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대하드라마

 


1. 개요
2. 연혁
3. 잠깐 동안의 채널 변경
4. 출연자
5. 방송사 내의 위상
6. 작품 일람


1. 개요


KBS 1TV에서 주말 밤 9시 40분에 방송되었던 사극.[1] 1981년 1월 5일 방영된 대명[2]이 시작이다. 2008~2009년에 KBS 2TV로 옮겨졌다가 2010년에 원래 채널로 환원되었다. 정치, 전쟁 등이 주요 소재인 만큼 남성시청률이 매우 높다.[3] 보통 KBS 뉴스 9 이후에 방송하며, KBS 연기대상을 10번이나 배출했을 만큼 연말 시상식에서 강세를 보여온 주말 드라마다.[4]
풍운부터 먼동까지는 주 1회 편성이었고, 도중에 주 2회 편성을 했다가 토지 종영 이후로 주1회 편성이었는데 김구를 계기로 대하드라마가 부활하면서 주 2회 편성으로 정착되었다. 무인시대 방영 당시에는 주5일제 시행을 염두에 두고 KBS 뉴스 9의 방송시간을 45분에서 30분으로 축소하고 KBS 뉴스9과 무인시대 사이에 미디어 포커스, 취재파일 4321 등의 시사프로그램을 편성했는데 개그 콘서트봉숭아 학당까지 완전히 끝나고 나서 이어 보기가 가능했다. 무인시대 종영 후 불멸의 이순신의 방영 초기까지도 밤 10시였다가 시사프로그램을 대하드라마 끝난 뒤에 편성하도록 개편하면서 밤 9시 30분으로 시간대가 변경되었다. 그 후, 천추태후를 끝으로 한동안 끊어졌다가[5] 2011년 근초고왕부터 재개되면서 이 작품부터 밤 9시 40분으로 고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방송 3사 중 거의 유일하게 정통 사극을 꾸준히 제작해왔고, 중간중간 지뢰작들도 존재했지만 흥행성, 고증, 연출 등에서 단연 돋보이는 모습을 보여왔다. 시청률 면에서는 주말 오후 시간대 중장년층의 탄탄한 지지도를 바탕으로 망해도 평균 이상을 유지, 심지어 그 광개토태왕 조차도 최고 2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했을 정도였다. 작품성 면에서도 대부분의 작품이 호평을 받고, 해외에서의 매니아층도 형성되어 있는 편이다.[6]
전성기에는 100부작은 기본이고 심지어 200부작인 작품도 있었다. 그러나 제국의 아침부터 대조영까지는 100부작이 약간 넘는 정도로만 제작하다가 2008년부터는 잇따른 흥행 실패와 제작비 급증, 방송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인해 100부작 이내로 제한하여 제작하였으나 고전을 면치 못했고 결국 정도전, 징비록은 50부작으로 축소되었다. 장영실은 아예 절반인 24부작으로 제작되어 이제는 대규모 전쟁 신은 완전히 보기 어려워졌고, 2017년 방영 예정이었던 다산 정약용의 제작/편성이 불발된 후로는 아직 무소식인 상태이다.[7]
2016년까지는 그래도 꾸준히 방영해왔으나 그 이후로는 2020년 현재까지 방영하는 것도, 방영 계획이 잡힌 것도 없다. 후술하겠지만 팬들의 폐지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제작비는 많이 드는데다가 PPL 등을 넣을 수 없고 광고도 넣기 힘들어, 지상파 방송의 몰락과 함께 제작 자체가 이루어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다만, 2021년 현재 이방원을 주인공으로 한 대하드라마 제작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2020년 3월부터 유튜브 채널인 KBS 드라마 클래식에서 예전 드라마들을 업로드 해주는데 현재 대하드라마는 토지, 용의 눈물, 태조 왕건, 무인시대, 불멸의 이순신, 천추태후, 근초고왕, 대왕의 꿈, 정도전, 장영실이 업로드 되었고 1화만 시청이 가능하고 나머지는 멤버십(월 1990원) 가입을 해야 볼 수 있다. <먼동>과 <김구>, <찬란한 여명> 등 일부 3개 작품은 출연이 규제된 연예인이 등장했다는 이유로 KBS 미디어에서 판매금지된 상태다.
1980년대 작품 중에는 테이프 재활용 등의 영향으로 잃어버린 에피소드가 생기기도 하는데, 최초의 대하드라마 <대명>은 1, 49, 50화밖에 안 남았고, <독립문>은 50화 중 46화, <새벽>은 35화 1개이며, <이화>는 한 편도 안 남아 있다고 전해졌으나 전편 보존중이고, 2021년 2월 8~9일 KBS 유튜브 채널 '같이삽시다'에 1화 및 마지막화가 각각 공개됐다.

2. 연혁


대하드라마라는 단어 자체는 일본에서 넘어온 것으로 큰 강처럼 이야기가 오랜 세월에 걸쳐 이어지는 방대한 분량의 장편 역사소설을 드라마화한 것을 의미한다. 이미 1970년대 중반부터 KBS는 사극에 대하드라마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사극을 대하드라마로 시작한 시기는 1981년작 '대명'[8]부터이고 주말편성은 1982년으로 '풍운'부터이다. NHK 대하드라마[9]가 방영되는 시간대인 매주 일요일 저녁 8시경에 방영되었고 소재는 주로 정통 사극을 표방하였다. 1980년대 후반에는 박경리 원작의 토지(1987년작)부터 주로 역사소설을 극화한 시대극이 유행하였다. 그 중 1992년작 삼국기는 정통 사극의 범주에 든다. 90년대 후반까지는 주로 조선시대와 구한말-일제감정기를 비롯한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주로 방영하였다.
1993년작 먼동 이후 후속작으로 '황토'를 편성할 예정이었으나 주요 배우와 제작비 섭외 때문에 무산되어 먼동을 끝으로 대하드라마를 일시 중단한 후 '인간극장'[10]을 방영했다. 이후 1995년에 김구를 거쳐 찬란한 여명이 방영하면서 다시 정통 사극으로 회귀한 뒤 1996년에 용의 눈물이 방영하면서 히트하였다. 당시 한국에서 방송된 사극 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높은 인기를 구가하였다. 1998년에 왕과 비, 2000년에 태조 왕건이 방영하면서 3연속으로 히트하여 전성기를 맞았다.[11] 태조 왕건의 흥행을 계기로 이 시기에 KBS 측에서는 향후 10년 간 고려 왕조를 조명하는 대기획을 마련했고 2002년에 제국의 아침이 방영하였다. 2003년에는 무인시대가 방영하였는데 이 작품은 첫회 방송 당시만 해도 서인석, 김흥기, 이덕화 등 중견연기자들의 열연과 횡계지역의 폭설을 배경으로 찍은 사실적 화면, 무인혁명의 당위성 등을 호방하게 그리면서 한 때 시청률 30%에 육박했다. 하지만, 2003년 6월 28일부터 시간대가 주말 오후 9시 45분에서 10시 10분으로 옮겨졌으며 이 과정에서 20%대로 시청률이 떨어졌고 급기야 후반기 동일 시간에는 SBS 파리의 연인이 높은 흥행을 기록하면서 최종회 시청률이 13.6%에 그쳤다.
당초 150부작으로 기획되었으나 후속작으로 내정된 불멸의 이순신김명민의 촬영 스케줄이 한참 지연되어 캐스팅 문제가 일어나자 갑작스럽게 8부를 늘린 158부작으로 막을 내리는 등 시간 변경이 유난히 많이 일어나는 상태가 일어났다. 사극 소재로 여러 번 중복 사용된 조선시대 사극들과는 달리 다소 생소했던 점, 우리 사회에서 권력정점으로의 역할이 끝난 군부를 배경으로 했다는 점이 시청률 하락의 원인으로 분석되었고 이 때문에 고려 무신 집권 중 최씨 정권의 최의 집권까지 다룰 예정이었지만 시간대 변경에서 생긴 시청률 하락 탓인지 최충헌의 죽음에서 끝이 났으나[12] 사극 매니아들의 탄탄한 호평을 받았다. 결국 제국의 아침과 무인시대의 부진으로 인해 고려 대기획은 5년 만에 막을 내린다.
2004년 9월 불멸의 이순신이 방영하면서 히트하였다. 종영 직후 후속작으로 광복 60주년을 맞이해서 서울 1945를 방영하려고 했으나 예산 문제로 무산되어 2006년 1월로 연기되었고 2TV 수목드라마인 2001년작 명성황후를 재방송하려고 했지만 역시 무산되어 중국 사극인 칭기즈칸 국내 수입 방영(성우 더빙)으로 대체되는 굴욕을 겪었다. 2006년 한해동안 서울 1945대조영이 방영하면서 히트하였다.
2008년에 대왕 세종이 방영하였다. 기존 20세기 정통 사극의 제작, 표현 방식에 한계를 느껴 당시 유행하고 있던 기존의 SBS, MBC의 트렌디 사극의 요소를 실험적으로 접목시켰으나 고려부흥세력 등 없는 사실을 임의로 만들거나 양녕대군을 쾌남아로 미화시켜 묘사하는 등 고증 면에서는 크나큰 흠집을 남겼으며 태조 왕건 이후 사극의 고질점인 정의롭기만 한 주인공의 플롯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를 지적받았다. 초반 시청률은 높았으나 방영 도중에 2TV로 채널을 변경한 직후 갈수록 시청률이 하락하여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다.[13]
대왕 세종의 흥행 부진으로 인해 제작진은 다시 정통 사극으로 회귀하자는 목표를 잡게 되고 2009년에 천추태후가 방영하였다. 그러나 가히 막장 드라마 못지 않게 철철 넘치는 상당한 막장성을 자랑하였고 실제 역사성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망해버려서 종영 후에는 대하드라마의 계보가 끊기는 비운을 겪는다. 이후 현대극인 열혈 장사꾼을 시작으로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로 대체되었다가 2010년 1TV에서 다시 부활하여 그 해 명가 거상 김만덕 전우 자유인 이회영 근초고왕, 2011년에 광개토태왕이 방영하였는데 근초고왕을 통해 KBS의 대하드라마가 부활되었다. 그러나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근초고왕, 광개토태왕천추태후에 이어 막장 드라마 못지 않은 철철 넘치는 상당한 막장성을 자랑하였고 실제 역사성은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망해버렸다. 천추태후 이후 일련의 KBS 대하드라마들은 사극이 아닌 막장 드라마의 플롯을 그대로 옮겨와 시대만 고려 시대, 삼국 시대 등으로 처리했다는 비판을 장기간 들었다. 이 때문에 정작 역사적인 부분은 모두 나레이션이나 지도로만 처리하는 개연성 없는 전개도 한몫했다.
2012년에 대왕의 꿈이 방영하면서 막장성을 벗어날 '''뻔'''했지만 주연 배우들의 줄부상[14]과 다듬지 않은 각본[15]으로 인해 도입부 단계에서 지나치게 질질 끌면서 표류해서 평가를 다 깎아먹었다. 다만 앞의 두 작품들과 달리 환독, 대륙드립, 황제드립이 배제되었고 한중일을 넘나드는 외교전이나(특히 일본의 역할) 백제 부흥 운동처럼 기존에는 대충 넘어가기 일쑤였던 요소를 부각했던 부분도 있어 이 점들만큼은 어느 정도 호평을 받았다. 대하드라마가 아닌 다른 드라마였어도 이런 식이면 십중팔구는 말아먹었을 것이다.
종영 후 그 해 하반기 동안에 다큐멘터리, 파일럿 프로그램들의 대체 편성으로 다시 한 번 우여곡절을 겪었다. 영웅군주 3부작의 연이은 실패는 이후에 제작된 작품들이 제작비가 줄어들고 자연히 분량도 줄면서 작품성은 인정받아도 이야기를 제대로 다 담아내지 못하게 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KBS에서는 갈수록 대하드라마가 예년만 못하자 NHK의 대하드라마 시리즈처럼 매년 한 편씩 제작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2014년 KBS의 대하드라마가 정도전으로 발표되면서 NHK 대하드라마 시리즈처럼 인물 중심으로 1년 간 방송하는 작품을 만드는 것으로 결론이 나게 되었다.
2014년에 정도전이 방영했는데 2000년대 전성기에 비하면 모자라지만 어느 정도 히트하였다. 높지는 않아도 안정된 시청률(평균 15.8%)를 유지[16]하였으며 이전의 흑역사 작품들과 달리 괜찮은 평가를 받아 대체적으로 정통 사극 부활의 시작으로 칭송받았다. 그러나 정도전 이전 망작은 정도전에 여러가지 악영향을 끼쳤는데, 일단 정도전은 대하 사극치고는 적은 50부작으로 제작되었고 무엇보다 총 예산이 109억 정도로 사극치고는 저예산으로 한 편당 2억 밖에 안들인 셈이다. 대왕의 꿈이 280억, SBS대풍수가 200억이었으며, 조선 총잡이의 한 편 제작비가 5억원 정도이다. 이 때문에 종영 후 나오는 관련 기사에서 배우들에 대해 자주하는 소리가 '다른 작품보다 낮은 출연료로 출연했다.'라는 것이다. 그것은 사실이다. 이미 2014년 정도전이 제작될 떄에 배우들은 이것이 아마도 마지막 대하드라마일 것이라는 자각이 있었고 그래서 자신들의 출연료를 줄여서라도 이를 이어가려고 했던 것이다. 덕분에 대하드라마가 2년 더 이어지기는 했다.
2015년에 징비록이 '''광복 70주년 특별기획 대하드라마'''라는 타이틀을 달고 방영하였다. 제작 환경부터 악조건을 안고 출발하면서 처음 집필하기로 했던 전임 작가의 역사 왜곡 대본으로 인해 첫 방송 직전에 작가가 교체되었다. 그 결과 쪽대본, 생방송 촬영이라는 큰 난관을 겪었다. 일단 전작의 뒤를 이어 정통 사극의 틀을 지켜 호평또한 상당히 많으나 크게 삭감된 제작비와 실시간에 준하는 촉박한 제작 기간으로 인해 고난을 크게 겪었다. 이로인해 각회마다 극의 스토리를 비교하고 고려할 시간이 매우 부족했다. 게다가 각종 난관으로 인한 제작차질은 정통사극 부활에 제동이 걸리게 하였다,
2016년에 장영실이 방영하였다. 처음에 KBS는 징비록의 종영 이후 공백 없이 장영실을 방영할 예정이었으나 장영실 역에 낙점된 배우 송일국의 캐스팅 지연과 다른 배우들의 스케줄 문제로 인해 연말 이후로 미뤄져 다시 기나긴 공백기가 생겼다. 국내 최초로 과학 사극을 표방했지만 드라마 자체가 20부작으로 기획되어서 그런지 억지 이야기 전개가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시대에 맞지 않는 지동설 언급, 정통에서 벗어난 퓨전적인 내용[17]을 넣어 문제가 되었고 과학 지식 오류에서 비판이 나왔다. 장영실의 업적보다 가공의 사대부들과의 갈등이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한 것 또한 주된 비판점이 되었다. 대하 드라마 자체에 대한 관심도도 이전 작품들에 비해 크게 적어졌고 시청률도 부진하였다. 그리고 사실상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2017년에 다산 정약용이 방영 예정이었으나 들려오는 소식은 극히 적었고 결국 2016년 8월말, 편성이 불발되어 제작이 취소되었다. 이미 2015년부터 인터넷상에서 다산 정약용을 마지막으로 대하드라마를 폐지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는데 정약용의 편성불발로 팬덤에서 대하드라마 폐지우려가 폭발한 상황. 2015년조대현 사장이 징비록 제작발표회에서 재정 적자를 언급한 뒤 '''금년(2015년)부터는 대하드라마를 쉬지 않고 하겠다'''고 말했으나 이뤄지지 않았고# 후임인 고대영 사장도 이걸 지키지 않고 있고 대하드라마를 존속시킬지 폐지시킬지에 대한 여부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일단 2017년 후반기까지 별다른 소식이 없는걸 보아 총파업으로 인해 2018년으로 계획이 연기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2018년 4월 6일, 양승동 신임 사장이 취임했으며 향후 신임 사장의 행보에 따라서 대하드라마 존치 유무가 갈릴지도 모른다.
2018년 7월 18일, KBS는 공식적으로 대하드라마의 부활을 공표했다.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이하여 전설적인 독립운동가이자 광복 이후 남북에서 모두 버림받은 인물인 약산 김원봉을 주인공으로 하는 대하드라마를 내년 광복절 전후에 런칭한다는 것. 2016년 장영실 이후, 3년만에 대하드라마가 빛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김원봉이 북한정권 수립과 6.25 전쟁에 참여했던 행적[18] 때문에 현재 논란이 상당하다. 게다가 김원봉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를 제작한다는 소식이 나오자 엇갈리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KBS는 2019년 임시정부 100주년을 기념해서 특집 드라마를 제작하는 것이지 대하드라마가 부활하는 것은 아니라고 발표했다.출처 하지만 KBS의 경영 악화로 인해 이마저도 제작되지 않고 넘어갔으며 2020년에도 소식이 없다.
2021년 KBS가 10대 방송기본계획을 발표했는데, 대형기획으로 대하드라마를 제작하겠다고 밝힘에 따라서, 5년만에 다시 부활할 확률이 높아졌다.기사 참고 하지만, KBS의 엄청난 적자와 시청률의 하락, 그리고 유튜브 등의 신매체와의 경쟁에서 전통적 지상파 방송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진행될지는 지켜봐야 할 듯 하다.
2021년 2월 10일 양승동 사장이 미디어오늘과 가진 인터뷰에 의하면 1월에 작가를 섭외했으며 조만간 시놉시스가 나올 예정이라 한다. 제작비가 많이 드는 관계로 2년여에 걸친 예산으로 책정하기 위해 실제 제작과 방영은 2021년 하반기에 제작을 시작해 11월 방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부활하는 대하드라마의 주인공으로는 태종, 정조, 고려 현종이 후보군이라 밝힌 상황.# 이 기사에 따라 부활하는 대하드라마의 주인공이 정조가 될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19] KBS가 2021년중에 정조의 리더십에 대한 역사 다큐멘터리 5부작을 준비중인데 이것과 연관되어 정조가 주인공인 대하드라마가 나오지 않겠느냐는 것. 게다가 방영을 목표로 한 시점이 2022년 3월에 있을 대선정국과도 무관하지 않단 시각도 있다. 만약 정조가 주인공이라면 KBS에서는 처음으로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된다.[20] 여담으로 부활하는 대하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나라의 기틀을 다진 군주이거나 개혁군주이거나 국난을 극복한 군주란 점에서 코로나 시국과 무관하지 않아보인다.

3. 잠깐 동안의 채널 변경


2008년 4월 봄 개편 당시의 대왕 세종KBS2로 채널이 변경되었다. 그 이유는 광고 수입 및 제작비 확보를 위해서였다는 견해가 신빙성이 가장 크다. 당대 사정을 보면 2007년에 KBS1TV의 시청률이 높았지만, 정작 광고방송을 하는 2TV시청률이 낮아지는 바람(밤 10시대 드라마의 부진이 가장 큰 원인이다.)에 광고수입이 대폭 감소해서 많은 적자를 냈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저런 논의가 많이 오갔는데 1TV의 상업광고를 재개하는 방안도 있지만 명분상으로는 하기 힘들 일이기 때문에 시청률 잘 나오는 대하드라마를 2TV로 옮기는 식으로 광고수입을 올리게 된 것. 주 1회 편성 당시에는 1TV에서 일정 시간에 한해서 광고를 내보냈기 때문에 9시 뉴스와 대하드라마 사이 혹은 대하드라마와 9시 뉴스 사이에 30초짜리 광고 10개를 편성하는 식으로 광고수입을 얻었던 적은 있었다. 대하드라마 시청률이 40-50%대씩 나왔던 때가 아니라서 그렇게까지 많이 벌었던 건 아니지만,[21]
그렇지만 이후로는 대왕 세종의 시청률이 10%대로 떨어진데다가 후속작인 천추태후가 흥행에서 참패를 하고 작품성에서도 비판을 받게 되자 주말사극은 다시 KBS1로 옮겨지게 된다.
대왕 세종KBS2로 이동하기 전에 용의 눈물, 불멸의 이순신, 대조영 등은 KBS2에서 재방송한 적이 있었다.[22]

4. 출연자


주연은 당대의 톱배우들을 기용하지만, 그 외 조연들은 대개 KBS 공채 배우들로 자체조달한다. 가히 중견배우들의 밥줄이라고 할 수 있으며, 심지어 타 방송의 사극과 중복 캐스팅이 이루어진다.[23] 편수가 많은 사극의 경우는 한 번 나온 배우가 다른 역으로 또 나오는 현상[24]이 나타나며, 그 반대의 현상[25]도 있다. 임병기, 김주영, 이대로, 신동훈, 김갑수, 김진태, 임혁, 김종결 등이 단골 출연자이다.[26] 2016년 장영실 이후로는 대하드라마가 중단이 되자, 사극 전문 배우들이 현대극에 나오는데, 최수종은 KBS 주말연속극 하나뿐인 내편에 나오면서 2003년 저 푸른 초원 위에 이후 15년만에 KBS 주말연속극에 나오게 된다.[27] 또 한명의 단골 배우인 서인석도 정도전 출연 이후 대하드라마가 중단되자 4년 동안의 공백기가 생기자 MBC일일연속극 비밀과 거짓말에 출연해 오랜만에 현대극에 출연하게 되었다.

5. 방송사 내의 위상


KBS 측의 간판 드라마이다 보니, 방송사에서도 매우 신경써서 제작하며 광고도 많이 한다. 주로 스타작가들을 영입해서 대본을 쓰며, 관록이 있는 연출가가 감독을 맡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 작가는 이환경, 정하연, 유동윤, 장기창 등이며, 연출가는 김종선, 윤창범, 신창석 등이 있다.

6. 작품 일람


'''순서'''
'''작품명'''
'''기간'''
'''방송일&회차'''
'''연출'''
'''원작'''
'''극본'''
'''주요 인물'''
'''배우'''
'''설명'''
1
'''대명'''
(大命)
1981년
1월 5일
~
1981년
12월 28일
매주 월요일
49회
'''고성원'''
-
'''이철향'''
'''효종'''
'''김흥기'''
[28]
'''인선왕후'''
'''원미경'''
'''소현세자'''
'''백윤식'''
2
'''풍운'''
(風雲)
1982년
1월 10일
~
1982년
12월 26일
매주 일요일
49회[29]
'''황은진'''
'''유주현'''
'''신봉승'''
'''흥선대원군'''
'''이순재'''

'''명성황후 민씨'''
'''김영애'''
'''고종'''
'''박칠용'''
'''김좌근'''
'''장민호'''
3
'''개국'''
(開國)
1983년
1월 2일
~
1983년
12월 18일
매주 일요일
49회
'''장형일'''
'''이태원'''
'''이은성'''
'''이성계'''
'''임동진'''
[30]
'''공민왕'''
'''임혁'''
'''최영'''
'''신구'''
4
'''독립문'''
(獨立門)
1984년
1월 1일
~
1984년
12월 30일
매주 일요일
50회
'''장기오'''
-
'''이철향'''
'''안영복'''
'''임혁'''

'''배정자'''
'''정윤희'''
5
'''새벽'''
1985년
2월 17일
~
1985년
12월 29일
매주 일요일
46회
'''이해욱'''

'''홍성룡'''
-
'''김하림'''

'''오재호'''
'''이승만'''
'''신구'''

'''김구'''
'''이치우'''
'''여운형'''
'''박병호'''
'''박헌영'''
'''임혁'''
6
'''노다지'''
1986년
10월 25일
~
1987년
5월 31일
매주 토ㆍ일
64회
'''이종수'''
'''선우휘'''
'''박병우'''
'''오성희'''
'''한혜숙'''

'''김도흡'''
'''김진태'''
7
'''이화'''
(梨花)
1987년
6월 6일
~
1987년
10월 18일
매주 토ㆍ일
44회
'''김재형'''
'''윌리엄 아서 노블'''[31]
'''김항명'''
'''이화'''
'''김소연'''

'''김동식'''
'''유동근'''
'''김승요'''
'''정하완'''
8
'''토지'''
(土地)
1987년
10월 24일
~
1989년
8월 6일
매주 토ㆍ일
103회
'''주일청'''
'''박경리'''
'''김원석'''
'''최서희'''
'''최수지'''
[32]
'''김길상'''
'''윤승원'''
'''이용'''
'''임동진'''
'''윤씨부인'''
'''반효정'''
9
'''역사는'''
'''흐른다'''
(歷史는
흐른다)

1989년
9월 3일
~
1990년
9월 9일
매주 일요일
54회
'''이종수'''
'''한무숙'''
'''박병우'''
'''박옥련'''
'''장미희'''

'''이규직'''
'''유인촌'''[33]
10
'''여명의 그날'''
(黎明의 그날)
1990년
9월 16일
~
1990년
12월 16일
매주 일요일
13회
'''이녹영'''
-
'''김교식'''
'''이승만'''
'''신구'''
[34][35]
'''김구'''
'''이영후'''
'''여운형'''
'''박병호'''
'''박정희'''
'''백준기'''
'''김일성'''
'''전광렬'''
11
'''왕도'''
(王道)
1991년
1월 6일
~
1991년
10월 5일
매주 일요일
34회
'''김재형'''
'''유현종'''[36]
'''김항명'''
'''홍국영'''
'''김영철'''

'''정조'''
'''강석우'''
'''혜경궁 홍씨'''
'''정영숙'''
'''정순왕후 김씨'''
'''김자옥'''
12
'''바람꽃은'''
'''시들지'''
'''않는다'''
1991년
10월 12일
~
1992년
3월 28일
매주 일요일
24회
'''염현섭'''
'''유안진'''
'''이철향'''
'''심씨'''
'''신혜수'''

'''유석우'''
'''정애리'''
13
'''삼국기'''
(三國記)
1992년
4월 12일
~
1993년
4월 17일
매주 일요일
50회
'''안영동'''
'''이남교'''
'''유현종'''
'''김유신'''
'''서인석'''

'''연개소문'''
'''조경환'''
'''계백'''
'''유동근'''
'''당태종'''
'''임병기'''
'''양만춘'''
'''임혁'''
14
'''먼동'''
1993년
4월 24일
~
1994년
4월 16일
매주 토요일
39회
'''이녹영'''
'''홍성원'''[37]
'''김항명'''
'''송보경'''
'''하희라'''
[38]
'''송근술'''
'''김진태'''
'''박인섭'''
'''정성모'''
'''김태환'''
'''이동준'''
15
'''김구'''
(金九)
1995년
8월 5일
~
1995년
9월 24일
매주 토ㆍ일
16회
'''김충길'''
-
'''이봉원'''
'''홍승연'''
'''정경아'''
'''김구(청년)'''
'''김상중'''

'''김구(장년)'''
'''조상건'''
'''김순영'''
'''심양홍'''
16
'''찬란한 여명'''
(燦爛한 黎明)
1995년
10월 28일
~
1996년
11월 23일
매주 토ㆍ일
100회
'''이녹영'''
-
'''신봉승'''
'''유홍기'''
'''이정길'''

'''이동인'''
'''김갑수'''
'''명성황후 민씨'''
'''하희라'''
'''흥선대원군'''
'''변희봉'''
'''고종'''
'''조재현'''
17
'''용의 눈물'''
(龍의 눈물)
1996년
11월 24일
~
1998년
5월 31일
매주 토ㆍ일
159회
'''김재형'''
'''박종화'''[39]
'''이환경'''
'''태조 이성계'''
'''김무생'''
[40]
'''태종 이방원'''
'''유동근'''
'''원경왕후 민씨'''
'''최명길'''
'''정도전'''
'''김흥기'''
'''양녕대군'''
'''이민우'''
18
'''왕과 비'''
(王과 妃)
1998년
6월 6일
~
2000년
3월 26일
매주 토ㆍ일
186회
'''김종선'''
'''윤용훈'''
-
'''정하연'''
'''세조'''
'''임동진'''
[41]
'''인수대비'''
'''채시라'''
'''김종서'''
'''조경환'''
'''한명회'''
'''최종원'''
'''연산군'''
'''안재모'''
19
'''태조 왕건'''
(太祖 王建)
2000년
4월 1일
~
2002년
2월 24일
매주 토ㆍ일
200회
'''김종선'''
-
'''이환경'''
'''왕건'''
'''최수종'''
[42]
'''궁예'''
'''김영철'''
'''견훤'''
'''서인석'''
20
'''제국의 아침'''
(帝國의 아침)
2002년
3월 2일
~
2003년
1월 26일
매주 토ㆍ일
94회
'''전성홍'''
'''이원익'''
'''김형일'''
-
'''이환경'''
'''광종'''
'''김상중'''

'''대목왕후'''
'''전혜진'''
'''정종'''
'''최재성'''
21
'''무인시대'''
(武人時代)
2003년
2월 8일
~
2004년
8월 15일
매주 토ㆍ일
158회
'''신창석'''
'''윤창범'''
'''김성근'''
-
'''유동윤'''
'''이의방'''
'''서인석'''

'''정중부'''
'''김흥기'''
'''경대승'''
'''박용우'''
'''이의민'''
'''이덕화'''
'''최충헌'''
'''김갑수'''
22
'''불멸의 이순신'''
(不滅의 李舜臣)
2004년
9월 4일
~
2005년
8월 28일
매주 토ㆍ일
104회
'''이성주'''
'''한준서'''
'''김정규'''
'''김훈'''[43]
'''김탁환'''[44]
'''윤선주'''
'''박영숙'''
'''윤영수'''
'''장기창'''
'''이순신'''
'''김명민'''
[45]
'''원균'''
'''최재성'''
'''류성룡'''
'''이재룡'''
'''선조'''
'''최철호'''
'''와키자카 야스하루'''
'''김명수'''
23
'''서울 1945'''
2006년
1월 7일
~
2006년
9월 10일
매주 토ㆍ일
71회
'''윤창범'''
'''유현기'''
-
'''이한호'''
'''정성희'''
'''최운혁'''
'''류수영'''

'''김해경'''
'''한은정'''
'''이동우'''
'''김호진'''
'''문석경'''
'''소유진'''
24
'''대조영'''
(大祚榮)
2006년
9월 16일
~
2007년
12월 23일
매주 토ㆍ일
134회
'''김종선'''
'''윤성식'''
'''유현종'''
'''장영철'''
'''대조영'''
'''최수종'''
[46]
'''이해고'''
'''정보석'''
'''설인귀'''
'''이덕화'''
'''초린'''
'''박예진'''
'''숙영'''
'''홍수현'''
25
'''대왕 세종'''
(大王 世宗)
2008년
1월 5일
~
2008년
11월 16일
매주 토ㆍ일
86회
'''김성근'''
'''김원석'''
-
'''윤선주'''
'''김태희'''
'''세종'''
'''김상경'''
[47]
'''소헌왕후'''
'''이윤지'''
'''태종'''
'''김영철'''
'''장영실'''
'''이천희'''
'''황희'''
'''김갑수'''
26
'''천추태후'''
(千秋太后)
2009년
1월 3일
~
2009년
9월 27일
매주 토ㆍ일
78회
'''신창석'''
'''황인혁'''
-
'''손영목'''
'''이상민'''
'''강영란'''
'''천추태후'''
'''채시라'''
[48]
'''김치양'''
'''김석훈'''
'''강조'''
'''최재성'''
'''강감찬'''
'''이덕화'''
27
'''근초고왕'''
(近肖古王)
2010년
11월 6일
~
2011년
5월 29일
매주 토ㆍ일
60회
'''윤창범'''
'''김영조'''
'''이문열'''[49]
'''정성희'''
'''유숭열'''
'''근초고왕'''
'''감우성'''
[50]
'''부여화'''
'''김지수'''
'''고국원왕'''
'''이종원'''
'''해건'''
'''이지훈'''
'''진승'''
'''안재모'''
28
'''광개토태왕'''
(廣開土太王)
2011년
6월 4일
~
2012년
4월 29일
매주 토ㆍ일
92회
'''김종선'''
'''백상훈'''
'''정립'''[51]
'''형민우'''[52]
'''조명주'''
'''장기창'''
'''최진영'''
'''김주'''
'''광개토대왕'''
'''이태곤'''
[53]
'''고운'''
'''김승수'''
'''모용보'''
'''임호'''
'''도영'''
'''오지은'''
'''아신왕'''
'''박정철'''
29
'''대왕의 꿈'''
(大王의 꿈)
2012년
9월 8일
~
2013년
6월 9일
매주 토ㆍ일
70회
'''신창석'''
'''김상휘'''
-
'''유동윤'''
'''김선덕'''
'''김춘추'''
'''최수종'''
[54]
'''김유신'''
'''김유석'''
'''선덕여왕'''
'''박주미'''

'''홍은희'''
'''승만왕후'''
'''이영아'''
'''문무왕'''
'''이종수'''
30
'''정도전'''
(鄭道傳)
2014년
1월 4일
~
2014년
6월 29일
매주 토ㆍ일
50회
'''강병택'''
'''이재훈'''
-
''''''정현민''''''
'''정도전'''
'''조재현'''
[55]
'''이성계'''
'''유동근'''
'''이인임'''
'''박영규'''
'''최영'''
'''서인석'''
'''정몽주'''
'''임호'''
'''이방원'''
'''안재모'''
31
'''징비록'''
(懲毖錄)
2015년
2월 14일
~
2015년
8월 2일
매주 토ㆍ일
50회
'''김상휘'''
'''김영조'''
'''류성룡'''[56]
'''정형수'''
'''정지연'''
'''류성룡'''
'''김상중'''

'''선조'''
'''김태우'''
'''윤두수'''
'''임동진'''
'''도요토미 히데요시'''
'''김규철'''
'''이순신'''
'''김석훈'''
32
'''장영실'''
(蔣英實)
2016년
1월 2일
~
2016년
3월 26일
매주 토ㆍ일
24회
'''김영조'''
-
'''이명희'''
'''마창준'''
'''장영실'''
'''송일국'''
[57]
'''세종'''
'''김상경'''
'''태종'''
'''김영철'''
'''소현옹주'''
'''박선영'''

[1] 왜 과거형인지는 후술.[2] 조선 17대 임금 효종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이다. 병자호란의 발발과 진행이 본격적으로 다뤄졌다.[3] 대하드라마가 한창 방영되었을 당시 초딩이었던 80~90년대생에게 KBS 대하드라마하면 보통 '''아빠들이 본방사수했던 드라마(...)'''로 기억되는 편이다. [4] 1987~1988년 토지임동진, 반효정, 1990년 역사는 흐른다의 유인촌(야망의 세월과 함께 출연해 수상), 1993년 먼동의 하희라, 1997년 용의 눈물유동근, 1999년 왕과 비채시라, 2000~2001년 태조 왕건김영철, 최수종, 2005년 불멸의 이순신김명민, 2007년 대조영최수종, 2014년 정도전유동근(가족끼리 왜 이래와 함께 출연해 수상).[5] 완전히 끊긴 것이 아니라 중간에 20회 이하의 사극, 시대극이 방송되었다. 명가, 거상 김만덕, 전우, 자유인 이회영이 방송되었으며 2009년 후반기 때 2TV에서 10시 15분에 방영된 열혈 장사꾼부터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란 타이틀이 붙었는데 <명가>부터 KBS의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는 1TV로 옮겨졌으며 시간대도 9시 40분으로 바뀌었고 사극,시대극 위주로 방영됐다.[6] 유튜브 등지에서 올라온 영상들을 보면 외국인들의 댓글도 꽤 자주 보인다.[7]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으로 김원봉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는 대하드라마가 아니고 특집드라마를 기획 중이라고 KBS 측이 공식 입장을 밝혔으나 이후 소식이 없어 불발된 걸로 보인다.[8] 병자호란을 중심으로 효종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9] NHK 대하드라마는 1963년에 시작하였다.[10] 현재 방영 중인 다큐 인간극장과는 별개의 시리즈로, 주로 해방 이후 실존인물의 삶을 2 ~ 4회 분량으로 드라마화하여 방영했다.[11] <태조 왕건>은 당초 김재형 PD가 연출자로 낙점되었으나 김 PD는 96년 8월부터 98년 5월까지 <용의 눈물> 촬영 당시 조연급 탤런트들로부터 금품을 받은 것이 99년 8월 19일 발각되면서 배임수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고 결국 <태조 왕건> 방영 직전에 연출에서 손을 뗐으며 이에 KBS는 99년 12월 26일 끝낼 예정이었던 <왕과 비>를 2000년 3월 26일 종영시켰고 불미스러운 일로 <태조 왕건> 연출 명단에서 빠진 김재형 PD는 99년 11월 26일 서울지검으로부터 징역 2년, 추징금 1612만원이 구형되었으며 이후 타방송사로 처음 옮겨 연출한 SBS 여인천하로 재기에 성공했다.[12] 작가 유동윤씨는 해당 작품 때문에 SBS 왕의 여자 집필을 포기했다.[13] 원래 '불멸의 이순신' 연출자 이성주 PD가 연출자로 낙점되었지만 드라마 2팀장으로 발령되면서 김성근 PD로 연출자가 바뀌기도 했다.[14] 주인공 김춘추 역의 최수종은 낙마 사고와 수술로 3주 동안 뜬금없이 사라지고 목소리만 줄창 나왔으며 그 외에 교통사고도 한 번 당했다. 역시 여자 주인공인 선덕여왕 역의 박주미도 교통사고로 중도 하차해버렸고 홍은희로 교체되었다. 이건 말 그대로 운이 나빴던 것이라서 비난할 수도 없다.[15] 시공간을 초월한 웨딩드레스 상상신이 대표적이다. 이건 드라마 자체보다는 배우의 프로 의식&개념&사극 이해도 부족이라고 봐야겠지만.[16] 중반 이후 종영까지는 줄곧 동시간대 1위였다.[17] 그러나 장영실과 관련된 사료가 매우 부족한 점을 감안해야 한다.[18] 본래 김원봉은 남침을 반대했으나 막상 전쟁이 터지자 부득불 전쟁에 찬성하고 말았다.[19] 대하드라마 제작 중단 직전 장영실의 후속작으로 계획되었던 드라마가 다름 아닌 정조 시기를 배경으로 했던 다산 정약용이었다.[20] 의외로 KBS 역대 대하드라마에서 정조가 등장한적이 거의 없다. 딱 한번 91년작 왕도에서 강석우가 정조역할을 맡은바 있지만,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정조가 아니라 홍국영이었다. 여담이지만 의외로 정조 본인을 다뤘거나 정조와 관련된 사극은 MBC에서 더 자주 나온편이다.[21] 단적인 예로 삼국기가 한창 편성되었을때 본방송 시청률이 10%대 초중반을 오가는 수준이었고, 재방송이 본방송보다 시청률이 높았다고 한다. 물론 당시 편성시간이 MBC 주말연속극인 '''사랑이 뭐길래아들과 딸'''과 겹쳤기 때문에 그 여파를 진하게 받은 영향이 크지만.[22] 다만, 왕과 비는 방영 초기에 KBS2에서 재방송했으나 98년 가을개편부터 KBS1로 변경됐다.[23] 일례로 문회원MBC 주몽(현도군 태수), KBS 대조영(문무왕), SBS 연개소문(의자왕)에 모두 출연했으며, 박경득도 KBS 대조영(연개소문의 하인)과 SBS 연개소문(왕빈)에 겹치기 출연을 했다.[24] 아역이 성인 역으로 바뀌는 경우는 제외. 일례로 송재호는 왕과 비 초반에 세종으로 특별출연하였다가, 후반부에는 홍응이라는 대신 역으로 출연했다.[25] 왕과 비의 심회 역은 초반에는 한근욱이, 이후에는 이한승이 맡았다.[26] 나한일, 송영창, 정욱 등도 있었지만 이들은 불미스러운 일(나한일-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위반(이 때문에 MBC에서도 출연금지 상태), 송영창-원조교제, 정욱-유사수신 행위규제법 위반)로 KBS 출연 금지 상태다.[27] 최수종은 KBS 대하사극에 본격적으로 출연하기 전에는 KBS 주말연속극에 자주 출연했었다. 첫사랑, 야망의 전설, 사랑하세요 등등.[28] KBS 대하드라마 중 드물게 병자호란, 북벌을 다룬 드라마. 효종의 일대기를 다루었다.[29] 특별편 4회까지 합하면 53회.[30] KBS 대하드라마의 흑역사 1. 원작의 내용을 싹다 갈아버리고 신군부의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한 굉장히 노골적인 어용사극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런데 이 내용이 너무 지나쳐서 당시 KBS 내부에서도 논란이 일었다. 자세한 설명은 해당 문서 참고.[31] 대하드라마에 웬 외국인 원작이냐 하겠지만 이 사람은 조선에서 일하던 선교사로 자신이 본 사건을 소설로 쓴 것을 드라마화했다. 2021년 2월 9일 기준으로 유튜브 KBS 같이삽시다 채널에 1화 및 마지막화가 업로드됐다.[32] 이 작품으로 1987년 연기대상에서 임동진이, 1988년 연기대상에서 반효정이 각각 연기대상을 수상했다.[33] 이 작품과 야망의 세월을 통해 1990년 KBS 연기대상을 수상했다.[34] KBS 대하드라마의 흑역사 2. 이승만, 박정희, 박헌영, 남로당, 김일성, 조선인민군 미화라는 심각한 문제점들로 인해 대하드라마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단 '''13회'''만에 조기종영조루드라마이다.[35] 사실 김일성의 경우에는 그렇게 멋있게 미화되지는 않았고, 드라마에선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자기 부하들을 지키기 위해서 고민하는 평범한 정치인처럼 묘사되었다. 사실 해방 이후로부터 1950년대까지는 전제적인 권력을 휘두르기는 커녕 중국파, 소련파와 권력다툼을 벌였으니 만큼 만큼 이게 고증에 더 맞는 모습이기는 하다. 단지, 이전에 김일성을 등장시킨 매체에서는 극도로 잔인한 인물로 나왔기 때문에 미화처럼 느껴지게 된것(...) 다만 전체적으로 보았을때 이 드라마에 나온 김일성이 가장 현실의 김일성과 비슷하게 그려졌다는 평이 많다. .[36] <사설 정감록>[37] '''베토벤 바이러스'''를 쓴 홍자매의 아버지다.[38] 하희라가 이 작품으로 연기대상을, 김진태는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흥행과 별개로 이 작품 이후 예산 문제로 특집극 김구가 제작되기 전까지 대하드라마 제작이 한동안 중단되었다.[39] <세종대왕>[40] 유동근이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여말 선초를 다룬 창작물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큰 작품으로, 이후 같은 시대를 다룬 작품은 그것이 영화든 드라마든 이것의 영향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오죽하면 비교적 최근 작품인 정도전이 용의 눈물의 후예를 자처했을 정도. 흔히 역대 KBS 대하드라마 가운데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되곤 하며, 한국 사극 전체로 범위를 넓히더라도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는 의견도 많다.[41] 이 작품으로 1999년 채시라가 연기대상을 수상했다.[42] 잘 알려져있듯이 김영철과 최수종이 2000년과 2001년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서인석은 2001년 연기대상에서 남자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한편 "우리 역사의 사각지대라고 할 수 있는 후삼국시대를 생생하게 되살려 새로운 역사드라마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아 2001년 12월 열린 제 14회 한국방송작가상 드라마 부문 수상의 영예를 안았는데 역대 한국방송작가상 드라마 부문 수상작 중 유일한 정통사극이었으며 이 작품에 앞서 95년 월화사극으로 방영된 2TV 장녹수, 전작 왕과 비 이들 정통사극이 한국방송작가상 드라마 부문(장녹수-8회(96년 3월 개최) 왕과 비-12회(2001년 12월 개최) 후보에 오르기도 했지만 "여러 차례 고증을 무시하여 정통사극으로 거론되기엔 아쉬움이 있었다"(장녹수) " 계유정난의 일부를 미화한다는 논란을 일으킨 것 외에도 대하사극을 여인네들의 궁중암투로 ‘격하’시켰다"(왕과 비)는 등의 이유 탓인지 모두 탈락했다.[43] <칼의 노래>[44] <불멸>[45] 김명민이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성웅 이순신을 다뤘고 김명민의 열연 덕분에 현재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방영 당시에는 상당히 비판이 많았던 작품이다. 극단적으로 보는 경우, 대하드라마의 흑역사는 사실상 이 작품부터 시작이라고 보기도 한다. 이전 작품인 '무인시대'가 '정도전' 방영 이전까지 최후의 정통사극이라는 타이틀을 보유할 정도로 이 작품은 정통사극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한편 이 작품 이후 서울 1945 방영 전까지 대하드라마 제작이 잠시 중단되어 칭기즈 칸 외화를 더빙편성했다.[46] 극의 규모만 놓고 볼 때 지금까지의 작품들 가운데 최후의 대작으로, 이 이후로 제작 환경이 급변해 100회를 넘는 작품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드라마의 흥행과는 별개로 역사 왜곡, 고증 오류, 미화 등이 매우 심각했다. 최수종이 연기대상을 수상했다.[47] 기존의 대하드라마와 차별화된 작품으로 고정 시청자층인 장년층이 이탈해 시청률은 부진했으며, 전체적인 고증도 썩 훌륭한 작품은 되지 못했다. 그나마 압슬형 고증은 제대로 했다.[48] KBS 대하드라마의 흑역사 3. 고증과 재미를 모두 함께 내다 버렸다(...). 주인공에 대한 과도한 도덕성 강조가 역사적 사실을 곡학아세하는 부적절한 역사인식을 만나면 어떤 참극이 벌어지는지 잘 보여주었다. KBS 대하드라마 중 유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2TV에 순수 방영한 사극이다. 이 드라마의 실패로 인해 대하드라마는 얼마동안 계보가 끊겨지고 2TV에서 현대극인 "열혈 장사꾼"이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로 방송됐다. 1990년대 중반에 있었던 1차 중단 시기(먼동 ~ 김구)에 이은 2차 중단 시기가 바로 이 시기이다.[49] <대륙의 한>[50] KBS 대하드라마의 흑역사 4. 건축 양식, 생활 양식, 복식 고증 등은 잘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시나리오 작가와 PD의 섣부른 독단적인 결단이 어떠한 참극을 불러오는지 잘 보여준 작품. 그 결과 삼국시대판 막장 드라마가 탄생되었다. 하지만 바닥에는 더 바닥이 있다고 바로 밑의 작품이 공개됨에 따라 이 작품도 재평가를 받고 있다(...).[51] <광개토대제>[52] <태왕북벌기>[53] KBS 대하드라마의 흑역사 5이자 역대 KBS 대하드라마 사상 최악의 망작. 역사 왜곡, 막장 드라마, 질질 끄는 스토리, 어설픈 정치극, 어설픈 감성팔이 등 사극에서 볼 수 있는 온갖 문제점이 총체적으로 모여 있다. 특히 역사 왜곡은 이유가 있어서 한 것이 아니라 정말 몰라서 한 것이니... 답이 없다. 그나마 최고 시청률 20%를 찍은 마지막 대하드라마라는 점에서 약간의 의의 정도는 찾을 수 있을지도.[54] KBS 대하드라마의 흑역사 6. 다만 앞의 두 작품들과는 달리 환독과 대륙드립을 채용하지 않아서 각본만 아니었으면 평작 정도는 될 수 있었다.[55] 유동근이 이 작품과 <가족끼리 왜 이래>로 연기대상을 수상했다.[56] <징비록>[57] 이 작품을 끝으로 잠정중단 상태이다. 먼동, 불멸의 이순신 천추태후에 이은 제 4차 중단 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