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총독령

 


'''쿠바 총독령'''
'''Gobernación de Cuba'''
스페인 제국의 식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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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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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1년 ~ 1519년
위치
쿠바 지역
수도
바라코아
정치체제
스페인 제국의 식민지
국가원수
국왕, 총독
언어
스페인어
종교
가톨릭
성립 이전
쿠바의 선사시대
산토도밍고 도독령
멸망 이후
누에바에스파냐
1. 개요
2. 역사
3. 아메리카의 첫 반란자
4. 참고 문헌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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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511년부터 1519년까지 존속한 카스티야 연합 왕국(스페인 제국)의 식민지이다.

2. 역사


쿠바는 1492년 스페인 식민주의자들에 의해 스페인의 영토로 선포되었다. 스페인 영토로 선포된 직후 쿠바 원주민의 인구는 보통 10만 ~ 50만명 이내로 추정된다. [1] 이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아들인 디에고 콜럼버스(Diego Colón)는 1511년 디에고 벨라스케스 데 쿠엘라르(Diego Velázquez de Cuéllar)를 총독으로 임명한 후 쿠바 원정대를 조직하게 하였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원정대는 쿠바를 정복하는데 성공하였다. 스페인 식민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점령한 쿠바에 쿠바 총독령을 설치하고, 엥코미엔다 제도(encomienda)라는 토지 제도를 실시하여 정착촌을 건설하였다. 이것은 미주대륙에서 최초로 정착촌이 건설된 사례이다.
쿠바 총독령은 1519년 누에바에스파냐에 편입되었다. 그리고 1524년 쿠바의 총독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죽자 완전히 종료되었다

3. 아메리카의 첫 반란자


디에고 벨라스케스 데 쿠엘라르가 쿠바 원정대를 조직한 그 해에, 타이노인(Taino) 아투에이(Hatuey)는 스페인의 식민 지배에 대항하여 무기를 들었다. 그는 스페인 당국의 추적을 피해 이스파니올라 섬에서 쿠바로 도망쳤다. 아투에이는 결국 쿠엘라르에게 잡혀 야라(Yara)에서 화형에 처해졌다.[2]
오늘날 쿠바인들은 그를 '아메리카의 첫 반란자'라고 여기며, 그의 동상이 쿠바 동부 바라코아에 세워져있는 등, 쿠바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3]

4. 참고 문헌


  • 정재호 (2004). 쿠바와 푸에르토리코의 식민지 경험과 탈식민지 독립운동에 대한 비교. 라틴아메리카연구, 17(3), 69-99.
  • 아비바 촘스키, 『쿠바혁명사』, 정진상 옮김, 삼천리, 2014.

5. 관련 문서


[1] 그러나 스페인의 군사적 정복과 노예화, 스페인인들이 들여온 질병으로 인하여 원주민 집단은 붕괴되었다. - 아비바 촘스키, 『쿠바혁명사』, 정진상 옮김, 삼천리, 2014, 37-38[2] 화형에 처해지기 직전에 아투에이에게 스페인 종군 신부가 "세례를 받으면 죄사함과 구원을 받아 천국으로 갈 수 있다"며 그에게 개종을 권했는데, 아투에이는 종군 신부에게 "죄 없는 내 아내와 딸을 강간하고 죽인, 내 동족들을 잔인하게 학살한 그 스페인인들도 천국에 갔느냐"라고 물었고, 종군 신부는 "당연히 세례 받았으니 천국에 갔다"고 말하자 아투에이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그 자리에서 "'''그럼 나는 그런 천국에 가지 않겠다. 그런 잔인한 인간들이 없는 지옥이야말로 나에게는 천국이다'''"라고 대답하며 개종을 거부했고, 화형을 당해 고통스럽게 죽었다. 라스 카사스 신부는 이 아투에이의 일화를 자신의 저서에 모두 기록했고, "'''이게 우리 주님과 우리의 기독교 신앙이 저 신대륙에서 저지른 행동으로 얻은 명예이고 영광이란 것이다'''"라고 한탄했다. # [3] 아비바 촘스키, 『쿠바혁명사』, 정진상 옮김, 삼천리, 2014, 3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