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박근혜 정부'''
3대
김영한

'''4대
우병우 '''

5대
최재경

'''박근혜 정부 제4대 민정수석비서관
우병우
禹柄宇 | Woo Byeong-u
'''
<colbgcolor=#c01920><colcolor=#fff> '''출생'''
1967년 1월 28일[1] (57세)
경상북도 봉화군 상운면 가곡리[2] #
'''본관'''
단양 우씨[3]
'''거주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4]
'''학력'''
영주초등학교
영주중학교
영주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학사
'''신장'''
174cm[5]
'''병역'''
면제(고도 근시)
'''아내'''
이민정#
'''자녀'''
장남 우주성#, 차남 우현성, 장녀 우지원#
'''경력'''
제29회 사법시험 최연소 합격
사법연수원 19기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금융조세조사2부장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중수1과장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
대검찰청 수사기획관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장
변호사우병우법률사무소 대표
대통령비서실 민정비서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종교'''
불교#
1. 개요
4. 영향
5. 기타
6. 말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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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직 검사.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아 # 2015년 1월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으로 발탁되었다가 아래 서술된 것과 같은 논란에 휘말린 끝에 결국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책임을 이유로 2016년 10월 말 사임하였다.
간략한 인생사와 성향은 이 기사를 참조. 국정조사에서 "박근혜김기춘을 존경한다"고 밝힌 바가 있다.[6] 이로 인해 "리틀 김기춘"이라는 별명이 붙었다.[7]
아래에 서술된 것과 같이 수많은 논란에 휘말려 있으나, <신동아> 기자의 논평을 빌리면 "우 수석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공직자이자 화제의 중심에 선 인물이지만,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는 강남 땅 매매와 관련해 몇 마디 한 것 말고는 언론 앞에서 입을 연 적이 거의 없다."[특종] “우병우 사단? 검사 20년 했는데 없다면…” 위 보도는 민정수석 취임 몇 달 후인 2015년 4월 6일 몇몇 기자들과 식사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를 폭로한 것인데, 이를 보면 언론에 대해 '나에 대해 좋은 기사를 거의 안 쓴다' 라며 매우 부정적인 속내를 서슴없이 토로하고 있다. 그런데 평생의 행적, 특히 민정수석이 된 후의 행적을 보면, 아무리 봐도 언론이 좋은 기사를 써 줄 구석 자체가 없어 보인다.
비록 당사자는 아니라지만, 간접적으로 진경준 게이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등에 모두 연루되어 있는 인물인줄 알았는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전모가 점점 더 드러나면서 그 장본인 중 하나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문제의 스캔들의 내용 중 가장 심각한 부분이 바로, 민정수석실의 협조가 없이는 일어날 수가 없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검사로서는 매우 유능했다는 것이 중론이지만 민정수석비서관으로서는 설령 법적 책임은 없더라도 낙제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민정수석의 업무인 민심 동향 파악, 사정 및 공직 기강 확립, 법률 보좌, 인사 검증 중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8]
국정농단 관계자들이 줄줄이 잡혀 들어가는 와중에 우병우만 구속을 면하고 있었던 것은 "혼자 죽지 않겠다"라고 검찰에 으름장을 놓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법조계에까지 파다하였다.[9] #[10] 그런데, 말이 씨가 된다고(?), 이른바 우병우 사단에 대한 대폭적인 좌천이 이루어짐에 따라 '다 같이 죽게' 생겼다... 라기도 뭐한 것이 이 일당이 쌓아놓은 법조계 인맥과 재산 규모를 고려하면 이 정도로는 '죽는다'는 표현은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2017년 6월 16일 열린 첫 공판에서 '내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지만, 정치적 책임은 통감한다.'라는 취지로 말했는데#, 이는 그의 롤모델인 김기춘이 10여일 후 피고인 신문에서 한 진술과 같은 취지의 발언이다. 그러나 그가 이날 공판정에서 "이 자리를 통해 국민들께 깊은 사죄를 드린다"라고 한 말을 진심이라고 받아들이는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다.[11]
3번에 걸친 구속영장 청구 끝에 결국 구속되어 기소되었다.
2018년 1월 29일 결심 공판에서 검찰이 한 논고는, 우병우가 민정수석으로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확히 꼬집고 있다.#

민정수석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바탕으로 부처 인사 심사에 개입했다.

개인 비위 의혹에 대응하기 위해 권한을 사적으로 사용하면서 정작 자신의 감찰 업무는 외면해 국가기능을 상실시켰다.

반성을 하기보다 모든 책임을 위로는 전 대통령, 아래로는 부하직원에게 전가하고 있다.

우병우 본인이 공판에서 한 최후진술도 그 골자는 '반성을 하기보다 모든 책임을 위로는 전 대통령, 아래로는 부하직원에게 전가'였다. 특기할 것은, 이렇게 남 탓만 하는 것은 여느 국정농단 주역들에게서도 볼 수 없는 태도였다는 사실이다.[12]

2. 일생




3. 논란과 의혹




3.1. 우병우 사단





4. 영향


우병우 ‘봐주기 수사‧기소’, 검찰개혁 여론에 기름 부어
[사설]‘우병우 라인’ 인사조치, 검찰개혁 시작이다
"우병우 영장 기각 '자초'"…커지는 검찰 개혁 목소리
우병우 불구속, 오히려 '검찰 개혁' 물꼬 트나
우병우 앞에선 무뎌지는 檢
우병우, 검찰개혁 일등공신 되나?
검찰청에서 폭로된 황제 수사 및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 회장이 구속되는 와중에도 유유히 구속을 빠져나갔던 전적으로 인해 검찰 권력의 강대함을 여과없이 잘 보여준 인물이다. 검찰 내에서도 우병우의 입지와 영향력은 매우 강했다. 자세한 것은 우병우 사단 문서 참조.
하지만 이러한 행적들 때문에 우병우는 검찰 개혁은 이제 필수불가결한 상황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산 증인이 되면서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인물이기도 하다.
우병우가 자신의 친정이었던 검찰에 준 자폭은 엄청났는데, 우병우를 기점으로 대한민국 검찰과 검사들은 사실상 검찰 개혁에 저항할 명분과 당위성 자체를 크게 상실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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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검찰은 19대 대선에서 그 누구도, 심지어 검찰 출신이였던 홍준표조차도[13] 초강경한 검찰 개혁을 외치면서 그 누가 되었던 검찰 개혁을 끝끝내 피해가지를 못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5. 기타


  • 하술되어 있지만 성격이 무척 오만방자하다. 검찰 출두 시 기자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포토라인에서도 거만한 태도를 드러낸 것만으로도 말 다 한 것이다. 동료 검사들이 "실력은 나무랄 데가 없는데, 싸가지가 없다.", "너무 뻣뻣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학 시절부터 워낙에 자존심 강하고, 자기 잘난 맛에 살아서 별명이 '기브스'였다고 한다. # 마찬가지로 국정농단의 주축이자 악질이지만 개인적인 성격은 상당히 점잖고 예의 바르다고 하는 김기춘과는 대비되는 점이다. 검사장 승진에서 밀린 이유도 '성정이 포악하고 예의가 없다(=안하무인)'는 점이 컸다.[14] 검사장이 아닌 상황에서도 그렇게 사람들과 척을 지는데 검사장이 되면 더 많은 적을 만들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면 조직에 부담이 된다.
  • 서울대 법대 선배라도 자기보다 사법시험에 늦게 합격한 사람에게는 반말을 했다고 한다. 문제는 우병우가 소년등과(최연소 합격)[15]에다가 군대도 안 갔기 때문에, 남들이 사법시험 한창 보고 있을 나이인 25세부터 검사를 했고, 대부분의 신참 검사가 우병우보다 연장자였기 때문에 우병우는 대놓고 선배들에게 반말을 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대학 졸업 전에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군면제까지 받아서 대학 동기나 선배보다 훨씬 먼저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한 예로 윤석열 검찰총장은 서울대 법대 79학번이었지만, 낙방을 거듭한 끝에 30줄이 약간 넘은 1990년에야 사법시험에 늦깎이로 합격했다. 84학번인 우병우보다 7살이나 많지만, 우병우가 87년에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1990년에 검사 임용이 되었으니 검사 임용으로서는 윤석열에 비해 2년 선배가 된다. 우병우는 이런 연장자에게도 반말을 한 것이다. 이러니 적이 널리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래서 "아무리 내가 검찰후배지만 나이도 더 많고 학교 선배인데, 자기가 검찰선배라고 반말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드러낸 사람이 많았다. 정상적으로 병역 의무를 이행하면 그렇게 일찍 임용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16]
  • 2002년 8월 춘천지검 영월지청장으로 부임했을 때는[17] 영월지청에 대학 동기가 그의 밑에서 평검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런데 "직원들이 다 보는 앞에서 대학 동기인 평검사를 아주 험악하게 조졌다"고 한다.
  • 2004년 대구지방검찰청 특수부장 시절에는 동향 출신 고위 공무원 모임에 나가 술에 취해 군수에게 막말을 하는 장면이 목격되었다고 한다. "요새 민선 지자체장들은 선거로 뽑혀서 그런지, 목이 너무 뻣뻣해. 그래서 인사도 제대로 할 줄 몰라. 그래도 되는 거야?"라는 말까지 하며 자기보다 나이 많은 군수에게 호통을 쳤다고… 그런데 이에 대해 머리가 하얗게 센 고령군 군수[18]는 "부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라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고 한다.[19] 선거의 의미를 생각하면 상당히 씁쓸해지는 대목이다.[20]
  • 2016년 11월 민정수석 자리에서 물러나고 검찰수사에 응하여 출석했을 때 횡령 및 직권남용죄 피의자가 아니라 피고발인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했다. 이에 대해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6년 11월 6일 “피의자가 아니라 피고발인, 소명을 듣는다… 이대로 해준다면 수사하는 검사가 아니라 변명을 들어주는 속기사에 불과하다”면서 “기존 의혹 말고도 최순실과 관련하여 조사할 게 많을텐데, 이러려고 우병우 자택 압수수색도 안 하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도 형사8부 막내검사에게 맡겨 한가하게 조서만 꾸미고 있었던 건지”라면서 의문을 제기했다. # 그리고 “이런 식으로 검찰 소환조사가 이뤄진다면 앞으론 우병우가 아니라 우갑우(又甲又), 그리고 검찰이 아니라 겁찰(怯察)로 불러드려야 할 것 같다.”고 꼬집었다. 팔짱끼고 조사받는건 덤.
  • 2016년 10월 21일 청와대 국정감사 중 운영위원장 정진석 의원이 우병우의 국감 출석 여부를 묻고 확인전화를 하라며 국감을 중지시켰다. 이원종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장이 우병우에게 전화 후 "못 온다고 합니다"라고 답하자, 김대중 정부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의원이 "비서실장이 오라는데 오라고 해도 안 온다는 말이에요?"라며 격앙된 듯한 말투로 물었다. 이에 이원종은 “의원님[21]이 비서실장 하실 때와 요 사이는 다릅니다”라며 우병우가 권력 실세로서 여전히 변함 없다는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유시민은 이를 "승지와 도승지가 바뀐 꼴"이라고 비유했다.[22] 국정감사 당시 박지원은 이원종에게 '우병우 수석을 보호한다고 잘 될 것 같으냐?'와 같은 발언을 하였다.#
  • 유일하게 윗사람이었던 사람을 대할 때를 제외하면 정부체계의 명목상 윗계급이거나 연장자 혹은 총리라도 아랫사람 대하듯 했다.[23] 이러한 그의 뻣뻣한 태도와, 인사권으로 정부조직을 장악해 온 절대권력을 합쳐 그의 별명을 '황제',역시 황제… 검사 앞에서 팔짱 낀 채 웃는 우병우우병우 귀가… 검찰 조사 때도 '황제급 대우' 우 황제(우황제) 등으로 빗대기도 한다. 예전에 그에게 아부하려는 사람들은 별명을 '우 황제(우황제)'라고 지어도 존칭의 의미로 카메라 뒤에서 몰래 썼겠지만, 엄청 히트 친 각종 '우황제(우 황제) 패러디' 등과 대중적인 이 별명은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권신에 대한 비판의 의미 또한 강하게 담긴 것이 맞는다.[24] 그런데 여러 유머모음 사이트에서 박근혜 대통령이나 최순실 이명박 패러디들도 살아남는 판에 가장 인기도 높았던 '우 황제 시리즈'들만, 원본들이 하루 만에 몇 개씩은 갑자기 안 보이기도 한다. 우황제의 즐거운 하루 우 황제의 황제수사 그림 패러디 시리즈 사본이라도 찾은 분은 링크 바람.
  • 과거 검찰 내부 인터뷰에서 우병우가 "나는 (평검사 시절인) 23살 때도 45살인 계장(수사관)을 수족(手足) 부리듯이 부려먹었다."라고 자랑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어 대중의 공분을 샀다. 또한 "(지방)경찰청장도 내 가방을 들어주고 그랬다."[25]며 경찰에 대한 검찰의 우월감과 특유의 권위주의 의식을 드러내면서 안하무인, 비호감이라는 질타를 받았다. #
  • 그의 행방을 수소문하기 위해 정치인과 시민들이 약 2,000만원 상당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그리고 우병우의 현상수배 포스터를 우에하라 아이의 AV포스터를 패러디해 만들었다.
  • 경찰 최경락 경위의 자살과 연관되어 있다는 의혹이 있다.
  • 통영함 사건과 관련해 해군의 간식비 횡령이라는 치졸한 혐의로[26] 황기철 제독에 대한 표적수사를 지시했다는 의혹이 있다.
  • 위의 자업자득스러운 '우황제(우 황제)'나 '우갑우'란 별명과 더불어, 이름이 앞뒤를 거꾸로 해도 똑같은 회문인데다 비유가 쉬운 탓에 본인이나 아들이 이름 장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댓글이나 디시에서 많이 장난치는 별명 중 하나는 "좌캔좌(...)", "병든소(...)", "우회전(...)"[27]이다. 앞~뒤가 똑~같은 민정수석~♩
  • 배우 김의성이 우병우를 닮아서 화제가 되었다.[28] 그래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실사판으로 만들어진다면 김의성이 우병우 배역을 맡아야한다!"는 반응이 많았는데 실제로 김의성 본인이 스스로 우병우와 닮은 꼴을 인정하면서 "이런 배역은 귤만 까먹어도 아카데미상 받을 수 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 외에도 닮은 사람이 많다. 홍학표, 트로츠키, 윤다훈 등...
  • 경기도 여주시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던 우병우의 남동생이, 옆에 있던 여직원이 우병우를 험담하자 쌍방간에 폭행이 일어나 여주시에서 징계조치를 하였다. 아무래도 자기 형이다 보니 험담에 화가 나서 저질렀는지 모르지만, 네티즌들은 "그 형에 그 동생"이라고 비꼬았다.
  •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우병우 일가의 감찰에 나서자 우병우 본인은 물론 처자식과 회사 관계자들까지 조사에 불응했으며, 이에 특별감찰관실에서 질문서를 보내 서면조사를 하려고 하자 정작 질문하는 내용에는 답변하지 않고 "불법감찰은 오히려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라는 취지의 협박조의 글만 적은 달랑 1장짜리 답변서를 서명, 날인도 없이 제출하였다고 한다. # 정작 자신은 민정수석의 권력을 이용해 수많은 공무원과 민간인을 불법사찰을 한 혐의를 받고 있는 상황이기에 그야말로 내로남불.
  • 박지원의 주장에 따르면 이미지나 성품 면에서 상극인 것과는 다르게 우병우와 윤석열은 서로의 능력은 인정하고 신뢰했다고 한다. 능력이야 둘 다 최고이니 능력에 대해 서로 인정하는 것이야 특별할 게 없지만 위에 나왔듯이 대단히 오만한 성품인 우병우가 윤석열을 인정하고 신뢰했다는 점은 특이한 편이다. 어찌보면 당연한게,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그만큼 기준이 높고 이를 충족시켜주는 타인을 만나기가 어렵기에 만나기만 하면 밀어줄 가능성이 높다.
  • 법을 전공하고 민정수석을 거쳤다는 점에서 조국 전 법무부장관과 곧잘 비교되곤 했다. 어쨌든 검사로서의 능력은 출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후 조국 논란 등이 불거지자 반문진영에선 반농담으로 '우병우에게 조국 특검을 맡기자'는 드립이 잠깐 나돌기도 한다.

6. 말말말


국정 농단을 사전에 방지할 책임도, 사후에 처벌할 책임도 그에게 있었다.

우 前 수석이 민정수석 본연의 자세를 조금이나마 지켰다면 그 자신은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겠지만 박근혜 정부가 지금 같은 처지로 굴러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최순실 사건의 최대 책임자 중 한 명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 조선일보 2017년 2월 23일자 사설#[29]

"앞뒤가 똑같은 민정수석~ 앞뒤가 똑같은 민정수석~ 우병우~ 우병우~ 앞뒤가 똑같은~ 민정수석~ 우병우를 구속~하! 라!"
- 우병우 구속가

무능하고 오만한 박근혜 정부의 상징.

- 전원책

우 전 수석의 대통령에 대한 그릇된 충성심과 과도한 권력욕이 박근혜 정부의 파국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 경향신문 2017년 4월 7일자 기사 [단독]우병우, 아직도 “대통령님…” 공직 망각한 맹목적 충성

돌이켜보면 ‘박근혜 국정 농단 사건’은 시작도 마무리도 우병우였다.

우병우는 분명 거악의 행동대장이었고, 견제와 감시라는 본연의 임무보다 권력자가 물라면 무는 사냥견 역할에만 몰입해 국정을 혼란시켰다.

- [양선희의 시시각각] 법이 비껴간 우병우의 죄

지난 1년 사이에 포토라인에 4번째 섰습니다. 이게 제 숙명이라면 받아들이고 또 헤쳐나가는 것도 제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2017년 11월 29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포토라인 앞에서 기자들에게# 그런데, 행간을 읽어 보면, '내가 설마 검찰에 꼬리를 잡힐까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법망을 빠져나갈 자신이 있다'라는, 한 점 죄의식도 없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박근혜 정부 때 민정수석이었던 우병우씨는 역대 정권에서 가장 실패한 ‘민정수석’이란 평가를 받는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조사 과정에서 우씨의 장모가 최순실(최서원)씨와 골프를 쳤다는 증언이 여러 차례 나왔다. 우씨의 청와대 입성이 최씨를 통한 것이란 의혹이 제기된 이유다. 우씨는 시치미를 뗐고, 2014년 12월 ‘정윤회 문건’ 사건 전까지 그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고만 했다. 민정수석은 국정원·검찰·경찰·국세청 등 모든 권력기관으로부터 정보를 받는다. 그런 사람이 최씨의 존재를 몰랐다는 것은 누구든 납득할 수 없다. 큰 권한이 없던 당시 이석수 특별감찰관도 인지했던 사건을 우씨가 몰랐다면 무능하거나 거짓말이다.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1] 호적상 생년월일[2] 단양 우씨 집성촌이다.[3] 문희공파(文僖公派) 23세손 '''병(柄)''' 남(南) 항렬[4] 장모 김장자(강남구 논현동 24-11 알파임하우스)를 제외한 처제들이 모두 같은 아파트에 거주한다. 또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지만 최순실, 최순득도 이 아파트에 거주'''했'''다.[5] 국회의장이 발부한 수배전단에는 175cm으로 기재되어 있다.[6] 다만, 이는 안민석 의원의 '박근혜를 존경하느냐, 김기춘을 존경하느냐'는 윽박성의 유도 질문에 답한 것이 굳어져 버린 측면이 크다.[7] 헌데, 행적을 살펴보면 김기춘보다는 차지철과 더 유사한 면이 많다. 김기춘은 공안통이었고 우병우는 특수통이었다. 다만, 우병우는 차지철과는 다르게 법률지식에 해박했던데다 인사권을 이용해 본인의 비호세력을 형성했다. 그리고 이것이 2017년 연말까지 우병우가 끈질기게 버틸 수 있었던 이유이다.[8] 민정수석의 임무보다, 그 권한으로 주요 요직에 본인의 사람들을 임명하고 본인의 사익추구에만 최선을 다했다. 사실 언급된 업무를 보면 단 하나도 제대로 한 것이 없다. 박근혜 정부 고위직 전체가 그랬지만 민심 동향 파악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으며 각종 국가기관(국가정보원, 검찰청, 감사원 등)에 자신의 비선라인을 만들어 사정 및 공직 기강을 초토화시켰으며, 자신의 법률 지식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인물들의 범죄를 덮는데 이용했고, 인사 검증은 온갖 논란의 대상이었던 진경준 검사장과 이철성 경찰청장 (이쪽은 최순실이 청탁했다는 의혹까지 튀어나왔다!) 임명 건으로 제대로 말아먹었다.[9] 이게 심각한 것이 이런 말이 통한다는 것은 결국 검찰 수뇌부가 우병우와 함께 적극적으로 비리를 저질렀다는 말과 동의어이기 때문이다.[10] 이 보도에 대해 우병우는 "정정보도 청구를 하겠노라"고 발끈했다고 하는데#, 공교롭게도 국정조사 때 '민정수석이면서 최순실청와대에 드나드는데도 최순실을 몰랐다면, 무능한 것 아닌가?'라는 질의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발끈했던 모습을 연상시킨다.[11] 역시나 반년 후에는 최순실이라는 비선실세가 있는 줄 몰랐다고 우기면서 "사심 없이 공직을 수행하고 분수를 지키려 노력했다. 청와대의 관행에 따라 합법적인 방법으로 업무를 수행했다고 믿고 있다. (나를 기소한 것은) 과거 내가 검사로 처리한 (일에 대한) 정치 보복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라고 발뺌을 하기에 이른다. # 공교롭게도 그의 주군 박근혜의 변명과 상당히 비슷하다.[12] 그의 롤모델인 김기춘조차도 자신이 저지른 일이 자기 자신의 판단 하에 옳다고 생각하여 한 일이라고 주장했다.[13] 홍준표는 검찰 시절에 강경하고 타협 없는 수사 때문에 주류와는 이미 비틀린 뒤였다. 때문에 홍준표는 자신에게 불이익을 주었던 검찰에 호의적일 리가 없다는 분석이 대부분이다. 이미 홍준표는 검찰에 앙심을 품은 지 오래다.[14] 우병우의 승진에 강력하게 제동을 건 사람이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하던 조응천이었다고 한다. 조응천은 우병우와 비슷한 TK이고, 서울대 법대 출신이지만 검찰 내부에서 우병우가 오만방자하다는 평판이 너무 지배적이라서 검찰 정기인사 때 우병우의 승진에 제동을 걸었다고 밝혔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응천이 청와대에서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으로 잘리자마자, 검사장에서 탈락해서 변호사를 하던 우병우가 청와대로 들어온다.[15] 사실 이 부분은 의심되는 것이 있는 것이 우병우는 주민등록상으로는 빠른 67년 생이지만 어릴 때부터 학교(국민학교부터)를 1965년 생들과 다녔기 때문에(서울대 84학번. 우병우의 친구로 알려진 사람들도 죄다 1965년 생이다.) 실제 나이는 출생신고가 1년 이상 늦어진 빠른 66년이나 65년 생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실 정치계만 봐도 1950~60년대 생 중에 이런 식으로 주민등록은 늦게 하고 학교는 실제 나이대로 다닌 사람들이 굉장히 많고, 70~80년대생 중에도 종종 있다.[16] 지금처럼 대학 1 ~ 2학년을 마친 뒤 병/부사관으로서의 병역 의무를 이행하면 아무리 빨리 사법시험에 합격하더라도 24 ~ 26세 정도는 되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17] 서울대 법대 4학년 재학시 '소년급제'를 한 만큼 다른 동기들에 비해 지청장이 일찍 되었다.[18] 당시 재선 고령군수였던 이태근은 1947년생으로, 우병우보다 20살 연상이다.[19] 이순혁, '검사님의 속사정', 2011. 참조.[20] 민주주의에서 선거로 뽑힌 선출직은 실권을 떠나 국민 대표라는 권위를 가지고 있다. 지자체장 소속이 고령군 같은 동규모에 버금가는 소도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어지간한 대도시(김해시, 성남시 등)거나 광역자치단체장에게 갑질을 시도했으면(사실 여기까지 갈 필요도 없이 30만 정도의 중소도시 수장만 해도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과 연줄이 있어서 부장검사 따위는 찍어누를 수 있으며 사실 군수 정도만 되어도 부장 검사에게 전혀 안 밀린다.) 그날 이후로 우병우의 법조인 커리어는 끝장이었을 것이다. 참고로 광역 단체장급은 진짜 거물급이기 때문에 판검사는 커녕 국회의원, 장관들도 못 건드린다. 박원순, 이재명, 원희룡만 봐도...[21] 박지원은 김대중의 비서실장이자 계파의 확실한 넘버2였다.[22] 승지 도승지가 와닿지 않는다면, 대략 군대로 치면 국방부장관이 소장(투스타)(…)에게 전화해서 '저기 지금 나오실 수 있나요?'하며 물어보고 허가받고 나서 오는지 마는지 듣고 대답(보고)했다고 생각해 보자. 행정부의 온갖 업무와 사정과 인사를 담당해 온 우병우의 힘이 비정상적으로 막강했다는 증거다.[23] 그리고 실제 파워도 윗 비서실장이 쩔쩔매던 일화처럼 막강한 권신이다.[24] 민주사회에서 김영삼 김대중 삼김 시절의 제왕적 대통령 이야기나 킹무성 킹순실 같은 별명이 절대로 칭찬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25] 지방경찰청장은 2급 공무원인 치안감인데 이 정도면 평검사보다 최소 2직급은 높은 직위다. 이를 보면 자신보다 계급이 높아도 권력이 약하면 수족부리듯 부린 모양이다. 물론 당시 검찰이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권력이 강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하지만.[26] 거기다 1심, 2심 대법원 판결 전부 무죄 확정이었다.[27] 수십년 전문 운전경력의 경찰간부가 아들 운전병 채용에서 '코너링이 남다르다'는 점을 언론 앞에서도 강조하며 놀라워하는 표정으로(...) 대놓고 극찬하며 이유를 댄 것에 대한 패러디다. 우병우아들 + 코너링 = 우회전[28] 과는 다르지만 둘다 서울대 출신의 고학력자들이다.[29] 조선일보는 최순실 게이트 초기부터 우병우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와 청와대의 불화문서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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