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시와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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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시와다시 / Kishiwada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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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市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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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紋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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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국가'''
일본
'''지방'''
칸사이 지방
'''도도부현'''
오사카
'''면적'''
72.68km²
'''인구'''
192,637명[1]
'''시제 시행년도'''
1922년
'''상징'''
'''시화'''
장미(バラ)
'''시목'''
녹나무(クス)
'''시가'''
키시와다시가(岸和田市歌)
키시와다시민가(岸和田市民歌)
키시와다시찬가(岸和田市讃歌)
키시와다시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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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시와다 성(岸和田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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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교통
4. 기타


1. 개요


일본 오사카부 남부에 위치해 있는 도시. 키시와다 번(岸和田藩)의 조카마치를 중심으로 하여 발전하였으며, 인구는 약 20만으로 특례시에 지정되어 있다. 오사카 센난(泉南) 지역의 중심이 되는 도시이며, 센난 지역에서 이 시 보다 인구가 많은 시는 없다. 2018년 4월 1일 중핵시로 승격될 예정이'''었'''으나, 2016년 12월 인구 감소와 재정 문제로 인해 중핵시 승격 계획을 철회하였다.
오사카 부의 중앙 관청이나 기업들의 지점들이 집중되어 있으며, 시의 캐치프라이즈는 '''「사람이 숨쉬고 지역이 빛나는 마을 키시와다」'''이다.

2. 역사


남북조시대의 키시와다 씨(岸和田氏)가 기록한 군충장에서 「키시와다(岸和田)」라는 문자가 확인된 것으로 보아 이 때 부터 지명이 굳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고, 1585년 텐쇼 13년에는, 하시바 히데요시의 기슈 네고로지 토벌에 의해, 히데요시의 백부・코이데 히데마사가 성주가 되고, 키시와다 번이 입번하자 성곽 정비와 조카마치 건설에 착수하였다.
이후 1619년 마츠다이라 야스시게(松平康重)[2]가, 1640년 오카베 노부카츠(岡部宣勝)[3]가 입봉하면서 별 탈 없이 발전해 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1871년 폐번치현으로 인해 키시와다 현(岸和田県)이 설치되고, 동년 사카이 현(堺県)에 편입되었다가, 1881년 오사카 부에 편입되어 오사카 부 소속이 되었다.
  • 1889년 4월 1일 - 정촌제가 시행됨에 따라, 미나미 군(南郡)의 6정[4]이 합병하여 미나미 군 키시와다 정(岸和田町)이 발족한다. 정청은 키시와다키타 지역에 설치되었다가, 이후 키시와다혼 지역으로 이전했다.
  • 1896년 4월 1일 - 센난 군(泉南郡)이 성립한다.
  • 1912년 1월 1일 - 센난 군 키시와다하마 정(岸和田浜町)・키시와다 촌(岸和田村)・누마노 촌(沼野村)을 편입했다.
  • 1922년 11월 1일 - 키시와다 정이 키시와다 시(岸和田市)로 승격하였다.[5]
  • 1938년 3월 3일 - 센난 군 하부고 촌(土生郷村)을 편입했다.
  • 1940년 6월 1일 - 센난 군 아마카 촌(有真香村)・히가시카츠라기 촌(東葛城村)을 편입했다.
  • 1942년 4월 1일 - 센난 군 하루키 정(春木町)・야마다이 정(山直町)・미나미카모리 촌(南掃守村)을 편입했다.
  • 1948년 4월 1일 - 센난 군 야마타키 촌(山滝村)을 편입했다.
  • 2002년 4월 1일 - 특례시로 지정되었다.
  • 2003년 7월 15일 - 키시와다 시・타다오카 정 합병협의회를 설립. 이후 주민투표에서 반대표가 쏟아지는 바람에 해산하였다.
  • 2007년 1월 1일 - 시내에 월경지로 존재하던 카이즈카#s-2 시의 세치고신마치 지구(清児新町地区)를 편입하였다.

3. 교통


'''철도'''
도로
  • 한와 자동차도(阪和自動車道) : 키시와다이즈미IC(소재지는 이즈미시)
  • 한신고속도로 완간선(阪神高速4号湾岸線) : 키시와다키타출입구-키시와다미나미출입구
  • 국도 26호선(제 2 한와 국도)
  • 국도 170호선(오사카 외환상선)
'''항구'''
  • 한난 항(阪南港)

4. 기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영등포구2002년 10월 31일부터 자매도시이다.
일본에서 성격이 가장 화끈한(?) 동네로 소문난 것이 유명하다. 마치 한국의 벌교읍 이미지. 거대한 수레를 끌고 도로 및 주택가(!)를 질주하는 단지리 마츠리가 그 화끈함을 잘 보여주는데, 인명사고가 생기고 심지어 단지리 '''보험'''이 있을 정도로 위험하지만(전복사고 영상) 계속되고 있다.

[1] 추계인구 2017년 10월 1일 기준[2] 에도시대 초기의 무장, 다이묘.[3] 미노오가키 번(美濃大垣藩)의 제 2대 번주.[4] 키시와다키타 정(岸和田北町)・키시와다우오야 정(岸和田魚屋町)・키시와다사카이 정(岸和田堺町)・키시와다혼 정(岸和田本町)・키시와다미나미 정(岸和田南町)・키시와다난마츠 정(岸和田並松町).[5] 이는 오사카 부에서 무려 3번째로 탄생한 시로, 이보다 더 먼저 성립된 시는 현재는 정령지정도시인 오사카, 사카이밖에 없다. 그만큼 이 시가 옛날에 아주 번영했었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