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구조 및 수습의 어려움
[image]
[image]
[1]
'''해상 사건사고'''에 관한 사항 전반은 본 문서 참조.
1. 사고 해역 설명
사고가 일어난 해역은 전국에서 물살이 빠르기로 손에 꼽히는 지역이다.[2] # 사고 해역보다 물살이 느린 서해에서조차 기네스 기록(308m)을 가진 스쿠버 다이버 존 베넷이 실종된 것[3]##을 보면 왜 수색 작업이 쉽사리 진행되지 않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구조대는 물살이 약해지는 정조 기간에 제한되어 구조 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image]
위 움짤은 이 사고와 아무 관련이 없다. 상황도 상시 움직이는 조류가 아니라 한번 오고 끝나는 파도에 의한 휩쓸림으로 '''저게 시속 7km의 유속이다.'''[4] 사고해역은 위 움짤보다 1.5배 빠른 흐름이 상시 무작위로 오고, 랜덤성으로 이는 와류도 발생하며 시야도 제로에 가깝다.
'왜 일찍이 수중 구조를 시행하지 않았느냐?'에 대한 답이 바로 여기에 있는데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해양에서 '''구조요원의 안전까지 고려하면서''' 작전을 펼치기란 매우 힘들다. 앞서 언급되었듯이 '''사고 해역의 수중 가시거리는 20cm[5] 정도밖에 안 되고 유속도 8kn(약 15km/h)로 빠르기 때문에 자칫 구조대원이 목숨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래서 정부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의 자문을 토대로 잠수부를 투입해 진입루트를 확보해 단시간내에 최다인력을 투입하는 물량작전을 발표 하였지만 성공할 가능성은 낮다는 암울한 발표를 할 수 밖에 없었고, 이 발표를 토대로 각종 음모론과 민간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이 온갖 사기와 허위제보를 하는 혼란을 야기시켰다. 2015년 1월 조사위 청문회에 증인 자격으로 출석한 이주영 전 해수부장관은 과장된 발표와 허술한 지원이 모두 궁극적으로 자신의 책임이라고 인정했다. 당시 각종 음모론등 여러말이 나오게된 만악의 근원. [6]
위 뉴스 영상과 같이 겨우 사람 키 정도만 내려갔음에도 불구하고 빛이 사실상 차단되고, 시야 확보 범위가 불과 20cm에 불과할 정도로 상당히 탁한 해수다. (쉽게 설명하면 팔을 쭉 뻗을 경우 팔꿈치부터 손까지 보이지 않는 셈이다.)
실제 일부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구하기 위해 사설 잠수부들과 함께 배를 빌려 사고현장으로 17일 떠났으나 해상상황의 악화와 시야확보 문제로 철수해야만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편, 초기 구조 작업이 쉽지 않았던 이유가 거센 조류 때문이었다는 주장 외에 해경과 해군 측의 조류 오판 때문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세월호가 침몰한 2014년 4월 16일과 17일. 해군과 해경 측은 이틀 동안 침몰 지점에 수중 구조대와 잠수사를 수 차례 투입시켰는데 투입 시기는 침몰 지점과 가까운 전남 진도군 서거차도의 조석표를 참고해 결정했다. 하지만, 침몰 지점은 고조 때와 저조 때 물살이 가장 센 경향을 보이는 특이한 해역이다. 실제로 수중 구조대와 잠수사가 침몰 지점을 수색한 시각은 국립해양조사원이 분석한 침몰 지점의 정조 시각(유속이 약해지는 시각)과 대부분 불일치 했다. (단 한 차례만 일치했을 뿐이다.) 이와 관련해 일부 언론은 침몰 초기라는 중요한 시기에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치고 조류 탓만 하고 있다며 맹비난했다.#
2. 사고 발생~ 4월 17일까지 상황
[image]
3. 4월 18일 이후의 상황
4월 18일에 그나마 나와 있던 뱃머리마저 가라앉았고 19일의 브리핑에 따르면 옆으로 쓰러진 채 바닥으로 더 가라앉고 있다. 즉, 전복되어 완전 침수된 상황이다. 다만 부력을 잃은 이유는 명확히 알 수 없어 의견이 분분한 듯하다.#
워낙 선체가 큰 초대형이라, 배 후미는 바다속 뻘에 박힌 채 현재 저 상태로 해군과 구조대원들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4월 21일 소조기가 시작되자, 조류가 약해졌으나 세월호의 부력에 영향이가 세월호가 수심 20미터까지 완전침몰하기도 했으며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은 안전성문제로 실전투입을 거절한 크랩스터의 투입을 발표했다.
워낙 험하고 거친 바다라, 잠수부들에 의한 인력동원 외엔 뾰족한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4월 22일, 크랩스터를 투입해 입수한 초음파 사진이 공개되었는데 바닷속에 90도 가량 기울어져 있는 상태라고 한다.# 이 때문에 4월 27일에는 세월호의 현재 자세를 바꾼 뒤에 구조 작업을 벌이자는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4. 제안된 구조 방식
4.1. 천공구조 방식
일각에선 '드러난 뱃머리 바닥에 구멍을 뚫어 거기로 진입할 수는 없느냐' 혹은 '다른 배로 침몰된 배를 밀어 연안으로 끌고 올 수는 없느냐'등의 천공구조방식을 주장하였는데 '''이는 매우 위험한 주장이다'''. '''사고 현장의 전문가들이 저런 방안을 못 떠올려서 안하고 있는게 아니다.''' 당시 선체가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것은 배 내부의 에어포켓으로 인한 부력 때문일 가능성이 컸으며, 에어포켓 구간에 사람이 있었다면 구조 확률은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그런데 무심코 배에 구멍을 내게 되면 그 부분으로 공기가 빠져나가 배가 완전히 침몰해 버리거나 생존자들이 큰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배를 옮기는 것도 마찬가지로 현재 세월호의 상태에 어떤 영향을 줄 지 전혀 예상할 수 없으며, 그로 인해 상황이 악화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즉, 여러가지 상황의 특수성 때문에 지금 당장 시도할 수 있는 구조 수단은 단지 잠수부 외엔 없다. 그나마 현실성 있는 방안은 잠수부들이 교대로 잠수하며 1차로 생명줄을 배와 연결하고, 2차로 그 생명줄을 따라 배에 진입한 뒤 내부를 수색해 생존자를 확인하고, 3차로 생존자들에게 생존에 필요한 물품(산소, 물, 음식, 보온 기구, 조명 등)을 전달하고 마지막으로 생존자들을 수면 위로 구조해내는 방법 뿐이다.
4.2. 다이빙 벨 구조 방식
민간 수중작업 전문가인 이 씨가 손석희의 jtbc방송에 18일, 잠수종이라는 물건을 구조에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다른 전문가는 이씨가 투입해야 한다 주장한 다이빙 벨이 유속이 빨라 도움이 되기 힘들다는 지적을 했고,# 결국 현장에서 기존 작업 방해, 이미 설치된 바지선과의 안전사고 우려로 거부당했다.# 또 해당 다이빙 벨은 이 씨의 자작품인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공인기관에서 안전성이 인증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3일 뒤인 2014년 4월 24일, 이씨의 주장을 유리하게 다룬 '늙은 잠수부의 눈물'이라는 이름의 동영상을 팩트TV 외 합동생방송에서 다른 민간잠수부들과의 이 씨에 대한 인터뷰 등이 웹상에 방송 되었고, 이 와중에 해군 또는 해경 측에서 1억5천만을 주고 바지선을 구입한 후에 승인 하에 사건현장에 갔는데, 정작 사건 현장에서는 퇴짜를 놨고, 새벽에 몰래 한국폴리텍대학에 있는 이 씨의 다이빙 벨보다 훨씬 못한 실습용 다이빙 벨을 사용하려 했다는 주장이 2014년 4월 24일 팩트TV외 합동생방송에서 제기되었다.#
한국폴리텍대학에 있는 다이빙 벨을 가져다놓은것은 당시4월 23일 정부 발표에의하면 언딘의 독단적인 판단에 의한것이며 당시엔 사용한 적이 없으며 투입될 계획도 없다는 발표가 있었다.# 또한 언딘 대표는 '다이빙벨을 쓰는 시점은 따로 있다. 이종인의 다이빙벨 투입 논란이 되자 해당 장비는 그 사람만 가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다이빙벨을 가져왔으며, 애초 사용목적이 아니였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방식에는 3가지 문제점이 있다. 실전에 투입되어 전적을 올린 적이 없다는 것이 첫번째 문제이고,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이 두번째 문제이며, 성능이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 세번째 문제이다. 해경은 다이빙 벨에 대해, 안전상의 문제가 해결되기전엔 투입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강조하였다. 이로 인해 21일 이후로 다이빙 벨을 투입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등을 놓고 논란이 발생했으며, 일단 4월 24일 밤에 수색 작업에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기상 악화로 인해 4월 29일 오후에야 사고 해역에서 한 가동 실험에 성공했다. 논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사건사고 항목을 참고.
5. 민간 잠수부의 투입
4월 19일 경부터 정동남을 비롯한 일부 민간 전문가들이 어느 정도 지휘체계를 구축하여 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동남은 '''이번 사고가 천안함 사건보다 더 악조건'''이라면서도, 실종자 가족들에게 "내가 죄짓는 것처럼 마음이 아프다" 며 미안해하는 중.#
사고 발생 이후 일단 잠수부를 투입한 수중 구조로 가닥을 잡았지만 만에 하나 인양의 필요성이 생길수 있으므로, 당국은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에 민간 크레인선을 요청했다. 그러나, 두 회사가 최대한 준비시간을 단축시켰는데도 사전 준비만 몇시간이 걸렸고 선종의 특성상 이동 속도도 매우 느린 편이기에 18일 오전에야 도착 가능했다. 게다가 두 크레인선은 각각 3130톤까지 인양할 수 있기에, 총 6825톤인 세월호의 인양은 꽤나 빠듯하며, 게다가 인양용 체인걸기 작업에만 1개월이 소요될 수도 있다는 극단적인 기사도 나왔다.#
5.1. 생존자 파악은 가능해도, 구조는 어렵다
'''생존자를 확인하는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들을 구조할 수 있는가를 전혀 장담할 수 없다.''' 사고 현장은 앞서 설명한대로 빠른 유속과 낮은 수온, 낮은 시계가 어우러진 최악의 악조건이며, 거기에 높은 수압까지 고려해야 한다. 고도로 훈련받은 전문 인력들 조차도 몇 분 정도[7] 잠수하는게 한계인 상황에서, 배 내부의 생존자들을 안전하게 수면 위로 구조할 방법이 17일 오후 9시 현재에는 명확하지 않다. 이처럼 여러모로 생존자 구조가 열악한 상황이다.
그래서 당장 구조하기보다는 선체 내부로 공기주입을 시도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워낙 선체가 큰데다, 장비 문제 등으로 여러가지로 구조에 어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진도 해상에 비와 높은 파도가 예고되어 있어 수색 작업에도 어려움을 겪어, 작업이 진척되기 시작한 건 4월 18일부터였고, 그나마도 소조기 이전까지는 속도가 느렸다.
정부는 조류가 약해지는 소조기가 시작되는 4월 21일과 소조기의 정점인 22일 건곤일척의 승부를 걸겠다 발표했지만, 해양학자들은 조류가 약해지며 세월호의 부력 밸런스가 무너져 예측불가의 사태가 발생해, 구조작업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란 안좋은 소식을 전했다.
22일, 세월호가 수면으로 부터 20미터 가라앉아 육안으로 사라지자,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은 안전성문제로 실전투입을 거절한 크랩스터의 투입을 발표했다. 크랩스터는 2014년을 기준으로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깊은 잠수를 할 수 있는 보행형 수중ROV이며 다이버들이 개척해둔 루트를 통해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6. 관련 사고
6.1. 해군 수병 임무 중 순직
직접 참여중이었던 인원은 아니지만, 구조 작업을 위해 출동한 대조영함 승조원인 21세의 윤 모 수병(병장)이 승강기에서 수리를 하다 승강기에 끼는 바람에 머리를 다쳐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후 뇌사 판정을 받았다가 결국 안타깝게도 19일 저녁에 순직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장례는 구 제주방어사령부(현 제9해병여단)에서 치뤄졌으며, 윤 수병은 순직이 인정되어 하사로 1계급 특진했다.#
6.2. MBN 방송국 가짜 민간전문가 인터뷰
MBN의 일부 보도로 인해 논란이 있지만 민간 잠수사인 사람들도 현장에 접근조차 어렵다는 말을 한 걸 보면 일단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실히 한다음에 비판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 준비도 없이 나타나 나 전문가요, 장비 내놓으시오, 라고 한다면 그게 어떤 상황이든 경찰의 반응은 같았을 것이다. 실제 해당 잠수부라고 주장하는 여성(후술될 그 여성)은 마땅한 장비 없이 해당지역에 왔다고 자신의 홈페이지에 써놓고 있다. 민간잠수부들이 들었다는 말 역시 선내진입도 못한 상황에서 나온 전형적인 카더라 통신이며, 설령 사실이라도 일부 음모론자들 주장처럼 박근혜 정부가 숨길 이유가 하나도 없다.
비록 허언증 환자 홍씨의 주장은 거짓으로 드러나 본인은 수사를 받고 있지만, 이와는 별개로 민간 잠수사들의 노력은 큰 성과를 내었다. 물론 이 민간 잠수사는 취미나 스포츠로 하는 다이버 '''따위'''가 아니라 UDT/SEAL, SSU를 전역한 다음에도 특기를 살려 산업 현장에서 10년 넘게 더 경험을 쌓은 '''진짜 전문가'''들이다.# 세월호에 처음 진입한 것도, 연결 통로를 만든 것도, 공기를 주입한 것도 이들이었다.## 해경 장비국장도 '민간의 장비가 군경보다 낫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가 논란이 되었다.# 이것 때문에 초반에 협력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주장이 있는데 500명 넘게 몰려온 민간 다이버가 다 그런 전문가는 아니었다. 레크레이션 자격증 하나 달랑 들고온 비전문가도 많았고 무엇보다 민간은 책임의 소지가 적고, 정부기관은 민간인의 실패, 만에 하나 불상사가 생길경우 그 책임까지 책임져야한다. 이걸 감안하면 당연히 신중해질 수 밖에 없다.
이런 기사가 나왔는데 "이에 관한 루머에 대하여 국방부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홍씨(홍가혜)의 인터뷰 사건과 관련해 상기 내용을 편집 없이 이어 기술하자면, 이후(2015년 1월 9일) 광주지방법원은 (인터뷰에서 해경을 명예훼손한 혐의로 고소 당한)홍씨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아래와 같이 판시했다.
"홍씨의 카카오 스토리 내용과 인터뷰는 구조 작업을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는 취지다."
"허위 사실(거짓 주장)이라고 인식하기 어렵고 해경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보기에도 어렵다."
하지만, 홍씨의 행동에 적절치 못한 측면은 있었고, 이를 정당화하거나 면죄부를 주는 판결은 아니라고 재판부는 덧붙였다.# 한편, 홍씨는 인터뷰 이후 자신을 모욕한 네티즌들을 무더기(515명)로 고소했고, 그 중 10명이 약식기소 됐다.#
논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사건사고 항목을 참고.
7. 인양 계획
MBN 뉴스와이드 4월 17일자 전문가 인터뷰에 따르면 바닷물 등을 포함해서 약 1만톤 가량의 무게를 들어야 하는게 예상되는데 천안함의 10배라서 쉽지 않다고 한다. 3천톤 정도를 들 수 있는 초대형 크레인 4대 정도가 동원되어야 할 거라는 예상을 내놓았고 시간 또한 몇 주 단위로 걸릴 거라 추측했다.
상세 내용은 인양관련 정보를 참조.
8. 결론
사고 해역의 갖은 악조건으로 구조에 난항이 많았다는 점은 사고에 관심을 가진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아울러 그러한 악조건 속에서 구조 작업을 무모하게 강행하게 하는 식으로 구조 관계자들의 순직을 강요할 수 없다는 데에도 여론은 비교적 한 목소리를 내는 양상이다. 하지만, 악조건보다는 해경을 포함한 관계 당국의 사명 의식 결여와 재난 대응 요령 부족이야말로 (이렇다 할)구조 작업의 성과를 내지 못한 주된 원인이라고 보는 여론도 존재한다. 한편,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4년 4월 29일 청와대 국무회의를 통해 "초동 대응과 수습이 미흡했던 점" 을 인정한 바 있다.#
9. 기타
2017년 8월 7일, 아주대학교 중증외상전문의 이국종교수가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서 전한 방송에 따르면, 사고 당일 오전 아주대학교에서 급파한 헬기를 타고 사고지역 상공을 날아다녔다고 한다. 당시 목포 주변에는 무려 5000억원 대에 달하는 구조 헬기가 수 대 있었던 것이 확인되었는데, 실제로 구조구급을 위해 비행을 수행했던 헬기는 "그가 탑승하고 있었던 헬기 뿐"이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사고가 발생하면 인근 상공에 비행제한이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실상 막상 가도 이런 긴급작전을 상정한 유류 지급계획이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목포 주변엔 비행장이 수 개 사방에 있었음에도, 결국 이 교수의 팀은 급유를 받기 위해 산림청의 지원을 받아야만 했다며 구조구급 프로세스의 개선을 촉구하였다.
앞으로 긴급재난상황이 일어날 경우, 컨트롤타워의 허가 아래, 각 기관들의 유동적이고 신속한 긴급지원체계의 확립이 시급하다. 무려 사고로부터 3여년이 지난 지금에 그가 이렇게 강연을 한다는 것은, 지금까지도 이런 정책의 전달력이 여러 방해를 받고 있다는 것이 옳다 할 수 있을 것이다.
[1] 위 현장상황을 중계하던 자원봉사자가 찍은 사진, 육로로 갈수있는곳에서 가장 잘보이는 곳이라고한다, 아래 같은시각에 KBS에서 보도중이던 장면, 조명탄의 개수와 확산된 모양을 보면 동일시각임을 알수있다.[2] 근처에 있는 명량대첩으로도 유명한 명량수도 다음으로 조류가 강한 편.[3] 당시 국내 민간 구조업체, 바로 이종인의 알파잠수기술공사의 초청으로 입국해서 작업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4] 펠프스의 200m 자유형 세계기록이 1:42.96인데 이를 시속으로 환산하면 6.990km/h다. 움직임을 제한하는 다이빙 장비 없이 수면에서 인류 최고의 수영선수가 단거리 종목에서 낼 수 있는 속도가 그 정도니...[5] 한 뼘 정도 길이에 불과하다. 더구나 현재 세월호는 뒤집혀있다. 거기에 가시거리 20cm라고 해서 그 20cm 마저도 잘 보이는 것이 아니다. 부유물로 인해 빛이 극히 적은 환경으로 윤곽이 보이고, 외부의 인공적 광원 없이는 기기-잔압계, 수심계 등-의 외관만이 보일 뿐이다.[6] 기사[7] 대략 한번 잠수할 때 15분 작업을 하는데 들어가는데 5분, 실제 작업 5분, 나오는데 5분이라고 한다. 엄청난 악조건. 참고로 15분 작업은 산소통 달고 작업할 때 이야기. 배에서 직접 호스로 공기를 공급받는 장비는 훨씬 장시간 작업이 가능하다. 해군이 해경에게 지휘를 넘겨받기 전엔 산소통과 병행했는데 해군이 작업 지휘를 넘겨받은 후부턴 전부 배에서 공급받는 방식으로 작업한다는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