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문트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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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1520년 8월 1일 ~ 1572년 7월 7일
제위년도 : 1548년 4월 1일 ~ 1572년 7월 7일
1. 개요
2. 리보니아 방어
3. 루블린 조약


1. 개요


지그문트 2세 아우구스트 폴란드-리투아니아 동군연합 야기에우워 왕조 최후의 국왕이자 대공이었다. 선왕 지그문트 1세밀라노 공국 출신 왕비 보나 스포르차의 외동아들로 크라쿠프에서 태어났다. 그의 제위 기간 말 1569년 7월 1일 루블린 연합을 통해 폴란드 왕국리투아니아 대공국이 통합되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이루어진 것으로 유명하다. 지그문트 2세는 폴란드의 국왕이자 리투아니아의 대공의 직함을 따로 가지고 있었으나, 이후에는 단일 국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국왕으로 다스리게 되었다. 지그문트 2세는 따로 아들이 없었으며 사후 야기에우워 왕조는 막을 내리고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의회에서 왕을 선출하게 되었다. 폴란드 리투아니아 역사에서 지그문트 2세는 비록 후사 문제에 있어서는 실수가 있긴 했으나, 외국으로부터 영토를 능란하게 방어하고 국내 통치에서는 현명하고 신중했으며 일생 생활에서는 교양이 넘치는 명군으로 기록되었다.

2. 리보니아 방어


지그문트 2세의 제위 기간 루스 차르국이반 4세리보니아 연맹을 침공하였다. 폴란드 리투아니아는 리보니아 남부는 지켜냈으나 러시아에서 라트비아로 향하는 교역 도시 폴로츠크를, 스웨덴으로부터는 에스토니아 북부 일대를 상실하였다. 이후 리보니아 해안지대는 폴란드의 봉신국 쿠를란트-젬갈렌 공국이 되었고, 라트갈레 지역과 에스토니아 동남부 일대는 리보니아 공국이 들어섰다.

3. 루블린 조약


16세기 이후 크림 칸국이반 3세모스크바 공국이 계속 리투아니아 대공국 영토를 침공하고 리투아니아 대공국이 폴란드의 도움 없이 방어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모스크바 공국을 계승한 이반 4세루스 차르국은 동방 무역로를 장악하며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고, 예전에는 폴란드를 경계하던 리투아니아 귀족들도 이제는 어쩔 수 없이 폴란드와의 통일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지그문트 2세는 두 나라의 통일을 매우 신중하게 진행하였으며 특히 리투아니아 귀족들이 폴란드 귀족들과 박탈감을 느끼지 않고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만반의 조치를 취했다.
1569년 7월 1일 루블린에서 열린 조약을 통해 공화국은 한 명의 왕에 의해 통치되고 하나의 의회(입법부)를 가지며 공동으로 외교를 수행하기로 정해졌으며, 빌뉴스의 의회 및 리투아니아 대공 선출 제도는 폐지되었다. 다만 행정과 재정 그리고 군대와 사법권은 각각 독립적으로 운영하기로 합의했으며 당시에는 아직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법 체제가 더 정교하고 판례가 많다는 점 때문에 연방의 법 체계는 리투아니아 대법전을 기본으로 하여 재작성되었다. 이로써 여태까지 단순한 동군연합 관계였던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폴란드-리투아니아라는 완전한 하나의 국가가 되었다. 지그문트 2세 시기에 이루어진 루블린 연맹 이른바 폴란드 리투아니아 연방은 1795년 폴란드 분할 이후까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