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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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직 검사.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아 # 2015년 1월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으로 발탁되었다가 아래 서술된 것과 같은 논란에 휘말린 끝에 결국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책임을 이유로 2016년 10월 말 사임하였다.
간략한 인생사와 성향은 이 기사를 참조. 국정조사에서 "박근혜와 김기춘을 존경한다"고 밝힌 바가 있다.[6] 이로 인해 "리틀 김기춘"이라는 별명이 붙었다.[7]
아래에 서술된 것과 같이 수많은 논란에 휘말려 있으나, <신동아> 기자의 논평을 빌리면 "우 수석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공직자이자 화제의 중심에 선 인물이지만,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는 강남 땅 매매와 관련해 몇 마디 한 것 말고는 언론 앞에서 입을 연 적이 거의 없다."[특종] “우병우 사단? 검사 20년 했는데 없다면…” 위 보도는 민정수석 취임 몇 달 후인 2015년 4월 6일 몇몇 기자들과 식사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를 폭로한 것인데, 이를 보면 언론에 대해 '나에 대해 좋은 기사를 거의 안 쓴다' 라며 매우 부정적인 속내를 서슴없이 토로하고 있다. 그런데 평생의 행적, 특히 민정수석이 된 후의 행적을 보면, 아무리 봐도 언론이 좋은 기사를 써 줄 구석 자체가 없어 보인다.
비록 당사자는 아니라지만, 간접적으로 진경준 게이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등에 모두 연루되어 있는 인물인줄 알았는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전모가 점점 더 드러나면서 그 장본인 중 하나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문제의 스캔들의 내용 중 가장 심각한 부분이 바로, 민정수석실의 협조가 없이는 일어날 수가 없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검사로서는 매우 유능했다는 것이 중론이지만 민정수석비서관으로서는 설령 법적 책임은 없더라도 낙제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민정수석의 업무인 민심 동향 파악, 사정 및 공직 기강 확립, 법률 보좌, 인사 검증 중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8]
국정농단 관계자들이 줄줄이 잡혀 들어가는 와중에 우병우만 구속을 면하고 있었던 것은 "혼자 죽지 않겠다"라고 검찰에 으름장을 놓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법조계에까지 파다하였다.[9] #[10] 그런데, 말이 씨가 된다고(?), 이른바 우병우 사단에 대한 대폭적인 좌천이 이루어짐에 따라 '다 같이 죽게' 생겼다... 라기도 뭐한 것이 이 일당이 쌓아놓은 법조계 인맥과 재산 규모를 고려하면 이 정도로는 '죽는다'는 표현은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2017년 6월 16일 열린 첫 공판에서 '내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지만, 정치적 책임은 통감한다.'라는 취지로 말했는데#, 이는 그의 롤모델인 김기춘이 10여일 후 피고인 신문에서 한 진술과 같은 취지의 발언이다. 그러나 그가 이날 공판정에서 "이 자리를 통해 국민들께 깊은 사죄를 드린다"라고 한 말을 진심이라고 받아들이는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다.[11]
3번에 걸친 구속영장 청구 끝에 결국 구속되어 기소되었다.
2018년 1월 29일 결심 공판에서 검찰이 한 논고는, 우병우가 민정수석으로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확히 꼬집고 있다.#
우병우 본인이 공판에서 한 최후진술도 그 골자는 '반성을 하기보다 모든 책임을 위로는 전 대통령, 아래로는 부하직원에게 전가'였다. 특기할 것은, 이렇게 남 탓만 하는 것은 여느 국정농단 주역들에게서도 볼 수 없는 태도였다는 사실이다.[12]민정수석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바탕으로 부처 인사 심사에 개입했다.
개인 비위 의혹에 대응하기 위해 권한을 사적으로 사용하면서 정작 자신의 감찰 업무는 외면해 국가기능을 상실시켰다.
반성을 하기보다 모든 책임을 위로는 전 대통령, 아래로는 부하직원에게 전가하고 있다.
2. 일생
3. 논란과 의혹
3.1. 우병우 사단
4. 영향
우병우 ‘봐주기 수사‧기소’, 검찰개혁 여론에 기름 부어
[사설]‘우병우 라인’ 인사조치, 검찰개혁 시작이다
"우병우 영장 기각 '자초'"…커지는 검찰 개혁 목소리
우병우 불구속, 오히려 '검찰 개혁' 물꼬 트나
우병우 앞에선 무뎌지는 檢
우병우, 검찰개혁 일등공신 되나?
검찰청에서 폭로된 황제 수사 및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 회장이 구속되는 와중에도 유유히 구속을 빠져나갔던 전적으로 인해 검찰 권력의 강대함을 여과없이 잘 보여준 인물이다. 검찰 내에서도 우병우의 입지와 영향력은 매우 강했다. 자세한 것은 우병우 사단 문서 참조.
하지만 이러한 행적들 때문에 우병우는 검찰 개혁은 이제 필수불가결한 상황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산 증인이 되면서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인물이기도 하다.
우병우가 자신의 친정이었던 검찰에 준 자폭은 엄청났는데, 우병우를 기점으로 대한민국 검찰과 검사들은 사실상 검찰 개혁에 저항할 명분과 당위성 자체를 크게 상실해버렸다.
결국 검찰은 19대 대선에서 그 누구도, 심지어 검찰 출신이였던 홍준표조차도[13] 초강경한 검찰 개혁을 외치면서 그 누가 되었던 검찰 개혁을 끝끝내 피해가지를 못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5. 기타
- 하술되어 있지만 성격이 무척 오만방자하다. 검찰 출두 시 기자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포토라인에서도 거만한 태도를 드러낸 것만으로도 말 다 한 것이다. 동료 검사들이 "실력은 나무랄 데가 없는데, 싸가지가 없다.", "너무 뻣뻣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학 시절부터 워낙에 자존심 강하고, 자기 잘난 맛에 살아서 별명이 '기브스'였다고 한다. # 마찬가지로 국정농단의 주축이자 악질이지만 개인적인 성격은 상당히 점잖고 예의 바르다고 하는 김기춘과는 대비되는 점이다. 검사장 승진에서 밀린 이유도 '성정이 포악하고 예의가 없다(=안하무인)'는 점이 컸다.[14] 검사장이 아닌 상황에서도 그렇게 사람들과 척을 지는데 검사장이 되면 더 많은 적을 만들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면 조직에 부담이 된다.
- 서울대 법대 선배라도 자기보다 사법시험에 늦게 합격한 사람에게는 반말을 했다고 한다. 문제는 우병우가 소년등과(최연소 합격)[15] 에다가 군대도 안 갔기 때문에, 남들이 사법시험 한창 보고 있을 나이인 25세부터 검사를 했고, 대부분의 신참 검사가 우병우보다 연장자였기 때문에 우병우는 대놓고 선배들에게 반말을 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대학 졸업 전에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군면제까지 받아서 대학 동기나 선배보다 훨씬 먼저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한 예로 윤석열 검찰총장은 서울대 법대 79학번이었지만, 낙방을 거듭한 끝에 30줄이 약간 넘은 1990년에야 사법시험에 늦깎이로 합격했다. 84학번인 우병우보다 7살이나 많지만, 우병우가 87년에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1990년에 검사 임용이 되었으니 검사 임용으로서는 윤석열에 비해 2년 선배가 된다. 우병우는 이런 연장자에게도 반말을 한 것이다. 이러니 적이 널리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래서 "아무리 내가 검찰후배지만 나이도 더 많고 학교 선배인데, 자기가 검찰선배라고 반말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드러낸 사람이 많았다. 정상적으로 병역 의무를 이행하면 그렇게 일찍 임용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16]
- 2002년 8월 춘천지검 영월지청장으로 부임했을 때는[17] 영월지청에 대학 동기가 그의 밑에서 평검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런데 "직원들이 다 보는 앞에서 대학 동기인 평검사를 아주 험악하게 조졌다"고 한다.
- 2004년 대구지방검찰청 특수부장 시절에는 동향 출신 고위 공무원 모임에 나가 술에 취해 군수에게 막말을 하는 장면이 목격되었다고 한다. "요새 민선 지자체장들은 선거로 뽑혀서 그런지, 목이 너무 뻣뻣해. 그래서 인사도 제대로 할 줄 몰라. 그래도 되는 거야?"라는 말까지 하며 자기보다 나이 많은 군수에게 호통을 쳤다고… 그런데 이에 대해 머리가 하얗게 센 고령군 군수[18] 는 "부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라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고 한다.[19] 선거의 의미를 생각하면 상당히 씁쓸해지는 대목이다.[20]
- 2016년 11월 민정수석 자리에서 물러나고 검찰수사에 응하여 출석했을 때 횡령 및 직권남용죄 피의자가 아니라 피고발인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했다. 이에 대해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6년 11월 6일 “피의자가 아니라 피고발인, 소명을 듣는다… 이대로 해준다면 수사하는 검사가 아니라 변명을 들어주는 속기사에 불과하다”면서 “기존 의혹 말고도 최순실과 관련하여 조사할 게 많을텐데, 이러려고 우병우 자택 압수수색도 안 하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도 형사8부 막내검사에게 맡겨 한가하게 조서만 꾸미고 있었던 건지”라면서 의문을 제기했다. # 그리고 “이런 식으로 검찰 소환조사가 이뤄진다면 앞으론 우병우가 아니라 우갑우(又甲又), 그리고 검찰이 아니라 겁찰(怯察)로 불러드려야 할 것 같다.”고 꼬집었다. 팔짱끼고 조사받는건 덤.
- 2016년 10월 31일 한겨레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우병우는 텔레그램에 가입해 있었다고 한다. 카카오톡 사찰 논란 당시 텔레그램을 싫어했던 높으신 분들이 정작 자기들도 텔레그램을 썼다는 사실에 대해 온갖 조롱과 비웃음이 난무했다.
- 2016년 10월 21일 청와대 국정감사 중 운영위원장 정진석 의원이 우병우의 국감 출석 여부를 묻고 확인전화를 하라며 국감을 중지시켰다. 이원종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장이 우병우에게 전화 후 "못 온다고 합니다"라고 답하자, 김대중 정부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의원이 "비서실장이 오라는데 오라고 해도 안 온다는 말이에요?"라며 격앙된 듯한 말투로 물었다. 이에 이원종은 “의원님[21] 이 비서실장 하실 때와 요 사이는 다릅니다”라며 우병우가 권력 실세로서 여전히 변함 없다는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유시민은 이를 "승지와 도승지가 바뀐 꼴"이라고 비유했다.[22] 국정감사 당시 박지원은 이원종에게 '우병우 수석을 보호한다고 잘 될 것 같으냐?'와 같은 발언을 하였다.#
- 유일하게 윗사람이었던 사람을 대할 때를 제외하면 정부체계의 명목상 윗계급이거나 연장자 혹은 총리라도 아랫사람 대하듯 했다.[23] 이러한 그의 뻣뻣한 태도와, 인사권으로 정부조직을 장악해 온 절대권력을 합쳐 그의 별명을 '황제',역시 황제… 검사 앞에서 팔짱 낀 채 웃는 우병우우병우 귀가… 검찰 조사 때도 '황제급 대우' 우 황제(우황제) 등으로 빗대기도 한다. 예전에 그에게 아부하려는 사람들은 별명을 '우 황제(우황제)'라고 지어도 존칭의 의미로 카메라 뒤에서 몰래 썼겠지만, 엄청 히트 친 각종 '우황제(우 황제) 패러디' 등과 대중적인 이 별명은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권신에 대한 비판의 의미 또한 강하게 담긴 것이 맞는다.[24] 그런데 여러 유머모음 사이트에서 박근혜 대통령이나 최순실 이명박 패러디들도 살아남는 판에 가장 인기도 높았던 '우 황제 시리즈'들만, 원본들이 하루 만에 몇 개씩은 갑자기 안 보이기도 한다. 우황제의 즐거운 하루 우 황제의 황제수사 그림 패러디 시리즈 사본이라도 찾은 분은 링크 바람.
- 과거 검찰 내부 인터뷰에서 우병우가 "나는 (평검사 시절인) 23살 때도 45살인 계장(수사관)을 수족(手足) 부리듯이 부려먹었다."라고 자랑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어 대중의 공분을 샀다. 또한 "(지방)경찰청장도 내 가방을 들어주고 그랬다."[25] 며 경찰에 대한 검찰의 우월감과 특유의 권위주의 의식을 드러내면서 안하무인, 비호감이라는 질타를 받았다. #
- 그의 행방을 수소문하기 위해 정치인과 시민들이 약 2,000만원 상당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그리고 우병우의 현상수배 포스터를 우에하라 아이의 AV포스터를 패러디해 만들었다.
- 경찰 최경락 경위의 자살과 연관되어 있다는 의혹이 있다.
- 위의 자업자득스러운 '우황제(우 황제)'나 '우갑우'란 별명과 더불어, 이름이 앞뒤를 거꾸로 해도 똑같은 회문인데다 비유가 쉬운 탓에 본인이나 아들이 이름 장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댓글이나 디시에서 많이 장난치는 별명 중 하나는 "좌캔좌(...)", "병든소(...)", "우회전(...)"[27] 이다. 앞~뒤가 똑~같은 민정수석~♩
- 배우 김의성이 우병우를 닮아서 화제가 되었다.[28] 그래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실사판으로 만들어진다면 김의성이 우병우 배역을 맡아야한다!"는 반응이 많았는데 실제로 김의성 본인이 스스로 우병우와 닮은 꼴을 인정하면서 "이런 배역은 귤만 까먹어도 아카데미상 받을 수 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 외에도 닮은 사람이 많다. 홍학표, 트로츠키, 윤다훈 등...
- 경기도 여주시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던 우병우의 남동생이, 옆에 있던 여직원이 우병우를 험담하자 쌍방간에 폭행이 일어나 여주시에서 징계조치를 하였다. 아무래도 자기 형이다 보니 험담에 화가 나서 저질렀는지 모르지만, 네티즌들은 "그 형에 그 동생"이라고 비꼬았다.
-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우병우 일가의 감찰에 나서자 우병우 본인은 물론 처자식과 회사 관계자들까지 조사에 불응했으며, 이에 특별감찰관실에서 질문서를 보내 서면조사를 하려고 하자 정작 질문하는 내용에는 답변하지 않고 "불법감찰은 오히려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라는 취지의 협박조의 글만 적은 달랑 1장짜리 답변서를 서명, 날인도 없이 제출하였다고 한다. # 정작 자신은 민정수석의 권력을 이용해 수많은 공무원과 민간인을 불법사찰을 한 혐의를 받고 있는 상황이기에 그야말로 내로남불.
- 박지원의 주장에 따르면 이미지나 성품 면에서 상극인 것과는 다르게 우병우와 윤석열은 서로의 능력은 인정하고 신뢰했다고 한다. 능력이야 둘 다 최고이니 능력에 대해 서로 인정하는 것이야 특별할 게 없지만 위에 나왔듯이 대단히 오만한 성품인 우병우가 윤석열을 인정하고 신뢰했다는 점은 특이한 편이다. 어찌보면 당연한게,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그만큼 기준이 높고 이를 충족시켜주는 타인을 만나기가 어렵기에 만나기만 하면 밀어줄 가능성이 높다.
- 법을 전공하고 민정수석을 거쳤다는 점에서 조국 전 법무부장관과 곧잘 비교되곤 했다. 어쨌든 검사로서의 능력은 출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후 조국 논란 등이 불거지자 반문진영에선 반농담으로 '우병우에게 조국 특검을 맡기자'는 드립이 잠깐 나돌기도 한다.
6. 말말말
국정 농단을 사전에 방지할 책임도, 사후에 처벌할 책임도 그에게 있었다.
우 前 수석이 민정수석 본연의 자세를 조금이나마 지켰다면 그 자신은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겠지만 박근혜 정부가 지금 같은 처지로 굴러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최순실 사건의 최대 책임자 중 한 명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앞뒤가 똑같은 민정수석~ 앞뒤가 똑같은 민정수석~ 우병우~ 우병우~ 앞뒤가 똑같은~ 민정수석~ 우병우를 구속~하! 라!"
- 우병우 구속가
무능하고 오만한 박근혜 정부의 상징.
- 전원책
우 전 수석의 대통령에 대한 그릇된 충성심과 과도한 권력욕이 박근혜 정부의 파국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 경향신문 2017년 4월 7일자 기사 [단독]우병우, 아직도 “대통령님…” 공직 망각한 맹목적 충성
돌이켜보면 ‘박근혜 국정 농단 사건’은 시작도 마무리도 우병우였다.
우병우는 분명 거악의 행동대장이었고, 견제와 감시라는 본연의 임무보다 권력자가 물라면 무는 사냥견 역할에만 몰입해 국정을 혼란시켰다.
지난 1년 사이에 포토라인에 4번째 섰습니다. 이게 제 숙명이라면 받아들이고 또 헤쳐나가는 것도 제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2017년 11월 29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포토라인 앞에서 기자들에게# 그런데, 행간을 읽어 보면, '내가 설마 검찰에 꼬리를 잡힐까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법망을 빠져나갈 자신이 있다'라는, 한 점 죄의식도 없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박근혜 정부 때 민정수석이었던 우병우씨는 역대 정권에서 가장 실패한 ‘민정수석’이란 평가를 받는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조사 과정에서 우씨의 장모가 최순실(최서원)씨와 골프를 쳤다는 증언이 여러 차례 나왔다. 우씨의 청와대 입성이 최씨를 통한 것이란 의혹이 제기된 이유다. 우씨는 시치미를 뗐고, 2014년 12월 ‘정윤회 문건’ 사건 전까지 그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고만 했다. 민정수석은 국정원·검찰·경찰·국세청 등 모든 권력기관으로부터 정보를 받는다. 그런 사람이 최씨의 존재를 몰랐다는 것은 누구든 납득할 수 없다. 큰 권한이 없던 당시 이석수 특별감찰관도 인지했던 사건을 우씨가 몰랐다면 무능하거나 거짓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