속 유행하면서 이 사건을 다룬 장면의 합성물까지 등장했는데, 주로 최순주가 교수 역할을 하면서 조별과제를 내거나 사이버 강의를 하는 설정으로 나온다. 수근거리는 장면이나 호통치는 국회의원들은 합성하기 딱 좋은 재료들. #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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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것은 당시 미국 헌법에서 따온 것이다.[2] 물론 연임 그 이상을 시도해보려고 한 이들 역시 없는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도 처음에는 2선만 하고 물러났다가 나중에 대통령 되보려고 한 케이스였다. 대표적으로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있었는데 이쪽은 선거 전에 사망했다. 사실 그대로 갔어도 지지층이 분열된 상태라 대통령이 될 확률은 적었고.[3] 여기서 양원은 참의원과 민의원을 말하는 것으로 52년 헌법에도 양원제는 규정되어 있었지만 상원인 참의원은 선출되지 않았다.[4] 출처: 1973년 1월 16일자 「동아일보」 5면, '비화 제1공화국<183> 제7화 - 사사오입 개헌(22)').[5] '이상'이란 수학에서는 '특정 숫자 이상' 으로 얘기할 때 특정 숫자(여기서는 135)를 포함해서 그보다 많은 모든 자연수를 말한다. 즉 3 이상이면 3을 포함하여 4, 5, 6 등을 일컫는데 결국 135는 135.333...의 '''이상'''이 아니라 '''미만'''이다.[6] 후술할 안분표 문제 등 아주 넓게 보면 논란거리가 있다.[7] 극중에서 송강호는 나중에 청와대 이발사가 된 후에 박정희에게 이 얘기를 농담삼아 하다가 박정희가 "배운 놈들이 나라를 망친다니까!"라고 역정을 내는 바람에 오히려 분위기가 이상해져 버렸고 그 날 밤 각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죄로 총살되는 꿈을 꾼다.[8] 가령 99표를 얻었는데 100표로 반올림했다는 식으로 가르치는 등. 혹은 3.15 부정선거 당시에 있었던 일로 가르치는 경우도 있다.[9] 이 사람이 동네에서 소를 보유한 부자라서 공천받아 뽑힌것이었다. 물론 4.19 혁명 이후로 감옥에 가게 되자 이게 다 한자를 읽지 못해서라며 감옥에서 한자 공부에 매진, 출옥했을때는 한시를 지을 정도가 되었다나? 사실 당대 사회인의 학력이라고해봐야 공민학교나 야간학교, 군대에서 단시간 수업으로 한글과 숫자 정도를 깨친 수준이 대다수였고, 보통학교 저학년만 다니다가 중퇴해서 글자만 겨우 깨친 수준의 학력인 김두한의 사례를 보더라도 문맹이라고 해서 국회의원으로 선출되는 데는 법적인 제한은 없었다. 거기에 자유당의 공천 관행에도 문제가 많았다. 물론 당시 정치인들은 이승만, 이기붕, 조병옥, 장택상, 신성모, 여운형, 임영신 등 학력이 좋은 사람들도 있기는 했다.[10] 김두한이 사사오입 개헌에 반대한 표면적 이유가 이 부분이 한국의 실정에 안 맞는다는 것이었다.[11] 심지어 이들은 앞선 1952년의 발췌 개헌 파동조차 '대통령 직선제 도입으로 민주주의를 진일보시켰다'고 치켜세운다.[12] 참고로 이철승이 말을 한 시점에서 상당수 국회의원들이 명패를 집어던지고 있었다.[13] '날치기다' 부분이 마, 지랄이라고 들려서 뒤의 '없다' 부분과 이어서 '지랄한다' 라고 조교하기도 한다.[14] 옆 의원은 이런 난리 속에서도 박수를 치고 있었다. 즉 자유당 의원이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