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정
1. 소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양궁 2관왕을 차지한 한국의 양궁 선수자, 신궁 계보를 잇는 네 번째 선수다.
2. 선수 경력
1969년 생으로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양궁에 입문했다. 무학여자중학교 시절에는 상당히 주목받는 유망주였지만, 대표팀 선발전에서는 번번이 한 끗 차이로 탈락하면서 제 기량을 다 발휘하지 못했다. 원래 무거운 활을 쐈는데, 이게 어깨에 무리가 오면서 어깨 부상으로 공백을 가진 것이 특히 치명타였다. 결국 이 때문에 비슷한 연배인 김수녕이 1988 서울 올림픽 2관왕에 오르면서 주목받을 때, 무명으로 지내야 했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표 선발전을 앞두고 부친상을 당했지만, 아버지의 유언이 포기하지 말고 대표팀에 꼭 합류하라는 것이었기 때문에 대표 선발전에 참여했다. 그리고 3위로 대표팀에 턱걸이하면서 이름을 올리는데 성공했다. 4년 넘는 공백을 극복한데는 조윤정의 우상인 김진호의 도움이 컸다. 신궁 계보의 시초인 김진호는 조윤정에게 활을 좀 더 가벼운 것을 쓰라고 조언을 했고, 이에 적응하면서 고질적인 어깨 부상에서도 회복할 수 있었다.
마침 올림픽 방식이 거리별 점수 합산으로 메달 순위를 가리는 것에서 1:1 토너먼트 방식으로 변했고, 이 토너먼트 방식에 가장 잘 적응한 선수가 조윤정이었다. 오픈 대회에서도 예선 성적은 좋지 않아도 토너먼트에서 힘을 발휘하면서 메달을 따 냈다. 그리고 이는 올림픽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컨디션이 아주 좋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집중력을 발휘하면서 세계 신기록을 두 개 작성했고, 개인전에서 다른 한국 선수들보다 더 토너먼트에 잘 적응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마침내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인전에서 김수녕을 누르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 당시 기준으로 볼 때, 여자 선수로는 제법 나이가 있던 23세의 일이었다. 그리고 단체전 금메달까지 차지하면서 2관왕에 오르는데 성공했다.
3. 은퇴 이후
은퇴 후에는 다른 신궁 계보의 선수들과 달리 정말 조용하게 지냈다. 심지어 생일도 안 알려졌을 정도로 TV 노출 자체가 극히 드물었다. 간간히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양궁을 지도하는 정도만 알려졌으며 세 아이의 어머니로 살아가고 있다.
4. 수상 기록
5. 기타
- 집안이 상당히 어려워서 미아동 10평짜리 셋방에서 살았는데, 금메달 하나로 집안의 살림을 피는 데 성공했다고 전한다. 당시 소속팀이 동서증권이었는데, 우승 기념으로 아파트를 보너스로 사 줬다고 한다. 그리고 1997년까지 꾸준히 선수 생활을 이어 갔고, 결혼하고 출산한 후에도 양궁에 대한 애착이 커서 계속 선수로서 뛰었다. 어쩌면 30세 주부 선수가 될 수도 있었지만, 문제는 소속 팀인 동서증권이 1997년 외환 위기로 부도가 나면서 팀이 해체된 것이다. 결국 이 일 때문에 양궁에 대한 미련이 끊어지면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