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애후

 


'''채(蔡)나라 13대 국군
애후
哀侯
'''
''''''
희(姬)
''''''
채(蔡)
''''''
헌무(獻舞)
'''아버지'''
채대후(蔡戴侯) 희조보(姬措父), 희고보(姬考父)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675년
'''재위 기간'''
음력
기원전 694년 ~ 기원전 675년
1. 개요
2. 생애
2.1. 즉위 초기
2.2. 초나라와의 접촉

[clearfix]

1. 개요


중국 춘추시대 채나라의 제13대 군주. 채선후의 아들. 채환후의 동생. 채목후의 아버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초(楚)나라의 간섭을 받기 시작한다.[1] 그 이유는 후술.

2. 생애



2.1. 즉위 초기


채 환후 20년(기원전 695년), 형인 채 환후가 사망하자, 소식을 들은 채 애후는 진(陳)나라에서 귀국해 8월에 즉위했다. 8월 계자일 채 애후는 형인 채 환후를 안장했다.
채 애후 6년(기원전 689년) 채 애후는 노나라, 제(齊)나라, 송나라, 진(陳)나라 4개 나라와 함께 위(衛)나라를 쳐서 위혜공을 복위시켰다.[2]

2.2. 초나라와의 접촉


채 애후 11년(기원전 684년), 그와 식나라 군주는 진(陳)나라 여자를 아내로 맞았다. 그런데, 채 애후는 그 사실을 들어 식규에게 무례하게 행동했다. 식후는 크게 노해 초나라 왕인 초문왕에게 알렸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채나라가 저희 식나라에 무례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니 전하께서는 저희 식나라를 치십시오. 그러면 채나라가 저희 식나라를 구원하러 올 것인데, 그 때 채나라의 병사를 쳐서 물리쳐 주시기 바랍니다."
이에 초 문왕은 식나라 군주의 요청대로 식나라를 치는 척하면서 사실은 채나라를 쳐서 채 애후를 사로잡았다. 초 문왕은 원래 채 애후를 죽일 생각이었다. 그러나 초 문왕은 육권이 검을 뽑아 위협하면서 간하는 말을 듣고 놔줬다.[3]
채 애후 15년(기원전 680년), 채 애후는 식후의 행동에 앙심을 품고 초 문왕을 만나 그 앞에서 식규의 미모를 칭찬했다. 초문왕은 식규를 차지하고 싶은 마음이 동했다. 초 문왕은 식나라로 가서 연회에 참석하는 척하며, 식후를 쳐서 사로잡고 식규를 차지해 왕후로 삼았다. 그리고 도오초성왕(楚成王)을 낳았다. 식후는 화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그리고 식규가 말이 없자 초 문왕이 그 까닭을 거듭 물으니 식규는 남편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그러자 초 문왕은 채나라를 쳤다.
채 애후 20년(기원전 675년), 채 애후는 초나라에 잡혀가서 거기서 죽었다. 그리고 그 아들인 희힐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채 목후다.
[1] 다만 초나라의 속국 취급을 받는 것은 훗날의 일이다.[2] 하지만 이 위 혜공이 대단히 문제가 많은 인물이다. 그 이유는 위혜공 항목 참조.[3] 그 여파로 육권은 자신의 발을 잘랐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