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찬

 


1. 개요
2. 상세


1. 개요


阿飡
신라신분 관직
신라 때에 둔 17관등 가운데 여섯째 등급. 대아찬의 아래고 일길찬의 위다. 다른 이름으로 아척간(阿尺干), 아찬(阿粲), 알찬(閼粲) 아간(阿干) 알한지(謁旱支) 아질간(阿叱干) 아간지(阿干支)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 즉, 원래 고유어가 있고 그걸 비슷한 음의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아'가 무슨 뜻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고구려의 관직 중 하나인 태대사자(太大使者)가 알사(謁奢)로도 쓰인 것을 감안하면 '''큰'''이라는 뜻을 가졌을 가능성이 크다. '叱'은 향찰에서 속격(오늘날의 사이시옷)을 표기할 때 썼는데, 이에 따르면 실제 발음은 [askan(아스칸/아스간)]과 가까웠을 것이다. 그리고 고대 한국어 이래로 파열음과 마찰음 [x~h] 계열이 만나 탄생한 게 거센소리인 바, '찬' 역시 'ㅈ' 말음과 'ㅎ[x~h]' 초성이 연음되면서 발생한 것일 수도 있다. 이를 고려하면 또 한 가지 가능한 재구는 '*aj-xan', 발음상 "앚(ㅋ)흐안" 정도가 된다. 이 경우, '叱'은 속격이 아닐 수도 있고, 아니면 속격의 초성이 'ㅅ'보다는 'ㅈ'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간혹 끝에 덧붙는 '支'는 존칭 접미사로, 그 발음은 [ki]였다. 따라서 이게 붙으면 [askanki(아스간기/아스칸키)] 정도가 된다. '찬/간/한' 등은 지도자를 뜻한다. 삼국사기에는 유리 이사금 시대에 아찬이 처음 제정됐다고 나온다.
우리말에서 아시와 올은 처음, 동생, 이르다는 뜻이다. 아, 아찬 이란 말도 있는데, 으로 작다 다음가다 방계를 뜻하는 말로 보고 있다.

2. 상세


비색 관복을 입었으며 신라에서는 진골6두품만이 오를 수 있었다. 골품제 참조. 처음 골품을 배울 때 착각할 수 있는데 진골도 아찬이나 그 이하 관등일 수 있었다. 혈통은 승진 상한선이었을 뿐이다.
'''6두품 승진의 한계'''였기 때문에 6두품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중위제를 설치하여 아찬을 중아찬, 2중아찬, 3중아찬, 4중아찬(...) 식으로 나누기도 했는데, 아무리 경력이 많아도 부사관장교보다는 아래듯이 6두품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대아찬 이상에는 오를 수 없는 법적 차별이 있었기에 나말여초 때는 6두품이 호족과 신왕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원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