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조시대(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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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시대 구분(1336년 ~ 1392년)으로 교토를 중심으로 무로마치 막부가 실권을 행사한 북조와 요시노를 중심으로 한 남조가 대립한 시대. 일본에서 천황이 두 명이었던 시대로 넓게 보면 무로마치 시대의 초창기에 해당하며 보통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고다이고 덴노를 요시노로 내쫓고 고묘 덴노를 세운 1336년부터, 북조의 고코마츠 덴노가 남북조를 통일한 1392년까지를 가리킨다.
2. 역사
초기에는, 합법적 즉위 절차를 거친 데다 3종신기를 가지고 요시노로 망명(?)간 고다이고 덴노의 남조#s-1.4 쪽이 정통성에서 앞서는 것으로 보였다. 거기다 구스노키 마사시게, 닛타 요시사다, 키타바타케 아키이에 등 고다이고 덴노를 따르는 남조의 무사를 중심으로 서일본에서 아시카가 다카우지를 궁지로 모는 경우도 많았지만, 확실한 기회를 머뭇거리다 여러 번 놓치게 되면서 점차 북조 쪽으로 힘이 기울게 된다.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츠가 큐슈의 왜구들을 직접 지배하고, 명나라로부터 "일본 국왕"의 칭호를 받는 등 (물론 후대의 천황 중심주의 역사가들한테 엄청 까였다.) 북조가 완벽하게 강성하면서 남조의 고카메야마 덴노가 삼종신기를 북조의 고코마츠 덴노에게 물려주고 흡수 통합되는 형식으로 막을 내렸다.
그런데 흡수 통일 당시에는 천황을 북조와 남조#s-1.4 혈통이 로테이션 돌리는 식으로 하자고 정했지만[1] , 막상 통일되고 나니 칼자루를 쥔 북조가 입 싹 씻어버리고 천황 혈통을 독점하게 된다. 이에 열받은 남조의 잔당 세력이 난을 일으키지만, 군권 대부분을 장악한 무로마치 막부에 숙청당하고 대부분의 남조 혈통이 평민화되거나 절에 몸을 의탁하게 되었다.
승자는 북조이지만, 메이지 덴노 이후로 진짜 정통은 남조로 인정받게 되었다.[2] "친왕"으로 불리던 후계들도 훗날 천황으로 추숭되었다. 이를 남북조정윤론이라 한다. 한편으로는 음모론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메이지 덴노 대역설이 민간에까지 널리 퍼진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사로 치면 고려 말 왜구의 침입 당시와 거의 겹치며, 왜구들의 발호와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 특이하게도 남북조가 합쳐진 1392년은 조선의 건국과 같은 해이다. 이에 대해선 해당 문서 참고.
[1] 사실 북조 계통과 남조 계통은 남북조 분열 이전에도 서로 번갈아가면서 황위에 올랐다. 그런 식의 황위 계승이 이어진 이유는 선대에 덴노 자리에서 물러난 상황들이 후임 덴노의 후계자 결정에 개입했기 때문이다. 자기 마음에 드는 자식을 차차기 덴노로 세우되 그렇다고 해서 차기 덴노의 후손들 또한 여전히 그대로 계승권을 주장할 수 있는 구조가 된 것이다. 때문에 점차 누가 덴노에 오르든 정통성 시비의 여지가 상존하게 되었고 막부라든지 무가 등 외부세력의 개입여지가 생기게된 것이다.[2] 그렇다고 해서 북조 계통인 이후 덴노들의 정통성이 부정되지는 않는다. 남조와 북조의 선조는 원래 덴노자리를 10년 씩 교대로 지내던 사이다. 고사가 덴노가 상황으로 물러난 뒤 4남 고후카쿠사 덴노가 즉위했는데 고후카쿠사 덴노의 후계를 고후카쿠사 덴노의 후손이 아닌 평소 총애하던 8남 가메야마 덴노의 아들인 고우다 덴노로 정했기 때문에 지묘인 계통(4남의 후손, 이후 북조)과 다이카쿠지 계통(8남의 후손, 이후 남조)가 돌아가면서 덴노에 오르게 되었다 오래전부터 분쟁의 여지가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