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정

 

'''올림픽 양궁 여자 단체전 우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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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대한민국
(1988)

[image] '''대한민국
(1992)'''

[image] 대한민국
(1996)


'''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 우승자'''
[image]

[image] 김수녕
(1988)

[image] '''조윤정
(1992)'''

[image] 김경욱
(1996)




[image]
'''이름'''
조윤정(趙允頂, Cho Younjeong)
'''국적'''
대한민국[image]
'''출생'''
1969년 9월 29일, 서울특별시 성동구
'''학력'''
무학여자중학교
서울체육고등학교
한국체육대학교
'''종목'''
양궁
'''신체'''
164cm, 58kg
1. 소개
2. 선수 경력
3. 은퇴 이후
4. 수상 기록
5. 기타


1. 소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양궁 2관왕을 차지한 한국의 양궁 선수자, 신궁 계보를 잇는 네 번째 선수다.

2. 선수 경력


1969년 생으로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양궁에 입문했다. 무학여자중학교 시절에는 상당히 주목받는 유망주였지만, 대표팀 선발전에서는 번번이 한 끗 차이로 탈락하면서 제 기량을 다 발휘하지 못했다. 원래 무거운 활을 쐈는데, 이게 어깨에 무리가 오면서 어깨 부상으로 공백을 가진 것이 특히 치명타였다. 결국 이 때문에 비슷한 연배인 김수녕1988 서울 올림픽 2관왕에 오르면서 주목받을 때, 무명으로 지내야 했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표 선발전을 앞두고 부친상을 당했지만, 아버지의 유언이 포기하지 말고 대표팀에 꼭 합류하라는 것이었기 때문에 대표 선발전에 참여했다. 그리고 3위로 대표팀에 턱걸이하면서 이름을 올리는데 성공했다. 4년 넘는 공백을 극복한데는 조윤정의 우상인 김진호의 도움이 컸다. 신궁 계보의 시초인 김진호는 조윤정에게 활을 좀 더 가벼운 것을 쓰라고 조언을 했고, 이에 적응하면서 고질적인 어깨 부상에서도 회복할 수 있었다.
마침 올림픽 방식이 거리별 점수 합산으로 메달 순위를 가리는 것에서 1:1 토너먼트 방식으로 변했고, 이 토너먼트 방식에 가장 잘 적응한 선수가 조윤정이었다. 오픈 대회에서도 예선 성적은 좋지 않아도 토너먼트에서 힘을 발휘하면서 메달을 따 냈다. 그리고 이는 올림픽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컨디션이 아주 좋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집중력을 발휘하면서 세계 신기록을 두 개 작성했고, 개인전에서 다른 한국 선수들보다 더 토너먼트에 잘 적응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마침내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인전에서 김수녕을 누르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 당시 기준으로 볼 때, 여자 선수로는 제법 나이가 있던 23세의 일이었다. 그리고 단체전 금메달까지 차지하면서 2관왕에 오르는데 성공했다.

3. 은퇴 이후


은퇴 후에는 다른 신궁 계보의 선수들과 달리 정말 조용하게 지냈다. 심지어 생일도 안 알려졌을 정도로 TV 노출 자체가 극히 드물었다. 간간히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양궁을 지도하는 정도만 알려졌으며 세 아이의 어머니로 살아가고 있다.

4. 수상 기록


올림픽
금메달
1992 바르셀로나
단체전
금메달
1992 바르셀로나
개인전

5. 기타


  • 집안이 상당히 어려워서 미아동 10평짜리 셋방에서 살았는데, 금메달 하나로 집안의 살림을 피는 데 성공했다고 전한다. 당시 소속팀이 동서증권이었는데, 우승 기념으로 아파트를 보너스로 사 줬다고 한다. 그리고 1997년까지 꾸준히 선수 생활을 이어 갔고, 결혼하고 출산한 후에도 양궁에 대한 애착이 커서 계속 선수로서 뛰었다. 어쩌면 30세 주부 선수가 될 수도 있었지만, 문제는 소속 팀인 동서증권이 1997년 외환 위기로 부도가 나면서 팀이 해체된 것이다. 결국 이 일 때문에 양궁에 대한 미련이 끊어지면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