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만

 

'''이차만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이차만의 수상 이력'''

[image] '''올해의 감독상'''
'''1986년'''

'''1987년'''

'''1988년'''
최은택
(포항제철 아톰즈)

'''이차만'''
'''(대우 로얄즈)'''

이회택
(포항제철 아톰즈)

[image] '''올해의 감독상'''
'''1996년'''

'''1997년'''

'''1998년'''
고재욱
(울산 현대 호랑이)

'''이차만'''
'''(부산 대우 로얄즈)'''

김호
(수원 삼성 블루윙즈)


''' 대한민국의 축구감독 '''
[image]
''' 이름 '''
'''이차만'''
'''李次滿 | Lee Cha Man'''
''' 출생 '''
1950년 9월 30일 (74세) /
대한민국 경상남도 김해시
''' 국적 '''
대한민국
''' 신체 '''
171cm
''' 직업 '''
축구선수(미드필더 / 은퇴)
축구감독
''' 소속 '''
''' 선수 '''
포항제철 축구단(1974~1980)
육군 축구단(1976~1978 / 군복무)
''' 감독 '''
고려대학교(1980~1983)
대우 로얄즈(1983~1986 / 코치)
대우 로얄즈(1987~1989)
대한민국 대표팀(1988~1989 / 코치)
대한민국 대표팀(1990)
대우 로얄즈(1992, 1996~1999)
부경고등학교(2004~2008)
경남 FC(2014)
1. 개요
2. 축구인으로써의 커리어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축구 선수 및 지도자.

2. 축구인으로써의 커리어


포항제철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30대 초반이던 1980년, 고려대학교의 코치로 취임하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1983년 출범한 슈퍼리그 클럽 대우 로얄즈에 창단 멤버로 합류한 그는 1987시즌을 앞두고 장운수 총감독이 사임하며 감독 자리에 오른다. 그가 37세일 때로, 역대 최연소 기록이다. 그는 감독 데뷔 시즌 리그 우승을 거머쥐며 일대 파란을 일으켰고, 1989년에는 3위를 기록하며 지도력을 입증했다. 대우에서 보여준 활약으로 국가 대표팀 코치 겸임을 거쳐 1990 FIFA 월드컵 대표팀에 합류하기도 했던 그는 1992년 잠시 대우로 돌아왔다가 사임했고, 1997년 세번째로 대우 감독을 맡아 1997년 K리그 우승과 아디다스컵 및 프로스펙스컵 석권으로 트레블을 달성하였고, 1998년 필립모리스컵 우승, 1999년 리그 준우승과 대한화재컵 준우승을 거두었다.
1999 시즌을 끝으로 사임한 이차만은 2004년 부경고등학교의 감독으로 부임, 윤빛가람 등을 키워내며 부경고를 전국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2005년 1월 18일에는 정규풍, 김주성 등과 대한축구협회 50대 집행부 이사로 선임되기도 했다. 한편, 2008년 심판 판정에 대한 극심한 항의로 2009년 1월에 3년의 자격정지를 당했고, 같은 해 4월 사면되었다.
야인 생활을 하던 그는 2014년을 앞두고 고향팀인 경남 FC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하지만 경남의 이차만 선임은 현장을 떠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공백[1]과 현대 축구의 흐름과 지도방식에 둔하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고 과거의 명성과 화제성 [2]에만 기댄 무리한 시도였으며, 이차만 부임 후 경남은 오히려 극도의 부진을 면치 못하였고, 결국 2014년 8월에 자진사퇴하였다. 그리고 그 해 경남은 결국 K리그 챌린지강등당하고 만다.
하지만 애초에 전반기 동안은 이흥실 수석코치가, 후반기부터는 브란코 바비치 기술고문이 실질적인 감독 역할을 맡으면서 이차만은 사실상 바지감독이었다고 한다. #

[1] 사석에서 포항 스틸러스를 '''포철''', FC 서울을 '''LG'''라고 호명했다고 한다(...).[2] 홍준표 당시 경상남도지사안종복 당시 사장은 이차만의 고려대 동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