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택
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감독. 1997년부터 1998년까지 옌볜 푸더[1] 감독을 맡았다.
별명은 교수님[2]
2. 클럽 경력
송도중학교, 한양공고, 한양대학교, 육군을 거쳐 대한중석 축구단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1967년 현역에서 은퇴 후 1968년부터 모교인 한양대학교에서 감독 생활을 시작했다.
3. 지도자 경력
1971년 고교대표 상비군이 창설되면서 초대 감독으로 부임했다.
1973년부터 대표팀 코치로 활동하여 FIFA코칭 스쿨과 2년 동안의 독일 유학 등을 통해 당시로서는 드문 선진형 지도자였다.
1979년 당시 최연소 41세의 나이로 KFA 리사에 선임되었고, 한양대에 교수로도 임용되었으며, 1982년에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다.
1984년 K리그 포항제철 아톰즈[3] 의 감독을 맡아 1986년 K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며,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1997년 10년의 공백을 깨고 중국의 연변에서 조선족들로 구성된 연변 오동팀을 맡아 중국 프로축구 감독으로 복귀했다. 최은택 감독은 수비위주의 실리축구가 판을 치던 중국 축구계에 고급스러운 공격축구를 선보였다. 덕분에 연변팀은 중하위권에서 상위권으로 비약하여 일약 4위를 차지했고 최은택 감독은 1997년 중국 축구 최고 발전상을 받아 중국의 외국인 감독 중 최초로 성공한 감독으로 평가를 받았으며, 이후 중국 축구계에서는 '최 교수님'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단, 1998년 14개 팀 중 11위로 시즌을 마감하며 사임했다. #
1998년 1월 21일 KBS는 수요 다큐멘터리에서 중국 프로 축구 리그에서 돌풍을 일으킨 최은택 감독의 활약상을 특별 취재하여 방송했다
2007년 2월 5일 폐암으로 작고하자, 시나닷컴 등 중국의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 특집 기사를 마련하여 최은택 감독을 추모했다
4. 기타
- 한양대학교에서 교수로 활동하던 최은택은 1985년 시즌을 앞두고, 포항제철 아톰스의 사령탑으로 부임하면서 세간을 놀라게 하였다. 대학교수직을 버리고 프로축구팀 감독으로 간 것도 놀라웠지만, 향간에 계약금만 1억원을 받았다는 얘기가 퍼지면서 관심은 더욱 증폭되었다고.. 이후 최은택 씨는 월간축구와의 인터뷰에서 박태준 회장과 한홍기 전 포철 감독과 대한중석 시절부터 인연이 있어 청을 거절하기 어려웠고, 2년간만 포항제철 감독직을 수행 후 다시 한양대학교로 돌아가겠다는 약조를 받은 뒤 감독직을 수락한 것이라 설명하며 논란을 정리했던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