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해난구조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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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해군의 '''해난구조전대'''는 해양 재난·사고에 대한 인양 및 구조 작전 임무를 수행하는 특수임무부대로, '''SSU'''('''S'''ea '''S'''alvage & Rescue '''U'''nit)로 알려져 있다.[2]'''더 넓고 더 깊은 바다로!'''
'평시'에는 인명구조 및 선체인양 등의 해난구조작전, 항공구조작전, 심해 EOD, 항만 및 수로 상 장애물 제거, 간첩선 및 격침된 적 함정 인양을 통한 적 정보 수집, 항공기·선박의 해양사고 규명 및 구조, 그리고 심해잠수사를 양성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전시'에는 주요 항만 개항유지를 지원하고, 상륙작전시 전투구조 임무를 수행한다.
해난구조전대의 전신인 해상공작대는 1950년 9월 1일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선박 인양을 하던 인원들을 군무원으로 채용하여 그 인원들을 주축으로 창설되었으며#, 6.25 전쟁 당시 1950년 10월 16일, 좌초된 문산호 구조작전을 비롯하여 1951년 12월 15일 목포항내 침몰한 Pluto정 인양작전, 1953년 1월 9일 여객선인 창경호 구조작전 등을 수행하였고, 1954년 8월 1일 해난구조대로 개칭하였다.# 세계최대수심 인양기록 및 잠수능력[3] 의 기네스 세계기록 등재, 250건 이상의 작전을 완수하였으며 인양과 구조라는 임무 특성상 평시에도 전시와 구분이 없는 수중작전을 수행하는 등 해양국가재난 시 최우선으로 투입되는 소수정예 부대로 그 존재 가치가 점차 주목받고 있다.
특수전전단 소속이며 전대장으로는 대한민국 해군 대령이 보임된다.
1.1. 해난구조대가
'''창파를 헤쳐나갈 뜨거운 정열'''
'''젊은피가 약동하는 꿋꿋한 투지'''
'''다이버 황파한들 두려울쏘냐'''
'''타오르는 사명감에 오늘을 산다'''
'''다듬고 빛내자 해난구조대'''
'''바다에 새하늘에 떨칠 용사들'''
2. 역사
- 1950년 9월 1일 해군본부 함정국 해상공작대로 군무원을 중심으로 창설.[4] 초대 지휘관 강만석 기좌를 중심으로 부장 손영명 기사와 대원 14 등 총 16명을 창설 요원으로 해군 본부 함정국에 예속.
- 1954년 8월 1일 해상공작대에서 해난구조대로 개칭.
- 1986년 2월 3일 해군작전사령부 제5성분전단 제55군수지원전대로 예속.
- 2007년 12월 20일 제55군수지원전대 및 해난구조대를 해체하고 특수전여단과 부대를 통합하여 특수전전단을 창설, 특수전전단 구조전전대로 재편.
- 2009년 1월 1일 제55전대 해난구조대로 재편.
- 2011년 2월 1일 1개대대 예하 4개제대로 부대조직을 개편.
- 2015년 7월 1일 세월호 참사 후속조치의 일환으로 3개 해역에 구조작전대를[5] 창설하여 사고 시 초동조치능력을 강화했고,# 심해잠수대를 신편하여 전문성을 강화.
- 2018년 9월 1일 해난구조전대로 승격, 구조함과 함께 특수전전단에 예속.[6]
3. 편제
- 해난구조전대(진해)
- 심해잠수대대
- 교육훈련대대
- 근무지원대대
- 제1구조작전대(동해)
- 제2구조작전대(평택)
- 제3구조작전대(목포)
4. 활약상
해난구조대의 활약상은 군사작전은 물론 민간작전 분야에 이르기까지 그 활동 영역이 광범위하다. 군사작전으로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1951년 문산호 작전, 1998년 동해 적 잠수정 나포 및 인양, 2002년 참수리 357호정 인양, 2010년 천안함 인양, 2013년 적 미사일 인양 등이 있으며 1999년 남해 적 반잠수정 인양 시에는 포화잠수[7] 체계를 이용, 147m의 심해에서 구조작전에 성공함으로써 세계적인 명성을 떨친 바 있다. 민간작전으로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현장 지원, 1993년 서해 침몰 페리호 인양 및 구조, 2002년 비안도 해저유물탐사 및 인양 지원, 2003년 합천호 추락 119헬기 인양 지원 등 국가적 차원의 상비 재난 구조에도 활약을 보여왔다.
2014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에도 구조활동에 투입되어 혼신의 노력을 다했으나, 해경 및 해군 상부에서 지휘체계의 혼선과 현지 해양환경의 어려움 등의 문제로 실종자 가족들이 기대하는 수준의 성과를 내지 못해 인터넷 상에서 몇몇 이에 대해 무지한 네티즌들에게 비난을 당하다 결국 SSU 전역자가 대국민 호소문을 올리기까지 한다.
'''해난구조대는 진짜로 극악의 환경에만 투입된다.''' 훈련 내용 중에는 작업 중 마스크가 벗겨지는 것을 대비, 마스크에 물 채우고 과업을 하루종일 하는 내용도 있을 정도이다.[8] 애초 환경이 좋으면 해난구조대는 굳이 투입되지도 않는다. 해난구조대원 개개인은 어떻게든 단원고 학생들을 살리고자 하는 사명감으로 2인1조로 잠수병의 위험을 무릅쓰고 정말로 목숨 걸고 작업했고 실제로 멀뚱멀뚱 지켜만 보고있던 해경과 너무 비교되었다. 이후 기무사의 세월호 관련 문건이 공개되면서 세월호 승객들을 어떻게든 구하려 든 해군은 나름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19년 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고 신속대응팀에 작전대대 인력 7명이 포함되어 파견이 결정되었다.# 이는 SSU의 첫 해외 대민지원 활동이다.[9]
5. 심해잠수사(deep sea diver)
해난구조전대 핵심 전력인 심해잠수사는 수중구조작전을 수행하는 베테랑 잠수사다. 1997년 4월 ‘포화잠수체제’를 이용해 수심 150m 잠수에 성공했으며, 1997년 8월 300m 잠수에 성공함으로써 우리나라는 물론 배타적경제수역(EEZ) 전 해역에서의 작전능력을 확보했다. 또한 수중무인탐사기(ROV)·심해구조잠수정(DSRV) 등을 활용하면 수중 500m까지 작전할 수 있다.
심해잠수사의 심해잠수능력은 UDT나 특전사를 능가한다고 한다.[10] 잠수 기법에는 임무수행의 가장 기초가 되는 수심 40m SCUBA 잠수와 수심 91m까지 잠수할 수 있는 표면공급잠수(SSDS: Surface Supplied Diving System), 300m 심해저도 극복할 수 있는 최고 난도의 포화잠수(Saturation Diving) 등이 있고, 작전에 투입되면 기본적으로 스쿠버는 5명, 표면공급잠수(SSDS)는 15명, 포화잠수는 28명이 각 1개 팀으로 임무를 수행한다.
5.1. 심해잠수병(兵)
해난구조전대의 심해잠수병은 해군 실무병도 지원이 가능하다. 하지만 민간 지원율도 높아 경쟁율이 매우 높다.[11] 복무기간 단축으로 실무병으로도 계속 뽑을지는 미지수이다. UDT 특전병도 경우 00년대 전후로 하여 수병 실무자들의 지원을 받지 않고 민간에서만 모집하고 있기 때문.
6. 해난구조대원 선발 및 교육·훈련 과정
해난구조전대의 교육·훈련은 양성과정과 전문교육과정 등 10여 개의 교육 훈련으로 구성되어 있다.
해난구조대원이 되기 위해서는 신분별로 매년 1회 선발하는 양성과정인 병 과정(12주), 부사관(초·중·고급반) 과정, 장교 과정(23주)을 거쳐야 하며, 교육기간에 해상 생존성을 높이기 위한 수영을 비롯한 잠수 능력을 기르고, 수중 용접·절단 및 폭파 이론·실습, 구조작전 계획수립 등을 익히며 임무수행 능력을 체득하게 된다. 이 과정을 이수하면 공기로 58미터까지, 혼합기체로 91미터까지 잠수가 가능하다.
- 병 과정은 맨몸수영, FIN/MASK 수영, SCUBA, 해상인명구조 등의 교육·훈련을 장교ㆍ부사관과 12주간 받는다.
- 부사관 과정은 12주간은 장교ㆍ병들과 함께 교육·훈련을 받게 되며, 이후에는 계급에 따라 하사를 대상으로 하는 초급과정(23주), 중사를 대상으로 하는 중급과정(23주), 상사를 대상으로 하는 고급과정(12∼14주)으로 나누어 항공 인명구조, 수중 용접 및 절단, 수중폭파 등의 교육·훈련을 받게 된다.
- 장교 과정은 평균 2~3 대 1 이상의 경쟁률로 선발이 이뤄진다. 해난 구조대에 지원한 장교들은 부사관·병 과정 교육생과 12주간의 교육·훈련을 받으며 이후 해난구조전대 장교에게 요구되는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총 25주간의 교육·훈련을 받는다. 최근 3년간 26명이 입교해서 18명이 해난구조 장교 자격을 획득했다.
한편 우주공간만큼 위험하고 어려운 미지의 환경인 심해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해난구조전대는 완벽한 임무 수행을 위해 광범위하고 다양한 훈련을 연중 실시하고 있다. 연합구조전 훈련을 비롯해 항공인명구조, 조난 잠수함 탐색 및 구조 종합훈련, 포화잠수, 심해잠수 등 해난 구조대가 연간 수행하는 훈련만 해도 14종목이며 훈련 횟수는 48회에 달한다. 이러다 보니 365일 중 최소 200일 이상 실전적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당백의 정예요원들로 이뤄진 해난구조전대. '''“살아만 있어 다오 우리가 간다”'''라는 구호 아래 최선을 다하는 해난구조전대는 하나의 생명도 소홀히 할 수 없기에 오늘도 땀방울 흘리며 열심히 훈련에 임하고 있다.
7. 복제(服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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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 및 근무복용 휘장
UDT/SEAL과 더불어 해군 내에서 기본 전투모로 팔각모를 쓰는 곳이다. 부착물은 UDT와 달리 민무늬, 얼룩무늬 전투복 시절에도 녹색 바탕에 흰색 실로 자수[12] 된 계급장과 명찰 등을 썼으며, 일반 디지털 픽셀 전투복의 해군용 기본 부착물이 이와 유사하게 바뀌자 심해잠수사 휘장 등을 제외하고는 그냥 해군 일반형을 쓰고 있다. UDT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상징이 들어간 남색 T셔츠를 속에 입는다. 해군 방침상 장교 뿐 아니라 부사관들도 해군본부 등 다른 부대로 갔다 돌아오는 일이 많은데, 이때는 당연히 근무복을 착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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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UDT/SEAL가 UDT 픽셀 전투복을 입었던 것처럼 SSU도 자체 전투복으로 위장 패턴은 특전 패턴에서 회색, 검은색, 하얀색으로 된 디지털 전투복을 보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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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처럼 그 전 전투복은 초기형 통합복과 비슷한 것과 달리 어깨 주머니는 사이즈가 커지고 주머니 위치는 상단으로 변경되고 부대마크, 태극기 등도 UDT패턴 특전복처럼 주머니 덮개에 부착한다. 이 SSU 전용 전투복은 SSU 대원들 사이에서 자부심을 주는 것으로 평가가 매우 좋다.
8. 논란
8.1. 천안함 피격사건
천안함 구조 및 인양 당시 일부 몰지각한 누리꾼들이 SSU가 그거 하나 못 건지냐는 둥 악담을 퍼부었는데, 당시 바다는 지원 온 미 해군 잠수사들이 안전 기준을 넘어가서 잠수할 수 없다고 작업을 거부할 정도로 위험했으나, SSU 대원들은 이 안전 기준을 무시한 채 목숨을 걸고 작업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인터넷으로 악담이 퍼지고 심지어 이들의 실력을 의심하는 경우도 있었다. 자원하여 같이 잠수했다가 몇 분만에 잠수병으로 실려나온 민간 잠수부도 SSU의 활약을 증언했으나, 이들은 잠수사가 해군에게 뒷돈을 받았다는 헛소문을 내는 등 비방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한주호 준위 순직 사건 이후 비방이 잦아들었다.
당시 잠수여건이 워낙 악조건이어서 잠수자의 안전상 잠수가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퍼져가는 음모론과 유가족들의 압박으로 잠수를 강행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 해군은 SSU, UDT 대원들을 모아놓고 지원자를 받았다 한다. 하지만 구조전문부대인 SSU가 아닌 UDT 측에서만 소수 지원자가 나왔는데 그 중에 한주호 준위가 있었고, 반복하여 잠수하던 끝에 결국 순직했다. 이 때문에 당시 지원자를 조사하던 해군본부 측 영관급 장교가 노발대발하여 말 그대로 육두문자를 퍼부었다고 한다. 당시 김태영 국방부장관의 발언을 통해서도 유추 가능하다. 다만 한주호 준위 사고 이후를 기점으로 잠수를 자원하는 인원들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8.2. 강정마을 사건
제주도 강정마을에 구럼비바위 해변에서 해군기지 반대 운동가가 접근하자 수중에서 오리발을 벗기고 폭행을 했다며 일부 언론 및 운동가들에게 살인자라는 둥 매도를 당하기도 했다. '''분명 시위대가 해군 인원들에게 금지 수역으로 넘어가지 않겠다고 해 놓고는 잠수해서 선을 넘으려다 제지받았으며 육상이었어도 당연히 제지당할만한 행동이었다. SSU 대원들은 오리발을 뺏어 선을 넘어가는 것을 제지한 것이다. 불법을 저지르고서 그를 막는 행위를 폭력이라 매도하는 것은 주객전도라고 할 수 있다.'''
9. 기타
- 보통 해난구조전대의 영문 Sea Salvage & rescue Unit 줄임말인 'SSU'라고 부른다.[13]
- 구조 임무 외에도 1976년 신안 해저유물 발굴작전에서 2만 점이 넘는 국보급 도자기를 인양했고, 1987년 대천, 2002년 비안도 해저 유물 탐사 및 인양 지원 등으로 대한민국 수중 고고학 분야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임무의 특성상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해난구조전대의 진가가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면서 국가적 차원의 상비 재난 구조 부대로서의 존재 가치가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관련 다큐멘터리로는 KBS 1TV에서 58차 입교훈련을 다룬 2012년 9월 5일 수요기획 '지옥훈련, 84일간의 기록 - SSU 해난구조대'가 있다.
- 2015년 MBC 예능 진짜 사나이 시즌2에서 해군 신교대편 이후로 해난구조대 훈련을 받았으며 10명 중 퇴교자가 5명[14] , 수료 실패자 3명[15] , 수료자는 2명[16] 이다.
- 장교의 경우 SSU부대에서만 근무하는게 아니라 함정근무 등 보직을 순환한다. 함정근무 경력이 진급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
10. 관련 문서
[1] Ship Salvage Unit에서 개칭[2] 일반 해군들 사이에서 UDT가 우당탕이라고 불리듯이 산수유, 쌕쌕이라는 은어로도 불린다.[3] 여기서 말하는 잠수는 포화잠수로 군 관련이 아닌 민간인까지 합친 기록으로는 그리스 잠수부가 세운 701m가 최고의 기록이다.[4] SSU의 전신 해상공작대는 일본에서 선체인양, 선박해체를 하던 인원들을 귀국시켜 창설하였으며 6.25 당시 선체인양 및 구조작전을 수행하였다. 해상공작대의 공작은 대중들이 통상 알고 있는 그 공작의 의미가 아니다.참고[5] 구조작전대는 대위가 지휘하며, 15~17명으로 구성된다.[6] SSU 전우회 사이트에 특수전전단 예속 전인 2017년 12월 4일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송영무 장관과 SSU 전우회측 관계자들이 간담회를 가진 기록이 있다.[7] 간단하게 설명해서 포화잠수는 스쿠버장비로는 들어갈수없는 심해에 장비들을 이용해서 감압이나 장기간 작업을 할수있게 도움을 받으며 잠수하는 잠수법이다. 포화잠수로 가장 깊이 들어간 기록은 그리스 다이버가 기록한 701m다.[8] 마스크에 물 채우고 오직 입으로만 호흡하며 눈에 물이 들어가는 것을 참아내며 그 상태에서 체조도 하고 식사도 한다.[9] 아울러 UDT/SEAL도 헝가리로 파견되었다.[10] UDT가 깊이 잠수하는 줄 아는 일반인이 꽤 많은데, 수중침투 시에는 그렇게 깊이 잠수하지 않는다. '''적의 눈에만 안 띄면 그만'''이고, 너무 깊이 잠수해 들어가면 아무것도 안 보여서 작전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 재호흡장치를 사용하는 경우 위험성으로 인해 일반적인 스쿠버에 비해 수심이 더 얕은 경향이 있다. '''가라앉은 것들을 다루는''' 구난·수중작업에서 잠수 수심이 더 깊을 수밖에 없다.[11] 매우 힘든 병과 중 하나지만, 보람이나 자부심이 크고, 이런 종류의 부대에서 쌓은 경력과 자격들은 보통 전역 후 경찰관, 소방관 등의 채용에서 가산점이 붙기도 한다.[12] UDT/SEAL은 육군처럼 녹색 바탕에 흑색 실로 자수[13] 일부 해군 장병들 사이에서는 앞글자를 따라 '쌕쌕이', '쑤', '쎄쎄유 아저씨' 라 불리기도 한다.[14] 샘 오취리가 수영미흡으로 입교 불허, 한상진이 압력내성검사 탈락으로 퇴교, 샘 킴이 해군 신교대 과정 야간비상훈련 당시 발생한 어깨 부상으로 인한 총 교육시간 10% 열외로 퇴교, 자진 퇴교자는 조동혁/이규한 2명이다[15] 임원희/김영철/슬리피. 주어진 교육훈련 시간 안으로 훈련통과를 하지 못했으나 훈련 마지막날을 앞두고 있어서 퇴교하지 않는 대신 남은기간동안 훈련보조로 남아서 활동했다.[16] 줄리엔 강/정겨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