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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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垠奭
1965년 5월 21일 ~
현 감사원 감사위원, 前 검사.
세월호 참사 당시 대검 형사부장으로서 해양경찰의 부실 구조에 대해 강력한 수사 드라이브를 걸었다가 한직으로 밀려났으나,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고검장, 법무연수원장을 역임하였다. 2021년 1월 중반까지 9개월감 공석이였던 6번째 감사위원으로 임명되었다.
1965년 전라남도 장성군 북상면(현 북하면) 동현리 가평마을[1]#에서 조종환의 아들로 태어났다. 광주 광덕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을 나와 제29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 19기로 검찰에 입문했다.[2] 이후 대검찰청 공판송무과장,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장, 대검 대변인,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 순천지청장,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서울고검 형사부장, 대검 형사부장, 청주지검장, 사법연수원 부원장, 서울고검장 등을 지냈다.
초임검사 시절부터 상황판단이 정확하고 추진력이 높아 잘 나가는 특수검사로 인정 받았다. 2010년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로 일할 때에는 이익단체의 청부입법 의혹이 일었던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 사건을 지휘, 여야 정치인을 무더기로 기소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정치권의 큰 미움을 샀다는 말이 돌았다. 1999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조폐공사파업 유도 사건’ 수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비록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이나 대검 중수부 과장 등 특수수사 요직을 거치지는 못했지만, 대검 범죄정보1ㆍ2담당관,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장, 대검 대변인 등 핵심보직에서 일했다. 이후 서울고검 형사부장과 대검 형사부장 등 검찰 간부 시절에는 특수부가 아닌 형사부서에서 주로 근무하며 두각을 나타냈다.[3]
특히 2014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대검 형사부장으로서 해양경찰의 구조 부실에 대한 검ㆍ경 합동수사를 지휘하며 주목을 받았다. 당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을 놓고 법무부와 이견을 보이며 진통을 겪기도 했다. 이때 박근혜 정부 기조에 맞지 않게 세월호 수사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어 청와대에 미운 털이 박혔다는 평가가 나왔다.[4]
그 뒤 그는 청주지검장으로 10개월을 지낸 뒤 수사부서에서 배제돼 2015년 12월부터 퇴직을 앞두고 가는 자리인 사법연수원 부원장으로 밀려났다. 당시만 해도 법조계 안팎에서는 그가 조만간 검찰을 떠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수사력과 기획력을 겸비했지만 강단 있는 성격이 조직과의 불화를 빚었다는 평이 많았다.#
그러나 2017년 7월 서울고검장으로 임명되면서 서초동에 금의환향하였다. 퇴직을 위한 징검다리 자리이자 한직으로 인식돼온 사법연수원 부원장에서 고검장 서열 1위인 서울고검장으로 수직 상승한 경우는 드문 일이라, 많은 이들에게 충격과 기쁨을 안겨주었다.
2018년 6월 법무연수원장으로 인사발령받았다.[5] 이후 연수원 23기인 윤석열 검찰총장이 임명되자 기수문화에 따라 사임하고 변호사가 되었다.
趙垠奭
1965년 5월 21일 ~
1. 개요
현 감사원 감사위원, 前 검사.
세월호 참사 당시 대검 형사부장으로서 해양경찰의 부실 구조에 대해 강력한 수사 드라이브를 걸었다가 한직으로 밀려났으나,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고검장, 법무연수원장을 역임하였다. 2021년 1월 중반까지 9개월감 공석이였던 6번째 감사위원으로 임명되었다.
2. 생애
1965년 전라남도 장성군 북상면(현 북하면) 동현리 가평마을[1]#에서 조종환의 아들로 태어났다. 광주 광덕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을 나와 제29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 19기로 검찰에 입문했다.[2] 이후 대검찰청 공판송무과장,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장, 대검 대변인,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 순천지청장,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서울고검 형사부장, 대검 형사부장, 청주지검장, 사법연수원 부원장, 서울고검장 등을 지냈다.
초임검사 시절부터 상황판단이 정확하고 추진력이 높아 잘 나가는 특수검사로 인정 받았다. 2010년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로 일할 때에는 이익단체의 청부입법 의혹이 일었던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 사건을 지휘, 여야 정치인을 무더기로 기소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정치권의 큰 미움을 샀다는 말이 돌았다. 1999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조폐공사파업 유도 사건’ 수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비록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이나 대검 중수부 과장 등 특수수사 요직을 거치지는 못했지만, 대검 범죄정보1ㆍ2담당관,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장, 대검 대변인 등 핵심보직에서 일했다. 이후 서울고검 형사부장과 대검 형사부장 등 검찰 간부 시절에는 특수부가 아닌 형사부서에서 주로 근무하며 두각을 나타냈다.[3]
특히 2014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대검 형사부장으로서 해양경찰의 구조 부실에 대한 검ㆍ경 합동수사를 지휘하며 주목을 받았다. 당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을 놓고 법무부와 이견을 보이며 진통을 겪기도 했다. 이때 박근혜 정부 기조에 맞지 않게 세월호 수사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어 청와대에 미운 털이 박혔다는 평가가 나왔다.[4]
그 뒤 그는 청주지검장으로 10개월을 지낸 뒤 수사부서에서 배제돼 2015년 12월부터 퇴직을 앞두고 가는 자리인 사법연수원 부원장으로 밀려났다. 당시만 해도 법조계 안팎에서는 그가 조만간 검찰을 떠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수사력과 기획력을 겸비했지만 강단 있는 성격이 조직과의 불화를 빚었다는 평이 많았다.#
그러나 2017년 7월 서울고검장으로 임명되면서 서초동에 금의환향하였다. 퇴직을 위한 징검다리 자리이자 한직으로 인식돼온 사법연수원 부원장에서 고검장 서열 1위인 서울고검장으로 수직 상승한 경우는 드문 일이라, 많은 이들에게 충격과 기쁨을 안겨주었다.
2018년 6월 법무연수원장으로 인사발령받았다.[5] 이후 연수원 23기인 윤석열 검찰총장이 임명되자 기수문화에 따라 사임하고 변호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