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바에스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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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콩키스타도르 에르난 코르테스가 아즈텍 제국을 정복하고 세운 스페인의 식민지이자 부왕령. 영어식으로 뉴스페인이라고도 한다. 말 그대로 "새로운 스페인"이라는 뜻. 아즈텍 제국 정복이 완료된 1521년에는 잠시 '누에바에스파냐 왕국'(Reino de Nueva España)이었다가 1535년에 정식으로 스페인의 부왕령으로 확립되었다.
아즈텍을 무너뜨리고 멕시코를 식민지로 삼은 코르테스는 한동안 떵떵거리며 잘 지냈다. 당시 본국은 한창 정권이 교체되는 불안정한 시기라 대서양 건너 식민지의 일까지 간섭할 겨를이 없었다. 게다가 야심만만한 젊은 새 황제 카를 5세(카를로스 1세)는 즉위하자마자 곧장 독일에서의 내전과 대프랑스 전쟁, 대오스만 전쟁을 치렀기 때문에 더더욱 신대륙에 신경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1522년 코르테스는 공식적으로 테노치티틀란 총독에 임명되었다.
그런 이유로 코르테스는 1526년까지 멕시코와 쿠바에서 왕과 다름없이 지냈다. 그리고 1519년에서 1525년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자신의 무용담과 정복 과정에서 발생한 일들을 세세하게 기록한 서한을 새 국왕에게 송달했다. 이 기록은 <멕시코 정복기>로 지금도 남아있어 당시 아즈텍이 어떤 과정을 거쳐 무너졌는지 밝히는 귀중한 사료로 쓰이고 있다. 비록 그것이 정복자의 입장에 치우쳤다는 한계를 지적받고는 있지만.
하지만 처음에는 전쟁에 여념이 없어 그저 코르테스가 보내오는 막대한 공물에 만족했던 카를 5세도 전쟁이 일단락되고 나자 슬슬 코르테스의 위치에 제동을 걸 필요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1526년 코르테스를 월권 혐의로 전격 파면했다.
당연히 코르테스가 그걸 순순히 받아들일 리는 만무했지만, 자신을 파면한 카를 5세는 시시한 쿠바 원정대나 아즈텍인들 따위와는 현격하게 격이 달랐다. 그는 스페인 본토는 물론 신성 로마 제국의 제위까지 손에 넣은 데다 이탈리아까지 석권 중인 당대 유럽 최강의 패자였다. 파면에 대한 항거는 곧 대규모의 유럽의 최정예 군대와의 전쟁, 즉 죽음을 의미했다.
별 수 없이 일단 귀국길에 오른 코르테스는 왕을 접견했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자신을 변호하며 왕의 환심을 얻으려 했다. 코르테스의 호방함과 아부가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던 카를 황제는 코르테스에게 다시 기회를 주기로 했다. 이리하여 코르테스는 멕시코로 돌아가 1540년까지 다시 10년 이상 총독으로 군림하며 개척에 박차를 가했다.
물론 카를 5세는 막대한 영토의 누에바에스파냐를 자신의 통제 하에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에 따라 1535년에는 돈 안토니오 데 멘도사(Don Antonio de Mendoza)를 첫 누에바에스파냐 부왕으로 파견했다. 한편으로 가톨릭 선교사들을 누에바에스파냐로 보내 원주민들을 개종하는 것에도 노력했다.
한편으로 스페인인들은 아즈텍 제국 정복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들의 영역을 중앙아메리카로 확장해 나갔으며, 더불어 북아메리카(오늘날의 미국 남서부 및 플로리다)로도 자신들의 도시를 세웠다. 또한 이들은 태평양을 건너는 데 성공하여 태평양 건너에 있는 필리핀과 괌 등을 식민지로 삼아 누에바에스파냐에 편입하고 타이완 섬 북부를 잠시 차지하기도 했다.
이후 유카탄 반도에서 은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이곳에서 채굴한 막대한 양의 은은 전 세계로 퍼져 가격혁명을 일으켰다. 멕시코 서부 아카풀코와 필리핀, 중국을 잇는 무역은 이른바 "갈레온 무역"으로 불리며 많은 양의 은이 아시아에 유입되었다.
18세기에 들어 7년 전쟁이 발생하자 스페인 제국은 누에바에스파냐의 일부인 필리핀 마닐라, 바하마 등지를 빼앗겼으나 이후 전쟁 종결로 맺어진 파리 조약에서는 이들을 되찾고 오늘날 미국 중서부(루이지애나 구입의 그 루이지애나)를 얻은 대신 영국에 플로리다를 내줬다. 이 플로리다는 미국 독립전쟁에서 스페인이 미국 독립군을 도운 대가로 파리 조약을 통해 다시 되찾게 된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북아메리카 서부(캘리포니아 등)에도 진출하기 시작하여 북미 서부 일대를 완전히 스페인 영토로 삼는 데 성공하게 되었다. 그러나 19세기 들어 스페인 본국이 나폴레옹에게 정복당하는 굴욕을 맛보고 루이지애나는 프랑스 영토로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본국이 나폴레옹에 유린당하자 현지에서는 독립 여론이 불거졌고, 이 때부터 독립운동이 활발해져 스페인 본국의 골치를 썩이게 되었다. 그래도 스페인은 이 지역을 통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고 미국과 1819년에 애덤스 오니스 조약을 맺어 플로리다를 미국에 판 대신 불분명한 루이지애나와 누에바에스파냐의 경계를 누에바에스파냐에 유리한 쪽으로 확립했다. # 결과
하지만 그 직후 1821년 9월 누에바에스파냐의 핵심인 멕시코가 결국 멕시코 제국으로 독립하고 말았고, 중앙아메리카 지역도 제각기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고 말았다. 물론 쿠바, 필리핀, 푸에르토리코 등은 아직 스페인령이었지만, 1821년 이후에는 누에바에스파냐 부왕령은 폐지되고 각 지역을 별도의 식민지로 삼아 다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