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키르기스스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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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키르기스스탄'''
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키르기스스탄 독립 이후
2.1.1. 갈등
3. 관련 문서


1. 개요


중국키르기스스탄의 관계.
두 나라는 소련 해체 이후부터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중국에도 키르기스족들이 신장 위구르 자치구키질수 키르기스 자치주에 주로 거주하고 있다. 중국 내 키르기스인들도 키르기스어를 사용하지만, 아랍 문자로 표기된 키르기스어를 사용하고 있다.
정부간 사이는 현재 키르기스스탄이 어쩔 수 없이 끌려다니는 상황으로, 소련이 정해준 국경선을 일대일로 과정에서 임의로 중국에게 일부러 양도하여 키르기스스탄 내에서 큰 논란이 발생하였다. 키르기스스탄 국민 사이에는 중국 정부에서 신장 위구르 자치주 내 키르기스인 인권 탄압과 강제 결혼, 공산당원들이 키르기스인들과 위구르인, 카자흐인 가정에 상주하며 종종 공산당원들이 부녀자들을 성폭행하는 일마저 암암리에 퍼지면서 반중 감정이 상당히 심해지고 있다.#
키르기스스탄내에도 둥간족들이 6만여 명 정도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은 자신들이 중국 출신이라는 정체성은 강하지만 오늘날 중국 정부하고는 선을 긋고 있다.

2. 역사적 관계


키르기스인들은 원래 북아시아[1]에 거주하던 유목민으로 중세 위구르 칸국을 몰락시켰으나 따로 도시를 건설하거나 무역에 적극 참여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역사적인 교류가 적었다. 탈라스 전투가 발생한 지역이 키르기스스탄의 탈라스라는 가정도 있지만 당시는 아직 키르기스어를 사용하는 키르기스인들이 해당 지역에 이주 정착하기 전이었다. 사료 상으로는 13~15세기 무렵 오늘날의 키르기스스탄 일대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청나라가 준가르 칸국을 정벌하는 과정에서 준가르 칸국에 예속되어 있던 키르기스 부족 상당수가 해방되었는데, 이들 중 대다수는 코칸드 칸국 등 우즈베크 계열 국가로 귀순했지만 일부는 청나라 만주족 정권의 지배를 받았다.
청나라의 국력이 쇠퇴하고 만주족들의 권위가 약해지면서, 한족 군벌들이 이 지역을 일종의 제국주의 식민지로 착취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분개한 키르기스인들은 러시아 제국 영토 내 키르기스인 및 신장 내 다른 무슬림 민족인 위구르인, 카자흐인과 협력하면서 민족주의를 부흥시켰다. 청나라와 러시아 제국이 각각 신해혁명과 적백내전으로 무너지고 오늘날 키르기스스탄에 거주하는 키르기스인들은 소련에 속하게 되었지만 교류는 과거보다 더 활발해졌다. 20세기 중반 성스차이 군벌 정권 시기 및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하는 과정에서 소련은 레닌주의 민족자치원리에 입각하여 소수민족들에 대한 권리를 보장할 것을 압력을 주었고 중국 측에서는 어쩔 수 없이 키질수 키르기스 자치주를 설정하였다. 그러나 문화대혁명대약진운동으로 인한 중국 내 기근과 사회 혼란이 한창이던 시절 많은 키르기스인들이 중국에서 탈주하여 소련으로 이주하면서, 오늘날 해당 자치주의 키르기스인 인구는 소수에 불과하다.

2.1. 키르기스스탄 독립 이후


중국과의 관계는 21세기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다만, 후술할 갈등이 발생되고 있다. 그리고 키르기스스탄이 중국과 수교한 뒤, 일대일로에도 참가하면서 일대일로와 관련된 문제도 발생되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에서 벌어지는 인프라 공사는 중국 인력에 의해 중국산 자제로 공사가 진행되며, 예산 사용과 부채 내역은 사실상 일방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키르기스스탄 경제 입장에서는 장기적으로 큰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비교하자면 소련 붕괴 직후 옐친의 러시아가 순진하게 IMF 말을 그대로 믿었다가 국가 자체가 거덜났던 상황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다보니 키르기스스탄은 생존 전략으로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2.1.1. 갈등


2013년 1월에 키르기스스탄에서 중국인과 현지인들간에 충돌이 크게 벌어졌다. 중국인 4명이 현지 키르기스인이 자기네 핸드폰을 훔쳤다고 납치해서 감금하고 구타한 것. 이에 구타당한 현지인이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고 아버지가 왔으나 중국인들은 아버지도 구타하고 감금했다. 이후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으나 중국인들은 경찰까지 구타해버렸다. 결국 경찰들에게 이들은 처맞고 구금당했으며 엄청난 벌금형을 처했다. 이에 중국에선 피해자로서 반발했으나 "경찰구타가 피해자냐?" 라는 키르기스스탄 측의 주장에 침몰. 러시아가 중재하여 이 4명은 석방되어 중국으로 보내졌지만 이들은 키르기스스탄 영구입국 금지를 당하여 그동안 키르기스스탄에서 자영업으로 벌어들인 것을 모두 잃었다고 한다.

3. 관련 문서


[1] 오늘날의 하카시야 공화국 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