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농법
1. 개요
주체사상에 근거해서 북한의 식량 자급을 목표로 했으나 철저하게 실패한 농법이다.
2. 내용
한반도 북부는 중·남부에 비해 농업생산량이 떨어졌기 때문에[1] 당연히 일제강점기에도 농업보다는 광공업 지역으로 개발이 진행되고 있었고 그 때문에 해방과 분단 후, 북한에서는 식량자급이 중요 과제가 되었다. 이는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지도에 의해서 진행되었다. 사실 아이디어 자체는 특별한것은 아니었고 당시 한국과 북한을 비롯한 많은 개도국에서 비료와 농약을 대규모로 쏟아붓고 농기계도 대량으로 보급해서 농업생산량을 늘렸는데[2] 북한의 주체농법도 이러한 방안에서 추진된 것이었다.
어쨌든 북한이 실시한 대규모 화학비료와 농약투입, 농기계 보급을 통한 농업기계화 자체는 매우 큰 효과를 보았고, 주체농업 자체도 나쁘지 않은 성과를 냈기 때문에 1950년대 말부터 1980년대까지는 북한이 식량을 자급자족 할수있었고 1990년대 초반까지 2.5배로 불어난 인구를 어떻게든 부양할수 있었다. 즉, 단기적인 목표달성에는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때 농업생산량을 늘릴려고 옥수수의 재배면적을 크게 늘렸는데 문제는 옥수수가 지력을 많이 잡아먹는 작물이기 때문에 '''연작을 하려면 대규모의 화학비료 투입이 필수적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1980년대까지는 주체농법이라고 해도 일단 제대로 돌아가기는 했지만 '''소련이 붕괴되면서''' 북한은 거의 공짜나 마찬가지의 헐값으로 보급받던 휘발유의 공급이 확 줄어들었고, 발전소 노후화 등으로 전력생산량마저 크게 감소하며 비료생산마저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속에서도 북한은 생산량이 많던 옥수수 재배를 포기는 할수 없었으니, 당연히 지력이 황폐화되었고 농기계도 기름이 부족하기 때문에 제대로 돌릴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북한은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려고 더 많은 산들을 다락밭으로 개간하게 되었다. 하지만 무리한 개간으로 삼림이 파괴되었으며 홍수로 논밭이 쉽게 휩쓸려나가게 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농업의 황폐화만 가속화되어 결국 고난의 행군을 초래하는데 한 몫했다고 평가된다.
내용 중 몇 가지를 살펴보자면
- 적기적작, 적지적작: 알맞은 장소와 시간에 농사짓자는 내용으로 물론 이것은 맞는 말이지만, 이런 지극히 단순하고 당연한 것도 당과 수령이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당연하지만 당과 수령 따위보다는 짧으면 수년 길면 수십년동안 농사일해온 농민들이 더 잘 안다. 모르면 농사 지어봤자 망한다. 망해도 진즉에 망했으니까 아는 사람만 농사짓고 있는 것이다. 당에서 메시에게 축구를 가르치겠다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소리.
- 강냉이 영양단지 만들기: 한마디로 벼처럼 모판을 마련해서 옥수수를 이앙법으로 심겠다는 것이다. 옥수수 모종을 만들어 심는 방법은 전세계 옥수수 농가에서 자주 쓰는 방법이긴 하지만 문제는 북한의 농지 사정상 모판에 좋은 흙을 쓰더라도 땅 자체의 질이 별로 좋지 않아 옥수수가 잘 자라지 못하며, 지력을 회복할 비료도 부족하기 때문에 지력 소모가 큰 편인 옥수수를 심을 수록 농지는 황폐화될 뿐이다. 거기다 기계가 부족한 북한의 특성상 옥수수 농사에 필요한 모든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뤄지므로 효율도 떨어진다.
- 다락밭 만들기: 산을 깎아 계단식 경작지를 만들겠다는 발상이다. 산악 지대의 비율이 남한보다 높은 북한의 환경을 감안하면 의외로 괜찮아 보일 수 있지만, 문제는 환경 파괴와 함께 노력 대비 효율성이 떨어질 뿐더러 여름에 강수가 집중되는 북한의 기후 조건과 맞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