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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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모습
스페인의 은퇴한 테니스 선수
Carlos Moya(풀네임은 카를로스 모야 욤파르트 Carlos Moya Llompart)
출생 : 1976년 8월 27일
국적 : 스페인
신장 : 191cm
체중 : 86kg
스페인의 테니스 선수로서 6세부터 테니스를 하기 시작하였고 1995년에 프로에 데뷔하였다. 주목받은 것은 1997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 준우승을 달성한 때부터인데 카를로스 모야는 1997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 128강전(1회전)에서 전년도 호주 오픈 남자 단식 우승자이며 당시 세계 랭킹 6위이던 보리스 베커[3] (독일)를 3-2(5-7, 7-6<7-4>, 2-6, 6-1, 6-4)로 격파하고 준결승전에선 당시 세계 랭킹 2위이던 마이클 창(미국)에게 3-0(7-5, 6-2, 6-4)의 완승을 거두고 결승전에 진출하였다. 카를로스 모야의 첫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결승전 진출이기도 했는데 결승전에선 우승 후보이던 당시 세계 랭킹 1위인 테니스 황제 피트 샘프라스(미국)에게 세트 스코어 0-3(2-6, 3-6, 3-6)의 완패를 당하여 준우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 준우승을 시작으로 카를로스 모야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카를로스 모야의 전성기는 1997년부터 2004년까지였지만 1999년 중반부터 2002년 초반까지는 부진하였던 시기로 실제 전성기는 1997년부터 1999년 초반까지의 첫번째 시기와 2002년 초반부터 2004년 중반까지의 두번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 전성기 시기이던 1998년에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에서 유일한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우승을 달성하기도 했는데 8강전에서 당시 세계 랭킹 3위인 마르셀로 리오스[4] (칠레)에게 3-1(6-1, 2-6, 6-2, 6-4)로 승리하여 4강전에 진출하였고, 4강전에선 세계 랭킹 15위인 펠릭스 만티야[5] (스페인)를 3-1(5-7, 6-2, 6-4, 6-2)로 꺾고 결승전에 진출하였는데 결승전에선 세계 랭킹 14위이던 알렉스 코레차[6] (스페인)에게 3-0(6-3, 7-5, 6-3)의 완승을 거두고 '''1998년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우승'''을 달성하였다.
'''1999년 3월에는 처음으로 세계 랭킹 1위를 기록'''하기도 했는데 카를로스 모야의 세계 랭킹 1위는 '''스페인 테니스 선수로는 처음으로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것'''이다. 카를로스 모야가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것은 1998년 3월부터 1999년 3월까지 1998년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우승, 1998년 US 오픈 남자 단식 4강 진출, 1998년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 준우승, 1998년 마스터스 몬테카를로 오픈 남자 단식 우승, 1999년 마스터스 인디언 웰스 오픈 남자 단식 준우승, ATP 투어 남자 단식 준우승 1회를 거둔 덕택이었다.
하지만 세계 랭킹 1위를 기록하기엔 카를로스 모야의 성적이 압도적이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랭킹 1위를 기록한 것은 당시가 피트 샘프라스와 안드레 애거시의 양강 시대와 황제 로저 페더러의 독주 시대 사이의 절대 강자 없이 여러 강호들이 물고 물리던 군웅할거의 춘추전국 시대였던 덕을 본 것도 있다.
그러나 이 첫번째 전성기가 지난 이후 두번째 전성기 때에는 이미 76년생인 카를로스 모야의 다음 세대 후배들인 80년대 초반 출생한 마라트 사핀, 후안 카를로스 페레로, 로저 페더러, 레이튼 휴이트, 앤디 로딕 등이 치고 올라왔고 얼마 후엔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의 독주 시대도 열렸기에 카를로스 모야는 이 두번째 전성기 시기에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4강에 한번도 오르지 못했다.
그래도 두번째 전성기 시기에 거둔 주요 성적은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8강 진출 2회, 2002년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 4강 진출, ATP 마스터스[7] 시리즈 남자 단식은 우승 2회, 준우승 2회, 4강 진출 3회, ATP 투어 남자 단식에선 우승 8회, 준우승 4회를 기록하였다.
2010년에 오랜 발부상에서 회복되지 못하여 은퇴하게 되는데 공식 대회 출전은 2010년 ATP 월드 투어 마스터스 1000 마드리드 오픈이 마지막이었으나 은퇴식은 2010년 ATP 월드 투어 파이널 남자 단식에서 열렸다. 이 은퇴식에는 2010년 ATP 월드 투어 파이널 남자 단식에 출전하는 상위랭커 8명 이외에도 페르난도 베르다스코[8] , 미하일 유즈니[9] , 알렉스 코레차, 요나스 비요크만[10] , 토마스 요한슨[11] 등이 참석하여 카를로스 모야의 은퇴식을 성대하게 축하하였다.
경기 스타일은 스페인 선수답게 클레이 코트에 강한 베이스라이너이다. ATP 투어 이상급 남자 단식 결승 진출 44회 중에 28회가 클레이 코트에서 열린 대회였으며 ATP 투어 이상급 남자 단식 우승 20회 중에서 클레이 코트 대회는 무려 16회일 정도로 클레이 코트에 강한 선수였다.
2010년 은퇴할 때까지의 통산 주요 성적은 1998년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우승, 1997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 준우승, 1998년 US 오픈 남자 단식 4강 진출,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8강 진출 5회, 1998년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 준우승,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 4강 진출 2회, ATP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은 우승 3회, 준우승 3회, 4강 진출 6회, ATP 투어 남자 단식은 우승 16회, 준우승 19회를 차지한 세계적인 선수였다.
2017년부터 스페인 출신 선후배 사이로 사적으로도 절친한 사이인 라파엘 나달의 전담 코치를 맡았다.
대한민국에서는 버추어 테니스에서 파워풀한 백핸드로 기억되고 있다. 그래서 인지 몰라도 버추어 테니스에서 픽률이 가장 높았다. [12]
2006년 모습
스페인의 은퇴한 테니스 선수
Carlos Moya(풀네임은 카를로스 모야 욤파르트 Carlos Moya Llompart)
출생 : 1976년 8월 27일
국적 : 스페인
신장 : 191cm
체중 : 86kg
1. 통산 커리어
- 개인전 통산 성적 : 575승 319패
- 커리어 통산 타이틀 획득 : 20회
- 복식 통산 성적 : 24승 50패
- 복식 타이틀 획득 : 0회
- 통산 상금 획득 : 13,443,970 달러
- 호주 오픈 : 준우승 1회 - 1997
- 프랑스 오픈 : 우승 1회 - 1998
- 윔블던 : X
- US 오픈 : X
2. 선수 소개
스페인의 테니스 선수로서 6세부터 테니스를 하기 시작하였고 1995년에 프로에 데뷔하였다. 주목받은 것은 1997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 준우승을 달성한 때부터인데 카를로스 모야는 1997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 128강전(1회전)에서 전년도 호주 오픈 남자 단식 우승자이며 당시 세계 랭킹 6위이던 보리스 베커[3] (독일)를 3-2(5-7, 7-6<7-4>, 2-6, 6-1, 6-4)로 격파하고 준결승전에선 당시 세계 랭킹 2위이던 마이클 창(미국)에게 3-0(7-5, 6-2, 6-4)의 완승을 거두고 결승전에 진출하였다. 카를로스 모야의 첫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결승전 진출이기도 했는데 결승전에선 우승 후보이던 당시 세계 랭킹 1위인 테니스 황제 피트 샘프라스(미국)에게 세트 스코어 0-3(2-6, 3-6, 3-6)의 완패를 당하여 준우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 준우승을 시작으로 카를로스 모야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카를로스 모야의 전성기는 1997년부터 2004년까지였지만 1999년 중반부터 2002년 초반까지는 부진하였던 시기로 실제 전성기는 1997년부터 1999년 초반까지의 첫번째 시기와 2002년 초반부터 2004년 중반까지의 두번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 전성기 시기이던 1998년에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에서 유일한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우승을 달성하기도 했는데 8강전에서 당시 세계 랭킹 3위인 마르셀로 리오스[4] (칠레)에게 3-1(6-1, 2-6, 6-2, 6-4)로 승리하여 4강전에 진출하였고, 4강전에선 세계 랭킹 15위인 펠릭스 만티야[5] (스페인)를 3-1(5-7, 6-2, 6-4, 6-2)로 꺾고 결승전에 진출하였는데 결승전에선 세계 랭킹 14위이던 알렉스 코레차[6] (스페인)에게 3-0(6-3, 7-5, 6-3)의 완승을 거두고 '''1998년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우승'''을 달성하였다.
'''1999년 3월에는 처음으로 세계 랭킹 1위를 기록'''하기도 했는데 카를로스 모야의 세계 랭킹 1위는 '''스페인 테니스 선수로는 처음으로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것'''이다. 카를로스 모야가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것은 1998년 3월부터 1999년 3월까지 1998년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우승, 1998년 US 오픈 남자 단식 4강 진출, 1998년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 준우승, 1998년 마스터스 몬테카를로 오픈 남자 단식 우승, 1999년 마스터스 인디언 웰스 오픈 남자 단식 준우승, ATP 투어 남자 단식 준우승 1회를 거둔 덕택이었다.
하지만 세계 랭킹 1위를 기록하기엔 카를로스 모야의 성적이 압도적이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랭킹 1위를 기록한 것은 당시가 피트 샘프라스와 안드레 애거시의 양강 시대와 황제 로저 페더러의 독주 시대 사이의 절대 강자 없이 여러 강호들이 물고 물리던 군웅할거의 춘추전국 시대였던 덕을 본 것도 있다.
그러나 이 첫번째 전성기가 지난 이후 두번째 전성기 때에는 이미 76년생인 카를로스 모야의 다음 세대 후배들인 80년대 초반 출생한 마라트 사핀, 후안 카를로스 페레로, 로저 페더러, 레이튼 휴이트, 앤디 로딕 등이 치고 올라왔고 얼마 후엔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의 독주 시대도 열렸기에 카를로스 모야는 이 두번째 전성기 시기에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4강에 한번도 오르지 못했다.
그래도 두번째 전성기 시기에 거둔 주요 성적은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8강 진출 2회, 2002년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 4강 진출, ATP 마스터스[7] 시리즈 남자 단식은 우승 2회, 준우승 2회, 4강 진출 3회, ATP 투어 남자 단식에선 우승 8회, 준우승 4회를 기록하였다.
2010년에 오랜 발부상에서 회복되지 못하여 은퇴하게 되는데 공식 대회 출전은 2010년 ATP 월드 투어 마스터스 1000 마드리드 오픈이 마지막이었으나 은퇴식은 2010년 ATP 월드 투어 파이널 남자 단식에서 열렸다. 이 은퇴식에는 2010년 ATP 월드 투어 파이널 남자 단식에 출전하는 상위랭커 8명 이외에도 페르난도 베르다스코[8] , 미하일 유즈니[9] , 알렉스 코레차, 요나스 비요크만[10] , 토마스 요한슨[11] 등이 참석하여 카를로스 모야의 은퇴식을 성대하게 축하하였다.
경기 스타일은 스페인 선수답게 클레이 코트에 강한 베이스라이너이다. ATP 투어 이상급 남자 단식 결승 진출 44회 중에 28회가 클레이 코트에서 열린 대회였으며 ATP 투어 이상급 남자 단식 우승 20회 중에서 클레이 코트 대회는 무려 16회일 정도로 클레이 코트에 강한 선수였다.
2010년 은퇴할 때까지의 통산 주요 성적은 1998년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우승, 1997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 준우승, 1998년 US 오픈 남자 단식 4강 진출,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8강 진출 5회, 1998년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 준우승,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 4강 진출 2회, ATP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은 우승 3회, 준우승 3회, 4강 진출 6회, ATP 투어 남자 단식은 우승 16회, 준우승 19회를 차지한 세계적인 선수였다.
2017년부터 스페인 출신 선후배 사이로 사적으로도 절친한 사이인 라파엘 나달의 전담 코치를 맡았다.
대한민국에서는 버추어 테니스에서 파워풀한 백핸드로 기억되고 있다. 그래서 인지 몰라도 버추어 테니스에서 픽률이 가장 높았다. [12]
3. 참고 링크
[1] 2009년에 ATP 월드 투어 파이널로 명칭 변경.[2] 2009년에 ATP 월드 투어 마스터스 1000 시리즈로 명칭 변경.[3] 무려 만 17세 7개월의 나이로 1985년 윔블던 남자 단식에서 우승하여 최연소 윔블던 남자 단식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는 선수로 1985년 윔블던 남자 단식 우승은 베커의 첫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우승이기도 했다. 1991년에는 세계 랭킹 1위까지 기록하였으며 전성기 기간이 무려 1985년부터 1996년까지이기도 하다. 1999년 은퇴할 때까지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에서만 우승 6회, 준우승 4회, 4강 진출 8회를 기록했고,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에서도 우승 3회, 준우승 5회를 달성하였으며 통산 타이틀 획득 49회를 기록할 정도로 세계적인 선수였다.[4]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우승 없이 세계 랭킹 1위를 차지한 유일한 선수 겸 세계 랭킹 1위를 처음 차지한 남미 선수로 유명한 선수이며 전성기는 1996년부터 1999년까지였다. 2004년 은퇴할 때까지의 통산 주요 성적이 1998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 준우승,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8강 진출 5회,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은 우승 5회, 준우승 2회, 4강 진출 6회, ATP 투어 남자 단식은 우승 12회, 준우승 10회를 기록한 세계적인 선수였다.[5] 1998년에 세계 랭킹 10위까지 기록하였던 선수로서 전성기는 1996년부터 1999년까지였다. 2008년 은퇴할 때까지의 통산 주요 성적은 1998년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4강 진출, 1997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 8강 진출, 2003년 마스터스 로마 오픈 남자 단식 우승, 1997년 마스터스 함부르크 오픈 남자 단식 준우승,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 4강 진출 3회, ATP 투어 남자 단식은 우승 9회, 준우승 10회를 기록하였다.[6] 1995년 세계 랭킹 2위까지 기록하였던 선수로서 전성기는 1996년부터 2002년까지였다. 2005년 은퇴할 때까지의 통산 주요 성적은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에선 준우승 2회, 4강 진출 1회, 8강 진출 3회를 기록하였고 1998년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 우승,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은 우승 2회, 준우승 3회, 4강 진출 3회를 달성하였으며 ATP 투어 남자 단식은 우승 14회, 준우승 8회를 기록한 선수이다.[7] 현재의 ATP 월드 투어 마스터스 1000 시리즈 대회의 2004~2008년 사이의 명칭.[8] 2009년에 세계 랭킹 7위까지 기록한 스페인 테니스 선수로 전성기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였으며 2019년 2월 현재까지 현역 선수로 활동하고 있어 꾸준함을 과시하고 있다. 2019년 2월까지 거둔 통산 주요 성적은 2009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 4강 진출, 그랜드슬램 대회 8강 진출 3회, 2010년 ATP 월드 투어 마스터스 1000 몬테카를로 오픈 남자 단식 준우승, 2010년 ATP 월드 투어 마스터스 1000 로마 오픈 남자 단식 4강 진출, ATP 월드 투어 남자 단식에서도 우승 7회, 준우승 16회를 기록중인 선수이다.[9] 2008년에 세계 랭킹 최고 순위 8위를 기록한 러시아 테니스 선수로 전성기는 2006년 후반부터 2013년까지이며 2018년 은퇴하였다. 2018년 9월까지의 통산 주요 성적은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은 4강 진출 2회, 8강 진출 4회이고 ATP 투어 남자 단식은 우승 10회, 준우승 11회를 기록중이다.[10] 1997년에 세계 랭킹 최고 순위 4위를 기록한 스웨덴의 테니스 선수로서 전성기는 1995년부터 1998년까지였다. 2008년에 은퇴할 때까지 통산 주요 성적으로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은 4강 진출 2회, 8강 진출 5회이며 여기에 1997년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 4강 진출, 1997년 마스터스 파리 오픈 남자 단식 준우승,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 4강 진출 4회, ATP 투어 남자 단식은 우승 6회, 준우승 4회를 기록한 선수이다.[11] 2002년에 세계 랭킹 7위까지 올라갔던 스웨덴의 테니스 선수로 전성기는 1998년부터 2002년까지가 첫번째였고 2004년부터 2005년까지가 두번째 전성기였다. 2009년에 은퇴하였는데 은퇴할 때까지 거둔 통산 주요 성적은 2002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 우승, 2005년 윔블던 남자 단식 4강 진출,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8강 진출 2회, 1999년 마스터스 캐나다 로저스컵 남자 단식 우승, 2004년 마스터스 캐나다 로저스컵 남자 단식 4강 진출, ATP 투어 남자 단식은 우승 8회, 준우승 5회를 기록했다.[12] 그 당시 버추어 테니스에서 알려진 선수가 없어서 그런거일수도 있겠다. 페더러나 나달 같은 초유명 선수가 합류한건 버추어 테니스 3 부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