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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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춘추시대 채나라의 제14대 군주. 채애후의 아들. 채장후의 아버지. 채 목후는 당시 패자국인 제나라와의 우호 관계를 다지고자 여동생인 채희를 제나라 군주인 제환공(齊桓公)에게 시집 보냈으나 채희가 제환공과 뱃놀이를 하다가 물장구를 치는데 제 환공이 제지를 여러 번 해도 듣지 않아 제 환공은 크게 노해 채희를 친정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채나라와의 우호를 끊지는 않았는데, 채 목후는 그것에 노해 우호 관계를 끊어버리자 제 환공이 거기에 노해 채나라를 털었다고 한다.
2. 생애
2.1. 제 환공에게 영혼까지 털리다
채 목후 18년(기원전 657년), 제환공은 채희와 함께 뱃놀이를 하면서 물장구를 치는데 제 환공이 그것이 싫어 그만두라고 했으나 듣지 않자 제 환공은 크게 노해 채희를 채나라로 돌려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환공은 채나라와의 관계를 끊지는 않았다. 그러나 채 목후는 그 일로 크게 노해 제나라를 배신하고 초(楚)나라를 섬겼다.
채 목후 19년(기원전 656년), 정월 제 환공은 노(魯)나라, 송나라, 진(陳)나라, 위(衛)나라, 정나라 등과 채나라를 치니 중견 국가에 불과한 채나라가 강대국과 여러 중소국가들의 다굴을 맞고서 버텨낼 리 없었다. 결국 분자 단위까지 탈탈 털리고 말았다. 그 결과 채 목후는 포로로 전락하고 제나라 연합군[1] 은 초나라의 소릉 땅으로 나아갔다. 훗날 각 제후들이 채 목후에게 제 환공 앞에서 사죄하게 했다. 그리하여 채 목후는 해방되어 귀국했다.
2.2. 만년
채 목후 21년(기원전 654년), 여름, 제후들이 연합해 정나라를 쳤다. 가을 초나라의 왕인 초성왕(楚成王)은 허나라를 포위했다. 그 목적은 정나라의 구원이었다.[2] 제후들이 허나라를 구하러 가자 초 성왕은 철수했다. 단, 귀국하지 않고 군사를 무성 땅에 주둔시켰다. 거기서 사태를 관망했다. 겨울, 채 목후는 허나라 군주 허 희공과 초 성왕에게 사죄했다. 초 성왕은 대신 방백의 건의를 받아들여 허 희공을 용서했다.
채 목후 29년(기원전 646년), 채 목후가 죽고 그 아들인 희갑오가 즉위하니 그가 바로 채 장후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