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성씨)

 

1. 개요
1.1. 楚
1.2. 肖
1.2.1. 실존 인물
1.2.2. 가상 인물


1. 개요



초씨는 한국의 성씨 중 하나로, 한자 표기는 楚씨와 肖씨가 있다.
보편적인 로마자 표기는 Cho이지만 이는 조씨의 일반적인 로마자 표기 Cho와 같다. 그래서 Cho만 보면 조 씨인지 초 씨인지 알 수가 없으며, 초 씨보다 조 씨가 훨씬 더 많다 보니 Cho만 보면 대부분 조 씨로 생각한다.

1.1. 楚


중국계 귀화 성씨인 파릉 초씨(성주 초씨) 외에도 청주, 강릉, 명천, 한양 등의 본관이 있다.
이 중 파릉 초씨가 대종(大宗)이며, 시조는 초해창(楚海昌)이다. 그는 중국 명나라 때 한림학사로 청나라가 건국하자 조선으로 망명하여 정착하였다. 그 후 그의 아들 초수명(楚壽命) 또한 후환을 피해 함경북도 명천군에 은거하였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754년(영조 30)에 초해창의 손자를 면천(免賤)하고 그의 후손들로 하여금 영구히 베를 거두지 말라고 조정에서 명령한 바 있다.참조
1930년도 국세조사 때는 전국에 58가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2000년도 인구조사 당시에는 성주 및 파릉 151명, 강릉 68명, 청주 25명, 명천 4명, 한양 4명 등 281명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기준 200명으로 인구가 줄었다.
역사적으로는 1849년(헌종 15)에 식년시 문과에 병과 24위로 급제하여 사간원대사간에 오른 초병덕(楚秉悳)과 1894년(고종 31) 식년시 생원시에 3등 195위로 급제하여 정평군수에 오른 초우섭(楚禹燮)이 있었다. 이 두 사람은 부자지간으로, 본관은 성주군, 당시 거주지는 함경남도 명천군이다.
초병덕은 시조 초해창의 13대손으로, 그의의 증조부는 초재양(楚載壤), 조부는 용안현감 초각(楚珏), 아버지는 고원군수 초징명(楚徵明)으로 나타났으며, 초우섭에게는 초신섭(楚信燮)이라는 형이 있었다.
그 밖에 독립유공자 초완석이 있다.

1.2. 肖


본관은 제주, 진주 2개이다. 제주 초씨의 경우 시조는 초고도(肖古道)로, 중국 원나라에서 제주도로 귀화하여 살게 되었다고 한다.
1930년도 국세조사 당시에는 진주 본관으로 전국에 6가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들 모두 제주도 좌면(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동)에 살았다. 이 때 전라남도 제주도 좌면 상예리(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상예동)에 살던 초태왕(肖太王)에 따르면, 그의 선조는 중국인으로 원래 趙씨였는데, 그의 10 몇 대조인 초고도 때부터 肖씨로 고쳐서 지금에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2000년도 당시에도 전국의 70명 중 절반 이상인 39명이 제주도에 살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1.2.1. 실존 인물



1.2.2. 가상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