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숙·석품의 난
1. 개요
삼국시대 신라 진평왕 53년(631년)에 일어난 반란. 주동자는 이찬 칠숙과 아찬 석품이었다.
반란의 원인이나 전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수준이라 구체적인 정황은 알 수 없는 것이 많다. 다만 진평왕이 무려 53년이나 재위한데다가 다음해(632년) 정월 사망하고, 선덕여왕이 즉위하기에, 이 때쯤이면夏五月 伊飡柒宿與阿飡石品謀叛 王覺之 捕捉柒宿 斬之東市 幷夷九族 阿飡石品亡至百濟國境 思見妻子 晝伏夜行 還至叢山 見一樵夫 脫衣換樵夫敝衣 衣之 負薪潛至於家 被捉伏刑
여름 5월, 이찬 칠숙(柒宿)과 아찬 석품(石品)이 반란을 꾀하였다. 임금이 그것을 알아차리고 칠숙을 붙잡아 동쪽 시장에서 목 베고 아울러 구족(九族)을 멸하였다. 아찬 석품은 도망하여 백제 국경에 이르렀으나, 처와 자식을 보고 싶은 생각에 낮에는 숨고 밤에만 걸어 총산(叢山)까지 돌아오다가, 한 나무꾼을 만나 옷을 벗고 해어진 나무꾼의 옷으로 바꿔 입고 나무를 지고서 몰래 집에 이르렀다가 붙잡혀 처형되었다.
ㅡ 《삼국사기》 선덕여왕 본기.
였을테니 아마도 나중에 일어날 비담의 난[1] 과 비슷하게 왕권승계 과정에서 선덕여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진골 귀족 위주로 생기고 권력쟁탈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필사본 화랑세기에는 추가적인 설정이 덧붙여져있지만 기본 전개는 같다.
2. 창작물
왜 일어난 반란인지 기록에 자세하게 안 써 있어 끼워맞추기 좋았는지 드라마들에서는 사실은 다른 사람이 주도한 난인데 기록에는 부하급인 칠숙과 석품이 일으킨 난으로 전해진다는 식으로 각색되고 있다.
2.1. MBC 선덕여왕
사실은 미실이 주도해 일으킨 난인데, 미실의 자결 이후 칠숙과 석품이 재차 난을 일으켜 덕만공주를 죽이려 하다, 김유신과 비담의 방해로 실패하고, 잔존 미실파를 살리기 위해 칠숙과 석품의 난으로 공표하고 역사서에도 그렇게 남았다는 식으로 연출했다.
2.2. KBS 대하드라마 대왕의 꿈
여기서도 사실은 승만부인이 일으킨 난인데 기록에는 칠숙과 석품의 난으로만 기록된 것이라고 위 드라마와 거의 똑같이 각색했다.
3. 같이보기
[1] 비담의 난은 선덕여왕 말년, 진덕여왕 교체기에 일어났으며, 여자 왕에 반대한다는 명분을 확실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