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사(멕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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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upo Televisa
텔레비사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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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시티 텔레비사 차풀테펙 본사.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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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시티 텔레비사 산앙헬 스튜디오. 텔레노벨라 촬영과 관련있다. 출처
멕시코에 있는 민영 방송국. 스페인어권 방송국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1]
258개의 지상파 방송과 케이블 방송, 지역 방송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중 라스 에스트레야스가 많이 알려져있다. 또한 라디오 방송국도 수십 개씩 거느리고 있으며, 로스 40 프린시팔레스와 케부에나가 유명하다.
1930년 에밀리오 아스카라가 비다루레타 (Emilio Azcárraga Vidaurreta)가 XEW-AM라는 호출부호를 가지고 멕시코 소리 (La Voz México)를 설립하면서부터 텔레비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1950년 로물로 O'파릴 (Rómulo O'Farril)은 XHTV-TV라는 호출부호로 카날 4 (Canal 4)가 개국되었는데, 이는 중남미에서의 첫번째 텔레비젼 방송국이다. 1년 뒤인 1951년에 에밀리오 아스카라가 비다루레타는 호출부호 XEW-TV로 카날 2 (Canal 2)가 개국되었는데, 이는 훗날 카날 데 라스 에스트렐랴스가 된다.
1952년에는 컬러TV 발명자인 기예르모 곤살레스 카마레라 (Ing. Guillermo González Camarena)는 호출부호 XHGC-TV로 카날 5 (Canal 5)가 개국되었다.
멕시코 텔레비젼 전파가 발사된 지 5년이 지난 1955년에는 에밀리오 아스카라가 비다루레타와 카날 4, 카날 5 주인은 한 그룹으로 합병하기로 협약을 맺었으며, 이 셋이 모여 텔레비사가 만들어졌다.
1970년에 맥시코 최초로 최초로 앵커맨이 직접 진행하븐 방식의 뉴스프로그램인 24 HORAS(1970-1998)를 방송하기 시작했으며[2] 1973년 에밀리오 아스카라가 비다루레타의 타계를 통해 에밀리오 아스카라가 밀모 (Emilio Azcárraga Milmo)가 경영권을 승계하였다. 1968년에는 호출부호 XHTM-TV로 카날 8이 개국하였으며, 멕시코시티 산 앙헬에 스튜디오가 설치되었다. 당시 경쟁업체였던 텔레시스테마 메히카노가 경영진의 사망에 따라 텔레비전 사업을 접기로 했고 이에 텔레비사가 텔레스스테마 메히카노를 인수하기로 타전, 합병되었다. 텔레비사 위성방송국이 개국되었다.
에밀리오 아스카라가 밀모는 국제화 전략을 추진하여 1976년에는 우니비시온 (Univisión)[3] 에 자신들의 컨텐츠를 수출하였으며, 이는 멕시코 밖에서 스페인어 컨텐츠가 도달하는 계기가 되었다. 1970년대 텔레비사는 자신들의 컨텐츠를 유럽에 수출하였으며, 스페인에 이베로비사를 설립하였다. 1980년대에는 네덜란드 계열사인 에우로비사를 설립하였다.
1988년에는 국제방송인 갈라비시온을 송출하기 시작하였으며, 5개의 위성을 통해 텔레노벨라, 스포츠, 뉴스 등을 전세계에 방송하기 시작했다. 동년에는 스페인 뉴스를 멕시코, 미국, 중남미, 북아프리카에 내보내기 시작하였다.
1990년 초반, 텔레비사는 멕시코증권거래소에 상장되었으며, 1993년에는 뉴욕증권시장에 상장되었다.
1997년에는 경영권이 에밀리오 아스카라가 헤안 (Emilio Azcárraga Jean)으로 승계되었다.
미국의 빌 게이츠는 14%의 지분을 구입하였으며[4] , 2009년 4월에는 지분을 두 배로 늘렸다.[5]
오늘날에는 방송 외에도 인터넷, 휴대전화, 소비자 제품, 이벤트, 게임, 복권 다양한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2012년 동안 기업주 후안 알베르토 세페다 멘데스 (Juan Alberto Zepeda Méndez)는 우니비시온과 텔레비사를 통합하였으며, 중남미 실업자를 위해 일자리를 늘렸다.
오늘날 텔레비사와 우니비시온은 중남미에서 같은 내용을 보내기 위해 규약을 정해놓고 있다.
멕시코 증권거래소에 상장되어있으며, 뉴욕 증권거래소에도 상장되어있다. 스페인 방송사인 라 섹스타 (La Sexta) 지분의 40%를 가지고 있으며, 중남미 여러 방송사의 지분도 가지고 있다.
텔레비사 소속 전국구 지상파 방송국은 총 4개로, 카날 데 라스 에스트렐랴스, 카날 5, 갈라 TV, 포로 TV가 있으며, 모두 HD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이외에도 258개의 지역 방송국이 있다.
위성방송사인 스카이 멕시코가 이 회사와 관련있으며, 멕시코시티 및 수도권 지역에는 이시 텔레콤 (Izzi Telecom)을 통해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데 펠리쿨라, 텔레히트 등 몇몇 케이블 방송사가 텔레비사와 연관이 있다.
텔레비사는 라디오 방송국도 운영하고 있다. 사실 라디오폴리스 그룹 (Grupo Radiopolis), 프리사 그룹 (Grupo Prisa)과 라디오라마 그룹 (Grupo Radiorama)이 연합하여 만들어졌으며, 스페인 프리사 그룹과 텔레비사 라디오는 지분을 각각 50%씩 가지고 있다.
전국구 라디오로는 아래와 같이 총 5개가 있다.
그러나 후술하겠지만 워낙 막장같은 텔레비사의 행태와 빈부격차가 심한 멕시코 상황 때문에 농어촌 지역으로 갈수록 주민들의 편향적 시각이 심각하다. 이는 멕시코시티 등 대도시권에는 라디오 센트로 그룹, 노티시아스 MVS 등 다른 시각을 가진 여러 방송국들이 있고, 인터넷망 등 통신의 접근성이 쉬워서 보다 균형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는 반면, 농어촌 지역에는 텔레비사 계열 라디오방송국밖에 없고,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인터넷 등 다른 매체로의 접근성이 상당히 낮다.
위에서 말한 게 전부가 아니다. 자체 출판사를 보유하고 있어 코스모폴리탄 (Cosmopólitan), 메카니카 포풀라르 (Mecánica Popular), 부엔오가르 (Buenhogar), TV와 노벨라 (TV y Novelas), 텔레기아 (Teleguía), 에레스 (Eres), 에레스 노비아 (Eres Novia), 소모스 (Somos), 시네 프레미에르 (Cine Premier), 쿠오 (Quo)와 사베르 베르 (Saber Ver) 등을 출간하고 있다. 또한 내셔널 지오그래픽 멕시코판을 이 회사에서 번역하여 발행하고 있다.
모바일 및 인터넷과 연관되어있다.
텔레비사 그룹의 본업은 방송업이긴 하지만,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우니비시온 (Univisión)의 지분을 텔레비사가 70%나 가지고 있어 사실상 최대 주주이며, R.T.I.와 텔레문도도 이 회사와 연관되어있다. 외국계 방송사 중에는 CNN 멕시코가 텔레비사와 연관이 있는데, 포로TV를 통해 송출된다.
멕시코의 저가항공사인 볼라리스 항공의 지분 중 일부가 이 회사 소속이다.
아래 내용은 스페인어 위키백과에 기초해서 작성한 내용이며, 아래 목록 외에도 멕시코주 전역에 지역 방송국들이 존재한다.
텔레비사는 창립 이래부터 제도혁명당과 깊은 관계를 맺었으며, 운영형태상으로 국영방송이나 공영방송이 아닌 민영방송이었음에도 꽤나 오랜기간 동안 멕시코 TV방송 시장을 과점하면서 TV 아스테카의 출범 이전까지는 안정적인 수익을 거둘수있었고, 현재까지도 멕시코 양대 방송사로 손꼽히고 있다. 이러한 관계가 논조에도 적극적으로 반영되며 공정성에 있어 수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1968년 10월 2일 틀라텔롤코 학살(68운동의 일부로 일어난 시위 진압)과 관련하여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였으며, 1990년대에는 TV 아스테카가 경쟁 민영방송사로 텔레비사보다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논조의 뉴스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신뢰도가 크게 추락하는 위기를 겪었다.[6]
또한 멕시코 정부의 언론통제도 한 몫 했긴 했지만, 이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오늘날까지 친PRI 성향을 보여왔으며, 이를 위해 사실까지 왜곡해서 보도하였다. 당장 멕시코 아요치나파 사범대학교 학생 실종사건만 다룬다고 해도 텔레비사 계열 뉴스와 다른 언론사 (라 호르나다, 노티시아스 MVS 등)와의 논조 차이가 심각하다.[7][8]
위에서 언급한 객관성 문제와 같이 엮인다. 멕시코에서 정치적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멕시코 정부는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특정 이벤트를 아주 크게 벌리는 경향이 있는데,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체스피리토 (Chespirito)라 불리는 멕시코 코미디언 로베르토 고메스 볼라뇨스 (Roberto Gómez Bolaños)가 타계하였을 때 그의 장례식을 성대하게 한 것. 시신은 11월 30일 톨루카 국제공항을 통해 멕시코주의 주도인 톨루카에 도착한 뒤 멕시코시티에 있는 아스테카 운동장까지 퍼레이드하고 아스테카 운동장에서 영결식을 한 뒤 외부순환도로를 통해 텔레비사 산앙헬 스튜디오까지 그를 운구했으며, 그가 운구될 때마다 주변 주민들이 길가에 나와서 지켜보도록 한 것.
문제는 텔레비사가 그의 장례식을 굉장히 성대하게 했다는 것인데, 카를로스 푸엔테스 등 수많은 위인들이 사망할 때 장례식을 그렇게 성대하게 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국민들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것이 분명했다. 당시 멕시코 아요트시나파 사범대학교 학생 실종사건과 관련된 항의집회가 날마다 열리고 있었고, 이 시기에 엔리케 페냐 니에토의 멕시코시티 - 케레타로 고속철도 및 대통령 사저와 관련한 부정부패가 숱하게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에 성난 민심을 잠재우려는 의도로 이 일을 벌린 것. 성대한 행사로 인해 많은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고, 거기에 더 나아가 그를 기리는 특별 페이지까지 만들었으며, 다른 방송과 신문사들이 가만히 있는데도 텔레비사는 계속해서 체스피리토와 관련된 소식을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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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멕시코 시티 지진 때 본사인 알바로 오브레곤 건물이 폭삭 무너졌다.더 후덜덜한 것은 이 당시 생방송 중이었던 뉴스 앵커들은 무너지기 직전까지 방송을 하고 있었다는 것 (...) 현재의 건물은 지진 후 재건된 건물이다.
Grupo Televisa
텔레비사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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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시티 텔레비사 차풀테펙 본사.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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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시티 텔레비사 산앙헬 스튜디오. 텔레노벨라 촬영과 관련있다. 출처
1. 개요
멕시코에 있는 민영 방송국. 스페인어권 방송국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1]
258개의 지상파 방송과 케이블 방송, 지역 방송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중 라스 에스트레야스가 많이 알려져있다. 또한 라디오 방송국도 수십 개씩 거느리고 있으며, 로스 40 프린시팔레스와 케부에나가 유명하다.
2. 역사
1930년 에밀리오 아스카라가 비다루레타 (Emilio Azcárraga Vidaurreta)가 XEW-AM라는 호출부호를 가지고 멕시코 소리 (La Voz México)를 설립하면서부터 텔레비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1950년 로물로 O'파릴 (Rómulo O'Farril)은 XHTV-TV라는 호출부호로 카날 4 (Canal 4)가 개국되었는데, 이는 중남미에서의 첫번째 텔레비젼 방송국이다. 1년 뒤인 1951년에 에밀리오 아스카라가 비다루레타는 호출부호 XEW-TV로 카날 2 (Canal 2)가 개국되었는데, 이는 훗날 카날 데 라스 에스트렐랴스가 된다.
1952년에는 컬러TV 발명자인 기예르모 곤살레스 카마레라 (Ing. Guillermo González Camarena)는 호출부호 XHGC-TV로 카날 5 (Canal 5)가 개국되었다.
멕시코 텔레비젼 전파가 발사된 지 5년이 지난 1955년에는 에밀리오 아스카라가 비다루레타와 카날 4, 카날 5 주인은 한 그룹으로 합병하기로 협약을 맺었으며, 이 셋이 모여 텔레비사가 만들어졌다.
1970년에 맥시코 최초로 최초로 앵커맨이 직접 진행하븐 방식의 뉴스프로그램인 24 HORAS(1970-1998)를 방송하기 시작했으며[2] 1973년 에밀리오 아스카라가 비다루레타의 타계를 통해 에밀리오 아스카라가 밀모 (Emilio Azcárraga Milmo)가 경영권을 승계하였다. 1968년에는 호출부호 XHTM-TV로 카날 8이 개국하였으며, 멕시코시티 산 앙헬에 스튜디오가 설치되었다. 당시 경쟁업체였던 텔레시스테마 메히카노가 경영진의 사망에 따라 텔레비전 사업을 접기로 했고 이에 텔레비사가 텔레스스테마 메히카노를 인수하기로 타전, 합병되었다. 텔레비사 위성방송국이 개국되었다.
에밀리오 아스카라가 밀모는 국제화 전략을 추진하여 1976년에는 우니비시온 (Univisión)[3] 에 자신들의 컨텐츠를 수출하였으며, 이는 멕시코 밖에서 스페인어 컨텐츠가 도달하는 계기가 되었다. 1970년대 텔레비사는 자신들의 컨텐츠를 유럽에 수출하였으며, 스페인에 이베로비사를 설립하였다. 1980년대에는 네덜란드 계열사인 에우로비사를 설립하였다.
1988년에는 국제방송인 갈라비시온을 송출하기 시작하였으며, 5개의 위성을 통해 텔레노벨라, 스포츠, 뉴스 등을 전세계에 방송하기 시작했다. 동년에는 스페인 뉴스를 멕시코, 미국, 중남미, 북아프리카에 내보내기 시작하였다.
1990년 초반, 텔레비사는 멕시코증권거래소에 상장되었으며, 1993년에는 뉴욕증권시장에 상장되었다.
1997년에는 경영권이 에밀리오 아스카라가 헤안 (Emilio Azcárraga Jean)으로 승계되었다.
미국의 빌 게이츠는 14%의 지분을 구입하였으며[4] , 2009년 4월에는 지분을 두 배로 늘렸다.[5]
오늘날에는 방송 외에도 인터넷, 휴대전화, 소비자 제품, 이벤트, 게임, 복권 다양한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2012년 동안 기업주 후안 알베르토 세페다 멘데스 (Juan Alberto Zepeda Méndez)는 우니비시온과 텔레비사를 통합하였으며, 중남미 실업자를 위해 일자리를 늘렸다.
오늘날 텔레비사와 우니비시온은 중남미에서 같은 내용을 보내기 위해 규약을 정해놓고 있다.
3. 사업
멕시코 증권거래소에 상장되어있으며, 뉴욕 증권거래소에도 상장되어있다. 스페인 방송사인 라 섹스타 (La Sexta) 지분의 40%를 가지고 있으며, 중남미 여러 방송사의 지분도 가지고 있다.
3.1. 방송국
3.1.1. 지상파
텔레비사 소속 전국구 지상파 방송국은 총 4개로, 카날 데 라스 에스트렐랴스, 카날 5, 갈라 TV, 포로 TV가 있으며, 모두 HD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이외에도 258개의 지역 방송국이 있다.
3.1.2. 유선방송
위성방송사인 스카이 멕시코가 이 회사와 관련있으며, 멕시코시티 및 수도권 지역에는 이시 텔레콤 (Izzi Telecom)을 통해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데 펠리쿨라, 텔레히트 등 몇몇 케이블 방송사가 텔레비사와 연관이 있다.
3.1.3. 라디오
텔레비사는 라디오 방송국도 운영하고 있다. 사실 라디오폴리스 그룹 (Grupo Radiopolis), 프리사 그룹 (Grupo Prisa)과 라디오라마 그룹 (Grupo Radiorama)이 연합하여 만들어졌으며, 스페인 프리사 그룹과 텔레비사 라디오는 지분을 각각 50%씩 가지고 있다.
전국구 라디오로는 아래와 같이 총 5개가 있다.
- W 라디오 : 뉴스.
- 로스 40 프린시팔레스 : 젊은이들을 위한 라틴 팝과 팝송 제공.
- 케부에나 : 멕시코 전통형 음악 제공.
- XEQ 라디오
- TD W
그러나 후술하겠지만 워낙 막장같은 텔레비사의 행태와 빈부격차가 심한 멕시코 상황 때문에 농어촌 지역으로 갈수록 주민들의 편향적 시각이 심각하다. 이는 멕시코시티 등 대도시권에는 라디오 센트로 그룹, 노티시아스 MVS 등 다른 시각을 가진 여러 방송국들이 있고, 인터넷망 등 통신의 접근성이 쉬워서 보다 균형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는 반면, 농어촌 지역에는 텔레비사 계열 라디오방송국밖에 없고,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인터넷 등 다른 매체로의 접근성이 상당히 낮다.
3.2. 출판업
위에서 말한 게 전부가 아니다. 자체 출판사를 보유하고 있어 코스모폴리탄 (Cosmopólitan), 메카니카 포풀라르 (Mecánica Popular), 부엔오가르 (Buenhogar), TV와 노벨라 (TV y Novelas), 텔레기아 (Teleguía), 에레스 (Eres), 에레스 노비아 (Eres Novia), 소모스 (Somos), 시네 프레미에르 (Cine Premier), 쿠오 (Quo)와 사베르 베르 (Saber Ver) 등을 출간하고 있다. 또한 내셔널 지오그래픽 멕시코판을 이 회사에서 번역하여 발행하고 있다.
3.3. 상호 미디어
모바일 및 인터넷과 연관되어있다.
3.4. 기타 사업
텔레비사 그룹의 본업은 방송업이긴 하지만,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우니비시온 (Univisión)의 지분을 텔레비사가 70%나 가지고 있어 사실상 최대 주주이며, R.T.I.와 텔레문도도 이 회사와 연관되어있다. 외국계 방송사 중에는 CNN 멕시코가 텔레비사와 연관이 있는데, 포로TV를 통해 송출된다.
멕시코의 저가항공사인 볼라리스 항공의 지분 중 일부가 이 회사 소속이다.
4. 지역 방송국
아래 내용은 스페인어 위키백과에 기초해서 작성한 내용이며, 아래 목록 외에도 멕시코주 전역에 지역 방송국들이 존재한다.
4.1. 멕시코시티
- 차풀테펙
- 산앙헬
- 산타페
4.2. 과나후아토
- 레온 (텔레비사 델 바히오: Televisa del Bajío)
4.3. 누에보 레온
- 몬테레이 (MTY 텔레비시온: MTY televisión, 텔레악티바 (Teleactiva))
4.4. 두랑고
- 에르모실요
4.5. 멕시코
- 톨루카
4.6. 미초아칸
- 미초아칸
4.7. 바하 칼리포르니아
- 멕시칼리 (투 카날:Tu Canal)
- 엔세나다
- 티후아나 (투 카날:Tu Canal)
4.8. 베라크루스
- 베라크루스 (텔레베르: Telever)
4.9. 사카테카스
- 사카테카스
4.10. 산 루이스 포토시
- 산 루이스 포토시 (텔레이사 산 루이스: Televisa San Luis)
4.11. 아구아스칼리엔테스
- 아구아스칼리엔테스
4.12. 치와와
- 시우다드 후아레스 (투카날 시우다드 후아레스: TuCanal (Ciudad Juárez))
- 치와와
4.13. 케레타로
- 케레타로
4.14. 코아우일라
- 살티요 (텔레비사 살티요: Televisa Saltillo)
- 토레온 (텔레비사 라구나: Televisa Laguna)
- 피에드라스 네그라스
4.15. 타마울리파스
- 마타모로스 (발례비시온)
- 누에보 라레도
- 탐피코 (헨테 리데르: Gente Lider)
4.16. 푸에블라
- 푸에블라 (TV3)
4.17. 할리스코
- 과달라하라 (GDL 투 에스타시온: GDL tu estación)
5. 논란
5.1. 뉴스에서의 객관성
텔레비사는 창립 이래부터 제도혁명당과 깊은 관계를 맺었으며, 운영형태상으로 국영방송이나 공영방송이 아닌 민영방송이었음에도 꽤나 오랜기간 동안 멕시코 TV방송 시장을 과점하면서 TV 아스테카의 출범 이전까지는 안정적인 수익을 거둘수있었고, 현재까지도 멕시코 양대 방송사로 손꼽히고 있다. 이러한 관계가 논조에도 적극적으로 반영되며 공정성에 있어 수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1968년 10월 2일 틀라텔롤코 학살(68운동의 일부로 일어난 시위 진압)과 관련하여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였으며, 1990년대에는 TV 아스테카가 경쟁 민영방송사로 텔레비사보다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논조의 뉴스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신뢰도가 크게 추락하는 위기를 겪었다.[6]
또한 멕시코 정부의 언론통제도 한 몫 했긴 했지만, 이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오늘날까지 친PRI 성향을 보여왔으며, 이를 위해 사실까지 왜곡해서 보도하였다. 당장 멕시코 아요치나파 사범대학교 학생 실종사건만 다룬다고 해도 텔레비사 계열 뉴스와 다른 언론사 (라 호르나다, 노티시아스 MVS 등)와의 논조 차이가 심각하다.[7][8]
5.2.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에서 언급한 객관성 문제와 같이 엮인다. 멕시코에서 정치적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멕시코 정부는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특정 이벤트를 아주 크게 벌리는 경향이 있는데,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체스피리토 (Chespirito)라 불리는 멕시코 코미디언 로베르토 고메스 볼라뇨스 (Roberto Gómez Bolaños)가 타계하였을 때 그의 장례식을 성대하게 한 것. 시신은 11월 30일 톨루카 국제공항을 통해 멕시코주의 주도인 톨루카에 도착한 뒤 멕시코시티에 있는 아스테카 운동장까지 퍼레이드하고 아스테카 운동장에서 영결식을 한 뒤 외부순환도로를 통해 텔레비사 산앙헬 스튜디오까지 그를 운구했으며, 그가 운구될 때마다 주변 주민들이 길가에 나와서 지켜보도록 한 것.
문제는 텔레비사가 그의 장례식을 굉장히 성대하게 했다는 것인데, 카를로스 푸엔테스 등 수많은 위인들이 사망할 때 장례식을 그렇게 성대하게 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국민들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것이 분명했다. 당시 멕시코 아요트시나파 사범대학교 학생 실종사건과 관련된 항의집회가 날마다 열리고 있었고, 이 시기에 엔리케 페냐 니에토의 멕시코시티 - 케레타로 고속철도 및 대통령 사저와 관련한 부정부패가 숱하게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에 성난 민심을 잠재우려는 의도로 이 일을 벌린 것. 성대한 행사로 인해 많은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고, 거기에 더 나아가 그를 기리는 특별 페이지까지 만들었으며, 다른 방송과 신문사들이 가만히 있는데도 텔레비사는 계속해서 체스피리토와 관련된 소식을 내보냈다.
6. 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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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멕시코 시티 지진 때 본사인 알바로 오브레곤 건물이 폭삭 무너졌다.더 후덜덜한 것은 이 당시 생방송 중이었던 뉴스 앵커들은 무너지기 직전까지 방송을 하고 있었다는 것 (...) 현재의 건물은 지진 후 재건된 건물이다.
7. 주요 참고문헌
- Monsiváis, Carlos. Azcárraga Milmo y la "filosofía de Televisa". Revista Proceso. México D.F. 1997년 4월 23일.
- Wikipedia (España). Televisa. 2015년 2월 15일 확인.
[1] Cyntia Barrera의 보도. Carlos Aliaga 편집 (2013년 1월 22일). "Grupo mexicano Televisa impulsará cobertura deportiva, canal Univision". Reuters. 2015년 2월 15일 확인.[2] 다만 1970년대와 90년대 초반에 걸쳐서 친 제도혁명당 논조를 강하게 띄었기 때문에 여러모로 악명이 자자한 프로그램이었으며 1980년대 이후로 멕시코의 양극화가 김화되고 제도혁명당에 지지율이 떨어지기 시작했을때 이같은 논조에 대한 반발로 시민단체와 야당을 중심으로 시청거부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3] 2010년대 중반 기즈모도, 코타쿠 등의 웹진을 보유하고있는 고커미디어를 인수후 산하에 두고있다. 왜 고커가 여기로 들어갔냐면 고커 계열에서 헐크 호건을 함부로 건드려서 인실좆당했기 때문.[4] Los Angeles Times. Gates Buys 7% Stake in Grupo Televisa. 2003년 7월 31일 작성. 2015년 2월 15일 확인[5] 人民网 (español). Bill Gates duplica sus inversiones en Televisa. 2009년 2월 19일 작성. 2015년 2월 15일 확인.[6] La Jornada, 2001년 6월 10일 작성, 2015년 2월 15일 확인.[7] "Un Imperio de Poder desde Televisa y TV Azteca", Documental de Canal 6 de Julio[8] La Jornada. Convoca #YoSoy132 a la transformación de México. 2012년 7월 28일 작성, 2015년 2월 15일 확인.